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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타파, 여름 국수 8종

평양냉면부터 들기름막국수까지
평양냉면부터 들기름막국수까지

2024. 06. 12

안녕, 미식 기자 이주연이다. 한반도만큼 사계절이 뚜렷한 땅이 없다. 극강으로 추웠다 더웠다 하니, 다른 나라엔 없는 차가운 국수 문화 생겼다. 이 여름을 책임질 시원한 국수들.

한반도는 땅이 좁고 사방이 막혀 있는데, 그 좁고 막힌 땅의 7할을 산이 눈치 없이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 끄트머리에 붙어 있어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발밑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난류를 깔고 있어 사계절이 뚜렷하게 발달했다. 식량을 심을 수 있는 땅이 턱없이 부족한데, 기후가 수시로 바뀌니 살아남으려면 계절의 꽁무니만 쫓아 바삐 움직일 수밖에. 수천 년 전부터 이미 한반도는 피로 사회였다. 다혈질의 기질이 영겁의 시간을 거치며 굳어진 탓에, 끓어오르다 못해 폭발할 지경인 몸속 불을 꺼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차가운 술과 음식을 찾았다. 우리나라에 특이하게 차가운 면 요리가 발달한 이유다. 이는 현대인들이 뜨거운 국밥 먹고 돌아서 ‘아아’를 찾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몸을 최고치로 달궈 땀을 쏟은 후 시원한 음료로 열을 식히는 행위는 우리 DNA 깊숙이 심어진 오랜 기억이자 습관이다. 성격 급한 이들이 보기에 서론이 길다. 자, 도로 위 아스팔트처럼 달아오른 몸을 단숨에 식혀줄 여름 국수들을 만나보자.


평양냉면

평양냉면

사실 이쯤 되면 ‘평양’이라는 단어를 떼야 할 것 같다. 평양냉면은 본디 이런 음식이 아니었다. 한겨울에 백김치나 동치미처럼 국물이 넉넉한 평양식 김치에 육수를 살짝 섞은 후 메밀면을 말아 먹는 음식이었다. 2012년 운좋게 우래옥, 을지면옥, 장충동 평양면옥을 취재했더랬다. 그때 서울에서 평양냉면의 명성을 이어온 이들 노포를 책임지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다들 ‘김칫국에 차가운 육수를 섞어 말아 낸 메밀국수’ 이야기를 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들은 매일 가게에 나와 손님을 맞이하고 평양냉면으로 벌어들인 돈을 세면서도 여전히 고향에서 먹던 메밀국수를 그리워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파는 음식이 정작 고향에서 먹던 것과 맛이 달라서였다. 원조 평양냉면은 김칫국물이 디폴트였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서울에서 평양냉면은 차가운 고기 육수에 메밀면을 말아 먹는 음식으로 둔갑했을까. 기후 영향이 컸다. 서울이 평양만큼 춥지 않아 같은 방식으로 김치를 담가도 고향에서 먹던 김치처럼 짱하게 시원한 맛이 오래 가지 못하고 이내 곰삭은 내가 났다. 지금의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한강 물이 얼면 식당들이 그 얼음을 가져다 써 여러 위생 문제를 낳기도 했다. 김칫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포면옥처럼 오랫동안 동치미를 담가 육수에 섞기를 고집하는 집이 있지만, 그곳은 면발 때문에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평양냉면파들에게 배척되곤 한다. 여담이지만, 남포면옥은 어복쟁반이 맛있다. 

진짜 평양식 냉면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내가 추천하고 싶은 곳은 ‘능라밥상’이다. 일단,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단, 김칫국물을 적절히 잘 섞으며, 삼단, 메밀 100%의 순면을 고집한다. 무엇보다도 매우 희소하게 탈북민이 직접 운영하는 집이다. 아, 권율 장군 생가터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장군이 살아생전에도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은행나무 고목이 볼 만하다. 새콤하게 발효된 김칫국물이 적절히 들어가니 식초를 탈 이유도, 김치 담글 때 마늘, 생각이 들어가니 겨자를 탈 필요도 없다. 특히 나는 100% 고깃국물보다 김칫국물이 적절히 가미된 새콤하고 알싸한 국물 속에서 메밀 향을 발견할 때 그것의 매력이 증폭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 가보시라. 고기 육수에 돼지를 넣느냐 마느나, 파와 고춧가루를 넣느냐 마느냐는 평양냉면에 있어 매우 국소적인 논쟁거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을지면옥, 필동면옥, 우래옥, 평양면옥, 진미평양냉면 다 좋아한다. 어쩐지 어른스러운 느낌의 새콤한 맛은 곁들여 나오는 무나 배추절임으로 얼마든지 첨가할 수 있으니.

능라밥상
주소 | 서울 종로구 사직로2길 14
영업시간 | 11:00~21:00(15:00~16:00 브레이크 타임)


함흥냉면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함흥냉면, 진주냉면, 밀면, 쫄면은 평양냉면의 아류로 탄생한 요리들이다. ‘아류작’이라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제각각 독창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함흥에는 ‘함흥냉면’이 없다고. 1950년대 평안도 출신의 실향민들이 서울에 차린 평양냉면집들이 호황을 누리자,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자극을 받아 함흥냉면집을 차렸다. 그렇다고 뿌리가 없는 음식은 아니다. 그전까지 ‘회국수’라고 부르며 팔던 음식에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함흥냉면은 잘 알다시피 감자나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면에 빨갛게 버무린 회무침을 올려 비벼 먹는 국수다. 이런 형태의 국수가 발달한 배경을 보자면, 우선 함흥을 품은 함경도는 ‘삼수갑산’이라는 가장 험한 산골을 묘사하는 관용어를 낳은 곳이다. 삼수와 갑산은 각각 함경도의 지명이다. 그만큼 외지고 척박하다는 소리다. 뿌려만 놓아도 잘 자란다는 메밀조차 잘 못 자랐다. 그나마 만주의 심마니들이 심었다는 감자가 잘 자랐다. 질깃한 감자 전분으로 국수를 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두 번째, 회를 올린 이유는, 함경도가 길쭉하게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 보통 가자미를 빨갛게 양념해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삭힌 가자미식해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맵게 양념한 이유는 앞서 말한 듯 오래 보관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춥기로 악명높은 지역이므로 몸을 데울 요량으로 예부터 고춧가루나 마늘 같은 향신료를 많이 썼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함경도의 회국수, 아니 함흥냉면이다. 

예나 지금이나 평양냉면의 후광에 가려진 함흥냉면 전문점은 현재 많이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장 유명한 오장동흥남집, 오장동함흥냉면, 신창면옥, 이 세 곳이 한 골목에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어 그 위상을 제법 잘 유지해 왔다. 이들 세 곳이 숱하게 많은 다른 비빔냉면집과 차별을 이루는 데는 ‘원조’ ‘노포’라는 수식어만 작용한 건 아니다. ‘맛난이’라는 나름의 킥이 있기 때문이다. 대충 보면 단순히 면에 빨간 양념을 올린 것 같지만, 바닥에 연한 갈색의 국물이 담겨 있다. 양념을 섞지 않고 살살 면만 건져 먹어보면 확실히 맹하지 않다. 고기를 넣고 끓인 육수에 간장으로 간을 한 ‘맛난이’다. 그것이 면과 양념이 잘 어우러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내 기억에 오장동흥남집, 오장동함흥냉면, 식창면옥 순으로 양념이 묽다. 오장동흥남집이 가장 옛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어 정감이 가지만, 너무 짙고 되직한 양념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아 잘 찾지 않게 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이마저도 십수 년이 지난 감상이다. 물론 짧게는 40년, 길게는 70년 된 노포의 맛이 그새 크게 바뀌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내 입맛에는 오장동함흥냉면 주방장이 독립해 뒤늦게 차린 신창면옥이 가장 잘 맞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 때 평택을 거쳐 현재는 광진구로 이전한 상태다. 함흥냉면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오장동을 찾아 나란히 자리한 오장동흥남집과 오장동함흥냉면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보며 ‘내가 정말 특별한 음식을 먹으러 왔구나’ 하는 기분 좋은 느낌과 함께, 여러 사람들과 동일한 음식을 먹는다는 동질감을 느껴보기 바란다. 길 건너 중부시장에 유명한 꽈배기집이 있으니 갓 튀겨낸 꽈배기로 얼얼한 입안을 달래도 좋다. 먹어보고 입맛에 맞다면 광진구에 외떨어진 신창면옥도 꼭 들러보기를!

신창면옥
주소 | 서울 광진구 자양번영로 67 1층
영업시간 | 09:30~22:00 일요일 휴무


진주냉면

진주냉면

‘참 희한한 맛이다!’ 진주냉면을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진주냉면도 ‘물냉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먹기 전까지 평양냉면의 맛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 맛이 아니다. 전혀 다르다. 거의 극과 극의 차이다. 냉면이라기보다 오히려 가쓰오부시를 넣고 끓인 쯔유와 유사한 느낌이 든다. 진주냉면을 전국구 음식으로 알린 사람은 황덕이 할머니다. ‘진주냉면’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작은 가게가 호황을 누리자, 가족들이 유사한 이름의 진주냉면집을 차리기 시작했고, 어지러운 분쟁 속에서 황덕이 할머니는 막내딸 하연옥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하여 현재 진주냉면으로 가장 유명한 집은, 막내딸 이름을 내건 ‘하연옥’이다. 

현재 하연옥을 운영하는 이는 하연옥 씨의 남편 정운서 씨다. 취재차 정운서 씨를 만난 적이 있다. 정 씨는 여전히 선선한 바람이 부는 4월에 땀을 있는 대로 쏟으며 나타났다. 3일간 육수를 뽑고 오는 길이랬다. 육수를 완성하는 데 3일이 걸리다니, 놀라웠다. 정 씨의 설명은 이랬다. 우선 사골을 넣고 육수를 16시간 푹 곤다. 원래 해산물로만 맛을 내던 국물에 사골을 넣기 시작한 것은 정 씨의 판단이었다. 고로 현재 우리가 아는 진주냉면의 맛은 정 씨가 고안해 낸, 어찌 보면 원형이 많이 변형된 맛이라고 하겠다. 사골 육수에 멸치를 넣고 2시간 끓이다 꺼내고, 그후 새우를 넣어 1시간 끓이다 꺼낸 후 바지락과 다시마를 각각 20분, 10분 넣고 끓이다 건져낸다. 큰 맥락의 이야기고, 그사이 더 많은 디테일이 있어 3일이 걸린다고 했다. 

정 씨에게 애초에 해산물을 넣는 이유를 물었다. “밥상에 생선이 오르지 않는 날이 없었어요.” 진주는 직접 바다를 끼고 있진 않지만, 남해안까지 거리가 겨우 70리여서 싱싱한 해산물이 지천이었다. 무엇보다 진주는 늘상 잘 사는 도시였다. 인근에서 나거나 잡은 좋은 식재료는 다 진주에 모였다. 진주에 냉면이 발달한 이유도 이 도시의 부유함과 관계가 깊다. 그 옛날 가난한 사람들은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말아 먹는 국밥이나 먹었지, 국수, 그것도 차가운 국수는 양반이나 즐기던 귀한 음식이었다. 냉면이 평양, 진주, 해주, 함흥 등 교방 문화가 발달한 도시에서 유행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심지어 차가운 냉면은 술을 마시고 달아오른 체온을 떨어뜨리고 부대낀 속을 푸는 데 더없이 좋았다. 

진주에는 싱싱한 해산물이 넘치니 육수 끓일 때 밴댕이, 건홍합, 문어, 황태, 새우 등을 양껏 넣었다. 진주냉면은 고명도 화려하다. 홍고추채에 얇게 채 썬 달걀 지단을 산처럼 쌓고, 그 아래 삶은 달걀 반쪽, 편 썬 소고기, 오이, 육전, 배가 차례로 깔려 있다. 다채로운 고명 또한 상다리 부러지도록 각종 산해진미를 올리던 교방 문화와 관련 깊다. 옛날에는 전복, 해삼, 석이버섯도 올렸다니 지금은 많이 간소해진 편. 맛은 어떨까. 짜고 달고 고소하고 진하고 감친다. 글루타민산나트륨이 풍부한 해산물에 사골 육수까지 섞었으니 맛이 꽉 찼다. 메밀에 장밀, 녹말을 섞어 반죽한 국수는 향은 그닥 없지만 식감이 좋다. 

“나는 오직 평냉”이라고 확신에 찬 사람이라면 먹으면서도 “역시 평냉이 최고야”라고 생각할지언정, 돌아서는 순간 그 풍부한 감칠맛에 평냉 맛의 기억과 함께 확신도 서서히 옅어질지 모른다. 다채로운 맛에 혀가 피로할 법도 한데, 그 선을 간당간당 결코 넘지 않는다. 참으로 희한하다.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길에도 진주를 들러 냉면을 먹을 정도로 하연옥을 좋아했다. 나만큼 진주냉면을 좋아하는 남동생이 최근 이곳을 들렀다가 실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후 들른 적이 없어 맛이 변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부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란다. 

하연옥
주소 | 경남 진주시 진주대로 1317-20
영업시간 | 10:00~21:00


밀면

부산의 상징, 밀면은 함경도 피란민들이 한국전쟁 때 부산까지 내려와 개발한 음식이다. 이미 서울에서 먹고 살기 위해 함경도식 회국수를 판 이후였다. 부산에 내려가서도 먹고 살아야 하니 회국수를 팔려고 했다. 다행히 여기서도 고구마 전분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하듯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뽑았다. 부산 사람들은 그 질깃한 식감을 어색해했다. 국물 없이 매콤하게 비벼 내는 국수도 낯설어했다. 부산 사람들 입맛에 맞게 고구마 전분에 밀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빨간 양념과 함께 허연 국물을 추가하는 과정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것이 밀면이었다. 대체로 반죽은 밀가루 7에 고구마 전분 3의 비율을 따랐다. 밀면은 물이든 비빔이든 무조건 뻘건 양념이 디폴트로 올라간다. 함흥냉면이 원형이었다는 사실을 들으니 그 이유를 알겠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밀면을 부산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게끔 이끈 곳이 ‘가야밀면’이었다. 가야밀면은 기존의 부산 밀면을 더 변형했다. 당시 부산 사람들의 입맛에 반죽을 100% 밀가루로 바꾸고, 달짝지근한 맛을 조금 더 부각시켰다. 특히 밀가루 냄새와 사골 냄새를 잡기 위해 한약재를 써 독특한 향을 냈다. 현재 가야밀면은 없어졌으며, 가야밀면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독립해 여기저기서 가야식 밀면의 계보를 잇고 있다. 

밀면

그중 초읍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삼성밀면’은 가야밀면 창업주의 여동생 김무순 여사가 오빠와 함께 가야밀면을 운영하다가 1990년대 독립해 연 가게다. 삼성밀면만 해도 이미 3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가야밀면을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들은 삼성밀면이 가야밀면의 초창기 맛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다고 평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아주 묘하다. 어떤 느낌이냐면, 오향장육이나 향신료를 넣고 끓여낸 돼지고기 장조림 국물에 면을 빠뜨리고 비빔 국수용 다대기를 푼 것 같다. 초심자로서 어떤 맛에 집중해서 먹어야 할지 너무나 헷갈리고 난해한 음식이었다. 정말 세상에 없던 맛 같았다. 어떻게 이해하고 먹어야 할지 몰라 깨작거리는 모습이라도 본 걸까. 건너편 테이블에서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마, 부산 음식이라믄 모름지기 이리 맵고, 짜고, 자극적이야재.” “맞다! 국물에 밥 한 그릇 말면 지인짜 맛있겠디, 그쟈?” 중년 남녀의 대화를 들으니 면보다 밥이 더 어울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은 아침마다 그날 쓸 국수 반죽을 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면을 뽑는다. 이때 한 번에 뽑을 수 있는 면의 양이 4인분에 불과하다. 누가 눈치 없이 곱빼기라도 주문하면 2~3인분밖에 뽑지 못한다. 그래서 음식이 나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생활의 달인>에 나온 영상을 뒤늦게 보니, 소뼈, 돼지뼈를 우린 사골 육수에 팔각, 감초, 천국을 박은 무를 함께 넣고 끓인다고 한다. 그 다음 직접 달인 간장에 금잔화를 넣고 끓여 육수 ‘짠탕’을 완성한다고. 천궁, 금잔화라니 정말 낯설다. 한 번 먹어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맛이지만, 그것이 원형에 가깝다고 하니 그 고유성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용기를 내 한 번 더 먹어보고 싶다.

삼성밀면
주소 | 부산 부산진구 월드컵대로449번길 47 1층
영업시간 | 10:30~18:00 화요일 휴무


쫄면

쫄면은 한순간의 실수로 탄생한 음식이다. 인천에는 평양과 함흥 그 어디에서 속하지 않은 독특한 냉면 문화가 있다. ‘화평동냉면’이 바로 그것이다. 1950년대 전쟁이 끝난 후 인천에 소지한 공장들이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갔다. 인천 시민, 이북 실향민은 물론, 전쟁에서 일터를 잃은 타지 사람들까지 소식을 듣고 몰려왔다. 덩달아 공장 지대와 부두 주변에 상권이 들어섰다. 노동자들의 점심을 해결해 줄 식당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시간에 쫓기는 노동자들이 빨리 배를 채워줄 식당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냉면집이었다. 대부분 몸을 써서 일하는 만큼 땀을 많이 흘렸으며 주어진 식사 시간이 짧아 차가운 육수에 면을 만 냉면을 선호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양이 푸짐해야 했으므로 평양냉면처럼 소고기로 육수를 낼 수 없었다. 갖가지 재료에 피로를 풀어주는 동시에 중독성 강한 매운맛까지 가미해 육수 맛을 완성했다. 면은 인근의 국수 공장에서 대량 납품했다. 

당시 화평동냉면 가게에 국수를 납품하던 공중 중 한 곳이 ‘광신제면’이었다. 화평동냉면이 노동자를 위한 간편 식사에서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매김하며 일대가 냉면 골목으로 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덩달아 국수 공장도 바빠졌다. 1974년, 광산제면 사장은 압도적인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 사출기 압력을 잘못 맞추는 실수를 저질렀다. 평소보다 면이 굵고 질기게 나왔다. 이대로 냉면집에 납품할 수 없었던 사장은 선심 쓰듯 이웃한 분식집에 공짜로 면을 선물했다. 이를 건네받은 ‘맛나당’ 주인이 고심 끝에 비빔국수 만들 듯 면을 삶아 찬물에 행군 후 매콤한 양념에 버무렸다. 쫄깃한 식감에 새콤달콤하고 매콤한 양념이 섞이니 나쁘지 않았다. 고구마 전분으로 뽑은 함흥냉면은 이가 아닌 목구멍으로 끊는다더니 이는 한 수 위였다. 씹고 또 씹어도 식감이 살아 있는 면 요리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뭐든 질겅질겅 씹고 싶던 당시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다. 맛나당은 물론, 인근의 분식집들까지 광산제면을 찾아가 똑같은 면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것이 국민 간식 ‘쫄면’의 탄생 비화다. 광산제면 사장의 실수에 맛나당 사장의 재치가 더해져 탄생한 것이다. 

현재 맛나당은 문을 닫았으나, 비슷한 시기에 쫄면을 개시한 ‘신포우리만두 신포동점(‘우리집’의 후신)’이 지난 자리를 지키며 그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2013년 취재차 신포우리만두 신포동점을 들렀다. 쫄면은 평소 즐기지 않아 경험치가 떨어지는 음식이었다. 가끔 다른 일행이 분식집에서 주문한 걸 몇 젓갈 거든 적이 있지만, 특별히 맛있게 먹은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신포우리만두 신포동점의 ‘우리쫄면’은 확실히 맛있었다. 양념이 새콤달콤하다기보다 시큼하고 달큰했다. 그래서 좀 더 요리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다른 집보다 면도 굵어 더 오래 씹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간의 밸런스가 잡히는 듯했다. 확실히 납득이 되는 맛이었다.

신포우리만두 신포동점
주소 | 인천 중구 제물량로166번길 29
영업시간 | 10:00~21:00


콩국수

1800년대 말에 편찬한 희귀 요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콩을 물에 불린 다음 살짝 데치고 갈아서 가는 체에 걸러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밀국수를 콩국에 말고 그 위에 채소 썬 것을 얹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빼박, 콩국수 얘기다. 1800년대 말, 구체적인 조리법이 책에 실렸을 정도니 그로부터 한참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콩국수를 즐겨 먹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콩의 민족’이다. 야생 콩과 재배 콩의 분포를 볼 때 만주,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 한반도를 콩의 원산지로 보는데, 이때 많은 학자들이 우리 민족이 콩을 가장 먼저 음식으로 이용했으리라 추정한다. 

메주 또한 한반도에서 기원해 일본과 중국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언제나 쌀이 주식이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고려 시대만 하더라도 쌀보다 콩을 더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쌀이 귀했다. 우리가 꼭 최초가 아니더라도 우리만큼 콩을 즐겨 먹는 나라가 없음은 확실하다. 두부를 만들고 나온 찌꺼기마저 ‘비지’라 부르며 버리지 않고 찌개를 끓이거나 전이나 떡을 빚어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면 요리도 좋아했다. 18세기 중엽 이미 냉면과 비빔국수 등 차가운 국수에 얽힌 기록이 등장하는 걸 봤을 때 콩국수의 탄생은 이미 예견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콩국수는 다양한 여름 국수 중 가장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다. 우선 콩은 차가운 성질을 띤다. 우리 조상들이 애초부터 여름에 콩을 들입다 많이 먹기로 작정한 이유가 콩이 체온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많은 콩을 갈아서 차갑게 먹으니 속이 냉하거나 장이 약한 사람들은 탈이 나기 쉽다. 또, 콩은 단백질 덩어리이면서 아이러니하게 단백질의 소화를 저해하는 성분을 가지고 있다. 나는 콩국수를 몇 가닥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면서 위에서 식도까지 서서히 팽창하는 느낌을 받는다. 속이 불편하니 콩 비린내에도 더 예민해져 몇 숟갈 뜨다 말고, 애꿎은 김치만 먹다 매워 물배만 채우고 나온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나도 좋아하고 싶은데, 그 맛을 알 길이 없어 아쉽고 답답했다. 

콩국수

여의도와 서소문에 있는 유명한 식당의 콩국수도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유일하게 정말 맛있게, 일체의 불편함 없이 끝까지 맛있게 먹은 콩국수가 하나 있다.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제일콩집’의 진콩국수다. 여기 콩국수는 정말 독특하다. 우선 국물이 하얗다. 다른 유명 콩국수집들처럼 100% 백태만 쓴다고 하거늘, 이 집은 유난히 국물이 하얗다. 면을 잘 섞어 한 젓갈 뜨면 거북스러운 되직함이나 꺼끌거림 없이 정말 부드럽게 입으로 훌러덩훌러덩 넘어간다. 되직한 콩국수를 선호한다면 묽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숟가락으로 콩국만 떠먹으면 또 엄청나게 되직하다. 젓가락으로 떴을 땐 식감이 부드러워 혀끝에서 포말처럼 부서지고 사라지는데, 숟가락으로 뜨면 묵직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아무래도 콩을 가는 데 비법이 있는 듯싶다. 찾아보니 밤사이 불린 국내산 콩을 아침마다 맷돌에 갈아 두부도 만들고 비지도 만들고 콩물도 만든다고 한다. 맷돌이라고 옛날식을 생각하면 안된다. 기계식 맷돌이다. 기계식이더라도 콩을 갈려면 물을 부어야 한다. 물과 콩이 함께 맷돌의 칼날을 거쳐 거품이 일고, 시간이 흐르며 물과 콩이 분리되며 밀도가 들쑥날쑥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제일콩집은 콩을 가는 과정만큼 삶는 과정에 신경을 쓴다. 콩을 조금만 덜 삶아도 비린내가 나고, 조금만 더 삶으면 메주 냄새가 나기 때문. 그 미세한 순간을 포착하는 게 기술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콩국수를 마지막 한술까지 맛있게 먹고도 소화도 잘 된 걸 보아 콩을 정말 잘 삶은 듯하다. 참고로 콩의 단백질 소화 저해 물질은 콩의 삶는 정도에 따라 파괴되는 정도가 달라진다. 아, 균일한 간을 위해 소금 대신 소금물을 섞는다는 이 집 콩국수는 따로 소금이나 설탕을 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간이 알맞다. 면에 들러붙은 콩물은 구름 혹은 카푸치노 혹은 파도의 포말이 닿는 듯 입술을 간지럽히고, 숟갈로 뜬 콩물은 혀에 무겁게 가라앉는 신기한 경험을 꼭 해보길 바란다. 

제일콩집
주소 | 서울 노원구 동일로174길 37-8
영업시간 | 10:00~21:00


막국수

막국수는 다름의 미학이다. ‘막’국수라는 이름답게 집집마다 막국수의 정의가 막 달라진다. 특히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많이 심은 강원도에서 막국수는 가양주처럼 만드는 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했다. 집집마다 해석이 다르고 맛부터 먹는 방법까지 천차만별인 막국수는 강원도를 여행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강원도 여행의 시작과 끝이다. 나는 강원도를 찾을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가까운 막국수집을 검색한다. 강원도에 저장해놓은 맛집 중 대다수가 막국수집이다. 

강원도에는 막국숫집이 워낙 많고, 찾아보면 대부분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다녀간 사람도 많아 꼭 먼 길을 돌아가거나 오래 기다려 특정 맛집을 찾을 필요가 없다. 동선에 가볼 만한 집이 꼭 하나쯤은 걸린다. 그것 또한 강원도 여행의 매력이다. 어떤 집은 무조건 빨간 양념을 얹어주는 것이, 또 다른 집은 면을 뽑자마자 간장과 들기름에 버무리는 것이, 또 다른 집은 아예 처음부터 국물을 부어주는 것이, 또 다른 집은 국물에 검은깻가루와 김가루를 수북히 올려주는 것이 막국수라고 한다. 면의 굵기나 질감도 다 다르다. 메밀 껍질을 벗기지 않고 분쇄한 가루로 뽑은 면은 거무튀튀하고 얼룩덜룩하며, 껍질을 벗진 가루로 뽑은 면은 색이 옅고 매끄럽다. 색이 더 진하다고 메밀의 함량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 옛날이야 거친 음식이 많아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했겠지만, 지금은 살짝 깔끄러운 전자도 충분히 개성으로 수용할 수 있다. 평양냉면이 그 고지식함에 먹는 사람까지 숨 막히게 하는 음식이라면, 막국수는 마음껏 변주하여 주는 대로 받고, 내 맘대로 해석해 먹는 게 매력이라 하겠다. 가장 한국적인 면 요리인 셈이다. 만드는 사람도 막 만들고, 먹는 사람도 막 먹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상징이랄까. 강원도에서 먹은 모든 막국수가 아름다웠기에 특정 집을 추천하기란 쉽지 않다. 매우면 매운 대로, 달면 단 대로, 슴슴하면 슴슴한 대로 좋았다. 

가장 최근에 동선에 맞아 찾은 집은 (강원도는 아니지만) 선바위메밀장터 과천점, 양평의 머무름, 횡성의 우천막국수, 평창의 봉평메밀촌이다. 그중 농가를 개조해 독특한 구조를 띠는 선바위메밀장터 과천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이었다. 마당에 유리 천장을 덮어 놓은 실내는 외투를 벗을 수 없을 정도로 쌀쌀했다. ‘얼죽아’마냥 동치미막국수를 시켰다. 추운 날, 찬물에 씻어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빠뜨린 면은 얼다시피 했다. 부들부들 떨며 겨우 소매에서 손가락만 꺼내 젓가락으로 언 국수를 집었다. 얼어 단단해진 면을 입안의 온기로 녹여가며 꼭꼭 씹었다. 내장까지 어는 기분에 반쯤 먹다가 포기하고 온면을 주문했다. 온면과 동치미막국수를 번갈아 먹었다. 끝내 다 먹지 못하고 남긴 막국수가 내내 생각난다. 새콤달콤한 동치미 국물과 구수한 메밀면, 곱게 빻아 고소함이 배가된 깨와 김 가루의 합이 과하지 않고 굉장히 적절하게 잘 어울렸다. 참고로 이 집도 최근에는 물막국수보다 들기름막국수가 더 인기를 끈다. 지금 같은 날씨였으면 더 맛있게 먹었을 텐데, 아쉬움에 침만 꾸울꺽 삼킨다.

선바위메밀장터 과천점
주소 | 경기 과천시 뒷골로 5-7
영업시간 | 10:40~21:20


들기름막국수

메밀은 흔한 재료였다. 오히려 밀가루가 귀했다. 찰기가 없고 거무튀튀하고 꺼끌꺼끌한 메밀면보다 부드럽고 적당히 찰기 있으며 뽀얗게 윤이 나는 밀가루 면을 선호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사람들은 구수한 향이 올라오는 메밀면을 선호한다. 특히 국내산 메밀은 점점 귀해지고, 수입산 메밀마저 값이 오르며 메밀면을 선호하는 경향은 점점 커질 것이라 예측한다. 뭐든 희소성이 있어야 감질나니. 

메밀이 이토록 인기를 끈 배경에는 평양냉면의 영향도 있었다. 꼭 순면이라고 맛있는 건 아닌데, 평양냉면을 극단적으로 좋아하는 몇몇 순혈주의자들이 메밀의 함량을 따지면서 메밀은 더욱 추앙받는 식재료로 위상이 높아졌다. 이렇고 저렇고 해도 나 또한 메밀면을 좋아한다. 그래서 평양냉면이나 막국수를 먹을 때면 똬리를 튼 면을 건드리지 않은 채 조심조심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맛본 후, 최대한 면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면만 건져 먹고, 마지막으로 면을 마구 흔들어 섞은 후 다시 한번 국물을 맛본다. 그 과정을 통해 이 집의 면이 얼마나 향이 좋은지, 메밀 향이 국물 맛을 어떻게 바꾸는지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들기름막국수는 다소 아쉬운 음식이다. 코를 강타하는 들기름 향을 이겨내기에 메밀 향은 너무나 섬세하다. 특히 이 신종 면 요리를 처음 개발한 ‘고기리막국수’는 면을 들기름과 간장 소스에 버무리고 김 가루와 깨 가루를 수북이 올려놨다. 더 메밀 향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도 맛있긴 하다. 들기름이 워낙 신선하고, 미세할 정도로 잘게 부순 김 가루와 깨 가루가 면과 혀에 빈틈없이 들러붙어 고소한 맛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집의 가장 큰 비법은 김과 깨의 입자에 있다고 본다. 최대한 잘게 부수는 게 비법. 하지만 외진 곳까지 차를 끌고 가 교통 체증에 시달리고 1시간 넘게 기다려 먹을 만한 맛인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워낙 잘 관리되고 유통되는 들기름이 많아 집에서도 신선하고 맛있는 들기름을 즐길 수 있다. 거기에 김과 깨는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 물론 김과 깨를 최대한 잘게 부수는 수고는 각오해야 하지만. 100% 메밀 함량의 면도 인터넷을 통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다만, 가게에서처럼 3분의 1 남았을 때 물막국수 국물을 부어 말아먹는 재미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 먹어본 결과, 그 국물이 매우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집에 있는 동치미 국물이나 영 없으면 시판용 냉면 국물도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오뚜기와 고기리막국수가 공동 개발한 레토르트 제품의 싱크로율이 무척이나 높다. 얼마나 자신 있으면 가게에서도 판매하겠는가. 고기리막국수 외 앞서 소개한 선바위메밀장터 과천점, 서초동 청류벽, 고양시 서오릉메밀막국수 등이 들기름막국수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누가 들기름이 득세하지 않는, 메밀과 들기름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들기름막국수를 내는 집을 안다면 추천해 주길 바란다.

고기리막국수
주소 | 경기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57
영업시간 | 11:00~21:00(토・일 10:40 오픈), 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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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미식 기자 겸 ‘시네밋터블(cinemeetable)’ 운영자. 쓰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쓰는 숙명에 충실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