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이볼이 있어 여름이 즐거운 글렌이다. 더위에 지쳐 찾은 바에서 첫 잔으로 시원하게 들이키는 하이볼의 맛이란! 등골 오싹해지는 이 맛이, 요즘 같은 날에는 특히 당긴다. 정말이지 혼자만 알기엔 아까운 매력인데 최근 들어 하이볼 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주변에서 쉽게 하이볼을 접할 수 있어 기쁘다. 개인적으로는 하이볼 맛있게 만드는 법을 물어오는 지인들이 있기도 한데, 그럴 때면 ‘어떤 스타일의 하이볼을 좋아하는지’ 되물어 보곤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각양각색이다. 탄산수가 들어간 심플한 스타일부터, 레몬을 곁들인 상큼하고 달달한 스타일, 얼마 전 이자카야에서 마신 유자 사케 하이볼이 좋았다는 대답까지 이쯤이면 이렇게 다양한 음료를 다 같은 ‘하이볼’이라 불러도 될까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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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의 정의
누구나 아는 친숙한 하이볼이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위스키 앤 소다, 그러니까 위스키와 다른 맛이 첨가되지 않은 플레인 탄산수를 섞어서 만든 것을 뜻한다. 이렇게 만든 하이볼은 위스키의 풍미가 잘 느껴지면서 슴슴한 맛이 매력이다. 만약 ‘전에 마신 하이볼은 달달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 십중팔구 탄산수 대신에 당이 첨가된 토닉워터나 진저에일을 넣었을 거다. 술의 쓴맛도 중화되고 달콤해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스타일이다. 여기에 레몬, 라임 등 상큼한 과일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다. 과일 껍질에서 나오는 오일만 가볍게 뿌리기도 하고, 아예 과육의 즙을 짜서 넣어 새콤달콤한 풍미를 내기도 한다. 베이스가 되는 술도 위스키뿐만 아니라 브랜디 등 다른 증류주가 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전통주나 사케, 고량주로 만든 것에도 모두 하이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그래서 하이볼이란 무엇인가 하면, 넓은 의미에서 베이스가 되는 고도수의 술에 탄산음료를 탄 것은 모두 하이볼이라 부른다. 그리고 레몬, 라임 등의 시트러스한 과일이 가니쉬로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토닉, 잭콕 등도 모두 하이볼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칵테일들은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어 일반적으로 하이볼이라고 불리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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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하이볼을 위한 다섯 가지 체크리스트
술에 탄산음료만 타면 모두 하이볼이라니, 이렇게 간단한 레시피 덕에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위스키를 조금 따르고, 나머지를 탄산수로 채워주고, 기호에 따라 레몬이나 라임을 첨가하면 끝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하이볼이 바에서 마신 것에 비해 어딘가 아쉬운 맛이라면, 더 나아가 취향에 맞는 나만의 하이볼을 만들고 싶다면 아래에 주목해 보자. 당신의 하이볼에 디테일을 더해줄 다섯 가지 체크리스트다.
1. 잔
모든 칵테일 제조는 잔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형태와 용량의 잔을 사용할지에 따라 넣어야 하는 재료의 양이 달라지기도 하고, 맛에도 영향을 준다. 하이볼에 사용할 잔은 정해져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폭이 좁고 목이 긴 유리잔을 사용하면 된다. 이 글라스의 이름이 바로 ‘하이볼 글라스(Highball Glass)’다. 이름부터 하이볼을 위한 잔에, 구하기 어렵지도 않으니 굳이 이 잔을 놔두고 다른 걸 사용할 이유가 없다.
[왼쪽이 하이볼 글라스, 오른쪽이 올드패션드 글라스]
폭이 넓고 목이 짧은 이른바 올드패션드 글라스(Old-Fashioned Glass) 혹은 온더락 글라스(On the Rocks Glass)라고 부르는 잔은 피하는 게 좋다. 공기와 닿는 표면적이 넓어 탄산이 빨리 빠져나간다. 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잔의 용량도 체크해 보자. 300ml 내외 정도면 적당한데, 이보다 너무 작거나 크다면 하이볼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2. 얼음
다음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은 얼음이다. 칵테일에서 얼음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칵테일에 쓰기 좋은 얼음은 단단하고 천천히 녹아 음료를 너무 빨리 희석시키지 않고, 투명해서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은 얼음이다.
일반적인 가정용 냉장고 냉동실에서 얼린 얼음은 아쉽게도 이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일단 하얗게 성에가 껴 불투명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영하 15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급하게 얼려 얼음이 단단하지 않아 금방 녹는다. 거기에 냉동실의 음식 냄새까지 밴다면? 시큼한 맛 나는 하이볼이라면 정중히 거절하고 싶다.
그래서 정답은 판매용 얼음이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1kg, 2.5kg 정도 용량의 봉지 얼음을 구할 수 있고, 쿠팡에서 배달도 된다. 보기만 해도 청량한 기분이 드는 투명함이 음료의 풍미를 올려주고, 직접 얼리지 않아도 되는 간편함까지, 작은 투자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집에서도 투명하고 표면적이 작아 천천히 녹는다는 구형의 얼음을 만들 수 있는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이런 제품을 사용하면 투명한 얼음은 만들 수 있겠지만 문제는 냉동실의 온도다. 바 등에서 사용하는 전문 업체의 얼음은 영하 10도 정도의 더 높은 온도에서 천천히 얼려 분자구조가 안정적이고 천천히 녹는데 일반 가정에서는 이런 조건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얼음만큼은 사서 쓰는 걸 추천한다.
3. 베이스
하이볼 베이스로는 도수가 높은 술이면 뭐든 괜찮다고 했지만 역시 근본은 위스키다. 위스키도 어떤 걸 넣느냐에 따라 하이볼의 맛이 크게 좌우되지만 일단 너무 비싼 건 하이볼용으로는 추천하지 않는다. 가격이 높을수록 섬세한 풍미를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건 그 자체로 즐겨야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탄산수로 희석하면 아무래도 미묘하고 섬세한 특징을 느끼기 어렵다. 그러니 개성이 강한 싱글몰트 위스키보다는 블렌디드 위스키, 그중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의 위스키가 하이볼용으로 적합하다. 옥수수를 주재료로 해 단맛이 강한 버번위스키도 하이볼을 위한 좋은 선택지다. 특유의 달달함이 더욱 풍부한 풍미의 하이볼을 가능케 한다.
브랜디도 하이볼 베이스로 추천한다. 보리나 옥수수 같은 곡물을 주재료로 하는 위스키와 달리 포도가 주재료인 브랜디는 화사한 과실 향이 특징이다. 사실 최초의 하이볼은 위스키가 아닌 브랜디 하이볼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하이볼에 잘 어울리고, 위스키로 만든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이외에도 창의력을 발휘해 다양한 술로 도전해보는 것 또한 하이볼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특히 다양한 전통주를 이용해 볼 것을 추천한다. 안동소주나 문배주 같은 증류주나 청주 종류가 하이볼에 무난히 잘 어울리고, 개성이 강한 약주나 담금주도 색다른 하이볼을 위해 시도해 볼만 하다. 이외에도 고량주, 사케, 레몬 리큐르인 리몬첼로 등 다양한 술을 활용한 하이볼을 이미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색다른 조합도 집에서 시도해 보면 취향을 알아가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다양한 술로 하이볼을 시도할 때는 도수를 주의 깊게 확인하자. 보통 하이볼로 많이 활용되는 위스키가 40도 정도의 도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다른 술로 하이볼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를 참고해 넣어주는 양을 조절하면 된다. 예를 들어 도수가 20도쯤 된다면 위스키로 하이볼을 만들 때보다 술을 두 배 정도 넣어주면 맛있는 하이볼이 될 수 있다.
4. 믹서(탄산수/토닉워터/진저에일)
술에 곁들이는 음료를 믹서라고 하는데 하이볼에는 보통 탄산음료를 사용한다. 그래서 베이스가 되는 술을 골랐다면 이제는 어울리는 탄산음료를 고를 차례다. 일반적으로 하이볼에는 당이 가미되지 않은 플레인 탄산수, 달달하고 약간의 쌉싸름한 맛이 있는 토닉워터, 생강의 스파이시한 풍미가 첨가되어 매콤달콤한 진저에일 이렇게 세 가지가 많이 사용된다. 어떤 베이스에 어떤 탄산수를 사용할지 정해진 정답은 없다. 그래서 여건이 된다면 여러 조합을 시도해 볼 것을 추천한다. 일반적으로는 탄산수를 사용하면 베이스가 되는 술맛이 잘 느껴지며, 심플하고 슴슴한 스타일이 된다. 그래서 단맛이 싫거나 술맛에 집중하고 싶다면 탄산수를 추천한다. 토닉워터나 진저에일을 사용하면 달짝지근해 마시기 쉽고 풍부한 풍미를 가진 스타일이 된다. 하이볼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런 스타일이 더 맛있게 느껴질 확률이 높다.
하이볼을 위한 믹서를 고를 때 또 다른 팁은 탄산이 최대한 강한 걸 고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싱하를 가장 선호한다. 탄산 입자가 굵어 탄산감이 강력하며, 시간이 지나도 탄산이 잘 유지되는 편이라 천천히 여유를 갖고 즐기기에도 좋다.
5. 가니쉬(레몬/라임/오렌지/자몽)
칵테일에 곁들이는 장식을 가니쉬라고 한다.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것도 있지만 맛과 향을 돋우기 위한 것도 있다. 칵테일 가니쉬로 많이 사용되는 과일에는 레몬, 라임, 오렌지, 자몽 등이 있다. 새콤달콤한 풍미를 가진 이들은 칵테일에 사용되는 네 가지 기본 시트러스로 꼽히기도 한다.
하이볼에도 가니쉬를 곁들여 더욱 다채로운 풍미를 낼 수 있다. 네 가지 과일들은 얼핏 비슷한 것 같아도 모두 다른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레몬은 가장 퓨어한 신맛이 나고, 라임은 좀 더 쌉쌀하며, 오렌지는 신맛보다는 단맛이 두드러지고, 자몽은 특유의 달콤쌉쌀한 맛이 있는 등 차이가 있다. 어떤 술과 탄산수를 사용할지에 더불어 어떤 시트러스를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하이볼의 풍미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 것과 같다.
[왼쪽부터 웨지, 슬라이스, 필]
어떤 방식으로 넣을 것인가도 중요한데, 웨지(Wedge) 형태로 잘라 즙까지 짜서 넣는다면 맛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슬라이스(Slice) 형태로 잘라 살짝 담가 놓는다면 과육이 하이볼에 자연스럽게 녹아 나와 과하지 않은 선에서 풍미를 첨가할 수 있다. 껍질을 얇게 자른, 필(Peel) 형태로 만들어 오일을 살짝 뿌려주고 얼음 위에 가볍게 넣어준다면 맛은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이때 생과일 대신 시판되는 과일즙을 사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레몬, 라임 모양으로 생긴 자그마한 병을 본 적이 있을 거다. 훨씬 간편한 방법이겠지만 그윽한 풍미의 하이볼을 즐기고 싶다면 말리고 싶다. 생과일을 직접 짜서 넣을 때는 과육에서 나오는 즙뿐만 아니라 껍질에서 나오는 오일 성분이 함께 들어간다. 여기서 특유의 풍부한 풍미가 나오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면 금방 날아가 버려 생과일을 이용했을 때만 느낄 수 있다. 애초에 상온에 장기 보관 가능한 방부처리 된 제품과 신선한 과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
베이스가 되는 술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플레인 탄산수를 사용했다면 가니쉬도 생략하거나 가볍게 필 정도만 해주는 게 좋다. 좀 더 강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원한다면 직접 과육을 짜서 넣는 웨지를 추천한다. 이 또한 정해진 정답은 없으니 마음에 드는 조합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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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 만드는 법
위의 다섯 가지 리스트를 모두 체크했다면 이제 하이볼을 직접 만들어 볼 차례다.
1. 먼저 하이볼 글라스에 얼음을 가득 채워준다. 너무 작은 얼음이면 액체가 닿았을 때 금방 녹으니 조금 큼지막한 녀석들로 골라주면 좋다.
2. 얼음을 가득 채운 하이볼 잔에 술을 따라준다. 300mL 내외의 하이볼 잔에 40도 정도의 술 기준으로 30mL 정도가 적합하다. 소주잔이 보통 50mL 정도 되므로 소주잔 기준 칠부 정도 따라주면 된다.
3. 술을 넣고 얼음과 함께 전체적으로 저어준다. 이때 바 스푼(Bar Spoon)이라고 불리는 기다란 칵테일 전용 숟가락을 이용하면 좋지만, 만약 없다면 젓가락 등 다른 걸 써도 무방하다. 이렇게 술을 넣고 얼음을 저어주다 보면 가득 채워져 있던 얼음의 높이가 조금 낮아진다. 얼음이 녹으면서 사이 빈 공간이 더 촘촘하게 메워지기 때문이다. 그럼 얼음의 높이가 내려간 만큼 새로운 얼음을 다시 채워준다.
4. 술을 넣고 얼음을 다시 잔 가득 채웠다면, 이제 탄산음료를 넣어줄 차례다. 이때 얼음을 최대한 피해 따라주는 것이 중요하다. 탄산음료를 얼음에 직접 부으면 거품이 잔뜩 일어나고 탄산 가스가 많이 빠져나가 밍밍한 하이볼이 되고 만다. 따라서 잔을 살짝 기울이거나 바 스푼으로 얼음을 한쪽으로 잡아주어 얼음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며 음료를 부어주는 것이 좋다. 음료를 잔 끝까지 채워주고 나서는 바 스푼으로 가볍게 몇 번 더 섞어준다.
5. 이렇게 마무리를 할 수도 있지만 좀 더 색다른 풍미를 원한다면 가니쉬를 하자. 레몬, 라임 등의 껍질을 얇게 벗겨 두 손으로 잡고 뿌려주면 껍질에 있던 오일이 스프레이처럼 뿜어져 나오는데, 이걸 얼음 위에 뿌려주면 하이볼에 상큼하고 신선한 향을 더할 수 있다. 맛에 직접 상큼함을 더하고 싶다면 웨지 형태로 자른 과육을 짜서 넣어보자. 레몬을 ⅙ 정도 크기의 웨지 모양으로 자르고 즙을 내면 5~7mL 정도 나오는데, 이렇게 즙을 짜고 남은 과육도 그대로 넣어주면 좋다. 웨지 형태의 가니쉬는 얼음을 넣기 전에 먼저 넣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에 넣으면 마실 때마다 큼지막한 과육이 입에 닿아 식감이 좋지 않을 수 있다.
취향껏 하이볼을 즐기기 위한 가이드는 특별히 두 편으로 준비했다. 이번 글에서는 하이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만의 취향을 담아 하이볼을 만드는 법을 이야기했다. 이어지는 2편에서는 특별히 추천하는 하이볼 레시피와 편의점 하이볼의 세계, 그리고 10년 된 하이볼 원조 맛집을 소개하려고 한다. 하이볼 한잔하면서 기다려 주면 무척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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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위스키와 칵테일에 대해 글을 쓰는 홈텐더. 술이 달아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