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흥행 성적과 수상 결과만큼 기대와 예상을 빗겨나가는 분야도 드문 것 같습니다. 오컬트 영화 불모지인 한국에서 <파묘>가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게 될 줄은 (특히 이 추운 겨울에?!) 정말 몰랐고요. 훌륭한 영화가 아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펜하이머>가 며칠 전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렇게 많은 주요 부문 상들을 모조리 휩쓸어버릴 줄은 더욱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전 세계에 공개된 <듄: 파트2>의 경우엔, 개봉 당시의 기세로는 거의 온 지구가 모래 폭풍에 뒤덮인 듯 한동안 듄에 관한 이야기로 시끄러울 줄만 알았는데요. 그 본거지인 미국에서 들려오는 최신 소식에 의하면, 지금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 쉽게 말해 북미 박스오피스 1위(3월 8~10일 기준) 영화는요.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폴’이 주인공인 <듄: 파트2>가 아니라, 팬더 ‘포’가 주인공인 <쿵푸팬더4>라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포가 폴을 이긴 걸까요? 푸바오의 힘을 입어 우리나라에서도 의외의 흥행을 거두는 것은 아닐까요? 기대감 하나 없던 영화가 이렇게 또 갑자기 튀어나오는 걸 보면, 올해 나올 신작들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도 꽤나 험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도 해마다 늘 기대를 참을 수 없는 신작들이 넘쳐나기 마련인데요. 2024 기대작, 올해도 역시 매우 풍성합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2015년에 개봉하여 아날로그 액션 영화의 끝판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시리즈가 9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영화의 주역이었던 퓨리오사의 젊은 시절을 그린 스핀오프 영화입니다. <매드맥스>를 보며 대체 퓨리오사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길래, 이렇게 처절하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몸을 던졌던 것인지 9년 동안 혼자 궁금해하고 있었는데요. 그 부분을 긁어줄 영화가 드디어 올해 개봉 예정이라고 합니다.
예고편을 보니, 이번에도 다른 기술에 의존하기보단 배우들이 직접 몸으로 하는 땀내 나는 액션이 화면을 가득 채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퓨리오사 역을 맡은 젊은 배우는 시리즈 <퀸스 갬빗>과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세계적인 인지도까지 얻은 안야 테일러조이입니다. 시리즈의 운명이 이 젊은 배우에게 달려 있습니다.
개봉일: 북미 5월 개봉 예정
감독: 조지 밀러
출연: 안야 테일러조이, 크리스 헴스워스 등
<베테랑 2>
2015년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외국 영화에 <매드맥스>가 있었다면, 한국 영화엔 천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이 있었습니다. 흥행뿐만 아니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어이가 없네”, “나 아트박스 사장인데” 등 엄청난 유행어를 만들어냈기도 했는데요. 이 영화의 후속작 역시 올해 개봉 예정입니다.
<베테랑>의 매력은 액션도 액션이지만,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웃픈 사회상을 블랙 코미디로 은근히 비꼰다는 것이었는데요. 9년 동안 우리나라에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류승완 감독이 다시 한번 베테랑을 영화에 소환했다는 건, 그가 해야 할 일이 또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류승완 감독은 한 행사에서 <베테랑2>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어두운 영화다”, 그리고 “정해인 배우가 아주 멋있게 나온다.” 뉴 제너레이션이라고 생각하는 정해인 배우의 활약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개봉일: 4분기 개봉 예정
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정해인 등
<인사이드 아웃2>
<인사이드 아웃>은 몇 년 전에 나온 영화일까요? 놀라지 마세요. 이 영화의 1편 역시 2015년에 나왔답니다. 이젠 2015년과 2024년의 관계에 대해서 가설을 세우고 싶을 정도입니다. 2편이 나오는 데까지는 9년이 걸렸지만, 사실 2편은 1편으로부터 2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주인공 라일리는 13살이 되어 사춘기 시기에 들어서게 되는데요. 기존의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 대신 ‘불안이’를 비롯한 새로운 감정들이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센터에 입주하게 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감정의 의인화’, ‘코어 메모리’와 ‘빙봉’ 등, 우리의 머릿속에만 희미하게 존재하는 개념을 시각화 해낸 상상력에 감탄과 눈물을 쏟아내면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속편이 그 아름다운 추억을 흐리게 만들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등장한다는 이 영화를 그냥 넘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1편에서 저를 가장 울렸던 빙봉이가 카메오로라도 출연할지도 모르니까요.
개봉일: 6월 개봉 예정
감독: 켈시 만
출연: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그리고 …
<하얼빈>
<내부자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입니다. 가장 최근 작품인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이번 영화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요.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10월 26일’에 벌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얼빈’하면 떠오르는 사건 있으시죠? 바로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던 일입니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역 의거를 첩보 드라마 방식으로 재구성한 영화라고 합니다. 2022년에 나온 <영웅>은, 이를 너무나 뜨거운 마음으로 그리는 바람에 솔직히 다소 아쉬웠었는데요. 그래서 우민호 감독의 냉철한 터치로 표현된 <하얼빈>이라는 세계가 더욱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안중근 역은 현빈 배우가, 여러 독립군 조력자(실존+가상 인물) 역으로 박정민, 이동욱, 전여빈, 조우진, 유재명 배우가 출연합니다.
개봉일: 6월 개봉 예정
감독: 우민호
출연: 현빈, 박정민, 이동욱, 전여빈, 조우진, 유재명 등
<데드풀과 울버린>
“이번엔 쌍이야♥︎”라는 오묘한 문구를 포스터에 당당히 박을 수 있는 영화는 <데드풀> 같이 선 넘는 시리즈 말고는 없을 겁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자, 데드풀의 마블 유니버스 편입 이후 첫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편입 때문인데요. 데드풀의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애드립이, 흔들리고 있는 마블 유니버스라는 고인물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그 결과가 너무나 궁금합니다. 예고편 속 데드풀의 대사처럼, 그는 ‘마블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요? 한편, <로건>을 끝으로 울버린 역에 영영 은퇴한 줄만 알았던 휴 잭맨의 울버린은 또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여줄까요. 둘의 쌍♥︎연기 호흡이 무척 기대됩니다. 영화의 메인 줄거리는 드라마 <로키> 속 배경인 시간관리국 TVA에서 펼쳐진다고 합니다.
개봉일: 7월 개봉 예정
감독: 숀 레비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휴 잭맨 등
<조커 : 폴리 아 되>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5년 만에 다시 돌아옵니다. 전작이 엄청난 흥행을 해버림에 따라, 이 어둠의 영웅을 복귀시켜달라는 여론이 전 세계적으로 들끓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그 조커단 중 한 명이었습니다. 사실 이 인물이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일으키는 혼란을 생각하면, 그의 귀환을 이렇게 기뻐해도 되는 건지, 거의 자아가 두 개로 분리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부제인 ‘폴리 아 되(불어 : Folie à deux)가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공유정신병적 장애’를 지칭하는 의학용어인데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는 가까운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어떤 증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조커는 과연 누구와 자신의 정신 상태를 공유하게 될까요? 바로 레이디 가가가 연기하는 할리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배우 이름을 보고, 조커단에서 할리퀸단으로 갈아탔습니다.
개봉일: 10월 북미 개봉 예정
감독: 토드 필립스
출연: 호아킨 피닉스, 레이디 가가 등
<보통의 가족>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디너>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소설은 끔찍한 죄를 저지른 소년과 이를 지키려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다룬 심리 스릴러인데요. 이 이야기의 감독을 맡은 사람은 바로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 등의 정통 멜로 영화를 만들었던 허진호 감독입니다. 이 영화들을 만들었던 감독이 이런 장르를 찍었다는 것에 의아할 수도 있겠는데요. 서로 이질적인 성질의 것들이 뜨겁게 부딪히는 것을 좋아하는 제 입장에선 오히려 기대가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보통의 가족>은 작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가 있는데요. 반응이 어땠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상영을 위해 제작된 트레일러에서 인상적인 문구가 있어 공유해 드리려고 합니다. “비극의 스노우볼(Tragedy Snowballs)”. 과연 허진호 감독이 굴리는 비극의 눈덩이는 우리에게 어떤 충격을 선사할까요. 김희애, 설경구, 장동건 등 눈덩이에 올라탄 배우들의 명단도 든든합니다.
개봉일: 미정
감독: 허진호
출연: 김희애, 설경구, 장동건, 수현 등
<챌린저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세 사람 모두 테니스 선수이기에, 그들의 챌린지가 일종의 스포츠 경쟁으로 은유되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만약 이 영화의 감독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연출한 루카 구아다니노라면 어떨까요? 게다가 여주인공 역으론 최근 내한까지 한 월드 스타인 젠데이아가 등장한다면요? 예고편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건, 이 영화가 삼각관계를 단순히 로맨틱하게 그려냈다기보다는, 약간의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의 텐션을 담아 표현해냈다는 것입니다. 전작인 <본즈 앤 올>이 취향에 맞으셨던 분들이라면 더욱 기대하셔도 좋겠습니다. 더해서 이 영화의 두 남주인공을 맡은 신성 조쉬 오코너와 마이크 파이스트가 제2의 티모시 샬라메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이 영화를 통해 미리 찜해두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개봉일: 4월 개봉 예정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젠데이아, 조쉬 오코너, 마이크 파이스트 등
<대도시의 사랑법>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자이기도 한 소설가 박상영의 대표작 <대도시의 사랑법>의 영화 버전이 올해 공개 예정입니다. 영화는 연작 소설 중 <재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소설은 남자 주인공 영이 20살부터 친구였던 재희의 결혼식에 참석해 재희와의 지난 세월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었는데요. 아직 삶에 대해 잘 모르던 젊은 시절에 어울렸던 친구와, 이제는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특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원작이 정말로 탄탄한 만큼, 영화도 정말 기대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씽: 사라진 여자>, <탐정: 리턴즈> 등 알려진 것에 비해 준수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이언희 감독이 연출을 맡았구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김고은 배우와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의 남편 백이삭 역을 연기했던 노상현 배우가 호흡을 맞춥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 이름이 ‘영’에서 ‘흥수’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개봉일: 미정
감독: 이언희
출연: 김고은, 노상현 등
<비틀쥬스 2>
팀 버튼식 호러 판타지 세계에 열광하시는 분들 집중해 주세요. 그 팀 버튼을 스타 감독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던 1988년 영화 <비틀쥬스>의 후속작이 36년 만의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당시는 <유령수업>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고 합니다). <비틀쥬스>는 팀 버튼에게 부를 가져다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지, 아니 대체 팀 버튼이라는 사람의 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2편을 보기에 앞서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1편을 먼저 관람하기를 꼭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비틀쥬스’는 유령 세계에서 인간을 놀래키고 쫓아내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제정신이 아닌 괴짜 유령 캐릭터의 이름입니다. 이 악령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면 큰일 난 겁니다. 당신은 앞으로 평생 팀 버튼 영화를 기다리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저주에 걸리신 것이니까요.
개봉일: 9월 개봉 예정
감독: 팀 버튼
출연: 마이클 키튼, 위노나 라이더, 캐서린 오하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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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 수상. 영화 글과 평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