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작지만 꾸준한 변화로 지구살이 하는 객원에디터 박주연이다. 지구살이를 하려면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던데 애석하게도 그 경지엔 이르지 못했(한)다. 대신 ‘이왕이면’의 마음으로 소비한다. 플라스틱 칫솔보단 이왕이면 대나무 칫솔, 일회용 수세미보단 이왕이면 천연수세미, 레더 제품보단 이왕이면 비건 레더 제품을 소비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물비누가 아닌 고체비누를 쓴다. 샴푸, 린스, 바디용 세정제로 몇 년째 고체비누를 쓰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도 줄일 수 있고 정제수 없이 유효성분만으로 꽉 차 성능도 더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비누를 손에 굴릴 때의 촉감과 조각비누에 이르렀을 때의 쾌감이 좋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뿌듯함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여러 이유를 차치하고, 요즘은 비누 소비 자체를 즐긴다. 각종 브랜드의 비누를 탐하고, 욕망하고, 소망하고, 갈구하는 나. 브랜드마다 다른 패키지, 디자인, 향에 취해 이것저것 사다보니 우리집 욕실을 거쳐 간 비누가 한가득이다.
구찌, 에르메스, 바이레도 등 소위 ‘백화점 1층 브랜드’ 대부분이 비누를 판매하고 있다. 비누라 하면 왜인지 친환경 브랜드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이런 브랜드에서 비누가?’ 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지구살이 소비를 한다는 필자 가슴에 마저 불을 활짝 지펴 지갑 열게 한 명품 브랜드 비누를 소개한다.
01
욕실 인테리어 살려주는 라부르켓 비누
스웨덴의 유기농 브랜드 라부르켓을 요즘 좋아한다. 라부르켓의 독특한 향과 브랜드의 자연주의 철학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특한 폰트와 한국인이 선호하는 패키징이 욕실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 이 브랜드 비누는 ‘솝 로프’라해서 굵은 노끈이 달린 게 포인트인데 욕실에 바로 걸어서 사용할 수 있다. 비누 받침에 올려두지 않으니 비누가 무르지 않아 좋고, 욕실 분위기가 살아서 더 좋다. 흐린 눈 하고 들어가고 싶은 욕실에서 눈에 힘주어 보고 싶은 예쁜 나의 비누. 라부르켓답게 향도 좋다. 위생, 인테리어, 향 전부를 만족시키는 우등생 비누라 할 수 있겠다.
02
이솝의 이 솝(soap)인데 안 살 수가 있나
이솝 세정제 안 좋아하는 사람, 나는 본 적 없다. 이젠 만능 집들이템으로 이솝 핸드워시 대신 이솝 비누를 제안해 본다. 특히 매일매일 저자극으로 스크럽 효과를 볼 수 있는 스크럽 비누 ‘폴리시 바 솝’을 추천한다. 화산재 유래 성분의 고운 알갱이와 포도씨가 뽀득-하게 스크럽해주는데 자극적이지 않아 매일 쓰기 부담스럽지 않다. 이솝 비누의 장점은 아무래도 가격. 다른 백화점 브랜드의 비누보다 친근한 가격이다. 특이하게 310g의 큰 사이즈 비누도 파는데, 당연히 여러 조각으로 구성된 줄 알고 구매했다가 셀프로 잘라 쓰느라 애를 먹은 경험이 있으니 용량을 꼭 살피길 바란다.
03
가격은 불리, 선물하기엔 유리
‘이렇게 본격적이라고?’ 싶을 만큼 라인업 탄탄한 불리의 비누. 매장엔 20여 종에 가까운 비누가 전시되어 있고, 향으로 유명한 불리답게 비누 하나하나를 향초처럼 디스플레이 해두어 시향할 수 있다. 하나하나 향을 맡다 가장 맘에 드는 향을 찾았는데 6만 원이 넘는 가격이라 마음을 다잡았다. 불리는 제품의 퀄리티도 좋지만 비누 케이스 디자인이 특별해서 선물하기에 좋다. 발향이 강해 방향제 역할도 한다. 가격은 다소 불리하지만 향, 패키지를 생각하면 선물용으로 이보다 유리할 수 없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는 일반 비누 외에 불리의 종이비누도 판매하니 가벼운 선물 또는 나를 위한 선물로도 좋다.
04
피렌체에서 온 산타마리아 노벨라 비누
동물 실험하지 않은 화장품 브랜드를 사용하다 보니 산타마리아 노벨라를 특별히 여기게 됐다. 지금은 르라보, 이솝 등 몇 가지 브랜드가 떠오르긴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향수 구매 시 선택지가 좁았다. 그때 거의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준 산타마리아 노벨라. 덕분에 포기할 뻔한 가치관을 이어갈 수 있었다. 보답의 의미로 향수부터 치약, 오일, 핸드크림 그리고 비누까지 다양하게 소비해 주고 있다. 비누는 지난해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본점에서 구매했는데, 수십 개의 비누향을 직접 맡아보고 내가 고른 3종의 비누를 한 세트로 만든 것이라 더 아껴 쓰고 있다. 산타마리아 노벨라는 자연에서 찾은 향으로 유명한 만큼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이라 추천한다. 세안용 비누도 있는데 민감성 피부에 추천한다.
소개한 것들은 모두 세안, 바디용 세정제이나 요즘 비누는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출시된다. ‘이런 비누가 있다고?’ 싶은 비누 2종도 소개한다.
하나
생활공작소 친환경설거지 비누
주부습진이란 병이 있을 정도로 주방세제는 독하다. 그에 비해 설거지 비누는 보통 화학성분이 적어 순하다. 그만큼 더 꼼꼼히 설거지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안심할 수 있어 좋다. 우리나라가 설거지 시 주방세제를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텐데, 설거지 비누는 양 조절이 쉬워 좋다.
둘
동구밭 반려시선 무향 고양이 샴푸바
필자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자주 씻지 않아도 되는 고양이 특성상 연례행사로 목욕을 시킨다. 연례행사임에도 목욕을 시킬 적마다 지옥에서 온 고양이가 되는 탓에 빡빡 빨아낼 수 없어, 세정제가 털에 남진 않을까 노심초사다. 고양이는 목욕 후에 온몸을 몇 시간이고 그루밍하는데 혹시나 남은 세정제를 먹고 탈이 날까 불안하다. 고양이 전용 비누는 무향에 순한 성분, 게다가 몸에 바로 문지르면 되어 양 조절도 쉬워서 좋다. 게다가 고양이도 제로 웨이스트 동참이라니, 너무 귀엽다. 강아지 비누도 있으니 강아지들의 제로 웨이스트 동참도 기대해 보겠다.
비누 사용 시 알아두면 좋은 점
먼저, 비누망을 쓰면 좋다. 비누망은 거품이 잘 나고 밀도 높은 거품을 만들게 하는 용도인데 넓은 면적에 비벼야 하는 샴푸바를 쓸 때는 비누망을 쓰는 게 좋고 다른 목적의 비누들은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 가장 요긴할 때는 조각 비누들을 모아 사용할 때다. 비누를 거의 다 쓰고 작은 조각으로 남은 것들은 버리지 말고 모아 비누망에 담아 쓰면 비누의 최후까지 함께했다는 만족감이 들어 좋다.
또, 규조토 받침대 또는 자석 걸이로 비누 보관에 신경 쓰면 좋다. 비누는 물과 오래 닿으면 물러지고 손실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잘 건조되는 것이 중요하다. 규조토 받침대를 쓰면 물이 고이지 않고 바로 말라서 비누 형태가 잘 유지된다. 자석 걸이는 공간 차지도 줄이고 비누를 경제적으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설치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로 자석 걸이를 너무 많이 소비해 지구살이에 현타가 올 수 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느슨한 지구살이의 시작을 비누로 해보면 어떨까.
손에 굴리며 보드라운 촉각을 즐길 수 있고, 쓸수록 작아지니 ‘다음 비누는 뭐가 좋을까?’로 씻을 때마다 즐거운 고민을 하게 하는 비누. 백화점 브랜드의 비누부터 다양한 코스메틱 브랜드 비누까지 각각이 가진 감성이 다르니 비교해 보는 즐거움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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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이롭게 쓰이길 바라며 오늘도 씁니다. 글로자 박주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