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보고 갈래?”라는 표현엔 업데이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뭐 보게?”라는 역질문에 당당하게 내밀 수 있는 그럴싸한 영화가 잘 떠오르지 않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최근작부터 살펴보자면… 마동석이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황야>를 보자고 해볼까? <범죄도시>를 비롯한 비슷한 영화 서너 편의 이름과 함께 단칼에 거절당할 수도 있다. 탈북자 송중기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로기완>은 어떨까. 이 또한 불행한 인물을 주인공 삼은 유사한 영화들과 비교당할 확률이 높다. 비장의 무기로 유명한 히트작인 <버드 박스>, <올드가드>, <익스트랙션>을 언급했다간 ‘이미 여러 번 봤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그렇다고 다짜고짜 <로마>, <아이리시맨>, <이제 그만 끝낼까 해> 같은 예술 영화 계열의 작품을 보자고도 할 수 없을 노릇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다 넷플릭스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넷플릭스 보고 갈래?’라는 말이 어느새 안 멋져진 이유는 무엇일까.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밝혀두어야 할 불편한 진실. 사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어느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별로였다. 그건 영화가 넷플릭스의 에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넷플릭스의 주력 상품은 누가 뭐래도 시리즈다. 월간 구독 서비스의 해지를 방어하기 위해선 호흡이 길고 다음 시즌을 이어갈 수 있는 시리즈에 투자하는 게 적절한 선택인 것은 당연하다.
다만 시리즈는 그만큼 제작 기간이 길 수밖에 없는데, 그 텀을 메우기 위해 탄생한 것들이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것이다. “<기묘한 이야기>, <오징어 게임> 등의 다음 시즌이 나올 때까지 이 영화들을 보면서 구독을 유지해 주세요.” 그러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은 다른 극장 개봉 영화들과 달리 제작 기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채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퀄리티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마감 있는 예술’의 한계인 것이다. 제작사의 작품 스케줄이 거대 시리즈의 제작 일정에 맞춰져 있기에, 중간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촉박한 일정 내에 촬영을 시작하거나 마쳐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바람잡이용으로 공개했다가 예상외로 터진 영화들이고, 둘째는 영화제나 오스카 같은 권위 있는 시상식을 통해 ‘영화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작가주의 감독들에게 투자하여 제작된 예술 영화들이다. <버드박스>, <올드가드>, <익스트랙션> 같은 액션 장르의 영화들이 후속작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잘 된 첫 번째 케이스의 예시이고, <옥자>, <결혼 이야기>, <파워 오브 도그>, <카우보이의 노래> 등이 실제로 칸을 비롯한 세계 유수 영화제들에서 소기의 성과를 이룬 예술 영화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유형이 두 가지 케이스에 속하지 않는, 그러니까 잠깐 반짝했다 묻혀버린 수많은 영화들이다. 우리가 요즘 “넷플릭스 영화 재미없다”라고 할 때의 바로 그 영화들. 이 세 번째 유형이 앞서 말한 첫 번째 두 번째 유형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고, 더 나쁜 소식은 이 추세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운 좋게 터지는 로또 영화들과 유명 작가주의 감독들이 다른 OTT로 넘어갈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나쁜 소식만 전하실 건가요. 좋은 소식 하나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솔직히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가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은 ‘(극장)영화’ 평론가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선 좋은 소식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 역시 더 많은 재밌는 영화를 마음껏 보고 싶은 한 명의 영화 애호가이기에, 넷플릭스가 조금 더 힘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같은 마음을 가진 동지로서 하고 싶은 말은 기대를 낮추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본문을 요약하자면, 결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태생적으로 재밌기가 힘들다. 시리즈와 시리즈 사이의 정해진 공백 기간, 즉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창작된 예술은 자유롭게 마감한 예술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넷플릭스 영화들을 보면 조금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극 후반부 갑자기 힘을 잃고 급히 막을 내리는 영화를 보며, “마감 맞추느라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하며 따뜻한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여유. “넷플릭스 보고 갈래?”라는 오래된 말보단 이 여유가, 당신에게 영화 같은 시간을 선사해 줄 것이다.
넷플릭스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당신께
공개 예정작 4편
<대홍수>
대홍수가 지구를 덮친 상황에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영화라고 한다. 김다미와 박해수 배우가 출연 예정이고, <더 테러 라이브>, <PMC: 더 벙커>의 김병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위 두 작품 모두 꽤 볼만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할 만하다.
<전,란>
임진왜란 시기를 그린 시대극이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배경으로 화려한 검술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연 배우는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등. 전작으론 큰 주목까진 받지 못했던 김상만 감독의 작품이지만, 각본가의 이름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박찬욱이라면 정말 또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 인 액션>
‘백인’이 액션하는 영화가 아니라, 백 인(back in) 액션이다. 주연 배우는 연예계 은퇴 번복 후 복귀를 알린 캐머런 디아즈, 그리고 제이미 폭스다. 전직 CIA 스파이 요원인 두 사람이 코믹 액션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솔직히 뻔할 것 같지만 CIA, 스파이 등 타율 높은 키워드들로 이루어진 영화인 것은 맞다.
숨은 추천작
<여도둑들>
색다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제목 그대로 2인조 ‘여도둑들’이 나오는 프랑스 영화다. 둘은 마지막으로 크게 한몫을 챙긴 다음 은퇴를 계획하는데, 여느 하이스트 장르 영화들이 그렇듯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영화엔 비슷한 장르에서 많이 본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들이 뒤섞여 있는데, 개인적으론 그 배합 비율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배우로서도 두각을 보인 멜라니 로랑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고, 그 파트너 역할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아델 엑사르코풀로스가 출연하여 또 다른 버전의 워맨스를 선보인다. 작년 11월에 공개된 영화인데, 이 영화가 내가 넷플릭스에서 재밌게 본 마지막 오리지널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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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 수상. 영화 글과 평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