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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 경탁주, 1/4분기 최고의 막걸리

구매할 수 있다면 최대한으로 쟁여두길
구매할 수 있다면 최대한으로 쟁여두길

2024. 03. 06

가수 성시경이 막걸리를 출시했다. 매일 오전 11시 한정수량 오픈하는데, 11시에 들어가면 이미 솔드아웃. 뭐야,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막걸리를 좋아했어? 마치 원소주의 데뷔 때처럼 줄서기 열풍이 어마어마하다. 디에디트의 30대 에디터들이 구매에 실패하는 사이, 손이 빠른 20대 막내 에디터가 주문에 성공했다. 막내 에디터에게 구매 팁을 물어봤다.

“일단 경탁주 스마트 스토어에는 59분에 들어가면 되고요. 11시 정각이 되기 2초 전에 경탁주 제품 페이지에 들어가세요. 주문 폭주라는 메시지가 뜰 건데, 그때 새로고침을 계속 누르지 말고, 페이지 로딩이 완료되는 걸 기다렸다가 다시 새로 고침을 눌러야 해요. 이 과정을 차분히 30초 정도 반복하다 보면 구매하기 버튼이 뜰 거예요. 구매 과정에서는 성인인증을 해야 하니까 신용카드 결제보다는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사는 걸 추천합니다.”

성시경 경탁주

외관은 고급스럽다. 깔끔한 화이트 배경에 금빛을 포인트 컬러로 썼다. ‘경탁주’라고 적힌 폰트는 멋을 부리지 않았다.

‘먹을 텐데’에서 머리를 정리하지 않고 방송에 임하는 성시경의 자연스러운 애티튜드처럼 내추럴함을 추구한 느낌. 지금 쓴 말은 결코 비아냥이 아니고 진심이다. 최근 막걸리씬에는 힙을 추구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멋드러진 디자인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오히려 경탁주는 수십년전부터 막걸리 하나만을 만들어온 장인 같은 인상을 준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맛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달까.

도수는 12도. 유통기한은 도수에 비례한다. 덕분에 막걸리임에도 유통기한이 길다.

자, 이제 막걸리를 마셔보자. 안주는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무말랭이 김치가 떠올랐다. 예전에 백종원 대표가 얘기했던 막걸리 안주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쌀로 담근 술이기 때문에 밥인 셈이고, 그럼 안주는 반찬이면 충분히 어울려유.”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백스피릿>에서 나영석 PD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니, 손님을 모셔놓고 나물 반찬을 안주로 먹어?’ 생각했지만 막걸리 구력이 쌓인 지금은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반찬과 막걸리는 참 좋은 조합이다.

성시경 경탁주

12도면 막걸리 중에서는 도수가 높은 편이다. 평소에 편의점에서 파는 장수막걸리 같은 캐쥬얼한 막걸리만 마셔봤다면 12도에 깜짝 놀랄 수 있지만 넓디넓은 막걸리씬에서 10도 넘은 막걸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톰탁주 같은 건 17도까지 올라가고, 하드포션은 14.3도니까.

뚜껑을 따자마자 램프에서 지니가 탈출하듯 응축된 막걸리 향이 순식간에 퍼졌다. 3주만에 마시는 술이라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이 흘렀다. 이 향은 뭘까? 청포도? 샤인머스캣? 상큼하고 푸릇한 과일의 뉘앙스가 있다.

막걸리를 따를 때의 질감은 꾸덕 정도는 아니지만 밀도가 느껴진다. 한 모금 마셔보니 신맛이 꽤 강한 편이다. 신맛과 함께 단맛도 강하다. 단맛을 첨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쌀에서 나온 단맛인데, 그만큼 많은 양의 쌀을 사용한 고품질의 탁주라는 뜻이다. 이 신맛이 꽤 중독성 있다. 혀에 닿자마자 늦잠자던 미각세포를 흔들어 깨울 정도로 강한 신맛이다. 같은 도수의 막걸리도 어떤 원재료를 쓰냐에 따라 신맛의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신맛이 강한 건 경탁주에 사용한 누룩의 특징이지 않을까 싶었다. 참고로 제조는 제이1 농헙회사법인이라는 곳에서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신맛이 강한 막걸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완성도의 문제였을까. 경탁주에서 느껴지는 높은 완성도 덕분에 장르를 초월하는 재미란 이런거구나 싶었다. 오컬트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파묘>를 보듯, 멜로를 싫어하는 사람이 <나의 해방일지>를 인생 드라마로 꼽듯.

신맛과 함께 오는 이 목넘김이 상당히 중독성 있다. 그리고 목넘김 이후 찾아오는, 잔향. 고량주를 마신 후 입 안에서 퍼지는 파인애플 향이 기분 좋게 남는다. 가격은 2병에 2만 8000원인데, 이 정도 퀄리티라면 전혀 비싸지 않다. 구매 링크는 [여기].

성시경 본인이 오케이하지 않으면 출시하지 않겠다고 한 막걸리가 바로 ‘경탁주’다. 과연 그럴만한 막걸리가 나왔다. 성시경 경탁주의 가장 큰 단점은 구매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뿐. 심지어 2병의 구매 제한도 있으니까. 5점 만점에 4점 드리고 싶다.


리뷰를 이렇게 마무리하려다가 한 문단 정도 추가하려고 글을 쓰는 중이다. 왜냐하면 당분간 성시경 경탁주를 구매하기란 힘들 수도 있으니까. 나도 5일 연속 시도를 했고 매번 실패했다. 실패를 경험하는 건 그리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경탁주를 대체할 수 있는 막걸리를 몇가지 추천한다.

첫번째는 위에서 살짝 언급했던 팔팔양조장의 하드포션. 고도수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에 희석하지 않은 원주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원주는 가격은 높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상품화하기가 쉽지 않은데(마니아의 술), 팔팔양조장에서는 감사하게도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구매 링크는 [여기]. 그리고 신맛을 좋아한다면 양주도가에서 만드는 별산막걸리를 추천한다. 이 막걸리는 가벼운 탄산감과 신맛이 도드라지는 술이다. 구매 링크는 [여기]. 마지막으로 경탁주와 비슷한 질감의 막걸리를 마셔보고 싶다면 술샘에서 만든 붉은 원숭이 막걸리를 추천한다. 이 막걸리는 홍국쌀을 써서 색깔이 붉은 게 특징이고, 10.8도라 고도수 막걸리를 좋아한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 거다. 구매 링크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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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