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추리소설부터 자기계발서까지, 책 추천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2024. 05. 24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최근 뉴스레터 ‘퍼줄거임’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60%가 넘는다고 한다. 충격을 받았다. 60%가 넘는 그 사람들은 그 시간에 다른 무슨 재밌는 일을 하며 365일을 보내는 걸까. 책도 재밌는데… 궁금한 마음으로 내가 이번 달에 읽은 신간 다섯 권을 소개한다.


“구글 이즈 갓, 삼촌.”

책 추천

우리집 책장엔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가 꽂혀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외국인을 위한 교재가 아니다. 문지혁 작가가 한글로 쓴 시리즈 소설이다. <초급 한국어>는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의 이야기고, <중급 한국어>는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연 글쓰기 강의 이야기다.

문지혁 작가가 새 책을 냈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고급 한국어>를 기대하게 되는데… 역시 오해다. 신작 <고잉 홈>은 총 열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다. 전작과의 공통점도 있다. <고잉 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이다. 그리고 인생이 생각처럼 순탄하게 굴러가 주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미국에서 살았던 저자의 경험 덕분일까. 지어낸 얘기겠지만 지어낸 얘기처럼 읽히지 않는다. 동시에 먹먹해진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막막함은 미국 아니라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배경이 미국이라 그런지, 열 편 중 아홉 편의 제목에 영어가 들어간다.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 핑크 팰리스 러브, 크리스마스 캐러셀, 뷰잉, 나이트호크스… 다른 때 같았으면 ‘영어를 왜 이렇게 많이 쓰냐’고 투덜댔을 텐데 이 책에서는 신선하게 느껴진다.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일 때의 독특한 맛은 소설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되는데, 특히 영어 문장을 결정적인 대사로 써먹는 문지혁 작가의 솜씨가 일품이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내 취향을 저격한 ‘골드 브라스 세탁소’다. 말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결말에서 언어적 쾌감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이 좋았다면 ’한국어 시리즈’도 읽어보길 권한다. 후속작도 출간 예정이다. 저자에 따르면, 후속작의 제목은 <고급 한국어>가 아니라 <실전 한국어>라고 한다.

  • <고잉 홈> | 문지혁 | 문학과지성사 | 1만 7,000원

“너희의 목표는 법률 전문가로서 법정에 서는 거지, 법률을 사용한 게임을 즐기는 게 아닐 테니까.”

일본 추리소설을 자주 읽는다. 코난과 김전일의 나라답게 미스터리 시장이 커서, 색깔 있는 작가들이 많다. 매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같은 랭킹도 꾸준히 발표되어 찾아 읽는 재미도 있다. 쏟아지는 일본 추리소설 리스트를 훑다 보면, 독특하고 자극적인 설정들이 눈에 띈다. 범죄나 범인 찾기를 게임이나 놀이처럼 풀어낸 작품들도 많다. 몇 권 읽어봤지만 ‘애들 장난’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뒤로 이런 책은 꺼리게 된다.

<법정유희>는 제목부터 애들 장난 같은 소설이다. 로스쿨 학생들이 모의법정에서 ‘무고 게임’을 벌이는 도입부 설정까지 읽고 나면 더더욱 의심이 짙어진다. 실제로 1부까지 읽고 여기서 덮어야 할지 살짝 고민했다. 거기서 그만뒀으면 큰일날 뻔했다! 1부의 어설픈 설정과 정 안 가는 캐릭터들이 2부에서 절묘하게 섞이며 ‘장난 아닌 이야기’로 발전한다.

무고 게임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고소인 A는 자기가 입은 피해에 대해, 피고소인 B를 가해자로 지목한다. 모의법정에서 B가 가해자임을 증명해내면 A의 승리, 증명해내지 못하면 B의 승리. 심판자 C가 승패를 판단하면, 승자가 패자를 벌한다. 이 게임은 장차 법조인이 될 로스쿨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실전 경험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원하는 걸 얻기 위한 도구로 쓸 수도 있다. 물론 작가에겐 이야기를 전개하는 도구이기도 하고.

소설가 겸 현직 변호사로 활동 중인 저자는 단점을 감추기보다 장점을 살리는 데 집중한 듯하다. 실제 법정에서 쓰이는 개념들이 많이 나와 진입장벽이 될 수 있음에도, 그냥 밀어붙인다. 법조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법정드라마를 좋아하는 나같은 독자에겐 오히려 먹히는 전략이다.

  • <법정유희> | 이가라시 리쓰토 | 리드비 | 1만 7,000원

“자유로운 인간은 시간을 지배한다. 공간을 지배하는 인간은 허세나 부릴 뿐이다.”

2018년에 출간된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책이 있다. 읽지도 않았는데 아직 제목을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나의 간사한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람이 많았는지 책은 금방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6년이 흐른 지금 같은 제목의 책이 나온다면 잘 팔릴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내 마음은 조금 달라졌다. 2024년의 내가 솔깃할 책 제목은 <좀 외로워도 괜찮으니 혼자 있고 싶어>다. 우린 너무 많은 사람과,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선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낡은 배터리처럼 수시로 에너지가 바닥날 만하다. 그런 날이면 연결된 선들을 싹 다 뽑아버리고픈 충동이 고개를 든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찾아올 수도 없는 자연에 파묻히고 싶다.

꿈만 꾼다. 실행하긴 어렵다. 천사 같은 딸이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요즘 같은 때는 책임이 충동을 억누른다. 대신 지친 밤마다 <시베리아의 숲에서>를 집어든다. 늦겨울에서 초여름까지, 얼어붙은 호숫가에 지어진 눈 쌓인 오두막에서 몇 달을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다. 대리 만족용으로 이 그래픽 노블은 매우 훌륭하다. 시베리아의 서늘한 공기와 오두막 안의 안온한 고독이 그림 속에 녹아 있다.

어쩌면 외롭고 싶다는 건 지금 충분히 다정한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외롭고 싶어서 시베리아로 떠난 이 남자 역시 고독을 손에 쥐자 간사한 마음을 슬쩍 드러낸다. “고독보다 좋은 것은 없다. 이 사실을 말해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텐데.”

  • <시베리아의 숲에서> | 실뱅 테송 | BH | 1만 7,000원

[4]
<도쿄를 바꾼 빌딩들>

“시대와 함께 도시의 이상형은 바뀐다.”

잡지 에디터로 일했던 시간은 대부분 뿌듯한 기억이지만 몇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 그중 하나가 사진의 힘을 무시하고 모른 척했던 나 자신이다. 공들인 기획일수록 글로 꽉꽉 채우고 싶어했고, 이미지가 필요할 땐 사진 대신 일러스트를 고집했다. 부족한 미적 감각을 감추고 싶었는지, 카메라에 문외한이라 그랬는지. 사진을 멀리한다는 게 에디터로서 치명적인 단점이라는 걸, 잡지 일을 그만두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은 안다. 잘 찍은 사진 하나가 그 옆에 실린 글을 빛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조금 아쉽다.

기대가 컸다. 혼자 떠난 첫 해외여행지가 도쿄였다. 먹고 마신 것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일주일 내내 걸어다니며 눈에 담은 것들이다. 그게 참 좋아서 그후로도 도쿄에 몇 번 더 갔다. 걷기만 해도 좋은 도시, 도쿄를 다룬 책이 지루할 리 있나? 지루하다기보다는 답답했다. ‘이 빌딩은 어떻게 생겼지? 주변 풍경이랑 어떻게 어우러지는 거지’ 경험 많은 저자가 문장으로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어떤 빌딩이 어떻게 도쿄 거리를 바꿨다는 건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드문드문 삽입된 사진이 마른 목을 적셔주지만 갈증을 해소하기엔 부족하다.

몇 달 전 읽었던 먹거리 공장 취재기 <모던 키친>이 떠올랐다. 생소한 공장 풍경을 실제 구경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던 건, 저자의 문장과 함께 배치된 생생한 사진 덕분이었다. <도쿄를 바꾼 빌딩들>은 도시, 건축, 비즈니스에 대한 전문 지식이 대거 들어간 책이다. 저자가 가진 깊이만큼, 독자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책에 언급된 빌딩들을 뒤늦게 구글에서 검색해봤다. ‘아, 아자부다이 힐즈가 이렇게 멋있는 건물이구나.’ 다음 도쿄 여행에 이 책을 가져가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 <도쿄를 바꾼 빌딩들> | 박희윤 | 북스톤 | 1만 9,000원

“중요한 것을 계속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계발서를 읽는다는 건, 산을 오르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하산객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등산이 힘들수록 묻고 싶어진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 돼요?” 등산로에 대한 확신이 없을수록 묻고 싶어진다. “이쪽으로 가면 정상 나와요?” 등산 경험이 적을수록 묻고 싶어진다. “정상까지 올라가면 좋아요?” 하산객은 대부분 몇 마디 해주고 싶어하고, 그게 무슨 말이든 숨을 헐떡이는 등산객에게는 도움이 된다.

자기계발서의 효용은 딱 그 정도다. 너무 의지하면 오히려 위험하다. 다시 등산 얘기를 좀 더 하자면… “10분만 더 가면 정상이에요”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오버페이스로 체력이 바닥날 수 있다. 하산객이 추천한 지름길이 등산 초보에겐 버거운 험로일 수도 있다. 지나가며 툭 내뱉은 한마디 “정상 가봐야 별거 없어요”가 등산 꿈나무의 의지를 꺾어버릴 수도 있다. 하산객의 조언은 조언일 뿐이다. 반쯤 흘려듣고 지금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낫다. 어차피 산을 오르는 건 내 다리와 내 심장과 내 정신력이니까.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흘려듣기’ 쉽기 때문이다. 450가지나 되기 때문에 그중 마음에 와닿는 것만 골라 챙기면 된다. 내가 챙긴 조언 몇 개를 옮겨본다. “정직한 사람을 속이기는 어렵다.” “더 많은 선택지들을 열어주는 선택지를 골라라.”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우려면 먼저 실수를 웃어넘겨라.” “무례한 낯선 사람을 매우 정중히 대하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조언이, 이 책의 위대함을 완성한다. “이런 조언은 법률이 아니다. 모자와 같은 것이다. 하나가 맞지 않으면 다른 것을 시도해보라.”

  • <위대한 사상가 케빈 켈리의 현실적인 인생 조언> | 케빈 켈리 | 위즈덤하우스 |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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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