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내 방 구경할래?

어머니는 말하셨지, 세상의 모든 혼란은 네 방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이상할 만큼 정리정돈에 소질이 없다. 내 시선과 손이 닿는 곳마다 무질서가...
어머니는 말하셨지, 세상의 모든 혼란은 네 방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이상할 만큼 정리정돈에…

2017. 03. 15

어머니는 말하셨지, 세상의 모든 혼란은 네 방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이상할 만큼 정리정돈에 소질이 없다. 내 시선과 손이 닿는 곳마다 무질서가 꽃피어난다. 모르겠다. 청소는 너무 어렵다. 나는 왜 그럴까?

steve-jobs

한 장의 사진으로 나의 어지러움을 정당화해보자. ‘스티브 잡스의 책상’을 찍은 이 사진은 어지러운 책상이 그의 천재성을 대변한다는 유언비어를 몰고 다닌다.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천재의 책상은 더러울 수 있지만, 책상이 더럽다고 천재는 아니라는 점. 그리고 사실 저 정도면 그렇게 더럽지 않잖아? 내가 보기에만 그래요?

우리 어머니의 명언을 하나 더 언급해보자. “청소란 버리는 것이다. 네 방에 있는 것을 모두 버려도 삶에 지장이 없다.” 옳은 말씀이다. 암, 그렇고말고. 끄덕 끄덕. 겨우내 책상이 추울까봐 온갖 물건이 두텁게 쌓였다. 상쾌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간만에 청소가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실로 오랜만에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뭘 버렸냐고? 아니, 뭘 또 샀다. 하하하.

Processed with VSCO with a6 preset

내 방에는 수많은 케이블이 담쟁이넝쿨처럼 얽혀있다. 선을 하나하나 더듬어 끝을 확인해보면 모두 이름이 다르다. 너는 라이트닝, 너는 타입C, 너는 마이크로 USB. 충전해야 할 물건은 너무 많은데 각각 다른 젠더를 원하니 혼돈하다, 혼돈해. 그래서 그중 하나라도 합쳐보기로 했다. 핑계가 길었지?

Processed with VSCO with a6 preset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연료가 앵꼬난 아이폰과 애플워치를 충전기에 물리는 것. 애플워치 충전 거치대는 책상 위에 있고, 아이폰 충전기는 베개맡에 있다.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그래서 짝꿍인 두 개의 제품을 함께 거치할 수 있는 충전독을 들여놨다. 벨킨의 애플워치와 아이폰 겸용 파워하우스 충전 독. 파워하우스라니. 직관적인 네이밍이다. 두 마리(?)가 함께 사는 전력 넘치는 파워하우스인 것.

Processed with VSCO with a6 preset

묵직한 충전 독을 박스에서 꺼낸다. 아이폰용 라이트닝 커넥터가 솟아있고, 오른쪽엔 애플워치용 마그네틱 충전 모듈이 있다. 동시에 두 개의 제품을 충전할 수 있지만 선은 딱 하나. 깔끔하다. 거치한 상태에선 케이블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아름답다.

Processed with VSCO with a6 preset

충전 독 뒷면엔 돌리고 싶게 생긴 다이얼이 있다. 무엇일까. 또르르, 또르르 돌려본다.

Processed with VSCO with a6 preset

다이얼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앞면의 라이트닝 커넥터가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이런 기능이 숨어 있었다니! 부피가 큰 케이스를 씌운 상태에서도 쉽게 충전독에 연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거의 모든 종류의 아이폰 케이스와 호환될 수 있을 정도다. 난 아이폰7 플러스에 아주 요란한 케이스를 씌워서 쓰는 중이다. 커넥터를 조금 위로 올려 조정하니 충전 독에 꽂을 때 편하더라.

Processed with VSCO with a6 preset

제품을 거치한 모습도 예쁘다. 성공한 앱등이의 책상처럼 보인다. 만족스럽다. 올블랙이었으면 아이폰7 블랙컬러와 매치가 더 좋았을텐데. 아쉬운 점을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애플워치의 거치대 높이가 조금만 더 높았으면 완벽하겠다. 스포츠 밴드는 다른 밴드보다 길어서 채운 상태로 거치하지 않으면 책상에 닿는다.

Processed with VSCO with a6 preset

본래 오랫동안 써왔던 슈피겐 거치대와 비교해보자. 원래 쓰던 애플워치 거치대는 정품 충전 케이블을 결합해 사용하는 방식이라 케이블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게다가 너무 가벼워서 책상 위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정신이 없었다. 가격이 훨씬 비싸져서인지 새 충전독은 묵직하고 고급스럽게 내 마음을 채워준다. 가격은 오픈마켓에서 11만 원 정도다.

newroom_124

이 사진을 예쁘게 찍고 싶어서 간만에 책상 정리를 했다. 정리라고 해봐야 한번 닦고, 무너져 있던 화장품을 한 곳으로 밀고 일으켜 세운 게 다지만 한결 말끔해 보인다.

충전독에 애플워치를 거는 건 하루를 끝마치는 의식과도 같다. 어쩐지 기분이 좋다. 청소는 새로운 충전 독을 살 핑계가 되어줬고, 충전 독은 청소할 동기가 되어줬으니 오늘도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게 아닌가.

Processed with VSCO with a6 preset

막짤은 햇살이 쏟아지던 주말 오후 내 방 책상의 가식적인 모습. 2017년 3월 한정판. 이제 곧 난장판 예정. 다음 청소할 땐 뭘 사야 하나.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