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부산 여행의 목적은 언제나 맛집이었다. 밀면, 돼지국밥, 복국, 어찌나 먹을 게 많은지 2박 3일은 부족했다. 심지어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갈 때도 동래파전을 먹기 위해 영화 두 편을 포기할 정도로 음식에 매달렸다. 하지만 여행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이제는 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밸런스라는 걸. 아무리 먹는 게 중요해도 보고 듣고 쉬는 것을 넣어 복합적으로 계획을 짜야 여행의 완성도가 올라간다. 만약 부산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이곳을 추천한다. 수영구 망미동에 자리잡은 복합문화공간 F1963에 위치한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이다.
F1963은 공장을 뜻하는 Factory와 1963년 완공된 고려제강의 설립 일자를 합쳐서 지은 이름. 한때 거대한 공장이었던 이곳은 리모델링되어 부산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은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진행 중인 <홈 스토리즈>만 소개할 예정이나, F1963에는 국제갤러리 부산점, 예스24 등 즐길 거리를 비롯해 복순도가, 테라로사,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4층에 위치한 신선한 로컬 식재료를 활용해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마이클 어반팜테이블 등 먹거리도 풍부해 온종일 둘러보기에 좋다. 그럼 공간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전시를 둘러보자. <홈 스토리즈>는 내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최근에 봤던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은 전시였다.
<홈 스토리즈>는 현대자동차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함께한 특별 전시다. 이들은 2021년부터 파트너십을 맺었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진행되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의 협업 전시는 단순히 기존의 전시를 순회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차의 스토리도 함께 녹여 양사의 공동 비전을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파트너십을 통해 진행했던 첫 전시 <헬로 로봇, 인간과 기계 그리고 디자인>에서는 현대차그룹의 로봇들을 함께 전시해 다양한 로봇의 활용과 의미를 보여줬다. 두 번째 협업 프로젝트인 이번 <홈 스토리즈> 전시에서도 현대차의 대형 SUV 전기차 비전을 제시하는 아이오닉 콘셉트카 ‘세븐(SEVEN)’과 이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스튜디오 스와인의 신작을 함께 선보이며 모빌리티까지 확장된 홈(Home)의 개념과 미래의 비정형적인 주거 형태에 대한 담론을 던지고 있다.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고, 인테리어 역시 마찬가지다(물론 이유 없는 디자인도 있지만 좋은 디자인에는 반드시 이유가 존재한다). 단순히 예뻐 보이는 것도 그냥 만들어지진 않는다. <홈 스토리즈>에서는 주거 문화와 인테리어가 어떠한 맥락에서 변화했는지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이번 전시는 관람 순서부터 재미있다. 전시는 ‘미래’의 생활 공간이 될 모빌리티를 의미하는 아이오닉 콘셉트카 ‘세븐(SEVEN)’에서 시작한다. 다음으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선보이는 지난 100 년 간의 혁신적인 인테리어 스토리가 ‘현재’에서 ‘과거’순으로 전시된다. 이후 ‘세븐’의 친환경 소재를 활용해 미래 쉘터의 모습을 구현한 스튜디오 스와인의 몰입형 설치 작품 ‘흐르는 들판 아래’의 전시 공간으로 마무리된다. 미래에서 현재와 과거로, 다시 미래로 흘러가는 방식 덕분에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인테리어의 변천사와 자동차의 결합, 신선한 조합이다. 모빌리티 기술의 발전으로 미래의 자동차는 더 이상 이동 수 단이 아니며, 하나의 ‘생활 공간이자 집’으로 확장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섹션을 통과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의 뿌리에 가까워졌다. 만약 순행으로 진행되었다면 딱딱한 역사 공부처럼 느껴졌을 텐데, 역행이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 그리고 도슨트의 설명이 정말 알차고 친절하니 가이드를 받는 걸 강력 추천한다.
전시의 첫 번째 파트는 아이오닉 콘셉트카 ‘세븐(SEVEN)’이다. 주거 문화에 대한 전시라고 하더니 모빌리티 스토리 로 시작하는 것이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요즘의 자동차는 차박, 카 오피스(Car Office) 등 이미 새로운 용도를 입고, 이동 수단을 넘어 사람들이 주거하며 일상을 보내는 공간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가장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말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자율주행이 지금보다 더 고도화될 거다. 운전은 인공지능에게 맡긴 채 운전자는 편하게 동승자와 얘기하거나 드라마를 보지 않을까. ‘세븐(SEVEN)’에는 이러한 상상이 반영됐다.
스티어링 휠(운전대)이 사라지고 대쉬 보드는 슬림해졌다. 시트는 라운지 체어처럼 편안하고, 회전식으로 제작돼 일행과 둘러앉아 업무도 보고 회의를 할 수도 있다. 선루프에는 비전 루프 디스플레이가 있어서 누우면 바로 영화 감상 이 가능하다. 눕는 곳이 바로 영화관이 되는 셈이다. 이런 차가 언제 상용화될지 알 수는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현대자동차가 만들어줄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
자, 이제 하늘거리는 커튼 사이로 들어가, 전시의 두 번째 파트를 살펴보자.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소개하는, 20여개의 혁신적 인테리어를 통해 진화한 지난 100년간의 주거 문화다.
이 파트의 첫 번째 테마는 ‘자원으로서의 주거 공간’이다.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자원으로서의 주거 공간? 과거와 현재의 주거 공간을 대하는 방식을 비교해보면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집은 사람이 사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근무 공간을 겸하기도 하고, 여행자에게 숙소로 빌려주기도 하고, 취향이 같은 낯선 사람을 초대해 네트워킹 파티를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부동산 개념에서 집은 주요한 자산이자, 투기 대상이기도 하다. 첫 번째 섹션은 집을 대하는 색다른 시선, 다양한 주거 활용법을 보여준다.
그랜비 포 스트리트 by 어셈블(2013-현재)
첫 번째로 소개할 프로젝트는 젊은 건축가 그룹 어셈블(ASSEMBLE)의 그랜비 포 스트리트다. 리버풀의 마을 그랜비는 많이 낙후되어 있는 상태였다. 마을에는 빈집이 많았고, 대부분은 파손된 채로 방치됐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러 주민들도 많이 떠났는데, 그럼에도 남아 있는 주민들은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거리를 청소하고 빈집 벽에 그림을 그리는 등의 노력을 했다. 어셈블은 2013년 그랜비의 주민들과 함께 도시 재생 프로젝트 ‘그랜비 포 스트리트’를 시작했다. 폐자재를 활용해서 집을 새롭게 만들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발생한 욕실 타일, 문손잡이, 벽난로 프레임 등은 업사이클링했다. 업사이클링한 재료를 판매하는 건 지역의 주요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
역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인 걸까. 주민들은 마을을 버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되살리려 노력했고, 어셈블이 함께한 이 프로젝트는 2015년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상 ‘터너 예술상’을 수상했다.
안티빌라 by 브란들후버+엠드, 벌론
전시장에 입장할 때 내가 했던 말을 혹시 기억할까? ‘하늘거리는 커튼 사이로 들어가’라는 표현처럼, 이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의 협업 전시 파트는 거대한 하얀색 커튼으로 전시관별 세부 구분을 해 놓았다. 반대편이 살짝 보이는 반투명함 덕분에 전시장은 답답하지 않으면서 공간 구분이 된다. 안티빌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독일의 브란들후버가 만든 안티빌라는 기존의 건물과는 큰 차이가 있는데, 하중의 영향을 받지 않는 벽은 모두 제거하고, 난방에 유리한 소재로 만든 커튼으로 공간을 구분했다는 것. 외관에서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투박함을 느낄 수 있고, 내부는 우아하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그랜비 포 스트리트 같은 도시 재생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디자인된 공간을 살펴볼 수 있다.
엘리 by 요지겐 포케토(2017)
마드리드의 건축 스튜디오 엘리에서 만든 ‘요지겐 포케토’도 흥미롭다. 부동산 가격이 끝도 없이 치솟으면서 대도시에 사는 시민들은 점점 더 좁은 집으로 쫓겨나게 된다. 엘리는 10평형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구조를 선보였다. 바닥을 높여서 공간을 분할하고 높아진 바닥을 활용해 수납장을 만들어냈다. 요지겐 포케토는 수많은 물건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도라에몽의 마법 주머니에서 착안한 이름인데, 작은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어울리는 작명이다.
이제 두 번째 테마 공간으로 가보자. 1960년대부터 80년대의 인테리어를 다룬 ‘인테리어의 대격변’에 대한 전시가 펼쳐진다.
트렌드는 정반합을 반복한다. 가령, 실용주의가 유행하면 조금씩 다른 버전의 실용주의1, 실용주의2가 나타나다가 전혀 다른 장식주의가 출현한다. 그러다 서로 뒤섞이고, 발전하고, 다시 새로운 트렌드가 출현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진입하면서 외향적인 가치가 대두되었는데, ‘인테리어의 대격변’에서는 정확히 이 시기의 트렌드를 다룬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라거펠트 아파트 by 칼 라거펠트, 앙드레 푸트만(1983경)
1981년 에토레 소트사스, 미켈레 데 루키 등 밀라노를 기반으로 한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모여 멤피스 그룹을 만들었다. 이들은 모더니즘에서 규정하는 ‘좋은 취향’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멤피스 그룹의 패션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앙드레 푸트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주거 공간을 멤피스 그룹이 만든 가구로 가득 채웠다. 사진 속 형형색색의 인테리어를 보자. 색 조합이 자유롭고, 각각이 개성적이며 하나로 통일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첫 번째 사진에 나오는 공간이 바로 라거펠트가 머물던 방인데 휴식을 위한 공간이 이토록 화려할 수 있다는 게 라거펠트답다. 우리 집은 바우하우스의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으로 꾸며도, 친구 한 명 정도는 멤피스 디자인으로 집을 꾸미면 좋겠다. 카페에 가듯 기분 전환을 위해 자주 놀러 가고 싶으니까.
실버 팩토리 by 앤디 워홀(1964)
이번에는 1960년대 뉴욕으로 가보자. 주인공은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았던 예술가들. 이들은 작업실이나 창고로 쓰던 큰 건물을 처음에는 작업용 스튜디오 겸 집으로 사용했다. 층고가 높은 창고나 폐공장 같은 스타일을 로프트 하우스 혹은 로프트 타입의 주거라고 한다. 지금은 대형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그 뿌리가 바로 1960년대 뉴욕.
1964년 앤디 워홀은 한때 모자 공장이었던 공간의 벽과 천장에 은박지를 잔뜩 붙이고 은색 스프레이로 페인트칠을 했다.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가구에도 은색 스프레이를 뿌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버 팩토리는 앤디 워홀의 아파트이자 아티스트들의 교류 공간이자 작업 스튜디오가 됐다. 워홀은 스크린 테스트라 불리는 단편 영화를 수백 편 제작했는데, 500편이 넘는 스크린 테스트가 실버 팩토리에서 촬영됐다.
나카진 캡슐 타워 by 구로카와 기쇼(1970-1972)
일본 최초의 캡슐 아파트 ‘나카진 캡슐 타워’. 이 건물을 도쿄에서 직접 본 사람도 많을 거다.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의 남다른 예술 감각을 보여주는 나카진 캡슐 타워는 144개의 캡슐을 사용해 13층 건물로 만들어졌다. 캡슐 하나는 약 2.4평의 면적에 2.3미터의 층고로 사이즈가 작지만, 주거와 업무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50년 이상 운영되며 도쿄 긴자의 관광명소였으나 현재는 안정성의 문제로 철거가 됐다. 노후 캡슐을 정기적으로 교체한다는 계획이 있었으나 각 캡슐의 소유주가 달라 교체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카진 캡슐 타워는 철거되었지만 이후 모듈형 주택이나 캡슐형 숙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3번째 공간의 테마는 ‘자연과 기술’이다. 1940년대부터 60년대의 인테리어 특징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모더니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주방에는 모듈러 시스템과 기계화로 표현되는 모더니즘 개념이 주거 공간에 반영된다. 두 번째 특징은 주거 공간에 자연을 들여온다는 것. 자연적인 형태와 소재가 인기를 얻고 직선적이지 않은 유기적인 형태가 인기를 얻는다.
까사 데 비드로 by 리나 보 바르디(1951)
통유리창 밖의 숲을 보는 여인, 바로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다. <홈 스토리즈> 포스터에 사용된 바로 그 사진이다. 이탈리아 출생의 리나 보 바르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건축을 할 수 없게 되며 남편과 함께 브라질로 이민을 간다.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 집을 건축하게 되는데 그 유명한 ‘까사 데 비드로’다. 뜻은 ‘유리의 집’. 이름에 걸맞게 3면을 통유리로 만들었고, 아래에는 필로티 구조로 지어졌다. 통유리를 사용한 덕분에 자연의 풍경을 실내로 불러들인다. 그렇다고 까사 데 비드로를 단순히 자연을 감상하기에 좋은 집으로만 보면 안 된다. 집으로 향하는 계단서부터 조경이 시작된다. 지역의 토종 식물을 심어 놓은 유리 중정과 실내의 식물을 보면 까사 데 비드로는 자연의 일부, 자연 그 자체처럼 보인다.
자, 이제 어느덧 마지막 테마에 이르렀다. 4번째 테마 공간의 주제는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를 다룬 ‘모던 인테리어의 탄생’. 여기에서는 모더니즘이 어떻게 태동하기 시작했는지 볼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혁명 등 굵직한 사건의 여파로 1920년대의 디자이너들은 장식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실용적인 인테리어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 키친 by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1926)
예를 들어 프랑크푸르트 키친이 그렇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건축가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는 현대 시스템키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 키친을 만들었다. 그녀는 일찍이 미국의 경영학자 프레데릭 테일러가 연구한 노동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노동자 동선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쉬테-리호츠키는 테일러의 이론을 부엌에 적용했다. 사진 속 구조를 보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하게 보이는데 프랑크푸르트 키친이 지금 일반화된 시스템키친의 뿌리다. 덕분에 주부가 움직이는 동선이 크게 단축됐다. 부엌의 역사에서는 혁명과도 같은 변화였다.
빌라 뮐러 by 아돌프 로스(1928-1930)
아돌프 로스의 ‘빌라 뮐러’ 역시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다. 아돌프 로스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장식은 범죄다”라는 말이다. 위 사진을 보면 모더니즘과 비교했을 때 화려해 보이지만 당시의 트렌드와 비교하면 화려한 장식을 많이 배제했다. 다양한 색감이 섞여 있을 뿐 가구 디자인이나 구조 자체는 모던하게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는 내부 인테리어보다는 빌라 뮐러의 외관을 더 좋아한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빌라 뮐러의 외관은 흰색과 노란색 두 가지만 활용했는데, 지금 봐도 굉장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게 아름답다.
마지막 공간은 <홈 스토리즈>의 100년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인 만큼, 반드시 관람해야 할 작품도 많다. 엘시 드 울프의 빌라 트리아농, 애쉬콤의 세실 비튼,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빌라 투겐트하트 등.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언급된 작품을 포함한 더 많은 작품은 직접 방문해서 감상하길 바란다.
흐르는 들판 아래 by 스튜디오 스와인(2023)
인테리어의 100년사를 충분히 살펴봤다면, 이제 독립된 옆 전시장으로 입장하자. <홈 스토리즈> 전시의 3번째 파트 에서는 영국의 디자인 듀오 ‘스튜디오 스와인(Studio Swine)’이 현대자동차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에 영감을 받아 제 작한 신작 <흐르는 들판 아래> 전시 공간이 펼쳐진다.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온통 푸른색이다. 마치 바닷속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스모그가 있어서 시야는 살짝 흐리고 벽에는 거울이 설치되어서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시원한 향도 난다. 그리고 어디선가 ‘지지지직 지지지직’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출처는 천장이다.
천장에는 60개의 플라즈마관이 설치되어 있다. 알 수 없는 패턴으로 작동되는 관에서 나는 소리가 모여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플라즈마는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 중 고체, 액체, 기체보다 더 희귀한 물질이라고 한다. 번개, 폭풍, 북극광, 혜성의 꼬리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데, 지구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별과 태양이 플라스마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의 99%는 플라즈마라는 설명을 들었다.
<홈 스토리즈>는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해 얘기하는 전시다. <흐르는 들판 아래>에서 말하는 우리가 사는 곳은 바로 ‘푸른 별 지구’. 스튜디오 스와인은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가 지구를 “차가운 진공의 공간을 통과하는 지구라는 모빌리티”라고 언급한 것에서 착안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시원한 향기, 우주를 표현한 소리, 눈을 편안하게 만드는 푸른색 조명 덕분에 거대한 지구에 앉아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전시 공간에 놓인 긴 스툴을 현대차의 아이오닉 콘셉트카 ‘세븐(SEVEN)’에 사용된 친환경 섬유 소재로 제작 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모빌리티’와 같은 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전시를 다 봤다면 3층으로 올라가 ‘아카이브 라운지’에서 여운을 즐기자. 이곳에는 전시 준비 과정과 자세한 기획 의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내가 느꼈던 감상과 전시 기획자의 의도를 비교해보며 이번 전시를 마무리하면 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문구가 적힌 도어사인도 챙겨가자. 두 개, 세 개 가져가도 된다.
전시장을 나서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을까? 자연과 함께하는 집, 화려한 색감으로 가득 찬 집, 실용적인 가구가 있는 집 중에서 내가 원하는 집은 무엇일까. 어떤 집이든, 오늘 당장 꾸며볼 순 없어도 방향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홈 스토리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환경이 어떠한 정치, 사회,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했는지, 그리고 미래의 주거 환경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제시하는 눈이 즐거운 전시였다. 전시는 10월 1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다.
*이 글에는 현대자동차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