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2024. 07. 14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최근 뉴스레터 <퍼줄거임>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혼자서 강릉 바다로 1박2일 휴가를 다녀왔다. 거기까지 가서 파도 소리 들으며 <스토너>를 읽고, 밤에는 호텔방에 설치된 넷플릭스로 3시간 동안 <오펜하이머>를 봤다. 스토너나 오펜하이머나 치열하고 멋진 삶을 살았지만 외로워 보였다. 오히려 그게 조금 위로가 됐다. 아래 소개하는 책 5권도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불만을 품도록 만들어졌다.”

이 책은 ‘GMB’가 쓴 독특한 서문으로 시작한다. 서문에서 GMB는 주장한다. 심리 치료사 콜린스 브레이스웨이트에 대해 누군가 쓴 비망록을 입수했으며, 마침 그는 평소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던 인물이라고. 입수한 비망록 다섯 편과 브레이스웨이트의 일생을 정리한 전기문을 공개하겠노라고.

여기까지 읽고 책 표지를 다시 넘겨봤다. 제목 밑에 분명 ‘그레임 맥레이 버넷 장편소설’이라고 적혀 있다. GMB는 저자 이름 Graeme Macrae Burnet의 약자겠고, ‘소설’이라고 했으니 이건 분명 픽션일 텐데. 그럼 이 서문은 뭐지? 이 소설은 정말 그가 입수한 비망록의 묶음인가? 아님 내가 그의 농간에 시작부터 휘둘리고 있는 것인가. 좋다, 기꺼이 휘둘려주지.

비망록과 전기문이 번갈아 나오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한 사람만 꼽으라면 심리 치료사 브레이스웨이트다. 그는 무례하면서도 파격적인 치료법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환자들은 상담받으려고 줄을 서는 것을 넘어 그를 추종한다. 여기까지는 GMB가 쓴 전기문을 통해 대강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한 여자가 쓴 비망록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그녀는 브레이스웨이트가 자기 언니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확신을 갖고, 환자로 위장해 그를 찾아간다. 상담실에서 만난 브레이스웨이트는 듣던 대로다. 경우 없고 괴팍하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자꾸만 그의 페이스에 말린다. 이러면 안 된다고, 언니를 위해서라도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고 정신을 다잡는 그녀. 이 비망록은 어떻게 끝날까.

구성의 독특함이 매력적인 캐릭터와 만나 시너지를 낸다. 비망록 다섯 편과 전기문 다섯 편이 끝난 뒤, 천연덕스럽게 이어지는 ‘제 2판 후기’는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지막까지 긴장을 남긴다.

  • <사례 연구> | 그레임 맥레이 버넷 | 열린책들 | 1만 8,800원

“이 힘든 걸 계속하다보니까요, 내 삶이 쉬워지는 거예요.”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다. 읽고, 쓰고, 버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욕심만 앞서는 나는 주로 사고, 꽂고, 빌린다. 그중에서 손에 잡히는 책을 골라 나름대로 열심히 읽지만 못 읽고 방치되는 책이 훨씬 더 많다. 쓰기는 더 어렵다. 독후감은커녕 한두 줄 메모 남기기도 쉽지 않다. 다행히 디에디트가 연재 지면을 내주고 마감 기한을 정해줘서 한 달에 다섯 편 정도를 겨우 쓴다. 버리려면 피눈물 난다. 읽은 책은 읽어서 못 버리고, 안 읽은 책은 안 읽어서 못 버린다. 결론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근데 이 사실을 세상 사람이 다 안다. 손흥민을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키운 사람이다. 심지어 축구를 직접 가르쳤다. 아들이 프로선수가 된 후에도 옆에서 훈련을 같이 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유명해졌다. 3년 전에 이미 책을 한 권 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가 제목이다. 뭐든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기본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단단한지. 손웅정 씨는 보통 단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를 단단하게 만드는 기본은 2가지다. 하나는 운동이고, 또 하나는 독서다. 그가 생각하는 독서의 기본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그는 읽고 쓰고 버린다. 이 책은 그와 김민정 시인의 대화다. 시인은 독서노트 여섯 권을 읽고 묻는다. “아니 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읽고 쓰셨나. 어떻게 그렇게 아들을 키우셨나. 어떻게 그렇게 사셨나.

아예 통째로 외워버린 책 속 명언을 적재적소에 턱턱 내놓는 저자.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건 기술이나 노하우가 아니다.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해야 할지 정신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책을 덮을 때쯤 종이를 뚫고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를 느꼈다. 손흥민의 질주를 볼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하여튼 신기한 경험을 했다.

  •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 손웅정 | 난다 | 1만 7,000원

“지금은 이곳으로부터 나 자신을 떼놓을 수 없어요.”

이번에 읽은 <오리들>은 지난달에 읽었던 <시베리아의 숲에서>와 공통점이 있다. 일단 둘 다 그래픽 노블이고,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거긴 매우 외진 곳이다. 실뱅 테송이 거처로 삼은 시베리아의 숲도, 케이트 비턴이 제발로 찾아간 ‘돈과 기름의 땅’ 오일샌드도.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시베리아로 떠난 남자 실뱅 테송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은둔하기 좋은 곳을 고른 베스트셀러 여행 작가다. 오일샌드로 떠난 여자 케이트 비턴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집을 떠난 학부 졸업생이다. 케이트 비턴은 남자가 대부분인 일터에서 여성으로 일하며 점점 이상해지는 자신을 마주한다. 물론 이상해지는 건 혼자만이 아니다.

책을 읽는 내 마음도 극과 극이었다. 시베리아의 고요한 자연이 내게 대리만족을 주었다면, <오리들>로 엿본 오일샌드의 하루하루는 나의 생존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하게 했다. 나의 일은, 나의 노동은 지속 가능한가? 이곳에서 나의 마음은 망가지지 않았나? 이미 망가졌다 해도 뭐 다른 방법이 있나? 나는… 괜찮은가?

우리는 일하는 곳으로부터 자신을 떼놓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무너지는 최악의 순간에 들을 노래 한두 곡쯤은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둬야 한다.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정말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어줘야 한다. 나의 이상한 면들을 사랑하되, 코너에 몰려 이상해지지는 말자.

  • <오리들> | 케이트 비턴 | 김영사 | 2만 9,800원

“5GB 용량의 MP3 플레이어 vs. 주머니 속의 1000곡”

나는 친절한 책을 좋아한다. 특히 일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집어 든 책이라면, 복잡하고 어려운 뭔가를 배우기 위해 읽는 책이라면, 저자가 독자 마음을 헤아려 알기 쉽게 설명해주길 기대하게 된다.

일본 작가의 특징인지, 일본어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일본 책은 미국인이나 한국인이 쓴 책에 비해 쉽고 간결하다. 있어 보이려고 장황하게 말을 부풀리지 않고, 한 번에 소화되지 않을 만한 부분은 다른 말로 한 번 더 설명해준다. 서비스 기획 노하우를 알려주는 <탐닉의 설계자들>이 그랬고, 회계와 재무제표에 대해 알려주는 <회계에서 파이낸스까지>가 그랬다. 친절하고 똑똑한 선배를 만난 느낌에 “아리가또”라 말하고 싶었다. 지금 소개할 <컨셉 수업> 역시 마찬가지다.

내 모자란 능력으로는 호소다 선배의 가르침을 여기서 전부 소개할 수 없다. 그저 서툴게 요약할 뿐. 컨셉 같은 게 왜 필요한가. 남과 다른 걸 만들어 팔기 위해서다. 남과 다른 걸 만들어 팔기 위해 필요한 건 크게 2가지다. 무엇이 다른지 내가 알아야 하고, 무엇이 다른지 남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컨셉 한 줄이 있어야 내가 목표삼아 달릴 수 있고, 컨셉 한 줄이 있어야 카피 삼아 남들에게 팔 수 있다.

스타벅스가 서비스를 기획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모든 과정에는 “제3의 공간”이라는 컨셉이 영향을 미친다.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 어디든 내 집처럼”이라는 컨셉으로 여행의 의미를 아예 바꿔버렸다. 이런 컨셉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다면 호소다 선배를 직접 만나보시길 바란다. 단돈 2만 원이면 평생 두고두고 만날 수 있다.

  • <컨셉 수업> | 호소다 다카히로 | 알에이치코리아 | 2만 2,000원

“슬픔 60퍼센트, 중립 20퍼센트, 행복 20퍼센트. 그리움을 뜻하는 전형적인 지표였다.”

서윤빈 작가는 단편소설 ‘루나’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루나’는 우주로 일터를 옮겨 조개 대신 광물을 캐는 해녀들의 이야기다. 읽은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우주를 떠다니는 해녀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아 있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비슷하게 섞인 느낌으로.

첫 장편소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은 돈만 있으면 200년도 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린다. 임플란트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덕분이다. 썩은 어금니 갈아 끼우듯 모든 신체 장기를 임플란트로 대체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기술을 활용해 수명을 연장하려면 재벌 수준의 돈이 필요하다. 인구 조절과 정부 재정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정부의 묘안(?)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죽음을 그냥 받아들인다. 

주인공 ‘나’처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다소 잔인한 방법으로 돈을 마련한다. 죽음을 앞둔 외로운 자산가와 연애하다 함께 마지막 순간을 맞는 것이다. 임종을 지키면 자산의 상당 부분을 양도받을 수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연애는 말 그대로 생존 수단이다. 설정을 알고 나니 제목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무중력 우주와 해녀의 물질을 연결해 낸 ‘루나’에서 그랬듯, 미래와 현실을 겹쳐 보여주는 작가의 솜씨가 능숙하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진실은 작고 귀해진다. ‘모자’에 따로 담아 보관해야 할 만큼. 뇌를 대체한 ‘버디’는 내 손에 붙어버린 스마트폰 같다. “버디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지 못하는 아이가 어른이 되면 설 자리가 없을 거라는 건 우리가 어릴 때와 달리 완벽한 정설이 되어 있었다.” 수명이 늘고 “건강 지수가 OECD 국가 중 상위권에 들어도” 국민들의 만족도는 바닥을 긴다. 미래에서 현실이 그대로 보인다는 건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인 동시에 아쉬움이다.

  •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 서윤빈 | 래빗홀 | 1만 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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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