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여행 중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하나 떠올리자면 의외로 대단치 않은 순간이다. 바로 여행 중 맥주를 처음으로 마실 때.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맥주를 200mL 잔에 따른 후 입에 대는 그 순간은 황홀 그 자체. 보통은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가까운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그 맥주 한 잔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행위와 비슷하다. 떡갈비를 먹으며 한 잔, 흑돼지오겹살을 먹으면서 한 잔. 어떤 도시에서 무얼 먹든 맥주 한 잔이 곁들여진다면 나는 마법을 부린 듯 여행자의 마음이 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따라오는 질문이 있는데, 로컬에게 받는 첫 질문인 셈이다. “어떤 맥주로 드릴까요?”
이 질문에 일행은 서로 눈빛 교환을 하다가 “나는 상관없어”, “나도, 아무거나 너 먹고 싶은 거 시켜”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나는 아무거나 시킨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정말 아무거나. 하지만 요즘엔 고정 답변이 생겼다. “켈리 주세요.”
켈리는 하이트진로가 테라를 출시한 지 4년 만에 새롭게 출시한 맥주 브랜드다. 맥주 시장에서는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는 일이 빈번하지는 않아서 더 눈길이 간다. 게다가 테라로 맥주 시장을 뒤흔들었던 하이트진로이기에 자연스레 켈리에게도 기대가 많이 됐다.
사실 요즘 집 밖으로 외출을 한 발자국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켈리를 모를 순 없을 거다. 동네의 호프집부터 번화가의 맛집까지 ‘절찬리에 켈리 판매 중’이라는 안내문을 붙여놓았으니까. 안내문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켈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시선이 옆에 걸린 켈리 포스터로 간다. 손석구가 모델이니까.
어떤 셀럽이 브랜드의 모델인지는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단순히 잘 나가는 모델을 섭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엔 핫한 셀럽이 정말 많고 그중에서 한 명을 섭외하는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손석구의 출연작을 보면서 연기 변신 정말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 <연애 없는 로맨스>에서는 문창과 출신의 내성적인 잡지사 에디터,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비밀스러운 구씨, <범죄도시2>에서는 사람을 납치하는 무서운 악역을 맡았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손석구가 켈리의 모델이 된 이유는 ‘반전을 보여주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켈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구 역시 ‘라거의 반전’이다. 켈리는 손석구처럼 여러 가지 상반된 매력을 품은 맥주다. 맛에 대해서는 좀 더 이따가 설명하고, 질문 하나 할까 한다. 혹시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맥주는 어떤 맥주일까? 홉의 향이 진하고 씁쓸한 에일? 아니면 부드러운 바이젠?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만 당연히 라거다. 몇 년 전부터 수제 맥주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라거 소비량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으니까.
라거의 매력은 청량감이다. 목을 때리는 시원한 탄산감, 직장 생활과 코스피 지수 하락의 스트레스가 쭉 내려가는 청량감!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동시에 목 넘김이 부드러운 술을 또 선호한다. 그래서 켈리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두 가지 요소, 청량감과 부드러운 목 넘김을 동시에 담기 위해서 연구를 했고 켈리로 구현했다. 말로만 들어서는 갸우뚱할 수 있는데 마셔 보면 체감할 수 있다.
잔에 따를 때부터 라거 특유의 탄산감이 느껴지고, 입 안에 머금었을 때까지 시원하다는 인상인데 막상 넘길 때는 술술 잘 넘어간다. 목을 불편하게 타격하지 않는다. 보리의 고소한 풍미도 좋고, 입에 닿았을 때의 풍부하고 부드러운 거품 맛도 만족스럽다. 이래서 라거의 반전이구나 싶었다.
부드러움의 비결은 북대서양에서 1년 내내 불어오는 온화한 해풍을 맞고 자라 부드러운 덴마크 프리미엄 맥아 덕분이라고 한다. 다른 것 들어가지 않고 덴마크 맥아만 100% 사용했다. 또 보리를 맥아로 만드는 공정에서는 일반 맥아보다 24시간 더 발아시키는 슬로우 발아를 통해 부드러운 거품과 맛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맛을 내기 위해 7°C에서 1차 숙성하고, -1.5°C에서 한 번 더 숙성시켜 강렬한 탄산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제조했다.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어떻게 밸런스 조정했을까 싶었는데, 두 번에 걸친 숙성이었다.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제조 공정에 대한 말보다는 직접 맛보았을 때 맛이 중요한데, 개인적으로는 맥아에서 오는 고소함과 적당한 탄산감 덕분에 꿀떡꿀떡 넘어가서 좋았다. 켈리는 Keep Naturally의 줄임말로 인위적인 것은 최대한 줄이고 자연주의적인 원료와 공법 그리고 맛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는데, 브랜드 네이밍과 맛이 잘 어울렸다.
지금까지는 맛에 대한 소감이었다. 맥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맛이지만, 요즘엔 그게 또 전부는 아니다. 디자인을 얘기하지 않을 순 없다.
켈리는 국내 라거 최초로 앰버(호박색) 컬러를 사용했다. 라벨은 로즈골드 컬러를 사용했는데 앰버와 잘 어울린다. 병 라인을 보면 켈리라는 이름처럼 우아하고도 고급스럽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꺾어지는 라인이 마치 장인이 깎아만든 것처럼 섬세하다. 맛에 집중한다며 패키지나 제품 디자인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는데, 켈리는 야심 차게 앰버 컬러를 쓰고 디자인을 다듬었다. 마음에 든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라거라고 해서 꼭 투박하게 생길 필요는 없지 않나.
병 라인도 예쁘지만, 개인적으로는 병 색깔이 마음에 든다. 갈색이나 초록색도 아니고 앰버라니. 특히 햇빛을 투과했을 때의 모습이 찬란한데, 기회가 되면 낮술 하면서 햇빛에 비추어 보는 걸 추천한다. 우아하고 영롱하다.
켈리는 언제 마시면 좋은 맥주일까. 분류하자면 ‘데일리 맥주’쯤 되지 않을까. 어느 한 가지 맛이나 향이 두드러져서 특정 경우에만 어울리는 술이 아니라 모든 장소, 모든 상황에서 어울리는 맥주. 한강에서 돗자리를 깔고 데이트하며 마셔도 좋고, 홀로 퇴근하며 한 캔 사 마셔도 좋을 것 같다. 날이 조금씩 더워진다. 땀을 흘리게 되는 날이 많아질수록 켈리를 더 찾게 되지 않을까. 여름은 라거의 계절이고, 새 여름은 새 맥주에 담아야 하는 법이니까.
*이 글에는 하이트진로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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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