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그들이 ‘성난 사람들’에 열광하는 이유

골든글로브 3관왕, 에미상 8관왕
골든글로브 3관왕, 에미상 8관왕

2024. 01. 21

골든글로브 3관왕, 에미상 8관왕.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영어 원제 : Beef)을 향한 전 세계인들의 분노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못 만들었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성이 난 건, 이 드라마가 정말 재밌어서다. 재미가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들이 화났을 때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리 자신들의 추함을 너무나 잘 묘사해서 킹받는 상황인 것이다.

<성난 사람들>에 성난 사람들 중 가장 아프게 팩트 폭행 당한 미국인들은, 앞다투어 이 작품에 트로피를 던지며 분노를 표출하는 중이다. 지난 1월 7일 제81회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과 남/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성난 사람들>은, 그 기세를 몰아 며칠 전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무려 8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미국에서 드라마/시리즈 작품에 상을 주는 시상식 중 가장 권위 있다고 평가받는 두 곳에서 동시에 수상했다는 건 분명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작년 지구가 열광했던 그 <오징어 게임>마저도 한 군데에서밖에 상을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성난 사람들>의 성과는 그만큼 압도적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어떤 작품이 ‘왜 좋은가’에 대해 말할 때는 보통 그 이유를 작품 내부에서 찾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이례적으로 여러 시상식에서 마치 짠 것 같이 의견의 일치를 이룬 지지를 받거나, <서울의 봄>처럼 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영화 한 편을 보러 극장을 찾는 현상이 발생했을 때는, 그 시선을 작품 외부로 돌려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게끔 하기도 한다. <성난 사람들> 속 등장인물들이 자주 말하는 대사 “역시 항상 뭔가 있다니까.(There is always something)”처럼, 무언가의 성공 요인엔 늘 썸띵이 있기 마련이다.

이 드라마의 성공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작품의 원제목인 ‘beef’의 의미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일단 beef라는 표현은 한국말론 번역하기 애매한 말이다. 싸움, 갈등, 충돌 등의 단어로 대체할만 하지만, 완전히 들어맞는 느낌은 아니다. 내가 beef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미국 래퍼들에 관한 뉴스를 들었을 때였는데, 예컨대 드레이크와 칸예 웨스트 간에 설전이나 껄끄러운 일이 생기는 경우 이를 ‘비프가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영어 강의는 이쯤 하고. 하고 싶은 말은 비프라는 표현이 근래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는 단어라는 거다. 우리나라에 현재 ‘캔슬 컬쳐’, 유명인들을 일명 ‘나락’을 보내려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처럼, 미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크고 작은 갈등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성난 사람들>의 1화는 그런 상황 속에 놓여 있는 두 인물, 대니와 에이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둘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는 건, 둘의 ‘운수 나쁜 날’이 하필 겹쳐버렸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다들 그런 날이 있지 않는가. 작은 것 하나 하나까지 정말 지독하게도 잘되지 않는 날이. 요즘 말로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날 말이다.

사실 대니와 에이미는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보다도 잘 참아냈던 사람들이었다. 둘 다 각자의 가정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입장이라, 남들보다 더 자주 참아야 하는 삶을 살아왔었다. 그 와중에 대니는 물건을 환불하러 갔다가 영수증을 챙기지 않은 바람에 점원에게 핀잔을 듣는다. 반박할 여지없이 오로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에, 대니는 홀로 운전석에 앉아 또 한번 분노를 삼킨다. 바보 같은 자신이 싫다가 이내 곧 세상이 원망스러워진다. 세상엔 왜 이따위 법이 있어서. 겨우 영수증 하나 챙기지 않은 게 얼마나 잘못한 일이라고. 아니 근데 점원은 왜 유난히 퉁명스러웠던 거지? 날 무시하는 건가? 아까 한마디 했었어야 했는데 참았던 나도 정말 한심하다. 하여튼 항상 뭔가가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니까… 라고 마음속으로 화를 삭이며 후진을 하는데 갑자기 끼어든 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린 뒤 도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대니는 오랫동안 쌓아둔 분노 주머니를 풀어헤친 채 그 차를 추격하기에 나선다. 세상을 향한 분노를 풀 대상을 찾았다는 듯. 이젠 정말 참는 것도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는데 참 잘 됐다는 듯. 그렇게 대니와 에이미의 비프가 시작되고야 만다.

둘의 ‘비프’가 현대인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은 이게 속 시원해서다. <성난 사람들>은 참아야만 하는 현대인들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 참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절대로 해선 안 되는 말과 해선 안 되는 짓들을 극한으로 쏟아내는 판타지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인물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대신해주는 것을 보며 안전한 희열을 느낀다. 이 작품이 인기인 건, 그만큼 쌓여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아니 역으로 말해, 요즘 정도로 사회에 비프가 만연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도 이 정도의 선풍을 일으키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비프를 없애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원인의 뿌리를 찾아서 머릿속을 파헤쳐 볼 것까지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발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해소될 수 있다. 이렇게 의외로 간단한데도 비프가 만연한 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세상은 쉽게 분노하는 사람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고, 어떤 상황에도 미소와 품격을 잃지 않는 유재석 같은 사람을 신에 빗대어 칭찬하기까지 한다.

극 초반 에이미는 자신의 남편에게 오늘 너무 우울해서 빵을 샀어..가 아니라, 오늘 좀 힘들었는데 웬 운전자가 시비를 걸어서 화가 났다는 얘기를 한다. 그때 남편은 에이미가 분노를 미처 발산하기도 전에 아내를 진정시킨 뒤 ‘바른 말’들을 늘어놓는다. 그럴 땐 심호흡을 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감사 일기를 써보라는 것이다. 이는 물론 백 번이고 옳은 모범에 가까운 답은 맞지만, 사람에겐 가끔씩은 슬픔이나 분노 등 부정적이라 일컬어지는 감정에 몸을 푹 담그는 시간도 필요한 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난 사람들>은 점점 더 엄격한 도덕/윤리 기준을 요구받는 현대인들의 목구멍에 최신 버전의 탄산음료를, 그것도 제로 탄산이 아닌 오리지널 탄산을 콸콸 붓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특별히 미국인들에게 더 큰 상찬을 받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추가로 여러 가지 가설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이것이 몇 년째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콘텐츠 계열에 속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품의 프로듀서이자 연출자인 이성진과 주연 스티븐 연을 비롯해 많은 제작진이 한국계 미국인이며, 그래서 작품 내부에도 한국 문화와 관련된 것들이 묘사되기도 한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그리고 BTS까지. K 콘텐츠에 호감을 가진 미국인이라면 자연스레 <성난 사람들>에도 애정을 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가설엔 약간의 개인적인 우려가 섞여 있다. 현재 미국은 올해 11월에 열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후보들이 경선을 시작하고 있는 시기다. 나는 다른 후보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지난 2021년까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가 올해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는 참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필터링 없이 표현하는 것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정치인이다. 미국인들의 <성난 사람들>을 향한 지지는, 또 한 명의 성난 지도자를 향한 열망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 과연 그들은 이 드라마의 아름다운 엔딩을 본 뒤, 어떤 선택을 내릴까. 이 드라마가 예찬한 ‘건강한 분노’가 사람들을 안전한 길로 안내하기를 바란다.

About Author
김철홍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 수상. 영화 글과 평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