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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것들, 새턴버드

3분만에 빠르게 후루룩 읽는 리뷰
3분만에 빠르게 후루룩 읽는 리뷰

2024. 03. 20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다. 드립 커피도 아니고, 에스프레소도 아니고 가루를 녹여 마시는 방식의 커피, 꽤 오랜만이다. 일부러 멀리한 건 아니다. 커피 만들어내는 방식에는 호오가 없다. 맛에 대한 호오가 있을 뿐.

책 한 권 들고 산책하는 휴일에는 크레마 풍부한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 조조 영화를 보러 갈 때는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당겼다. 인스턴트 커피가 간절한 순간은 많지 않았다.

새턴버드는 파우더형 인스턴트 커피다. 구매한 이유는 단순하다. 새롭고 귀여워서. 커피 파우더를 원두 보관함처럼 생긴 통에 각각 담아 판매할 생각을 하다니, 신박하면서도 귀엽고 가격이 걱정되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가격은 제일 마지막에 공개한다. 1분만 더 읽으면 알 수 있으니 인내심을 가져보자.

새턴버드는 중국에서 탄생한 커피 브랜드다. 2008년에 창업했고, 2018년에 처음으로 파우더 커피를 선보였다. 처음 제품을 봤을 때는 귀엽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일본 브랜드 아닐까 생각했는데 중국이라니 의외였다. 디자인은 브루트 원두 보관함을 닮았고(특히 노란색), 라이트, 미디움, 다크 등 종류별로 패키지 컬러가 다르다.

사용 방식은 ‘인스턴트’하다. 뚜껑을 열고 알루미늄 필름으로 봉인된 씰을 제거한 후 물에 가루를 타면 된다. 파우더 커피는 어쩔 수 없이 향이 단층적이고 생기가 없는 느낌이 있다. 새턴커피 역시 파우더 커피가 가진 한계를 지녔다. 그럼에도 칭찬할 만한 건, 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듯한 인상을 받았다. 고소하거나, 쌉싸름하거나, 달콤한 향이 느껴지는 등 레이어가 복잡하진 않지만 어느정도의 레이어가 있는 커피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니까 인스턴트 커피로서 절대 평가를 하자면 괜찮은 맛이다. 차갑게 마시는 것보다는 따뜻하게 마셨을 때가 더 좋았다. ‘맛 없는’ 커피는 아니다. 하지만 개당 가격 2,000원을 넘어가는 걸 감안하고 다른 파우더 커피와 가격 비교를 하면… 마음이 복잡하다.

사진에서 1번이 계속 나오는 건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다

차가운 물에도 굉장히 빨리 녹는다는 건 새턴버드의 큰 장점이다. 심지어 얼음물에서도 몇 초에 녹아버린다는 설명은 확실히 제품 개발을 열심히 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디자인이 귀엽다는 것도 유니크한 매력이고. 선물용으로는 좋지 않을까 싶다.

자, 이제 제일 중요한 가격을 공개할 시간이다. 6입 패키지의 가격은 1만 4,000원. 계산해보니 개당 가격은 2,300원. 디에디트 사무실 1층에 있는 매머드 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1,600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꾸준한 구매로 이어지기 힘든 가격이다. 특히나 국내 커피 시장에서는 가장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카누부터 메가커피, 편의점 커피 등 선택권이 많다보니 프리미엄 파우더 커피라는 포지션이 애매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한번쯤 구매해보고 싶다면 내가 구매한 패키지 말고, 1종으로 구성된 ‘익스프레스 새턴버드 12입 세트’를 구매해보는 게 낫다. 29CM에서 12개입에 1만 7,100원이니까 개당 1,425원. 이 정도라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p.s. 제목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신작 <가여운 것들>을 패러디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설명을 붙인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