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더워도 기어이 밖으로 나가서 걷다 지치면 카페로 피신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서울 용산구의 ‘해방촌’은 놀러 온 이들에게 고생과 재미를 함께 주는 곳이다. 해방 이후 조국으로 돌아온 동포들과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 정착한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다는 동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만들어 내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이국적인 음식점을 경험하는 재미는 짜릿하지만, 이를 온전히 누리려면 험난한 급경사와 인도/차도 구분 없는 좁은 도로를 견뎌야만 한다.
그럼에도 잊을 만하면 놀러 가게 되는 건, 걷다 지칠 때 한숨 돌릴 수 있는 든든한 카페 덕분이다. 조만간 해방촌에 방문할 계획이 있는 분들이면 주목해 주시길. 고생 끝에 낙을 선사할 언덕 위 해방촌의 카페 세 곳을 소개한다.
* 물론 근처까지 가는 마을버스도 있으니 너무 걱정은 말자.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로 나와 한신아파트 정류장에서 ‘용산 02번’ 버스를 타면 된다.
[1]
업스탠딩 커피
가파른 비탈과 좁은 골목이 엉키고 또 이어지는 신흥시장에 들어선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낡고 투박한 건물과 태국 음식점・공방・레코드바・치킨집 등 무국적, 무경계의 개성 강한 젊은 가게들이 빚어내는 묘한 에너지.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마치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이곳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업스탠딩 커피’가 있다.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뭘 입고 다니든 간에 다 함께 모여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꿈꾸는 카페다.
스타일리시한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다 건물을 관통하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간다. 기다란 셰어 테이블과 벽을 따라 늘어선 ‘ㄷ’자형 의자가 전부인 이 공간 역시 사람들 간의 만남과 스몰 토크가 일어날 수 있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출발해 힙스터들이 사랑하는 브랜드가 된 ‘에이스 호텔’의 로비에서 전 세계 여행자들의 교류가 일어나는 것처럼.
물론 어색함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이런 환경에서라면 없던 용기도 내볼 수 있을 것 같다.
멜버른에서 바리스타로 일했던 주인장의 경험을 살려 호주와 뉴질랜드 스타일의 커피를 제공한다. 커피 향이 결코 밀리지 않는 비율과 양을 정확히 지킴으로써 ‘와, 커피 향 너무 좋다’라는 마음이 들게끔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커피에 조예가 깊지 않은 손님이라면? 오히려 좋다. 업스탠딩은 한 명 한 명의 취향에 맞춘 세심한 응대로 커피에 천천히 애정을 붙일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를 자처하니까.
커피와 우유의 황금비율을 경험하고 싶다면 ‘매직’이라는 메뉴를 주문하자. 너무 바쁠 때가 아니면 주인장이 바로 앞에서 부어주는데, 커피를 받는 즉시 한 모금을 마셔야 한다.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손님만이 극강의 부드러운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너무 다크하고 묵직한 우유 커피를 싫어한다면,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고 밍밍할 정도로 깔끔한 우유 커피도 내키지 않는다면, 정말 잘 찾아오셨다.
- 화이트 커피 5,000원(매직, 카푸치노, 플랫 화이트, 라떼)
- 필터 커피 7,000원(원두별 가격 상이)
- 뺑오쇼콜라 4,500원
업스탠딩 커피
- 주소 서울 용산구 신흥로99-11 1F-3F
- 영업시간 월-목 10시 30분-20시 금-토 10시 30분-21시 일 12시-20시
- @upstanding_coffee
[2]
투스키
신흥시장에서 나와 해방촌성당 방면으로 3분 남짓 걷다 보면 나오는 투스키(TOUSKI). ‘모든 것’이라는 뜻의 불어 ‘Tout ce qui’의 줄임말을 상호명으로 채택한 이 작은 가게는 프랑스인 주인장이 운영하는 레코드숍 겸 카페다. 소울・디스코・하우스・재즈・록 등 장르 구분 없이 엄선한 음반을 들으며 가볍게 커피를 마시고, 내추럴 와인 보틀도 구매할 수 있다.
높은 층고와 볕이 환하게 드는 통창은 넓지 않은 내부에 개방감을 부여하고, 한쪽 벽면을 채운 LP와 천장에 드러난 클래식한 패턴, 오묘한 컬러로 존재감을 발하는 블루 타일은 공간 곳곳에 개성을 더한다. 음반 섹션을 마주 보게 배치한 좌석에 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주인장 ‘바티’가 선곡한 풍성한 볼륨의 음악을 들어보자.
레코드와 커피, 내추럴 와인이라는 여러 요소를 한데 모았음에도 크게 이질적이거나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애정하는 것들을 유쾌하고 편안하게 소개하는 오너와 밝고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 환경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추천 메뉴는 롱블랙과 파운드케이크. 커피 주문 시 부산을 대표하는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 ‘모모스커피’의 블렌드 원두 ‘므쵸베리’와 ‘에스쇼콜라’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베리류의 풍부한 향미가 돋보이는 므쵸베리로 마시는 아이스 롱블랙은 요즘같이 후덥지근한 날씨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되어줄 테다.
파운드 케이크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레시피로 만든다. 브르타뉴산 버터와 우리 밀, 유기농 설탕, 무항생제 계란을 넣어 고소한 풍미를 살렸다. 바삭하게 구운 겉면과 버터와 계란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촉촉한 시트가 어우러진 겉바속촉 파운드케이크다.
- 아이스 롱블랙 4,500원
- 프렌치 파운드 케이크 4,000원
투스키
- 주소 서울 용산구 소월로20길 55 1동 1층 좌측
- 영업시간 화-토 11시-19시 (일-월 휴무)
- @touski
[3]
오아시스 해방촌
가파른 신흥로 언덕을 힘겹게 올라온 이들의 오아시스가 되길 바라는 오아시스 해방촌. 오랫동안 이 동네에 살아온 어르신부터 강아지와 산책하다 들른 견주,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엄마 손님까지 바쁜 일과로부터 잠시 한숨 돌리러 찾은 다양한 이들을 살갑게 맞이하는 곳이다. 정기권 개념의 선결제 시스템도 마련할 만큼 인근에 거주하는 단골 손님의 비율이 높은 작은 동네 카페다.
매장 전반에 ‘사막 속 오아시스’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담겨 있다. 샌드 컬러로 바른 벽과 천장은 사막을, 구석구석 싱그러움을 더하는 식물들은 오아시스 주변의 나무를, 간판과 스툴과 빨대 등 여러 요소에 녹인 민트 컬러는 샘물을 연상시킨다. 날이 좋을 때는 전면 창을 활짝 열어 창가에 자유롭게 걸터앉아 있는 장면이 펼쳐지는데, 오후 햇빛이 예쁘게 들고 사진도 잘 나오는 덕에 주말에는 해당 좌석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커피・논 커피・화이트 와인에 디저트 및 스몰 플레이트까지 메뉴 전반적으로 폭넓은 선택지를 자랑한다. 언덕을 걸어 올라오느라 지친 이들에게는 여름 시즌 메뉴를 적극 추천한다.
열대 과일 베이스의 아이스티와 에이드는 논 알콜 칵테일이 떠오를 만큼 달고 상큼한 맛이 좋다. 특히 용과청을 깔고 오렌지 주스와 베리 모히토 티를 차례대로 올린 ‘용과 핑크 아이스티’는 눈과 혀 모두 즐거운 음료. 기분 좋게 술 한잔하고 와서 들이키면 또 얼마나 시원할까.
강아지 손님을 위한 퍼푸치노 역시 ‘멍푸치노’란 이름으로 제공한다. 거품을 친 락토프리 펫 밀크를 에스프레소 잔에 따라 내어주는 식이다. 덥고 목마른 댕댕이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우리 모두를 위한 오아시스.
- 용과 핑크 아이스티 6,500원
- 오아시스 아이스티 4,000원
- 멍푸치노 2,500원
오아시스 해방촌
- 주소 서울 용산구 신흥로 62 1층
- 영업시간 월-수, 금-일 11시-20시 (목 휴무)
- @oasis_hbc
About Author
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