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진짜’ 새해 목표 설정을 위한 책 5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2024. 03. 04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는 객원 에디터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매년 초에 반복하는 패턴이 있다. 1월 1일에 거창한 목표를 몇 개 세우고, 한 달이 채 못 돼서 ‘진짜는 설날부터다!’라는 말로 흐릿해진 목표들을 변명한다. 그러다 3월이 되면 진짜 최종 final 같은 마음으로 또 한 번 목표를 세팅한다. 새해 목표를 구상 중인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 다섯 권을 소개한다.


“내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만지는 것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장 먼저 만지는 것도 너야.”

생산성을 높여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 우린 주로 ‘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뽑는다. 영어도 하고,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고, 요리도 하고… 목록이 길수록 마음은 급해진다. 할 일은 많고 자원은 한정적이니까. 불안한 마음이 커진다 싶으면 어느새 내 손에 뭔가가 들려 있다. 모르는 사이 시간도 훌쩍 지나 있다. 결국 아무것도 못 했다. 우울해서 더 불안해진다. 새해에 꼭 해야 할 것 대신 ‘하지 말아야 할 것’ 리스트를 만든다면, 아마도 1순위는 스마트폰 아닐까.

물론 인정한다. 스마트폰은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다. 일도, 연애도, 재테크도, 자기 계발도 다 이 손바닥만 한 물건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침대에서 나올 필요도 없다. 덕분에 귀찮은 과정들이 다 사라졌다. 문제는, 사라지지 말아야 할 것들도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뭐가 사라졌는지 모르겠다면, 저자의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시길. “당신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길 바라는가?” 사람마다 ‘무엇’이 다르겠지만, 최소한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삶을 꿈꾸진 않았을 것이다.

스마트폰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책은 이전에도 많았다. 이 책의 특이한 포인트는 스마트폰을 ‘헤어져야 할 나쁜 애인’에 비유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스마트폰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는 절절하다. “이제 너와 나, 우리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야. (…) 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외로울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혼자 살 수 없다면 같이 사는 건 더 힘들 거라고. 지나친 의존은 관계를 망가뜨리고, 나아가 삶까지 흔든다고. 당장 스마트폰과 헤어지진 못하더라도 일종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봐도 좋겠다. 

  • <스마트폰과 헤어지는 법> | 캐서린 프라이스 | 갤리온 | 1만 7,000원

“내가 그린 게 정말 좋아서,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그려댔지.”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연말에 정리하다 보면 장르가 꽤 다양하다는 걸 발견한다. 특별히 의식하는 건 아닌데 그리 된다. 추리소설을 두세 권 읽고 나면 비즈니스 논픽션이 끌리고, 한껏 집중해 논픽션을 읽고 나면 힘 빼고 쓴 에세이를 읽고 싶어지니까.

그런 내가 의식적으로 한 해 10권 이상은 꼭 읽으려 노력하는 장르가 있다. 만화다. 이유를 묻는다면… 봐야 할 소설만큼이나 봐야 할 만화가 많아서다. 만화만큼 재미를 보장하는 장르는 솔직히 없다. 40대가 되든 60대가 되든 ‘만화를 읽는 사람’이고 싶다. <동경일일>처럼 훌륭한 만화를 만나면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올해도 최소 10권은 읽어야지.

내가 만화를 사랑하려 애쓰는 사람이라면, <동경일일>은 이미 오랫동안 만화를 사랑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청춘을 다 바치고도 모자라 남은 인생까지 만화로 꽉꽉 채우고야 말겠다는 신념, 어쩌면 집착. 편집자 시오자와가 잘 다니던 만화잡지를 그만둔 이유는 만화를 만들고 싶어서다. 남들이 좋아할 확률이 높은 만화 말고, 내가 100% 사랑하는 만화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시오자와는 같이 작업했던 작가들을 찾아간다.

올해로 11년 차 직장인이 되면서, 남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고, 씁쓸하다면 씁쓸하고. 없는 시간을 쪼개 만화를 보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만화엔 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에 꽂혀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을 보면 아차 싶고, 그 아차 싶은 순간이 점점 더 귀해진다. 또 한 번 다짐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최소 9권은 더 읽어야지.

  • <동경일일 1, 2> | 마츠모토 타이요 | 문학동네 | 2만 2,000원

“초보임을 즐기세요.”

영어 공부는 직장인의 단골 새해 목표다. 수능 칠 일도 없고, 토익과도 멀어졌지만 영어 울렁증을 고치기 위해 의지를 불태운다. 내가 처음 영어 공부를 새해 목표 리스트에 올린 건 에디터 일을 시작한 2014년이었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글을 안 읽어. 글로 돈을 벌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혀야 하고, 그러려면 영어로 글을 써야 돼!”

마음만 급했다. 읽기/쓰기로 나아가려면 말하기/듣기의 벽부터 뚫어야 했다. 굳어버린 입과 귀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매년 초 영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때마다 며칠 못 가 내 안의 악마가 속삭였다. “요즘은 번역기가 다 해주는데 굳이 영어 공부를 할 필요가 있나?” “영어 잘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난 다른 언어로 차별화하자!” “난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어나 잘하자!”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올해는 다를까? 서점에서 장만한 성능 좋은 채찍에 기대를 걸어본다. 제목부터 날 겨냥한 듯한 <영어, 이번에는 끝까지 가봅시다>의 저자는 마흔 살에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에 뛰어들었다. 영어 울렁증에서 벗어나고자 매일 3~4시간씩 영어 공부에 투자했다. 쉰 살이 되던 해, 실리콘밸리에서 구글 커뮤니케이션팀을 이끌게 됐다. 그의 영어 공부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10년간 영어 공부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또 한 번 시도하려는 이유는, 이렇게 놔버리기엔 영어가, 언어가, 글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유튜브 시대에도 난 여전히 읽을거리에 갈증을 느끼고, 영어가 열어줄 더 넓은 세상에 들어가 보고 싶다. 일단 그 세상에 발을 들여야 영어로 글을 쓰든 돈을 벌든 하지. 이 책을 읽고 긴 목표를 세웠다. 2024년은 ‘영어 공부 10년’의 원년으로, 2034년은 ‘영어 글쓰기 10년’의 원년으로.

  • <영어, 이번에는 끝까지 가봅시다> | 정김경숙 | 웅진지식하우스 | 1만 8,000원

[4]
<광인>

“이해할 수 없던 걸 이해하는 것이 이해였다. 믿을 수 없던 걸 믿는 게 믿음이었다.”

올해는 술 좀 줄여야겠다고 다짐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조심하시라. 처음엔 몰랐다. 흰 배경 안에 놓인 거무튀튀한 사각 물체가 뭘 뜻하는지.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소설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물건, 바로 위스키 잔이라는 걸.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주종은 맥주나 막걸리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폼 잡고 위스키를 마셔보고 싶어진다. 분명 난 경고했다. 위험한 책이다.

주인공 세 사람은 모두 위스키를 좋아해서 자주 어울려 술을 마신다. 그중에서도 하진은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증류소에서 최고의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위스키에 인생을 건 셈이다. 나머지 둘, 준연과 해원은 그런 하진을 사랑한다. 위스키에 인생을 건 하진에게 인생을 건 셈이다. 위스키로 시작한 이야기는 예술과 돈, 꿈과 욕심,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흘러간다.

700쪽 가까운 두께지만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선문답 같은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만 자극적이다. ‘우아한 막장드라마’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이혁진 작가에게 실례일까. 그만큼 뒷이야기가 궁금해 눈을 떼기 어렵다는 뜻이다.

작가의 전작 <사랑의 이해>는 지난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사랑을 이해(understanding)해 보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이해관계(gain&loss)를 낱낱이 파헤친 작품이다. 조선소 안팎의 부조리를 생생하게 담아낸 데뷔작 <누운 배>까지 돌이켜보면, ‘막장드라마’보다 좀 더 나은 수식어가 떠오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세 사람 사이의 부조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이야기. <광인>은 그런 소설이다.

  • <광인> | 이혁진 | 민음사 | 1만 9,000원

“인생 마지막 말은 무엇으로 할래?”

작년 이맘때쯤엔 미루고 미뤘던 목표를 하나 달성하며 새해를 시작했다. 운전면허를 딴 것이다. 여태껏 흔한 장롱면허 하나 없이 살아왔지만, 초음파 사진 속 아기를 보고 있자니 더 버틸 도리가 없었다. 막상 해보니 운전은 생각보다 할 만했고, 도로주행까지 한 번에 붙었다. 거기까지였다. 그 후 1년이 흐르는 동안 아기가 태어나고 이가 8개나 났지만 차도 운전사도 아직 없다. 타고 다닐 차를 산다는 건 읽을 책을 사는 것보다 100배는 더 복잡한 일이었다. ‘연두와 아내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다니자, 그러려면 차부터 사자’가 새해 목표 리스트 중 한 자리를 차지했다.

<세상 끝의 살인>의 주인공 하루도 뒤늦게 운전에 관심이 생겨 학원에 등록했다. 다양한 코스별로 차근차근 도로주행 실습을 받는 중이다. 조수석에 까칠한 학원 강사 이사가와를 태운 채, 오늘의 교습 프로그램 ‘산길 실습’이 시작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전개였지만… 산길에서 사람 형체의 무언가를 치고 만 하루. 두 사람이 마주한 건 수십 구의 시체다. 하지만 둘은 그리 놀라지도,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는다. 이곳은 산이든 시내든 어디에나 이미 시체가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두 달 뒤 지구는 소행성과 충돌한다. 멸망을 앞두고 세상은 멸망보다 더 무서운 혼란에 휩싸인다. 혼란을 틈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사람, 모든 걸 포기하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그런데 이 와중에 굳이 운전을 배우겠다고, 운전을 가르치겠다고 학원에 나온 두 사람. 둘은 무엇을 위해 모두가 떠난 이 도시에 남은 걸까. 독특한 설정에 기대 용두사미로 끝나는 작품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라. 결말까지 이야기를 ‘말이 되게’ 끌고 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 <세상 끝의 살인> | 아라키 아카네 | 북스피어 | 1만 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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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