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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사가 알려주는 향수 레이어링 맛보기

레이어링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
레이어링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

2024. 04. 04

안녕.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아론이다. 여러분은 향수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향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설문조사를 할 일이 꽤 있는데, 지난 결과들을 되짚어보면 사람들의 향수 보유 스타일은 좀 극단적으로 나뉘는 편이다. 향수가 아예 없거나 한두 개 정도 있는 사람 vs 향수가 꽤 많은 사람(보통 열 개 이상). 이런 경우 향수를 한두 개 가진 사람은, 그마저도 본인이 구매한 것이 아니라 선물 받은 향수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하자면 향을 모르면 몰랐지, 향의 세계는 한번 빼지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향수 수납장을 들여다보며 ‘이거 언제 다 쓰지…’ 하는 사람들을 위해 향수 레이어링 이야기를 해보겠다.


❶ 향수 레이어링? 그게 뭔가요?

조향사 중에는 향수 레이어링을 추천하지 않거나, 심지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향수 안에 탑-미들-베이스를 완성해 뒀는데 굳이 그 조화를 깨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향을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자신만의 조합을 찾아나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향수 레이어링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도해 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도 더 디테일하게 알 수 있다. 게다가 각각의 향수에 대해서도 필연적으로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알게 된다. 방법 또한 어려울 것이 없다. 말 그대로 두 가지 이상의 향수를 함께 쓰면 된다. 정답은 없지만 기본적인 가이드는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❷ 같은 향조끼리 레이어링하라

향수 레이어링의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같은 향조끼리 레이어링 하는 것. 시트러스 향수는 다른 시트러스 향수와, 플로럴 향수는 다른 플로럴 향수와 조합한다. 이렇게 하면 향조끼리 크게 부딪히는 일 없이 자연스레 녹아들 가능성이 높다.
플로럴 계열의 경우 같은 꽃을 메인으로 하는 향수를 조합하는 게 더 안전할 수 있다. 장미 향수는 장미 향수와, 튜베로즈 향수는 튜베로즈 향수와 레이어링 하는 식으로 말이다. 메인 플로럴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 향을 보완하거나 꾸미기 위한 다른 향조들이 서로 잘 어울리는 편이거든. 하지만 그러면… 좀 심심하다고? 그럴 땐 무게감을 기준으로 가벼운 향과 무거운 향을 매칭해보면 좋다.

다만 같은 향조끼리 레이어링 할 때는 구어망드 계열의 향처럼 너무 무겁거나 당도가 높은 향의 조합은 조심해야 한다. 단독으로 썼을 때는 괜찮았던 향도 자칫 잘못하면 속이 울렁거릴 수 있는 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향수 레이어링에 무조건적인 답은 없기에, 같은 향조끼리 매칭했을 때 하나의 향수가 다른 향수에 묻히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 있다. 시무룩해하지 말고 왜일까 궁금해해보며 각각의 향수 노트를 찾아보자.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❸ 보완해줄 수 있는 향조끼리 레이어링하라

향수 레이어링에 재미를 붙였다면, 이제 서로 보완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향수끼리 레이어링 해볼 차례. 좀 더 쉽게 접근하려면, 이미지를 떠올려보고 조합한다. 깨끗한 느낌의 비누가 떠오르는 향이 있다면, 거기에 플로럴 향을 더해 꽃비누 이미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오렌지가 메인인 시트러스 향수에 그리너리 한 향을 매칭해 오렌지 나무의 이미지를 만들어 본다면? 장미가 메인인 향수에 화이트 머스크 느낌의 향을 더해 장미 우유 혹은 장미 로션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지? 그럼… 나무에 꽃을 피워보겠다고 우디 향수에 플로럴 향을 매칭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미리 말해두지만 우디와 플로럴은 쉽게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고수가 된 이후에 도전하길 바란다.

또 다른 방법. 하나의 메인 향수를 두고, 이 향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향수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우디 향수 하나를 메인으로 둔다. 그럼 이 향을 좀 더 부드럽게 해줄 머스크 향을 찾을 수도 있고, 이 향을 더 프레시하게 만들어 줄 그리너리 한 향을 찾을 수도 있고, 이 향을 살짝 달콤하게 해 줄 구어망드 향을 찾을 수도 있다. 그렇게 시도하다 보면 우디 향에는 어떤 향조가 잘 어울리고 어떤 향조는 잘 어울리지 않는구나, 하는 지식도 차차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❹ 재미있을 것 같으면 일단 시도해보라

마지막 방법은… 일단 부딪혀보는 거다. 궁금하다 싶으면 일단 조합해 본다. 물론 이 방법은 실패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앞선 레이어링 방법들을 시도해 보며 쌓은 경험과 지식들이 도움을 줄 것이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조합에서 좋은 결과를 끌어내면 정말 재미있어진다(아, 이건 내가 조향사라 그런가…?). 장미 향수에 시트러스 향을 조합했더니 갑자기 청량한 장미 에이드가 된다거나, 구어망드 향수에 네롤리 향을 더했더니 화사함이 더해지고 느끼함이 덜해지는 보완 효과를 누린다거나 등등.

그래도, 실패의 위험성을 덜고 싶다면 시향지를 사용해서 간이 레이어링을 먼저 해보는 걸 추천한다. 전문적인 시향지일 필요 없다. 그냥 집에 있는 종이를 잘라서 사용해도 된다. 레이어링 하려고 하는 두 가지 향수를 각각의 시향지에 뿌린 후, 양쪽 손에 하나씩 들고 코앞에서 팔락 팔락 흔든다. 그렇게 뒤섞인 향을 맡아보면 진짜로 시도해도 될지 아닐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단계까지 왔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방금 막 찐 향덕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❺ 새로운 즐거움의 세계

마지막으로, 레이어링 할 때 두 가지 이상의 향수를 같은 자리에 덧뿌리거나 섞어 뿌리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아니, 말리고 싶다. 나는 향수 하나를 손목 등의 피부에, 나머지 향수는 옷에 뿌리는 방법을 자주 쓴다. 혹은 왼쪽 손목과 오른쪽 손목에 각각의 향수를 사용하거나, 향수 하나는 손목 안쪽에 나머지 하나는 바깥쪽에 뿌리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팔꿈치, 귀 뒤, 치마 끝 등 다양한 위치의 조합으로 레이어링을 하기도 한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향수 레이어링에 정답은 없다. 향을 더 알아가고 발견해가는 그 즐거움이 향수 레이어링의 목표이자 답일 뿐. 그러니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 보시길. ‘오늘 뭐 먹지?’만큼 즐거운 생각이 ‘오늘 뭐 뿌리지?’라는 걸 느끼게 될 테니까.

About Author
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