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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아메리카노 발견, 인텔리젠시아 서촌 방문기

명가의 귀환, 스페셜티커피계의 우래옥
명가의 귀환, 스페셜티커피계의 우래옥

2024. 02. 23

안녕, 나는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심재범이다. 드디어 인텔리젠시아 커피가 서울 서촌에 정식으로 매장을 오픈했다. 스페셜티커피의 전설적인 실버레이크 매장을 시작으로 LA 베니스 비치, 시카고 노스 1호점, 시카고 밀레니엄파크, 세계 최초의 강철 골조 건물 모나드넉 매장 등등, 오픈하는 매장마다 스페셜티커피 역사의 신기원을 장식했던 인텔리젠시아가 드디어 한국에 (미국 이외에) 최초 직영 매장을 오픈하다니, 새삼스럽지만 한국 커피 산업의 위상이 대단하다.

인텔리젠시아 커피를 빠르게 소개하면, 1995년 제프와츠와 더그젤이 시작한 세계 최초의 스페셜티커피 회사다. 시카고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시작한 인텔리젠시아 커피는 미국의 트로이카, 스텀타운, 카운터컬쳐커피와 함께 세계의 스페셜티커피를 선도했고, 카일 글랜빌, 찰스 바빈스키, 마이클 필립스와 같은 소속 바리스타들이 미국 챔피언과 세계 챔피언을 차지하는 등 바리스타 챔피언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의 블루보틀 커피에게 규모 면에서 밀리는 아쉬움이 있지만, 초창기 스텀타운과 인텔리젠시아 커피가 경쟁하면서 성장하던 시기는 스페셜티커피 산업 초기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인텔리젠시아 커피 코리아 첫 번째 매장의 위치는 서촌이다. 서촌의 안쪽 좁은 골목길이 아니고 대로변이라 생각보다 접근성이 좋다. 소프트 오픈 기간 서둘러 방문했는데, 진눈깨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벌써부터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매장의 외부는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해서 정갈하고, 서촌 특유의 바이브와 인텔리젠시아의 빨간색 로고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

내부는 생각보다 더욱 정갈하다. 한옥 중정의 개방성을 활용하면서 단열에 신경을 써서, 채광이 좋으면서 따듯한 온기를 잘 보존하고 있고, 커피 향이 가득했다. 매장 입구에 커피바가 아일랜드 형식으로 위치하고 있고, 바리스타들이 좁은 동선 속에서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장의 내부는 서까래와 대청마루를 활용하고 소반을 활용하는 등 한국적인 전통의 서촌과 어울리는 모습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라마르조코 KB90. 라마르조코의 최신 모델로 정교한 추출뿐만 아니라 바리스타들의 부상 방지를 비롯해서 인간적인 배려가 섬세한 머신이다. 그라인더는 향미 좋은 커피에 적합한 매저 계열이다. 커피를 주문하기 전 인텔리젠시아의 원두 라인업을 살펴보았다. 전통의 단맛이 좋은 블랙캣 에스프레소 블렌딩은 여전하고 새로운 시즌 블렌딩, 다양한 싱글오리진이 잘 진열되었다. 로스팅 회사 인텔리젠시아 커피의 정체성이 잘 발현되었다. 매장 내부는 한옥 특유의 공간과 서까래 기둥이 조화로워, 넓으면서도 아늑하게 공간이 분리되었다. 특히 자연 채광이 간접 조명과 어울리면서 오래도록 앉아있어도 눈이 편했다. 머신과 조명의 선택에서 엿보이듯이, 직원들과 방문객을 배려하는 인텔리젠시아의 의도가 잘 느껴졌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여러 명의 바리스타들과 대화를 나눴다. 분주한 와중에도 젊은 바리스타들이 커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소신껏 추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부 스페셜티커피 매장의 바리스타는 허세스러울 때가 있고, 일부 프랜차이즈 바리스타는 전문성이 떨어질 때가 있는데, 인텔리젠시아의 바리스타들은 친절하면서 전문적이었다. 인텔리젠시아는 시즈널커피라는 표현을 처음 시작한 회사로, 대부분의 원두는 수확한 지 9개월 미만의 신선한 생두를 사용해서 로스팅한 커피다. 총 10잔 정도의 인텔리젠시아 커피를 마셨는데, 가장 인상적인 커피를 추천하면…

첫 번째, 블랙캣 에스프레소. 스페셜티커피 산업에서 가장 특별한 블렌딩 에스프레소의 시발점인 블랙캣 블렌딩은 단단한 단맛을 기반으로 섬세한 향미를 레이어 하듯이 표현한다.

최근 일부 스페셜티커피가 향미를 우선하면서 밸런스가 깨진 곳이 있는데, 블랙캣의 에스프레소는 단단하고 견고한 단맛을 기본으로 다양한 향미를 변주한다. 인텔리젠시아 코리아에서 새롭게 시작한 얼터네이트 에스프레소는 플레어 수동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저압 추출과 섬세한 온도조절로 에스프레소와 브루잉 커피의 중간적인 질감으로 탄탄한 단맛을 표현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인텔리젠시아의 블랙캣 얼터네이트 에스프레소는 꼭 마셔 보자.

두 번째 추천은 싱글오리진 브루잉(핸드드립) 커피. 서구 매장에서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의 핸드드립 커피를 소개한 곳이 인텔리젠시아 커피이다. 다양한 시즈널 원두들을 브루잉으로 마셔볼 것을 추천한다. 케냐 커피를 브루잉으로 마셨는데, 선명하고 화려한 향미가 향수처럼 입안 가득했다. 수세식 케냐 커피의 깔끔한 향미와 질감 있고, 여운 있는 후미까지, 커피 한 모금마저 호사스럽다.

세 번째 추천 커피는 아메리카노와 코타도. 아메리카노는 담당 바리스타의 추천 커피였는데, 평범한 커피 메뉴의 임팩트가 강력했다. 커피 본연의 단맛을 강조하는 블랙캣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하는 아메리카노의 강력한 단맛과 섬세하고 여운 있는 애프터가 정말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최고의 아메리카노라고 손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커피와 우유의 비율이 농축적으로 조합된 코타도도 인상적이었다. 

원래 1시간 정도 짧은 시간을 계획했는데 여러 커피를 마시고 분위기에 취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마침 가오픈 기간 한국을 방문 중인 폴 렉스타드(인텔리젠시아 혁신담당임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스페셜티커피의 화려한 향미 보다, 커피의 기본 단맛을 뚝심 있게 표현하고 싶다는 본사의 의지가 잘 발현되기를 희망한다.

커피인들의 첫사랑, 스페셜티커피의 원조(개인적으로는 스페셜티커피 산업의 우래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인텔리젠시아 커피가 한국에서 향후 어떤 모습을 선보일지 수많은 전문가들이 눈여겨보고 있다. 전통의 노포가 뚝심을 유지할지, 커피 산업의 고인물이 될지는 냉엄한 한국 소비자들이 판단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개인적인 의견을 전달하면, 전통 명가의 귀환과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첫사랑의 사심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바리스타들의 트레이닝, 본사의 내공, 한국팀의 준비가 디테일하고 꼼꼼하다. 앞으로도 초심을 꾸준하게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About Author
심재범

커피 칼럼니스트. '카페마실', '동경커피', '교토커피'를 썼습니다. 생업은 직장인입니다. 싸모님을 제일 싸랑하고 다음으로 커피를 좋아합니다. 아 참, 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