안녕, 전국 방방곡곡 만두 맛집을 소개하는 만두 오브 더 데이 @mandoo_of_the_day다. 사무치게 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길 위에 새하얀 만두 찜통의 수증기가 펄펄 피어오른다. 뭐니뭐니해도 겨울은 만두의 계절. 이 시절 가장 행복한 순간을 고르라면 뜨끈한 만둣국을 입안에 한 숟갈 넣을 때 창밖으로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던 날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어지럽고 차갑게 얼어붙을수록 뜨거운 국물이 필요하다. 숨 가쁘게 달려온 올 한 해를 정리하며 잠시나마 나른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푹 끓인 사골국물에 둥둥 떠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만두를 즐겨보면 어떨까! 자칭 만두 쩝쩝박사인 내가 틈날 때마다 들르는 서울 곳곳의 떡만둣국집을 소개해본다. 퇴근길 만둣국 한 그릇 든든히 챙기면 이 겨울도 우리 편이 될 것!
[1]
‘두부와 숙주가 압도적인 만두’
옥돌현옥
송파구 오금동의 오랜 자랑, 옥돌현옥의 떡만둣국을 만난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여름이었다. 입에 착 달라붙는 만두는 싫고, 사무실의 냉기에 질려버린 회사 동료들과 함께 ‘도전!’ 을 외치며 처음으로 시도해본 메뉴였다. 평양냉면과 돼지국밥 그리고 다양한 부위의 고기 양이 넉넉하고 신선한 야채로 수북한 성을 쌓은 이 집 시그니처 어복쟁반 사이 두 알씩도 주문할 수 있는 만두는 거의 모든 테이블에 올라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큼직한 수제만두는 두부와 숙주가 압도적으로 꽉 차 있어 담백한 맛이 일품이고 만두 찌는 타이밍이 기가 막혀 쫄깃한 만두피의 식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데 그 만두가 끈적한 고깃국물에 풍덩 빠지면 얼마나 맛있을까! 섭섭하지 않게 올라간 고기 고명 두 조각, 자극적이지 않은 만두 네 알이 들어간 만둣국에 밥을 말아먹고 일어나면 당장 어디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서울 송파구 오금로36길 26-1
- 만둣국 1만 1,000원
[2]
‘귀여운 김치만두 6알’
안덕
가끔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느끼한 파스타나 피자 말고 자극적인 훠궈 말고 좀 더 담백한 맛을 찾는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소박한 공간이라 비밀 이야기하기 제격이다. 안국의 소담스러운 뒷골목에 자리잡은 안덕에서는 그동안 경험해본 만둣국집들과는 조금은 다른 무드를 느낄 수 있다. ‘뜨끈한 만둣국을 먹고 싶은데 조금 특별한 곳 없을까’ 혹은 ‘요즘 좀 재미있는 공간 있을까’하는 분들에게 이곳을 자주 추천드려왔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검은색 테이블과 흰 쉐프복을 입은 젊은 사장님 그리고 검은색 앞치마를 두른 스텝. 단정한 분위기에 놀라고 단아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고운 만둣국 비주얼에 또 한번 놀란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모양의 김치만두 6알이 맑은 고깃국물 위에 그대로 드러나 한참 보고 있으면 기분이 맑아진달까. 너무 추운 날보다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좋아하는 사람과 한그릇 앞에 두고 막걸리 한잔 걸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만 싶은 그런 기분이 든다.
이곳의 또 다른 별미는 고추튀김이다. 육즙 가득한 고기소가 듬뿍 들어있는 고추튀김은 매번 ‘과식하지 말자’ 라고 마음을 다잡고 방문하는 안덕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메뉴다. 직접 갈아 만들었다는 콩전 또한 꼭 한번 맛볼 메뉴다. 내 기준엔 조금 달아 호불호가 갈릴 거라 예상되지만 국내산 콩만을 넣어 부쳤다는 보드라운 콩전은 방문한 김에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추위가 한풀 꺾이면 가득 부른 배를 부여잡고 길 건너 경복궁 뜰을 거닐며 계절을 느끼는 호사를 누려보자!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1층
- 만둣국 1만 5,000원
[3]
‘직접 담근 김치로 빚는 만두’
개성 한가손만두
점심시간부터 만두가 남아있다면 오후 7시까지 영업하는 암사동의 전설 개성 한가손만두는 주말 평일 없이 문전성시다. 만둣국, 떡만둣국, 찐만두. 이 집의 메뉴는 이게 전부다. 잘하는 걸 잘 해내시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단출한 메뉴판에 한눈에 반해버렸다. 매장이 협소해 자리가 많지 않지만 단순한 메뉴와 그 깊은 맛에 금세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일어나시는 어른들 덕분에 기다림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장 한켠에서는 직접 빚은 만두피로 만두 싸기 열전이 펼쳐지고 만두가 부족해 오후 3시 전까지는 찐만두 포장이 불가하다. 사장님이 직접 서빙을 하시며 테이블의 주문을 챙기시고 얼마 되지 않아 직접 담그신 새빨간 무김치가 모습을 드러내며 식사의 흥을 돋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메뉴가 8,000원이라는 것.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매장 안이 어르신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로 가득 차오를 때쯤 만둣국과 갓 쪄진 찐만두가 여기저기로 흩어져 주인을 찾아간다.
뽀얀 사골 베이스의 국물 위로 7알의 김치만두가 둥둥 떠 있다. 직접 담근 김치로 빚은 이 집 만두는 예전 명절 때마다 빚던 집 김치만두가 떠오른다. 숭덩숭덩 썰린 배추김치가 가득한 한입 크기의 만두가 보드라운 떡과 참 잘 어울린다. 국내산 한우 사골 잡뼈로 육수를 낸 만둣국, 뿐만 아니라 쫄깃한 찐만두까지 곁들이는 사이 온몸에 온기가 퍼진다. 이번 겨울 꼭 한번 먹고 사는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암사동의 떡만둣국을 만나보시길!
- 서울 강동구 고덕로10길 26
- 만둣국 8,000원
[4]
‘육향이 강한 고기만두’
서령
연말 분위기 물씬 나는 남대문 시장을 벗어나 길을 건너면 홍천 장원막국수부터 시작해 강화도를 거쳐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서령이 나타난다. 매장에 들어서면 25년 동안 실제 평양냉면 명장이 메밀 순면을 삶아낼 때 사용했다는 싸리나무 대젓가락과 면수 국자 등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맛에 자부심이 대단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따뜻하게 덖은 메밀차와 맛볼거리 가득한 찬이 깔린다. 두께가 알맞은 만두피에 보통 이북만두와는 다르게 고기 비율이 높아 육향이 강한 만두를 맛볼 수 있다. 야채와 고기 향이 골고루 퍼지면서도 뒷맛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게 이 집 시그니처 순메밀면으로 만든 평양냉면과도 같은 서사를 느낄 수 있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만두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밀조밀 음미하다보면 대충 빚어 마무리 지은 내 하루가 위로받는 것 같아 오묘한 기분이 든다. 네 알의 만두가 서령 특유의 깔끔한 고깃국물 위로 떠오르고 수북하게 올라간 양지 고명을 함께 곁들이면 풍부한 육향을 즐길 수 있다.
순 메밀면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진한 들기름 순면이나 서령 고유의 시원한 육수가 돋보이는 순면과 비빔순면 모두 곁들여 보시길 추천한다.
- 서울 중구 소월로 10 1층
- 만둣국 1만 6,000원
[5]
‘뱅뱅사거리 일대의 속풀이 성지’
임병주 산동칼국수
이 집을 처음 알게 된 건 취업을 앞두었던 대학교 4학년 여름. 이 근처 가고 싶었던 회사가 있어 거기 다니는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고 어떻게 생겼나 구경하려고 서성거리다 알게 되었다. 운이 좋아 그 회사에 들어갔고, 찬바람이 분다 싶으면 일주일에 두 번 꼭 이집에서 칼국수와 떡만둣국 그리고 만두 한 판을 해치웠다.
1988년 문을 열어 30년 이상 양재동과 뱅뱅 사거리 일대의 직장인들의 속풀이 성지로 활약해 온 이곳. 평양식 왕만두와 여름철 별미 콩국수 그리고 꼬들꼬들한 면이 일품인 수제 칼국수는 한 건물을 쓰실 때부터 별관을 만드신 지금까지 그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 집의 유난스럽지 않은 묵묵한 발전사를 목격하며 역시 오래하고 잘하고 끝까지 하고는 인생의 진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숙주와 고기, 포슬포슬한 두부 그리고 파가 가득 들어간 전통 한국식 찐만두 7알, 칼국수와 같은 육수 베이스를 사용하는 시원한 바지락 국물 속을 헤엄치는 만두의 쫄깃함이 일품이다. 초간장 속 고추나 알싸한 배추김치에 곁들이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한여름엔 국산 콩을 갈아 걸쭉하게 만든 콩국수, 한겨울엔 든든한 떡만둣국과 쫄깃한 칼국수까지 계절을 타지 않도록 매 계절 다양한 취향의 손님을 붙잡을 수 있는 메뉴들을 준비하고 있는 한결같은 이집이 참 좋았다. 열심히 하는 것밖에 딱히 재주를 부릴 줄 몰랐던 2015년 신입사원의 나 같달까.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고객을 위해 주차를 무료로 운영하고, 10년 이상 일하신 이모님들이 많아 스무스한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것. 또 한번 한 길만 오래 파온 집의 위력을 느끼게 한다.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37길 65
- 만둣국 1만 2,000원
[6]
‘강북의 사골 만두굿 터줏대감’
황생가 칼국수
삼청동의 터줏대감, 만둣국의 전통 강자로 강북에서 진한 사골 만둣국을 맛볼 수 있는 황생가 칼국수다. 한복 입은 여행객들과 바쁜 직장인들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같은 길 위를 걸어가는 이 곳, 북촌의 갤러리들 사이 가장 매력적인 길은 단연 국립현대미술관 옆, 황생가 칼국수가 위치한 골목길이다.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백김치. 뽀얗고 시원한 백김치로 허기를 달래다보면 1층에서 끝없이 빚고 있는 손만두가 테이블 위에 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만두와 알싸한 마늘향 가득한 김치는 환상의 페어링. 한우 사골과 잡뼈를 장시간 우려낸 국물에 돼지고기와 양파와 각종 채소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큼지막한 만두 5알이 어울어져 한입 가득 기쁨을 전해온다. 고명으로 얹어진 얇게 썬 파와 애호박 그리고 계란이 눈의 즐거움까지 챙겨준다.
“전시 봤어요? 혼자 왔네? 사람 없는 시간에 딱 잘 왔어”라며 백김치를 우적우적 비워내는 내게 말을 거시는 이모님. 백김치 두 그릇을 미리 가져다 주시며 내 앞에 계산서를 세워 주신다. 1층에서 만두를 빚으시고 2층에서 접객을 하시는 멀티 플레이어. 이 집의 또 다른 자랑은 오래 일하신 이모님들이다.
매년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될 만큼 계절에 관계없이 매장 앞에는 끝없는 줄이 이어지지만,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미술관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는 기쁨임에 틀림없다. 이 곳의 수저 종이포장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장수와 행복,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78
- 만둣국 1만 2,000원
[7]
선릉 반룡산
고등학교 시절 수학이 너무나 어려워 대치동 사거리에서 광광 울어댔던 기억이 있다. 한바탕 울고 나면 배가 고파졌고 그럴 때면 고민 없이 반룡산으로 가 구석에 앉았다. 작년 잠실로 이사하기 전까지 매년 겨울 수능철만 다가오면 그때의 내가 한편으로는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이곳에 다시 들러 만둣국을 먹는다.
손바닥만 한 이 집의 시그니처 대왕 만두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크기에 1센티미터의 오차도 생기지 않았다. 함흥음식 전문점이자 선릉 일대에서 늦게까지 식사를 할 수 있는 선릉의 등대와 같은 이곳, 반룡산의 헤드라이너는 가릿국밥과 만두다. 따뜻한 메밀 면수와 육수를 번갈아 먹다 보면 슴슴하고 짭짤한 내 인생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오묘한 기분이 든다.
사골 국물 베이스에 손바닥만한 왕만두 3알이 꽉 찬 만둣국을 보면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다. 대단한 만두 사이즈에 가려져 만둣국 바닥이 보이지 않으니. 만두소는 각종 야채와 두부 그리고 소와 돼지고기로 구성되어 있고, 함흥식 만두 특유의 슴슴함을 즐길 수 있다.
둘이라면 곁들이기 좋은 가릿국밥은 소갈비와 양지 설깃살을 4시간 동안 끓여낸 맑은 국물이 특징인 함경도 지방 향토음식으로 맑은 소고기뭇국이 생각나는 맛이다. 육수에 담긴 밥의 온도감이 좋고 숭덩숭덩 썰어낸 무와 선지가 담백한 국물맛을 더해준다.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78길 26 1층
- 만둣국 1만 2,000원
About Author
만오데
지붕 아래 똑같은 만두와 돈까스는 없다는 생각으로 조선팔도를 먹어내고 걸어내는 우당탕탕 만두생활자이자 생계형 마케터. 언젠가 만두 위스키바를 운영하기 위해 돈과 운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