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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마트 워치를 싫어하는 이유

그렇게 반짝거리던 메시지 중 중요한 연락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렇게 반짝거리던 메시지 중 중요한 연락은 단 한 건도 없었다

2023. 12. 13

intro

당신에게는 스마트 워치가 필요한가요? 손목 위를 차지한 이 작은 전자제품에 대해 존재론적 논쟁을 벌여보았습니다. 테크 리뷰어인 ‘디에디트’의 하경화 에디터는 스마트 워치를 사랑한다고 외쳤고,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인 ‘더파크’의 정우성 에디터는 스마트 워치는 끔찍하다며 손사레를 쳤습니다. 그야말로 사랑과 전쟁. 두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어볼까요?  ✒️
ⓒhyper.pension

미국 10대들은 한 가지 일에 6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10대라서 그럴 거라고? 직장인들의 평균 집중시간은 단 3분이다. 미국이라서 그럴 거라고? 한국도 다르지 않다. 인간의 집중력은 형편없이 정복되었다. 완벽한 식민지 상태다. 점령군은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각종 푸시 알림,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중요한 척 하는 이메일, 카톡, 페메, 디엠, 심지어 좋아요 알림 때문이다. 

이미 10년 전부터 알림에 지쳐 있었다. 일할 땐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았다. 혹은 시야 밖에 두었다. 원고를 쓰다가 불빛만 반짝여도 멈춰야 했으니까. 아무 것도 아닌 거 알지만 궁금하긴 하잖아? 집중력이라는 게 그렇게 연약하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 문장을 달리다가 반짝, 확인하느라 한 번 멈추면 메시지만 보는 게 아니었다. 인스타, 페북, 유튜브까지 괜히 한 바퀴 돌아봤다. 다시 집중력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시 한참이었다. 스마트폰과 함께한지 어언 15년. 그렇게 반짝거리던 각종 메시지 중 일의 흐름을 끊을 정도로 중요한 연락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스마트폰의 연장에 불과한 도구를 손목 위에 하나 더 얹는다고? 끔찍하다. 도둑을 내쫓는 것도 모자라 초대장을 보내는 격. 손목 위에서 놀아보라고 파티를 열어주는 일에 불과하다. 심지어 요가원에서도 스마트 워치를 풀지 못하는 도반들을 여럿 본 적 있었다. 하긴 스마트 워치가 똑똑하긴 하지. 빈야사 플로우를 타다 보면 알림을 보내줬다. 수련을 마치면 소모한 칼로리를 예쁜 픽토그램과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달리면 달리냐고, 산책할 땐 걷는 중이냐는 알림을 보내줬다. 편리하지. 신기하고. 

그런데 그게 전부 아닌가. 내가 소모한 칼로리를 꼭 알아야 해? 오늘 섭취한 칼로리에서 러닝으로 소모한 칼로리를 빼면 ‘아, 오늘은 어제보다 살이 덜 쪘구나’ 안심할 수 있나? 2009년, 아이폰을 처음 쓰면서 가장 신기했던 앱 중 하나가 ‘슬립 사이클’이었다. 침대 위에 엎어놓고 자면 수면 패턴을 분석해주는 식. 이튿날에는 수면의 질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몸이 피곤한 날은 데이터도 엉망이었다. 개운한 날은 그래프도 깔끔했지. 일주일 쓰고 ‘와, 신기하네’ 감탄하곤 지워버렸다. 필요 없잖아. 몸이 아는 걸 데이터로 환산해 그래프로 알려주는 기능 같은 건. 진짜 중요한 건 좋은 잠에 들도록 생활 패턴을 조율하려는 의지였다. 데이터의 시각화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일상의 데이터를 시각화 하는 일이 너무 쉬워진 다음부터, AI와 알고리즘과 빅데이터에 환장한 것 같은 세상에선 하나 정도 모르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보단 요가 수련 중 매트 위에 흘린 땀, 내 몸에 남아있는 열기, 이완된 근육과 근막들을 집중해 느끼는 편의 성취도가 만 배는 더 컸다. 각종 소셜 미디어 알림들은 (카톡 알림 정도만 무음으로 켜두고) 모조리 죽여두었다. 원고를 쓰거나 영상을 촬영하거나 편집할 땐 그마저도 엎어두고 쉴 때만 확인한 후 한꺼번에 답장한다. 집중력과 통제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마트 워치를 팔아버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스마트폰 하나도 엎어 놓는데 시시각각 반짝거리는 디스플레이를 손목 위에 하나 더 얹는 이유를 도무지 못 찾겠어서. 하지만 시간은 확인해야 하니까 아날로그 시계만을 얹어 둔다.

“요즘 누가 시간을 시계로 봐요? 스마트폰 시계나 스마트 워치보다 정확한 아날로그 시계 같은 거 존재하지 않잖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 정도로 정확하지는 않아도 괜찮다. 아날로그 시계의 오차 때문에 1, 2분 정도 약속에 늦을 게 걱정이라면 10분 먼저 출발하는 사람이 되는 편이 나으니까. 그건 시계가 아니라 게으름을 탓 할 문제라서. 이해할 수 없다. 일상을 계측하듯 정확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스마트 워치의 그 번잡한 알림들에 자기 집중력과 통제력을 위탁하는 태도 같은 것. 

마지막 보루라면 아마 미학점 관점 정도일까? 다른 건 몰라도 애플워치는 예쁘니까. 그 자체로 훌륭한 공산품인 데다 스킨을 커스터마이징 하는 기쁨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개인화야 말로 스마트 디바이스의 가장 큰 장점이고.

하지만 기계적 완성도와 미학적 아름다움이야말로 그 어떤 공산품도 따라올 수 없는, 아날로그 시계만의 순정한 기쁨일 것이다. 브랜드의 역사, 시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분투해온 의지와 기술, 그 와중에 남들보다 귀한 시계를 손목에 얹기 위해 럭셔리를 추종하는 쾌감 같은 것. 그 흔한 스마트의 세계에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은 언어와 취향의 성벽 앞에, 끝을 알 수 없는 인문학의 세계가 아날로그 시계의 근위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스마트 워치를 내 손목 위에 올릴 일은 없을 것 같다. 과거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효율이 중요하니까. 일상의 집중력과 통제력을 지키기 위해. 그래야 원고 한 줄, 영상 한 편, 책 한 권이라도 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학, 인문학, 럭셔리 같은 단어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이야기와 재미야말로 은밀하며 대체 불가능하기까지 한 나만의 취미이고. 

내가 스마트 워치를 사랑하는 이유

About Author
정우성

시간이 소중한 우리를 위한 취향 공동체 '더파크' 대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고전음악과 일렉트로니카, 나무를 좋아합니다. 요가 에세이 '단정한 실패'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