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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술 온다, 메스칼

메스칼은 현시점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술이다
메스칼은 현시점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술이다

2023. 10. 11

더 이상 새로운 게 없을 것 같은 국내 주류 신에 낯선 이름이 들리기 시작했다. 메스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면, 곧 듣게 될 것이다.

메스칼은 현시점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술이다. 올해 미국에서는 미국산 위스키보다 메스칼과 데킬라가 더 많이 팔릴 거라고 전망한다. 나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주류인 보드카의 판매량도 가뿐히 뛰어넘을 예정이라고. 개인 소비자가 마트나 보틀 숍에서 메스칼을 구매하는 경우도 늘지만, 바 신에서 칵테일을 제조할 때 기주로 메스칼을 선택하는 경향이 대폭 늘었다. 메스칼을 이용해 새로운 칵테일을 창작하는 차원을 넘어 기존의 클래식 칵테일의 기주를 메스칼로 갈아치우고 있다. 일례로 올해 ‘월드 베스트 바 50’에 17위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등극한 홍콩의 ‘코아(Coa)’는 메스칼을 중심으로 멕시코 아가베 증류주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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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킬라면 모를까, 메스칼은 영 낯설다. 사실 메스칼은 멕시코에서 아가베로 만드는 증류주를 총칭하는 단어다(지금은 지리적 표시제의 도입으로 범주가 다소 좁혀졌지만!). 한편, 데킬라는 메스칼 중에서 할리스코 주에서 ‘블루아가베’라는 단일 품종의 아가베로 만든 것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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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와 코냑, 스파클링와인과 샴페인의 관계를 대입하면 이해가 빠르다. 스파클링와인이 탄산 있는 와인을 총칭한다면, 샴페인 프랑스 샹파뉴 주에서 정통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와인을 좁혀 가리킨다. 샴페인 덕에 스파클링와인을 처음 알았더라도 와인 애호가라면 크레망, 프로세코, 카바, 스푸만테, 젝트 등 다른 지역에서 만든 스파클링와인 또한 충분히 알고 즐긴다. 브랜디와 코냑은 국내에서 와인만큼 대중적이진 않지만, 코냑 외에 칼바도스, 아르마냑, 그라파 등 과실주를 증류한 술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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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멕시코의 아가베 증류주만큼은 데킬라를 제외하곤 아는 게 없다. 그 이유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몇몇 데킬라 브랜드가 자본력을 앞세워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우리의 눈과 코, 입을 가렸기 때문.

‘마드레 메스칼’을 국내에 소개하는 프로세스프랙티스 대표 데이비드 진호 윈은 데칼라를 ‘진로 소주’에 빗대어 설명한다.

“진로 소주가 소주에 속하지만, 다른 증류식 소주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 없이 대량 생산에만 초점을 맞춰 생산하듯, 데킬라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멕시코 사람들이 아가베로 증류주를 만들 때 취한 전통 방식을 깡그리 무시한 채 모든 걸 공장화, 시설화하여 개성이 떨어지고 자연적인 특성이 낮은 술을 만듭니다.”

윈 대표는 만드는 방식의 차이만큼 사람들이 이 둘을 즐기는 태도 또한 현저히 다르다고 귀띔한다.

“데킬라는 원샷하는 술이라면, 메스칼은 아름다운 특징을 지닌 차를 즐기거나 매력적인 누군가와 키스하듯 입술을 천천히 적시며 음미하는 술입니다.”

시드니에서 메스칼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김바로미 씨는 메스칼 바에 가면 사람들이 먼저 메스칼 책을 펼친다고 한다. 그 속에서 원하는 술을 고른 후 책에 서술된 지역과 생산자, 아가베 종, 제조 방식 등을 찬찬히 곱씹으며 메스칼을 샷으로 조금씩 들이마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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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32개 주로 이뤄져 있다. 데킬라는 그중 할리스코 주에서만 생산한다. 그것도 단일 품종 아가베로. 블루아가베의 수액은 당도가 높아 술을 만드는 데 용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멕시코에는 160여 종의 아가베가 있으며, 그중 50여 종이 메스칼의 원료로 활용된다.

앞서 설명했듯 원래 메스칼은 멕시코에서 아가베로 만드는 증류주를 총칭했지만, 1994년 지리적 표시제가 적용되며 현재는 9개 주에서 생산하는 술에만 메스칼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문제는 9개 주 중 오악사카 주에서 생산하는 메스칼이 총량의 90%를 차지한다는 사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이 ‘에스파딘’이라는 단일 품종의 아가베를 활용한다. 멕시코 남부에 위치한 오악사카 주는 아가베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에스파딘은 블루아가베 못지않게 당도가 높아 술을 생산하기 적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량이 편중돼서야 애초에 메스칼이 부흥한 이유, 즉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자는 취지가 무색해질지 모른다. 위기감을 느낀 많은 메스칼 관계자들이 오악사카 주의 에스파딘 메스칼을 시작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생산자가 야생 종의 아가베로 만든 메스칼을 발굴하고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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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칼을 고를 때 우선해야 할 기준은 어느 주에서 어떤 아가베로 만들었는지다. 오악사카 주에서 에스파딘으로 만든 메스칼이라고 실망할 필요 없다. 메스칼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한들, 우리에게는 충분히 새롭다. 또, 같은 주에서 같은 재료로 만들었더라도 테루아에 따라 아가베의 풍미가 다르며, 생산 방식에 따라 맛이 확확 달라진다.

메스칼은 생산 방식에 따라 크게 ‘앤세스트럴(Ancestral)’과 ‘아티즈널(Artsanal)’로 나뉜다. 기본적으로 메스칼 만드는 과정은 시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노동집약적이다. 수확한 아가베에서 수액이 든 피냐를 칼로 도려낸 후 흙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깔아 불을 지핀다. 그 위에 돌을 깔고 피냐를 들이부운 후 돌과 흙으로 덮어 수일간 굽는다. 그러면 달궈진 돌에서 전달된 열과 구덩이에 가득 찬 연기가 피냐의 껍질을 서서히 파고든다. 대부분의 메스칼이 매캐한 훈연 향과 숲, 흙의 뉘앙스를 품고 있는 이유다. 그 후 피냐를 나무망치로 내리치거나 말을 이용한 연자방아로 으깨 수액을 채취하고 물과 섞어 자연 발효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 후 증류하면 비로소 메스칼이 탄생한다.

이때 앤세스트럴로 인정받으려면 증류할 때 피냐의 섬유질이 포함돼야 하며, 소주고리를 닮은 옹기에 장작불을 피워 옛 방식대로 증류해야 한다. 한편, 전통에 현대 기술을 살짝 가미한 아티즈널은 추구하는 풍미에 따라 구덩이 대신 오븐을 이용해 피냐를 굽고, 토기 대신 구리 증류기를 활용한다. 메스칼 만드는 과정을 안 이상 이 노동집약의 결정체 같은 술을 한 방에 털어넣을 대인배는 없을 것. 동시에 이토록 술을 집요하게 만들어온 사람 입장에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데킬라만 아는 세상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지금이라도 그 가치를 발견하고 다양한 생산자와 이야기가 깃든 메스칼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럼 국내에 발 빠르게 들어온 메스칼 중 충분히 음미할 만한 브랜드를 알아보자.


[1]
마드레 Mad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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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레이블로 시선을 잡아끄는 ‘마드레’. 열에 아홉은 백 바(Back Bar)에 진열된 마드레 보틀에 관심을 보일 정도. L.A.에서 시작된 마드레는 오악사카 주에 위치한 가족 중심의 소규모 증류소와 협업해 세 개의 메스칼을 선보인다. 검은색 레이블의 ‘에스파딘(Espadin)’은 이름 그대로 에스파딘 100%로 만든 술. 전통 방식대로 피냐를 구덩이에서 로스팅해 흙과 숲의 뉘앙스와 매캐한 훈연 향이 도드라진다. 거기에 당도 높은 에스파딘의 단향이 살짝 감도는 것이 샷으로 천천히 음미하기에 적당하다. 붉은색 레이블의 ‘앙상블(Ensamble)’은 에스파딘에 희귀한 야생 종 아가베인 퀴세(Cuishe)를 블렌딩한 메스칼. 최소 9년 이상 자라야 수확이 가능한 쿠세는 에스파딘 메스칼에 세이지를 연상시키는 허브 향, 꽃향, 단향, 미네랄감 등 다채로운 레이어를 덧입히며 훨씬 더 섬세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자아낸다. 만약, 메스칼을 샷으로 마셔본 적이 없다면, 첫 경험 상대로 마드레 앙상블만큼 훌륭한 술이 없다. 오는 11월 국내 런칭할 예정인 ‘엔세스트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대 방식 그대로 만든 술이다. 옹기로 증류해 스몰 배치로 생산하는 이 술에서는 묵직한 바디감과 실키한 텍스처를 기대할 수 있다.


[2]
데룸베스 Derrum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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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티어에 속하는 메스칼 브랜드 중 드물게 멕시코 자본에 의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데룸베스’. 메스칼의 다양성을 소개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국내에도 이미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생산자가 각자 선호하는 아가베와 방식으로 만든 메스칼 4종을 동시에 출시했다. 만약 다양성 측면에서 메스칼을 경험하고 싶다면, 데룸베스 4종을 테이스팅하기를 가장 추천하고 싶다. 오악사카 주에서 에스파딘으로 만든 ‘오악사카’가 기본템으로 존재한다면, 나머지 3종은 전혀 다른 풍미와 개성을 드러낸다. 미초아칸 주의 야생 종으로 만든 ‘미초아칸’은 아일레이 위스키의 피트함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운맛이 강렬하다. 두랑고 주의 야생 종으로 만든 ‘두랑고’는 훈연 향보다 오히려 요구르트, 치즈 등과 같은 젖산 발효취가 두드러진다. 피냐를 구덩이에서 로스팅한 만큼 쿰쿰함에 땅의 뉘앙스, 훈연 향이 더해져 버섯의 뉘앙스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수풀이 거의 없는 사막 지역으로 구덩이 대신 돌로 만든 오븐에서 피냐를 구워내는 산루이스포도시 주의 ‘산루이스포도시’는 훈연 향이 없는 것이 특징. 잘 구워낸 아가베의 포근한 단향과 미네랄감, 허브 향이 조화로워 초심자가 마시기에도 적합하다. ‘메스칼’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다양한 풍미의 술이 존재하는지 잘 보여주는 브랜드다.


[3]
시에테 미스테리오스 Siete Miste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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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얼굴이 위트 있게 그려진 레이블이 인상적인 ‘시에테 미스테리오스’. 메스칼에 심취한 멕시코 원주민 형제가 수년간 오악사카 주를 여행하며 장인을 만나고 다양한 가양주를 맛본 끝에 탄생한 브랜드다. 오악사카 주 안에서만 생산하는 대신, 에스파딘 아가베에 지역의 다른 야생 종을 섞거나 만드는 방식에 변주를 주어 제품을 다양화했다. 제품 중에는 100% 전통 방식을 따른 ‘앤세스트럴’ 라인도 있다. 시에테 미스테리오스는 이번 가을 국내에 ‘도바예’ 제품을 출시할 준비를 끝냈다. ‘도바예(Doba Yej)’는 오악사카 주에 살았던 원주민인 사포텍족의 언어로 에스파딘 아가베를 뜻한다. 구덩이를 파서 피냐를 로스팅하고 자연 발효를 거쳐 2회 이상 증류한다. 충분히 영근 에스파딘 아가베만 고집해 매캐한 훈연 향에 신선한 자몽, 구운 레몬의 시트러스 노트, 허브 향 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 도바예 레이블에는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공을 세운 세 명의 영웅이 그려져 있다. 이달고 신부, 모렐로스 신부, 오르티스 부인 중 국내에는 오르티스 부인의 얼굴이 그려진 레이블이 들어올 예정이다.

About Author
이주연

미식 기자 겸 ‘시네밋터블(cinemeetable)’ 운영자. 쓰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쓰는 숙명에 충실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