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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ook] ‘밥 먹다가 울컥’해도 괜찮아요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2024. 04. 01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 에디터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 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울컥’의 사전적 의미는 ‘격한 감정이 갑자기 일어나는 모양’이다. 이번 달에 고른 다섯 권은 모두 울컥하는 책들이다. 가뜩이나 감정 기복 심한데 책까지 울컥하는 걸로 읽어야 하냐고 따져 물으신다면, 일단 죄송하다. 다만, 책을 읽으며 갑자기 치솟는 ‘격한 감정’이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고… 소심하게 변명해 본다.


“공부를 잘하는 여자들은 왜 하나같이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는 걸까.”

동사 ‘때려치우다’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속되게) 하던 일을 아주 그만두다.” 살다 보면 아주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그만두고 싶은데 차마 그만두지 못할 때 우리는 속된 말을 내뱉는 것으로 대신하곤 한다. “아, 때려치우고 싶다.” 그리고 이 속된 동사의 목적어 자리에는 대개 비슷한 단어들이 따라온다. “아, 진짜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은 직원이 많다는 건 그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쉽진 않겠지만 연봉을 올려주든 재택근무를 도입하든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때려치운 건 직장이 아니라 직업이다. 교사, 간호사, 승무원, 방송작가 등 흔히 여자들의 것으로 여겨지는 직업을 때려치운 32명의 여성 이야기다.

그들은 때려치울 직업을 애초에 왜 선택했을까. 많은 여성들이 적성보다는 주변의 권유로 교사가 되기를 선택했다. 내가 뭘 하고 싶고, 뭘 잘하는지 분명하지 않은 10대 때부터. 아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잘하는 것도 많은 친구들마저 교대를 택했다. 교사는 안정적인 직업의 대명사였고,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 1순위로 꼽혀왔으니까.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란 무슨 의미일까. 여성 교사들이 설문조사에서 내놓은 답은 자조적이다. “돈은 적당히 벌면서 육아 살림 다 할 수 있는 부려 먹기 좋은 직업”이라서, “남자들보다는 못 벌어도 괜찮고 그래도 어느 정도 지위는 있고 어느 정도 똑똑하지만 조신한 직업”이라서. ‘교사는 1등 신붓감’이 이렇게 징그러운 말인지, 책을 읽기 전엔 몰랐다.

  •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 | 이슬기/서현주 | 동아시아 | 1만 7,000원

“철수와 마셨던 크라운 생맥주도 없고, 이제 철수도 없다. 세상 일이 그렇다.”

1년에 한두 번씩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주간지 <시사IN> 구독을 권하는 내용이다. 듣다 보면 살짝 짜증이 난다. 이유는 2가지. 1) 나는 이미 구독 중인데 왜 또 전화하는 거지? 2) <시사IN>은 그 내용만으로 충분히 훌륭한데 왜 이렇게 전화를 걸어 ‘좀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해야 하는 거지?

<시사in>을 사랑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주간지의 후반부를 책임지는 연재 칼럼이다. 굽시니스트의 시사만화, 배순탁의 음악 소개, 김세윤의 영화 소개, 장정일/김여경의 책 이야기까지 버릴 페이지가 없다. 찾아 읽던 칼럼 연재가 끝나면, 또 다른 재밌는 칼럼이 빈자리를 채울 것을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부터 든다. 셰프 박찬일의 ‘밥 먹다가 울컥’이 끝날 때도 그랬다. 

사실 먹는 얘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 음식의 유래도 맛의 비결도 일부 미식가들끼리의 세계처럼 느껴져 딱히 호기심이 동하지 않는다. 삐딱한 눈으로 음식 칼럼을 훑으며 이런 생각을 종종 했다. ‘뭘 먹느냐보다는 누구랑 먹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나?’

<밥 먹다가, 울컥>에 묶인 글은 저자가 과거 어느 날 누구랑 먹어서 특별해진, 음식 이야기다. 거친 삶을 살아야 했던 고등학교 동창과 먹었던 짜장면과 소주. 데모할 때마다 맨 앞에 서던, 그러나 지금은 시인이 된 형이 소매 걷고 끓여줬던 통조림 꽁치찌개. 신파고 뭐고 보다 눈물이 흘렀다면 나에겐 최고의 영화다. 매주 연재되던 이 칼럼이 그랬다. 이 연재를 담당했던 <시사in> 김다은 기자의 말처럼 “뜨겁고 주린 글이다. 서럽고 넉넉한 밥이다.”

  • <밥 먹다가, 울컥> | 박찬일 | 웅진지식하우스 | 1만 7,000원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한달 넘게 비비의 <밤양갱>을 흥얼거린다. 아이유와 르세라핌이 컴백한 시기에 같이 나왔음에도 묻히지 않고 더 널리 깊게 퍼지고 있다. 주가가 오르는 데 이유가 있듯이 차트 1위에도 이유가 있다. 쉬운 멜로디, 노래의 맛을 살린 보컬, 귀엽고 독특한 제목 등 밤양갱 또한 여러 면에서 히트할 만하다. 생각 없이 흥얼거리다 가사에 꽂힌 나는 생각했다. 이 노래의 성공을 이끈 건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라는 말을 듣고 속상했던 사람들과 ‘쟤는 바라는 게 왜 저렇게 많아?’라고 생각했던 걸 후회하는 사람들이라고.

잘 팔리는 소설에도 이유가 있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는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다. 따뜻한 이야기, 정갈한 문장, 부담 없는 두께, 여기에 이동진 평론가의 ‘올해의 책’ 추천까지 더해져 출간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판매량이 늘고 있다. 뒤늦게 읽으며 두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성장기의 막막하고 불안했던 마음과, 누군가의 예상치 못한 선의 덕에 안도했던 마음.

전작의 성공 덕분인지 클레어 키건의 또 다른 소설이 같은 출판사에서 연이어 출간됐다. 역시 잘 팔리고 있다. 띠지에 적힌 화려한 추천사보다 더 믿는 건, 앞서 읽은 작가의 전작이다. <맡겨진 소녀> 정도의 소설을 쓴 작가의 신작이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이번에도 얇은 단편이다. 내용에 대해 얘기하기보다는 읽고 판단하시기를 권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얘긴데 요즘 현실에서는 듣기 힘든 말이다. 이래서 소설이 좋다. 잘 팔리는 소설이 많아지면 좋겠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 1만 3,800원

“시인이라기보다는… 래퍼같이 보입니다.”

디에디트의 슬로건은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재미라도’다. 나는 2020년부터 독자들의 책 사는 재미를 위한 원고를 매달 마감했다.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번도 소개하지 않은 장르가 있었으니, 바로 시집이다. 이유는 2가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나 역시 시를 잘 몰랐다. 그런데 다 떠나서 ‘사는 재미’만 놓고 보면 시집이야말로 딱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시집을 사본 적 있는지? 책은 웬만하면 다 예쁘지만, 시집은 그중에서도 특히 예쁘다. 서점에 들를 일이 있다면 주요 출판사들의 시인선 시리즈를 한번 훑어보길 권한다. 한 권만 꺼내들어도 느낌 있고, 여러 권이 모여 있으면 더욱 근사하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OO는 못 참지’와 ‘OO에 진심’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다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썸네일을 뒤덮은 자극적인 문구에 질렸다면 시집 안에서 ‘언어적 휴식’을 경험해 보시길. 모든 감정을 단어 몇 개로 돌려막기하는 세상에서, 시인은 비슷한 감정도 다른 말로 표현하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이번에 산 시집은 2022년 등단한 고선경 시인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다. 파랑 표지에 분홍색으로 적어넣은 청량한 제목이 맘에 들었다. 앞부분에 배치된 몇몇 시에서는 여름 냄새가 나서 좋았다. 세계 최초 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상상해 쓴 <스트릿 문학 파이터>도 실렸다. 가장 좋았던 시의 제목은 <건강에 좋은 시>다. 한 인터뷰에서 시인은 시의 효능으로 3가지를 꼽았다. “첫째, 입맛이 좋아집니다. 둘째,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됩니다. 셋째, 그럼에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 <샤워젤과 소다수> | 고선경 | 문학동네 | 1만 2,000원

“나는 여전히 서울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나 기대를 품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BTS, 봉준호, 손흥민, 제이팍 렛츠고!” 박재범의 한줄 요약에 따르면 한국엔 월드클래스만 산다. 중국 <산해경>이 한국을 요약한 여섯 글자 ‘동방예의지국’은 21세기에도 버릇없는 젊은이들을 혼내는 데 쓰이고 있다. 한국 경제의 온갖 불안정성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는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로 요약된다. 한국은 예의 바른 예체능 강국인가, 불안해서 살기 싫은 나라인가.

요약은 효율적이지만 효과적이지는 않다. 한두 줄 요약만 읽어서는 결코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여기저기서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얘기하는 콘텐츠가 쏟아진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OO해서 좋아요’ 혹은 ‘한국의 단점은 OO예요’ 같은 요약이다. 서울에서 오래 산 <뉴요커> 칼럼니스트가 한국에 대해 쓴 이 책도 그런 오해를 받기 딱 좋다. 출판사가 <한국 요약 금지>라는 제목으로 선빵을 날린 이유다.

실제로 저자 콜린 마샬은 한국에 대해 요약하려 들지 않는다. 책 소개글을 쓰는 나에겐 솔직히 반가운 일이 아니다. 다 읽어도 그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본인 입으로도 말한다. “물론 서울에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한국만의 분위기가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요약하긴 어려운 책이지만 인상적인 글은 많다. 후반부에 실린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세요”가 특히 좋았다. 이 프랑스 작가에 대한 한국인들의 특별한 사랑에서 저자는 ‘열망’을 발견한다. “더 나아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열망. 이 열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 속에서 빡빡하게 살아가지만, 저자는 이 열망을 “여전히 미래를 좋은 것으로 여기는” 낙관으로 읽는다.

  • <한국 요약 금지> | 콜린 마샬 | 어크로스 |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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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