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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서울 도장깨기: 05 제로컴플렉스

1년에 200번 이상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사람의 미슐랭 도장깨기
1년에 200번 이상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사람의 미슐랭 도장깨기

2024. 02. 21

서울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중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레스토랑을 묻는다면, 많은 셰프들이 제로컴플렉스라고 대답할 거야. 같은 업계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건 최고의 찬사잖아? 이번에는 이충후 셰프의 제로컴플렉스에 대해 소개해 볼게.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출처 : @bob.eat]

2013년 7월. 서래마을에 오픈한 제로컴플렉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도 생생해. 벌써 꼬박 10년이 넘었네. 은색 테이블, 은색 식기, 은색 주방이 마치 영화의 세트장처럼 어딘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던 곳,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음악조차 없어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던 곳. 서울에 내추럴 와인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내추럴 와인 페어링’을 선보이며 트렌드를 선도하다 못해 발굴하고 창조한 곳. ‘비트를 곁들인 오리 가슴살’ 같은 설명적인 메뉴 이름이 대부분이던 시절, 메뉴판에 ‘돼지감자 갑오징어’처럼 단 몇 개의 재료 키워드만 적어 궁금증을 유발하던 곳. 그 당시 이곳을 오픈한 이충후 셰프는 6년간의 프랑스 경력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스물여덟의 청년이었어. (나 스물여덟 살 때 뭐 했더라…) 프랑스의 네오 비스트로 스타일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는 평가와 함께 단숨에 주목받았지.

그럼 잠깐, 네오 비스트로가 뭔지 짧게 이야기해 볼게. 오랫동안 파리에는 미쉐린 스타를 받기 위한 전통적이고 소위 ‘빡센’ 고급 레스토랑들과, 아주 캐주얼하고 일상적인 요리를 제공하는 편안한 레스토랑의 유형이 암묵적으로 나뉘어 있었어. 그런데 2006년 무렵 새로운 변화가 생긴거야. 고급 레스토랑에서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지불하지 않아도 강렬하고 생동감 가득한 미식 경험을 줄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몇몇 야심 찬 요리사들이 파리 레스토랑의 지형을 바꾸기 시작했지.

‘비스트로노미(bistronomie; 캐주얼 식당 bistro와 미식 gastronomie의 합성어)’라고도 불리는 네오 비스트로 운동은 프랑스 요리를 새롭게 바꾸었다고 평가받아. 턱시도를 차려입은 매니저와 소믈리에가 문 앞까지 마중 나오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에서도 충분히 신선하고 창조적인 셰프의 음식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거야. 가격도 훨씬 캐주얼했어. 그전까지는 최상의 미식 경험을 하려면 프랑스식 정찬이 떠올랐고 인당 30만 원 이상을 지불했다면, 여기서는 10만 원 아래로도 흥미로운 미식 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니까. 요리 스타일에도 특징이 있었는데, 신선한 식재료를 창의적으로 조합하고, 상대적으로 단순한 조리 과정으로 개성을 살린다는 점이야.

그렇게 네오 비스트로 스타일에서 출발한 제로컴플렉스는 2018년 서래마을을 뒤로 하고, 남산 위 복합문화공간인 피크닉에 자리를 잡아.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뒤, 한층 성숙해진 이노베이티브 퀴진의 파인다이닝으로 서서히 진화했지. 섬세하면서도 수준 높은 요리로 사람들을 매혹시켰어.

그리고 2023년, 벌써 10년을 꽉 채운 제로컴플렉스는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생각하지 못한 위치, 아름다운 공간, 좋은 음식… 서론이 길었네!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세 번째 공간을 선보이는 제로컴플렉스, 얼른 만나보자.


미쉐린 가이드는 타이어 회사에서 출발했고, 식사를 하러 가는 ‘여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공식적으로 미쉐린 1스타가 음식이 좋은 레스토랑, 2스타가 그 지역에 있다면 찾아갈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 3스타가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여행을 계획할 만큼 훌륭한 레스토랑이라는 뜻이니까.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이충후 셰프의 제로컴플렉스를 찾아가며 든 생각은 ‘특별한 여정’이라는 느낌이었어. 주소를 검색해 찾아간 곳은 여기가 맞나 싶을 만큼 예상외의 좁고 고즈넉한 골목이었거든. 이런 곳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왠지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출처 : @bob.eat]

설레는 마음으로 골목 안을 굽이굽이 들어가다 보면 드디어 제로컴플렉스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나고, 대문을 지나면 분위기가 반전돼! 통유리창으로 안이 바라보이는,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건물, 제로컴플렉스에 온 것을 환영해.

제로컴플렉스 미쉐린

1층은 모두 키친으로 사용되고, 2층이 다이닝 홀이야.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2층 공간은 3개의 테이블과 하나의 룸으로 이루어져 있어. 담백한 멋이 느껴지는 건축 요소들과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가 마음을 사로잡아.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메뉴

역시 메뉴는 초창기 제로컴플렉스의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있어. 몇 가지 식재료를 나열해 음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살짝 엿볼 수 있게 하는 방식.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와인 페어링도 준비되어 있어. 제로컴플렉스는 내추럴 와인의 선구자라고 했잖아? 이곳에서 세심하게 음식과 연결한 다양한 내추럴 와인은 식사의 경험을 아주 많이 배가시키니, 꼭 고려해 봐. 개인적으로 나는 내추럴 와인을 자주 즐기지는 않는데, 이번에 몇 가지 페어링은 정말 놀랍도록 훌륭하더라고.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추운 겨울이었어. 첫 요리는 단새우와 브로콜리가 들어있는 아뮤즈 부쉬! 달큰한 단새우 위로 젤리 형태의 꿀식초 소스와 브로콜리 폼을 올렸어. 첫 번째 요리에서 벌써 셰프의 스타일이 엿보이는 것 같아. 자로 잰 듯 정교하거나 장식적인 플레이팅이 아니라, 맛의 조합에서 신선한 즐거움을 주는 스타일.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그리고 바로 이어, 세 가지의 타틀렛이 나와. 위가 하얀 타틀렛은 서양식 육회인 비프 타르타르에 곱게 간 파마산치즈를 눈처럼 소복이 올려 감칠맛이 정말 좋았지. 그 뒤로 보이는 검은 타틀렛은 살짝 산미가 느껴지도록 피클링한 전복에 레몬 크림, 레몬 제스트로 포인트를 줬어. 마지막으로는 아삭하면서도 부드럽게 익힌 연근에 로메스코에 버무린 송어알과 오레가노 허브를 올렸지. 각각의 조합이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맛의 포인트가 확실해. 고소하고 감칠맛 가득한 비프 타르타르, 새콤하면서도 싱그러운 상큼함이 느껴지는 전복, 연근의 식감과 송어알의 조화로움까지.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다음은 따뜻한 ‘감자’야. 작은 감자를 반으로 잘라 속을 파 그릇처럼 만들고, 그 속을 작은 메추리알 수란으로 채운 뒤에 대파와 감자로 만든 수프를 넣었어. 감자 껍질 오일까지 더해 고소하고 풍만한 땅의 맛이 가득한 요리야. 수프를 홀짝홀짝 마시다가 감자 그릇(?)을 통째로 먹을 수 있으니 재미있기도 해.

메뉴판에 삼치, 도토리, 장미라고 적혀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던 메뉴. 얇게 저민 단감과 도토리묵, 삼치를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든 차가운 생선 요리야! 여기에 장미와 비트가 들어간 마요네즈 소스를 함께 먹는데, 와, 정말 미쳤다! 그리고 여기서 페어링마저 너무나 감탄했어. 감과 도토리묵, 삼치, 장미… 도저히 내 머리로는 상상해 낼 수 없는 조합인데, 단감의 달콤 아삭함과 도토리묵의 쌉싸름한 풍미, 탱글한 질감, 그리고 생선 중에서도 유난히 부드러운 삼치로 만든 저 샐러드(?)는 아주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맛의 즐거움을 주더라고. 여기에 살짝 산화 캐릭터가 느껴지는 와인을 더하니 맛과 향이 얼마나 조화로운지.

제로컴플렉스 미쉐린 서울

사워도우와 구제르(Gougère)가 나오는데 이 두 가지만 해도 맛있는 와인 안주. 특히 갓 구워낸 구제르의 포슬한 질감과 짭조름한 여운이 훌륭했어.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다음으로는 따뜻한 생선요리야. 이날은 겨울을 맞아 더 달큰한 제철 남해초와 대구가 나왔어. 양파 퓌레와 먹물 소스에 버무린 남해초를 숯불에 살짝 구워 탱글한 대구살 뒤에 올리고, 위로는 먹물 홀랜다이즈 소스를 곁들였지.

제로컴플렉스 미쉐린

그리고 한 번 더 이어지는 생선 요리! 겨울 생선의 왕, 금태와 농장에서 받아온 다양한 제철 해소가 올라가. 콜라비를 얇게 썰어 만두피처럼 만든 뒤 속을 채운 라비올리, 그리고 발효시킨 파프리카 퓌레를 올려 완성하는데 풍만한 아로마의 화이트 와인과 어울림이 좋았고, 금태야 당연히 맛있지만 채소들이 주인공이 된 듯한 경험도 즐거웠어.

제로컴플렉스 미쉐린

다음으로는 숯불에 익힌 한우 안심. 정말 심플한 플레이팅 아래로, 한우를 들추어 보니 토란과 목이버섯 피클이 아래 숨어있어. 땅의 향을 담은 돼지감자 소스와 대파 오일로 완성된 스테이크.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벌써 디저트 나올 시간! 첫 번째 디저트는 요거트와 화이트초콜릿으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함께 서양배 쿨리(coulis)가 나오는데, 취향껏 번갈아 먹거나 함께 맛보면 돼. 잠깐, 쿨리가 뭐냐고? 쿨리는 퓌레와 비슷한 개념이야. 과일이나 채소를 잘 갈아낸 뒤 체에 걸러 농도 있게 만들어낸 찬 소스야.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두 번째 디저트는 다쿠아즈 쿠키 위에 백향과 캐러멜 소스를 뿌리고, 그 위로 보리 향을 입힌 캐러멜 아이스크림을 올렸어. 모양도 너무 예쁘고, 디저트 와인이나 브랜디와 함께 즐겨도 참 좋겠지?

제로컴플렉스 미슐랭

마지막은 모카 크림을 넣은 초콜릿 슈와 커피 또는 차야. 간결하지만, 아주 완성도 높은 만듦새로 전하는 여운의 힘이 강력하게 느껴지더라. 다음 계절에는 또 누구랑 올까, 벌써 고민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니 세련된 미식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추천할게!

  • 초행길이라면 이곳을 찾아내는 설렘을 한껏 느껴봐. 차를 가지고 왔다면, 따로 안내된 장소에 주차를 하고 약간 걸어야 해. 택시를 타도 이곳까지 접근하기가 어려우니 그 점은 미리 숙지하면 더 좋을 것 같아!
  • 내추럴 와인의 애호가라면 당연히,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놀라운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페어링이 기다리고 있어.
  • 흥미로운 재료의 조합,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입에 넣으면 다채로운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요리의 맛과 향에 집중하면 제로컴플렉스의 스타일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거야.

  • 주소: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59길 11-8
  • 전화번호: 02-532-0876
  • 영업시간: 월요일 휴무, 화-일 12:00-15:30, 18:00–22:00
  • 런치 코스 19만 원
  • 디너 코스 27만 원
About Author
julia

미쉐린 스타 도장깨기를 연재합니다. 셰프의 이야기를 전하고, 샴페인을 연료로 삼는 미식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