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방문할 때, 셰프가 정성 들여 준비한 좋은 음식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에 ‘경험의 가치’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 우리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스타 레스토랑 목록을 검색하는 것은 아니니까. 소중한 사람과 기념할 만한 순간이 왔을 때, 평소에는 쉽게 만들기 힘든 특별한 기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크지. 강민철 레스토랑은 그런 마음을 꼭 알아차리고,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주는 곳이야.
강민철의 강민철 레스토랑
서울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중, 셰프의 이름이 곧 레스토랑인 공간은 흔치 않아. 프랑스의 3스타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와 동명의 서울 분점,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정도가 있지. 한국 셰프가 자기 이름을 걸고 선보이는 파인다이닝은 ‘강민철 레스토랑’이 유일해. 프렌치 퀴진의 세계 3대 거장 셰프인 조엘 로부숑, 알랭 뒤카스, 피에르 가니에르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으며, 강민철 셰프도 본인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만든 꿈이 있었기 때문일까?
“사실 4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며 서류를 발급하러 갈 일이 있었어요. 사업자를 내기 위해 급하게 레스토랑 이름을 써 내야 했는데, 아직 제대로 된 이름을 정하지 못해서, 어차피 제 공간이니 강민철 레스토랑이라고 일단 써서 낸 것이 계기였죠. 많은 분들이 프렌치 거장의 레스토랑을 오마주한 작명이 아니냐고 묻는데, 생각보다 우연히 정하게 된 이름이에요. 막상 강민철 레스토랑이라고 해 두니 틀린 말도 아니기도 했고요. (웃음)”
세련된 프렌치 파인다이닝 감성이 매력적인 강민철 레스토랑은 오픈 직후 뜨거운 관심을 받았어. 서울의 레스토랑 중 가격이 가장 비싼 편에 속하기도 했고 (2024년 1월 기준 런치 18만 원, 디너 34만 원) ‘솁’이 미남이기도 하고 화려한 기물들이 회자되기도 하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1월, 미쉐린 가이드가 새로운 1스타 레스토랑으로 이곳을 선정했지.
주인공이 되는 공간
나는 셰프와 대화할 때 항상 물어보는 게 있어. 이 공간을 방문한 고객이 뭘 느꼈으면 좋겠냐는 질문이지. 생각보다 셰프들 대답이 천차만별이거든. 그런데 강솁은 이런 말을 하더라, “주인공이 되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이 대답이 정말 중요한 게, 셰프들의 이런 강렬한 생각 속에서 수많은 요소들이 정립되기 때문이야. 이곳은 셰프의 이 의지가 아주 작은 디테일에까지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잘 만들어진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해.
이곳의 테이블은 딱 3개. 정말 작은 레스토랑이지. 커플로 채워진다면 대략 여섯 명, 아무리 많아도 10명도 안 되는 손님을 위해 모든 스태프가 심혈을 기울이는 곳이야. 레스토랑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막상 자리에 앉으면 중앙 홀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공간의 느낌을 보여주기 때문에, 룸처럼 답답하지도 않고, 홀처럼 공개된 느낌도 없이 영리하게 설계됐어. 비밀 이야기를 속삭여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야.
“레스토랑 자리에 가면 흔히 ‘상석’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그걸 없애고 싶어서 모든 테이블이 원형이에요. 각자 오늘은 자신의 관점에서, 오롯이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요.” 그러고 보니 모든 테이블이 원형이고, 어디에 앉아도 ‘나’를 중심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이야.
자, 그럼 본격적인 식사 테이블로 출발. 강민철 레스토랑의 포인트는 눈부신 기물이야. 일단 샴페인 한 잔을 마시게 만드는 바카라(Baccarat) 크리스탈 글라스가 눈에 띄지. 바카라는 1764년 창립된 오랜 역사의 프랑스의 명품 크리스탈 브랜드로, 유리와 크리스탈 공예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명품이지. 투명하고 정교한 조각, 화려한 디자인, 반짝이는 광택이 아주 블링블링! 프랑스의 궁전, 특급 호텔과 레스토랑이 사랑하는 바카라는 샹들리에와 크리스탈 조각, 글라스 등으로 유명해. 묵직하고 조형적인 바카라 샴페인 글라스에 반짝이는 기포가 가득 들어차면 특별한 순간이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강민철 레스토랑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아뮤즈 부셰가 한 상 가득 깔려. 많은 레스토랑에서 가벼운 맞이 음식으로 입맛을 돋우기 위해 두세 가지의 한입 요리들을 내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아뮤즈 부셰의 역할이 굉장히 커. 시각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이곳에서의 경험을 한 코스로 요약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메인 이벤트 격이야.
아뮤즈 부셰(amuse bouche)의 본래 의미인, ‘입을 즐겁게 하다’에 충실하고자 이렇게 준비했다는 게 강솁의 설명. 식탁에 앉았을 때 맛으로나 멋으로나 미소를 짓게 만드는 무언가를 고민했다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바로 설득돼. 10가지 내외의 작은 요리들은 다양한 색감, 식감, 재료, 조리 기법으로 오감을 자극해. 기물도 베르나르도와 같은 프랑스 명품부터 셰프가 직접 한국 작가들과 만든 제작 작품까지 너무나 다채롭지! 천천히, 가이드를 따라 작은 요리를 즐겨 보자구.
다음으로는 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멜론 캐비아 스시! 이름만 들어도 흥미롭지? ‘거장’이라는 칭호에 손색이 없는, 채소의 마술사 알랭 파사르(Alain Passard)의 3스타 레스로랑 아르페쥬(L’Arpège)에서도 이렇게 채소 스시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강민철 셰프는 이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트 있게 풀어냈어. 채소 메뉴를 다양하게 선보이다 보면, 프렌치 셰프들도 다양하고 국제적인 조리 방법을 차용하며 자신만의 퀴진으로 승화시키게 되는 것 같아. 스시와 사찰음식 같은 것들은 프렌치 셰프들에게도 정말 큰 영향을 주고 있거든. 아무튼, 일단 그릇과 요리의 색감에 감탄이 나오더라고. 공룡의 눈 같기도 하고. 여기서는 정말 시각적인 즐거움에 큰 비중을 둘수록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야.
다음으로는 관자와 단호박 무스 요리야. 이번 글에서 하나하나 음식 설명은 조금 덜 하게 되는데, 사실 강민철 레스토랑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어. 요즘 서울의 스타 레스토랑이 3개월에 한 번씩 메뉴를 전체적으로 재구성해 선보이는 ‘계절 메뉴’를 채택하고 있는데 – 그러니까 1월 13일 요리와 2월 24일 요리가 거의 90% 이상 똑같은데 – 강민철 레스토랑은 거의 매일 상황에 따라 메뉴가 바뀌는 편이야. 그러니, 직접 방문한 날의 특별함을 기대해 봐.
다음으로는 멕시코의 히카마(jicama)가 다양한 허브들과 함께 구워져 나와. 히카마는 감자와 무의 중간 정도 되는 식감이랄까?
보여주고 다시 가져간 히카마는 다음 디쉬인 농어와 사바용 소스, 그리고 가쓰오부시에 살짝 절인 연어알과 함께 가니시로 작게 잘라 함께 서빙돼. 다양한 식감과 매번 달라지는 화려한 접시, 좋은 페어링의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
다음 요리는 ‘비빔밥’이야. 눈부신 황금 접시에 이렇게 올망졸망 귀여운 비빔밥이라니. 트러플까지 가득 올린 뒤, 정말 비빔밥을 먹듯 섞어 먹으면 돼. 클래식한 프랑스 와인들과도 참 잘 어울리더라고.
아삭하고 상큼하면서도, 직관적인 그릴 향이 살아있는 앤다이브와 전갱이 요리를 지나고, 쌈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클렌저가 나와. 클렌저는 보통 심플한 소르베 형태가 많은데, 채소 쌈을 싸 먹듯 손으로 이렇게 한 입 와앙! 먹는다니 아이디어가 재밌더라.
영리한 조명 덕분에 이렇게 테이블 가득 하트를 볼 수도 있는 사랑 가득한 공간.
그리고 닭과 새우의 만남이야. 새우를 닭고기로 말아낸 재미있는 요리. 먼저 전체를 보여준 뒤, 개별 디쉬에 플레이팅돼.
딸기 사이사이에 비트 슬라이스를 끼워 넣어 식감의 재미를 주고, 얇게 저민 채끝과 상큼한 비트 소스로 마무리한 요리. 맑고 화사한 브루고뉴 와인과 궁합이 좋아.
고소하게 구워 트러플을 올린 채끝 스테이크까지 맛보면 메인 요리는 끝나.
다음으로 나오는 디저트는 생각보다 심플한 편이야. 아뮤즈 부셰가 10종류가 깔리는 것으로 얼핏 미루어 짐작할 때 미냐르디즈(Mignardise; 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달고 작은 한입 다과들)도 30종 정도 나오지 않을까… 했지만 메인 디저트로 길고 긴 코스는 마무리!
강민철 레스토랑은 디저트 와인과 식후주 셀렉션이 아주 좋은 편이야. 꼬냑, 아르마냑, 위스키 등 다양한 디제스티프를 글라스로 즐길 수 있으니 마지막 한 잔으로 정점을 찍어 봐. 나는 꼬냑을 추천할게.
강민철 레스토랑의 다이닝 포인트
- 남자라면 나비 넥타이를, 여자라면 드레스를 꺼내 입어도 과하지 않은, 특별한 날의 바이브를 정말 잘 살릴 수 있는 레스토랑. 마음껏 드레스업 하고 다녀오길.
- 프랑스의 명품 식기 브랜드인 크리스토플, 바카라, 베르나르도, 그리고 한국의 장인들의 도자기 작품까지 눈부신 기물들이 굉장히 특징적이야. 여기서 쓰는 ‘식기 값’만 따져도 수백만원이 넘는 식탁 세팅이야. 이런 포인트를 마음 가득 즐기면 더 좋을 식사.
- 입에 딱 넣자마자 직관적으로 혀를 자극하는 요리라기보다는, 계절감과 재료 본연의 맛을 가벼운 터치로 매일 다채롭게 살려내는 쪽에 가까워. 그래서 좀 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요리도 많은 점 참고!
- 노윤수 소믈리에의 페어링은 클래식 프렌치 와인 애호가라면 눈여겨볼만해. 때로 사케나 한국 전통주, 람빅 맥주도 다양하게 포함하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클래식한 우아함이 있는 프렌치 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나처럼 브루고뉴나 샴페인 와인을 좋아하는 프렌치 애호가들에게는 너무나 좋더라!
강민철 레스토랑
-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68길 18 B1층
- 전화번호: 02-545-2511
- 영업시간: 일요일/월요일 휴무, 화-토 12:00-14:30, 18:00 – 22:00
- 런치 코스 18만 원
- 디너 코스 3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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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미쉐린 스타 도장깨기를 연재합니다. 셰프의 이야기를 전하고, 샴페인을 연료로 삼는 미식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