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요즘엔 막걸리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좋아하는 술은 해마다 바뀌었다. 맥주에서 소주로, 소주에서 와인으로, 와인에서 막걸리로.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종은 막걸리와 약주. 소주는 너무 쓰고, 맥주의 시원함은 지루해졌고, 와인엔 흥미를 잃었다. 취향은 왜 이리 사시사철 변하는 걸까.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변할 때까지만이라도 취향이 한결같았으면 좋겠다.
막걸리와 약주는 쌀로 빚는 곡주다. 덕분에 쌀과 누룩에서 오는 구수하고 차분한 맛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물론 구수함이 전통주의 전부는 아니다. 파인애플 향, 견과류 향, 은행나무열매 향도 느낄 수 있다. 오늘은 요즘 내가 빠진 전통주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전통주에 빠지는 방법 네 가지를 소개한다.
[1] “시음회에 찾아가기”
백술닷컴
백술닷컴은 더본코리아에서 운영하는 전통주 커뮤니티다. 커뮤니티이면서 동시에 전통주에 관한 콘텐츠를 만드는 곳. 이곳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시음회를 열고 있는데, 입문자들에게 백술닷컴 시음회를 추천하고 싶다(가끔씩 백종원 대표도 참석한다고 한다).
나는 5월 29일에 있었던 ‘맥덕들의 막걸리 파티’ 시음회에 참석했다. 사당역 인근에 있는 백술도가 지하 1층에서 열렸는데, 참가비는 공짜. 공간에 입장하니 이미 테이블마다 네다섯 사람씩 모여 있었다. 처음 만난 듯 서먹한 분위기의 테이블도 있었고, 친한 친구들끼리 모인 듯 왁자지껄한 그룹도 있었다.
행사가 시작하자 곧바로 시음 노트를 받았다. 노트에 적힌 종류는 모두 열 가지. 선호 생막걸리, 너디킥, 너디호프, 얼떨결에, 복순도가 손막걸리, 오!미자씨, 희양산 막걸리9, 마크홀리 오리지널 6.0, 마크홀리 드라이 12.0, 폭스앤홉스. 그리고 노트에는 없지만 더본코리아에서 만든 맥주 3종을 추가로 마셨다.
시음주 리스트를 보니 들뜨기 시작했다. 라인업이 이렇게나 좋다고? 전통주씬에서 요즘 핫한 브루어리가 바로 너드브루어리. 전통주계의 아이돌이라고 하는데, 구하기도 힘든 술을 두 종류나 맛볼 수 있었다. 복순도가, 마크홀리, 오!미자씨 등 결이 조금씩 다르면서 맛있기로 소문난 막걸리를 한 자리에서 마셔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입문자는 전통주 유니버스를 압축적으로 체험하기에 좋다.
시음회는 약 2시간 정도 진행됐다. 한 모금씩 마시며 시음 노트에 감상을 적고 소감을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정해진 시음 행사가 끝나고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때부터는 다른 테이블의 참석자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다. 바로 옆 테이블은 생산자들이 초대받은 테이블이었다. 미소주방, 오티오티술도가, 이대앞양조장 등 평소 이름만 익숙했던 양조장의 양조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날 마신 막걸리 중 최고는 역시 너디호프. 바질 향이 가미된 막걸리인데, 너무 강렬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은은하지도 않은 적당한 강도의 바질 향이었다. 그리고 신선했던 건 문경주조의 폭스앤홉스. 직접 재배한 홉을 넣은 막걸리인데 맥주와 막걸리가 섞인 느낌. 소맥 같은 느낌도 있다.
앉아서 편하게 먹어보고 싶다면 사온서를 추천한다. 사온서는 상수동에 있는 전통주 바로 다양한 전통주를 판매한다. 백술닷컴이 멜론차트라면 사온서는 유튜브 뮤직. 백술닷컴에서는 인기가 검증된 유명한 술을 맛볼 수 있었고, 사온서에서는 낯설지만 좋은 술을 만날 수 있다.
“이 술 맛있는데요?” 이 한마디면 그다음 곡을 재생해 주듯 다른 술을 한 모금씩 맛보게 해준다. “이 술도 좋아할 거 같아요.”, “비가 오니까 이런 술이 어울릴 것 같은데 한 잔 드셔보세요.” 알고리즘보다 더 정확한 전통주 추천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나는 안주를 계속 시킨다.
사온서를 즐기는 첫 번째 스텝은 네 가지 술로 구성된 전통주 테이스팅 보드를 주문하는 것. 그다음으로 네 가지 중 가장 좋았던 술을 시키거나 비슷한 술을 추천받으면 된다. 나름 전통주를 많이 마셔봤다고 자부했는데 이날 초면인 술이 많아서 금세 겸손해졌다. 테이스팅 보드 첫 번째 술이었던 제주곶밭의 만다린약주의 향긋함이 아주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사온서에서 주최하는 막걸리 담그기 체험을 해보자.굳이 사온서를 추천하는 이유는 막걸리 담그기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언젠가 막걸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 같은 거 없어도 상관없다. 양조장 대표를 초청해서 클래스를 여는데, 생산자가 직접 알려주는 막걸리의 세계를 들으면 술이 더 맛있어질 테니까. 내가 참가했을 때는 이시보 양조장 대표가 클래스를 진행했고, 직접 챙겨온 원주(물에 희석하지 않아 도수가 높은 막걸리)까지 맛볼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클래스가 끝나면 참석자들끼리 술 한 병씩 시키고 오손도손 떠드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일정은 비정기적으며 사온서 인스타그램을@4oz.seoul 참고하자.
주소 서울 마포구 독막로14길 25 2층
영업시간 수-일 18:00-24:00(월, 화 휴무)
추천 메뉴 즈란크림생선스테이크, 마라우동, 사워크림 감자전, 라이스푸딩, 백차하이볼
양조장 인스타그램을 통해 막걸리 만들기 클래스나 양조장 투어 소식을 접할 수 있다. 나도 많이 다녀보지 않아서 어떤 곳이 좋다고 리스트를 열거하고 말하긴 힘들지만 합정동에 있는 같이양조장이 오래전부터 막걸리 만들기 클래스를 운영해 오고 있고, 합정동이라 접근성이 좋으니 추천해본다. 또, 예전에 내가 추천한 적 있는 이쁜꽃양조장에서도 여름 쌀술 양조 클래스를 준비하고 있으니 관심 있다면 팔로우해 놓자.
시음회나 전통주 바처럼 특별한 곳에 찾아가야만 전통주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전통주를 구매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온라인 주문이지만, 퇴근길에 당장 마시고 싶다면 CU로 가면 된다. CU는 전통주 큐레이션 브랜드 대동여주도와 협력하여 주류특화 점포에서 전통주를 판매하고 있다. 전통주는 네 가지 종류로 윈터딜라이트, 단홍, 쑥크레, 츄즈. 모두 온라인에서 구매하기 힘들고 전통주 바에 가야 만나볼 수 있는 귀한 술이다. 나는 이 중에서 쑥크레만 마셔봤는데 쑥 향이 은은하고 목 넘김이 좋은 막걸리였다. 지도를 보고 가까운 곳에 주류특화 점포가 있다면 방문해 보자. 주류특화 점포는 [여기]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직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매장 수가 많지 않은데 전국 방방곡곡에 점포를 늘려나가면 늘어가면 좋겠다.
마지막은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전통주를 소개하는 SNS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것. 위에서 짧게 소개했던 대동여주도, 전통주갤러리만 구독해도 새로 출시된 전통주를 놓치지 않고 팔로우할 수 있고, 자세한 리뷰가 궁금하다면 유튜브 채널 <술익는집>을 추천한다. 전통주에 대한 애정도 깊은 건 물론이고, 한국가양연구소에서 전통주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막걸리 학교 상급 과정을 수료하는 등 전통주에 대한 지식이 깊다. 링크는 [여기].
막걸리와 약주는 패스하고 오직 소주만 다루는 계정도 있다. 소우주라는 계정인데 아직 게시물이 많지는 않지만 컨셉이 독특해서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