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내가 믿던 것들이 진실의 정반대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다. 어릴 적 우리 엄마가 내가 제일 예쁘댔는데 유치원 들어가보니 아니었을 때. 고기를 먹어서 살이 찌는 건줄 알았는데, 밥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걸 알았을 때. 그리고 지성 피부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악건성이었을 때.
얼굴에 기름기 흐르던 시절은 찰나의 젊음과 같았다. 이제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건조함과 싸운다. 화장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얼굴에 크림을 덧바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후가 되면 아침에 바른 수분 크림이 힘을 잃는다. 건조함이 심할 땐 눈가에 불길함이 느껴진다. 얇은 피부 사이 사이로 주름이 갈라지는 불길함 말이다.
요즘 가방에 넣어다니는 작은 제품을 소개한다. 자오 브랜드(JAO BRAND)의 씨드 페이스 오일과 립밤이다.
포르투갈의 전통 타일 장식인 ‘아줄레주’를 연상케 하는 푸른색의 레트로풍 패키지다. 유럽 감성이 물씬 풍기지만 미국 브랜드라고. 자오 브랜드는 화학자인 아버지와 건조한 피부의 해결책을 찾으려던 딸이 함께 개발한 화장품이다. 화학첨가물은 모두 배제하고 100% 천연재료 만으로 만든 것이 특징. 가장 유명한 제품은 고이 오일. 오일인데도 흐르지 않고, 어디든 바를 수 있으며, 가볍게 스미는 것으로 유명하다. 순한 재료와 훌륭한 보습 효과 덕에 이 작은 브랜드는 입소문을 타고 핫한 천연화장품 브랜드로 떠올랐다.
내가 산 것은 휴대용 페이스 오일. 단단한 제형의 고이 오일과는 달리 액체형 오일이다. 롤링볼 형태라 쉽고 깔끔하게 바를 수 있다. 온갖 천연 성분과 호호바오일, 쉐어버터가 들어갔다고.
천연화장품이 그러하듯 화려하고 향긋한 향은 없다. 은은하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 사람 살내음처럼 자연스럽다. 취향에 따라 조금 투박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눈밑에 대고 롤링볼을 돌리면 소량의 오일이 피부에 묻는다. 가벼운 쿨링 효과가 있어 기분이 좋다. 아주 빠르게 스며든다. 보통 페이스 오일은 번들번들한 느낌 때문에 자기 전에나 바르는데, 아침에 발라도 산뜻하다. 화장 하기 전에 발라도 특별히 기름지다는 느낌이 없다.
피부에 아주 얇은 보호막을 만드는 것처럼 은근하게 발린다. 수시로 건조해지는 입가와 눈가에 굴려준다. 작아서 갖고 다니기도 편하다.
남자분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많은 한국 남자들이 끈적한 사용감의 화장품에 치를 떤다. 보습 효과가 희박한 올인원 제품을 쥐똥만큼 바르는 걸 여러번 목격했다. 그러면 푸석해지는 거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도 옷태를 망치지 않을 사이즈니, 들고 다니면서 건조한 부위에 가끔 롤링해주시길. 면도 후 각질이 일어나는 턱 부위에 가볍게 롤링하면 참 좋다.
함정은 용량 대비 사악한 가격. 천연 화장품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페이스 오일의 종이 패키지는 면봉을 넣어다니는 용도로 재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패키지에도 이 얘기가 써있다. 나는 약통으로 쓰고 있다. 몇 가지 영양제를 담아 다닌다.
립밤은 덤으로 샀다. 원래 립덕(립스틱 덕후의 준말이다)이라 틴트와 제형별 립스틱을 네 다섯 개씩 들고 다니는데, 입술이 사정없이 텄을 땐 다 소용없더라.
오일밤 형태의 립자오는 꼭 딱풀처럼 생겼다. 입술에 대고 슥슥 문질러본다. 가볍게 입술에 녹아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무겁게 발린다.
바르고 나면 입술에 화-한 느낌이 든다. 박하사탕처럼. 보습효과는 훌륭하다. 다만 향이 조금 거북하다. 강하진 않은데, 천연 화장품 특유의 쿰쿰한 향이 입술에서 올라온다. 서너번 문질러서 듬뿍 바르고 조금 지나면 입술 각질이 즉각 진정된다. 오일에 각질이 녹아드는 느낌. 화장 전에 미리 발라두면 좋다.
좋은 재료로 만든 제품들은 은근해서 좋다.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며, 다정하다. 지금도 눈 밑에 페이스 오일의 롤링볼을 굴리며 글을 쓰고 있다. 촉촉해져라, 촉촉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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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