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예술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시간 예술과 공간 예술. 정해진 러닝타임이 있는 영화나 음악은 대표적인 시간을 다룬 예술이다. 반면 전시는 공간 예술이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갤러리에 가고 전시를 보는 이유는 그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공간 예술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놓칠 수 없게 만든다. 오늘은 조만간 부산을 여행한다면 한 번쯤 보면 좋은 전시가 있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볼 수 있는 전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4월 전시 <홈 스토리즈> 관람 이후 8개월 만에 방문이었다. 여행 중 전시를 꼭 챙겨본다는 친구들에게 내가 보였던 반응은 “맛집을 한 군데라도 더 가는 게 낫지 않니?”였는데, <홈 스토리즈>를 보며 ‘여행 중 전시’의 재미를 알았다. 마치 여행 중 ‘우연히’ 만난 <비포 선라이즈>의 연인이 ‘우연히’ 쇠라의 그림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재미랄까. 우연과 우연이 겹쳐 필연임을 깨닫게 되는 예측 불가능한 묘미가 전시에 있다.
그러니 부산을 방문하게 된다면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방문을 권한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은 수영구 망미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F1963에 있다. F1963에는 또한 국제 갤러리 부산점, 예스24, 복순도가, 테라로사가 있고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수준급의 요리를 선보이는 마이클 어반팜테이블이 있으니 기본 5시간은 너끈히 즐길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시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문장은 익숙할 거다. 많은 사람에게는 JTBC의 한 예능을 떠올리게 한다.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만든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Where is the Friend’s House?)라는 영화가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지민 큐레이터는 영화에서 전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영화는 한 아이가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단순한 이야기다. 쉽게 말해 로드무비. 하지만 대부분의 로드무비가 그렇듯, 영화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깨닫는다. 진정한 거주지에 대한 깨달음의 메시지를 얻는다. 전시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 역시 마찬가지다. 전시를 기획한 박지민 큐레이터는 진정한 쉘터란, 물리적인 쉘터에 아닌 타인과의 관계성에서 얻을 수 있는 정서적인 안정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제목을 가지고 왔다.
“왜 ‘나의 집’이 아니라 ‘내 친구의 집’입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큐레이터는 ‘공동체’라는 단어를 꺼냈다.
생각해 보면 집이라는 공간(전시에서는 ‘쉘터’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한다)은 개인이 느끼는 가장 안락한 공간이다. 그렇다면 나의 쉘터가 완벽히 보장되면, 모든 건 평화롭게 지속될까. 큐레이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의 안식처와 친구의 안식처는 결국엔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이 말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쉘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무겁고 철학적일 수 있으니까. 꼭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있는 그대로의 전시를 느끼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예술의 최종 목적이 관람객의 이해는 아니니까.
전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쉘터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쉘터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거주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는 쉘터의 이동, 확장, 관계로 파트를 구분하여 ‘진정한 쉘터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박지민 큐레이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보이지 않던 가치의 해상도를 높여주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큐레이터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건 관객의 몫이다. 예술의 몫은 질문이니까.
가장 먼저 만난 작품은 글로벌 사운드 아티스트 유리 스즈키(Yuri Suzuki)의 <히비키 트리(Hibiki Tree)>(2023). 처음 이 작품을 보며 들었던 느낌은 ‘사운드를 형상화한 것 같다’였다. 넓게 퍼지는 파동을 순간 캡처해서 시각화한 듯한 인상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커다란 관이 이어지고 사방으로 뻗친 모양이 역동적이면서도 고요하게 느껴졌다. 역동성과 고요함을 한 문장에 쓴 게 모순적이긴 하지만, 톤 다운된 색채, 크게 휘어 있는 자태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히비키 트리>는 자연의 고요한 소리와 주변 소리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줄기 하나하나의 끝, 봉우리 안에는 스피커가 조그맣게 설치되어 있고, 설치물 앞에 놓인 초록색 기둥에는 마이크가 달려 있다.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 각각의 줄기에서 방금 한 말이 송출되는데, 시간차를 두고 출력되기 때문에 수십 개의 메아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는 느낌이다. 작품에 사용된 다양한 컬러와 시간차를 둔 목소리를 통해 내가 느낀 건 ‘다양성’이었다. 같은 목소리, 시간차를 두고 가 닿는 목소리, 다른 색상들 하나하나가 다양성을 말하고 있었다. 소리라는 건 언제나 상대적이다. 나의 위치, 친구의 위치, 그리고 소리를 내는 화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크게 전달되기도, 왜곡되기도 한다. 하나로 출발한 내 목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각기 다른 곳으로 도착하는 게 소통의 상대성을 잘 보여주는 듯했다. 그게 아티스트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만든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처럼 전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참고로 마이크 기둥에는 위아래로 두 가지 마이크가 있는데, 아래쪽에 있는 건 아이용이라고 한다.
히비키 트리는 전시의 시작이다. 이외에도 리서치 기반 예술가, 사진가, 미디어 아티스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설치미술가 등 국내외 작가 총 12팀이 참여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파트 1에서는 리슨투더시티의 <집의 의미 그리고 을지로의 미래 시나리오>(2023)를 먼저 만나볼 수 있다. 전시의 전체 구성에서 이 작품을 왜 처음에 배치했을까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집’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물리적인 형태의 집이기 때문이다. 큐레이터 역시 거주지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형태의 집을 다루지 않을 수 없어서 파트 1에 이 작품을 배치했다고 한다. 니체는 자신의 철학을 설득하기 위해 먼저 작업한 건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룬 생각들을 망치를 들고 부순 일이다. 쉘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위해서는 기존에 갖고 있던 우리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거주 문제를 다룬 리슨투더시티가 첫 번째로 배치된 게 좋았다.
한국에서 집의 의미란 재테크 수단 즉, 부동산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상황을 마냥 탓할 수는 없다. ‘집=부동산’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러우며 현실적인 집의 의미가 아닐까. 리슨투더시티는 질문한다. 서울 시민에게 집의 의미란 무엇인지, 집이란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관람객은 창작자의 고민과 리서치한 자료를 통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창작자의 말에 동의가 되기도 할 것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몇 발자국 이동하면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와 빔프로젝터 화면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작품, 펠릭스 렌츠의 <정치적 기류>(2020)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쉘터는 ‘비행기’다. 현재 부산 근처에서 몇 대의 비행기가 운항 중인지, 고도는 몇인지를 알 수 있고, 심지어는 항공기 넘버를 통해 어떤 항공사의 비행기인지도 유추 가능하다(군용기는 정보가 뜨지 않는다). 이 작품은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정치적 상황이나 국제적 분쟁 등 다소 무거운 주제로 인해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단순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가벼운 이동성을 상기시키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생각해 보면 여행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는 여행지가 쉘터일 수 있다. 올여름 휴가를 위해 현실을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정서적 쉘터는 대한민국 도시가 아닌 괌이나 베를린 같은 해외 도시가 아닐까. 이 작품을 감상하면 쉘터라는 것이 고정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물론 여행이 다는 아니다. 지하철 덕분에, 자동차 덕분에 쉘터는 얼마든지 확장하고 이동할 수 있다. 모빌리티의 확장이 곧 쉘터의 이동을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근미래의 지구인에게 쉘터는 또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어쩌면, 화성도 우리의 쉘터가 될 수 있을까.
다음 작품은 오픈투베리어블스의 <연착륙>(2023)이다. 이곳에서는 한국 사회에 정착한 이주민 5인의 인터뷰를 볼 수 있는데 탈북민, 이주 노동자 등이 어떻게 한국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쉘터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이 빔프로젝터를 통해 상영된다. 이 작품에서는 쉘터를 공간에 국한하지 않고 사물로 개념을 확장하는 시도를 한다. 예를 들어, 사진, 음악, 책 같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쉘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의하지 않으면 정의될 것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justice’가 아니라 ‘define’. 쉘터가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라면, 나만의 쉘터가 무엇인지, 나는 언제 안정감을 느끼고,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연착륙>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쉘터가 있는 사람은 쉽게 좌절하지 않는구나. 단단하게 연착륙한 다섯 사람을 보며 나의 쉘터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빔프로젝터 반대편에서는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이름표가 붙은 설치물을 볼 수 있다. 컬러를 달리하여 영화를 구분해 놓았다. 노란색은 ‘국내 난민/이주민이 능동적 주체(감독/연출 등)로 직접 제작한 영화/드라마’를, 파란색은 ‘내국인 이주와 관련된 영화/드라마’, 빨간색은 한국인의 해외 이동 혹은 난민과 관련된 영화/드라마를 의미한다.
그 위로는 팝콘을 채워놓았는데, 자세히 보면 팝콘만 있는 게 아니라 강냉이도 있다. 팝콘과 강냉이는 동일한 작물 ‘옥수수’에서 왔다. 두 가지 간식이 섞여 있는 걸 보니, 같은 인간이면서 다른 세계로 편입되어 적응하는 이주민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AI로 예측한 연표가 있다. 가까이에서 상상 속 시나리오를 하나씩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멀리서 본 것도 좋았다. 검은색으로 마구 휘갈겨 낙서 된 듯 보이지만 사실 단순한 낙서가 아닌 강냉이와 팝콘이다. 다른 문화권의 상징하는 간식이 미래로 갈수록 하나로 섞이는 듯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강냉이와 팝콘이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확실히 구분될 정도로 달라 보인다. 하지만 2030년과 2070년 사이의 드로잉을 보면 두 가지는 하나처럼 섞여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결합해 있다. 작가는 이처럼 출생지, 인종, 민족을 구분하지 않는 시대를 그리고 있다. 희망적이다. 하지만 전 세계 어떤 나라의 상황을 봐도 강냉이와 팝콘이 쉽게 결합한 나라는 없다. 그러니 AI가 예측한 것처럼 쉽게 흘러가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고 옳다고 믿는 방향이 있다면 멈춰서는 안 되는 거겠지.
이제 파트 2로 넘어왔다. 파트2의 이름은 확장. 여기서는 고정된 거주지가 아닌 또 다른 의미로 발현되는 쉘터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만난 작품은 스튜디오 쉘터&기어이의 <이향정: 기억으로 만든 집>(2022)이다. 한국의 주거난 속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 작가는 과거의 공간을 떠올리며 집이란 기억을 담는 커다란 그릇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기억 속에 있는 소소한 가족 이야기가 작가의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이라 믿었다고 하는데, VR로 구현된 애니메이션을 통해 마치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간 듯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아버지 사진, 할아버지의 소품, 가족사진 등 소중한 한 가족의 소품을 구경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아키타입의 <아열대로부터>(2023)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사탕수수와 인간의 이동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선후 관계를 알 수는 없다. 환경 변화에 따라 경작지가 이동하는 것인지, 사람이 이동하면서 경작지가 이동하는 것인지. 분명한 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연과 공존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탕수수로 살펴보는 한국의 이주사. 몇 십 년 동안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한국인이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래픽으로, 지도로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그림 너머에서는 슬픈 한국사가 느껴졌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에 돈을 보태기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한국인의 삶 같은 것 말이다. 달콤함을 머금은 사탕수수를 따라 흘러간 한국사의 씁쓸한 아이러니다.
가장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 건 역시 귀여운 무언가다. 파트 2 마지막에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귀여운 작품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장명식 작가의 <복어되기>란 작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귀여운 무언가의 정체는 작가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젤리 인간이다. 작가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비정상적인 기후 현상, 해수면 상승 등 물과 관련한 작가의 근본적인 두려움을 ‘젤리 인간’이라는 캐릭터로 승화시켰다. 마치 복어처럼 누구의 도움 없이 내부 신체를 부풀려 물과 관련한 다양한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구사하는데, 통통한 자태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끔 만든다.
QR 코드를 통해 인스타그램 스토리 필터, AR 효과를 체험할 수 있으니 작품명처럼 ‘복어되기’를 해보며 파트 3로 넘어가자.
파트 3의 키워드는 관계다. 이동, 확장 그리고 관계. 관계라는 키워드를 보고 이번 전시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마지막에 배치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 큐레이터가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은 거였구나?’ 에세이의 마지막 문단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요즘 친구들을 만나며 행복을 결정짓는 궁극적인 조건이 관계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 관계는 단순히 연인 관계, 친구 관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나와 나의 관계, 나와 세상의 관계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 않는 것도 ‘관계’에 속하니까.
지금 소개하는 작품은 루시 맥래의 <압축 카펫 2.0>(2010)으로 일종의 ‘포옹 기계’다. 사람을 끌어 안으면 포근함, 안락함,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따스한 온기,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 숨소리는 그 자체로 위안을 준다. 작가는 인간의 포옹을 기계로 대체할 없을까 고민하며 이 기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실사용이 어렵지만, 실제 사용해 본 사람들에 따르면 불안이 완화되는 등의 효과가 있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아이러니한 건 이 기계를 작동하기 위해서는 나 이외에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것. 작가는 외부의 도움 없이 포옹 받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지만, 결국 그 기계를 작동시키는 데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 결국 인간은 관계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압도적인 풍경의 사진이다. 우포늪을 사랑한 사진작가 정봉채의 <UPOJBC130810>(2013). 멀리서 보면 어둠 속에서 연하게 빛이 나는데, 가까이서 보면 백로 떼다. 작가는 20년 동안 생태의 보고라고 불리는 우포늪에 거주하며 다양한 사진을 찍었지만, 이토록 백로 떼가 새벽에 가만히 모여 있는 건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직경 2m의 가시연잎 위에 모여 잠을 자는 백로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에는 달빛 외에 어떠한 조명도 사용되지 않았다. 우포늪이 정서적 쉘터가 된 정봉채 작가와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잠시 멈춘 백로의 관계성을 상상하며 사진을 감상해 보자. 세상에는 절대 파괴되어서는 안 될 쉘터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모든 작품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 위주로 소개했다. 작품에는 저마다의 미덕이 있으니 언급하지 않은 작품 중에서 인생 작품을 만나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시간이 되면 직접 보고 감상해 보면 좋겠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현대 블루 프라이즈’에 대해서도 관심이 어느 정도는 생겼을 거다. 현대 블루 프라이즈가 아니라면 이번 전시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현대 블루 프라이즈는 차세대 글로벌 큐레이터 양성을 위해 현대자동차가 기획한 어워드 프로그램이다. 휴머니티를 향한 진보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영감과 혁신 정신을 고취하고자 기획했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솔직히 말이 좀 어렵긴 하다. 쉽게 설명하면 박지민 큐레이터의 말처럼 “보이지 않던 가치의 해상도를 높여주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고, 그런 큐레이터들을 양성해서 동시대의 해상도를 높여나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현대 블루 프라이즈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난번 <홈 스토리즈> 때문에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 방문했을 때도 현대자동차의 행보에 놀랐는데, 이번에는 큐레이터를 꾸준히 양성해 오고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가장 처음 봤던 작품 <히비키 트리>처럼 다양한 목소리를 넓게 퍼뜨리는 게 현대자동차가 하고 있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예술이 할 수 있는 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답은 연구를 하는 학자의 영역, 정치의 영역, 궁극적으로는 모든 개인의 영역이 아닐까. 물리적 개념으로만 한정 지었던 쉘터의 의미를 확장해서 ‘나에게 쉘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였다. ‘나만의 쉘터’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박지민 큐레이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국 우리가 영원히 머물게 될 곳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시간은 1초도 멈추지 않고 흘러갈 텐데, 절대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마모되거나 풍화되지 않는 ‘나만의 쉘터’는 무엇일까, 내게 그런 게 있을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기간: 2023년 12월 8일 – 2024년 6월 16일
장소: 부산 수영구 구락로 123번길 30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관람료: 무료
*이 글에는 현대자동차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