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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는 붕어가 아냐, 붕어유랑단

안녕, 에디터B다. 나는 모든 끼니에 진심이면서 의외로 간식에는 정성을 쏟지 않는다. 달콤한 간식은 경계의 대상이다. 간식 때문에 배가 불러서 식사...
안녕, 에디터B다. 나는 모든 끼니에 진심이면서 의외로 간식에는 정성을 쏟지 않는다. 달콤한…

2023. 02. 06

안녕, 에디터B다. 나는 모든 끼니에 진심이면서 의외로 간식에는 정성을 쏟지 않는다. 달콤한 간식은 경계의 대상이다. 간식 때문에 배가 불러서 식사 때 텐션이 떨어지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 순간만큼은 젓가락과 턱관절이 멈추지 않고 춤을 췄으면 좋겠다. 분홍신의 저주처럼.

그래서 겨울 간식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붕어빵에도 감흥이 없고, 팥붕과 슈붕의 밸런스 게임에도 관심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붕어유랑단 팝업스토어를 발견했다. 오픈 첫날 한 시간만에 솔드아웃했다는 어마어마한 붕어빵 가게였다. 게다가 붕어유랑단이라니 너무 멋있는 이름이 아닌가. 붕어빵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럴싸한 네이밍에 매료된 나였다. 그 다음날 바로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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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붕어유랑단 팝업스토어다. 팝업이기 때문에 간판이 없다. 언뜻 봐서는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여기저기 붕어빵으로 도배해 놓은 게 보인다. 누가 봐도 붕어빵 가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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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유랑단은 인스타그램을 똑똑하게 활용한다. 한국 붕어빵 가게 중 가장 SNS를 잘 활용하는 곳이다. 일단 붕어유랑단이라는 브랜드 네임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붕어빵 걸그룹 붕진스라는 컨셉도 예사롭지 않다. 붕진스라니, 그 단어를 듣고 어찌 까먹을 수 있을까. 붕진스라는 이름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boong5urang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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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은 아담하다. 세 명의 붕어빵 로스터가 붕어빵을 굽고 있었고, 한쪽 벽에는 메뉴판, 굿즈가 있었다. 레트로한 과일 바구니에 종이 붕어빵을 담아놓은 걸 보니 김씨네 과일가게가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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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총 여섯 가지(강아지를 위한 메뉴도 하나 있다). 삼초계란 1번 품은 붕어빵, 팥붕, 완두붕, 불닭만두붕, 콘치즈만두붕, 슈커스터드붕 등. 아쉽게도 초코붕은 내가 방문한 날에는 판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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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을 먹어보기 전에 용어 정리부터 하고 가자. 붕어빵계에는 크게 붕어빵과 잉어빵이 있다. 두 가지 빵은 생김새만 비슷할 뿐 엄연히 다르다. 우리가 붕어빵이라고 부르는 그것,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그것은 사실 잉어빵이다. ‘붕어빵에서 이름만 살짝 바꿔서 잉어빵이라고 부르는 것 아니야?’라고 하겠지만 반죽이 다르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원조 붕어빵은 밀가루 반죽만을 사용하고, 잉어빵에는 반죽에 찹쌀, 버터 등을 넣는다. 그래서 기름지고 촉촉한 편이다. 사실 나도 원조 붕어빵을 먹어보질 못했다. 잉어빵과 달리 기름기도 적고 담백하다는 붕어빵은 잉어빵의 세에 밀려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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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유랑단의 붕어빵은 두께도 두툼하고 기름기도 적고 담백한 편이라 원조 붕어빵을 닮았다. 꼬리의 길이, 입술의 두께 등, 디테일한 생김새도 다르다. 붕어유랑단에서 사용하는 붕어빵 기계가 탐나서 네이버 쇼핑에 검색해보니 동일한 제품을 46만 원 정도에서 구매할 수 있다. (걱정마세요, 아무리 맥시멀리스트여도 업소용이라 살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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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본격적으로 맛을 보자.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미리 말하자면 포장해서 사무실까지 15분 정도 걸어갔다. 붕어빵을 받을 때부터 눅눅해질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바삭한 상태로 못 먹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에어프라이어에 3분 돌리면 식감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그것도 차선책일 수밖에 없으니 가능하면 매장에서 바로 먹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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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맛있었던 건 삼초계란 1번 품은 붕어빵이다. 후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나도 기대가 커서 첫 번째로 시식을 했다. 놀라운 것 하나, 계란이 반숙으로 들어가 있었다. 노른자가 흘러내릴 정도로 적절하게 익었다. 붕어빵에 반숙이라, 디테일한 굽기 실력에 박수를 보낸다.

참고로 삼초계란 1번은 삼초마을에서 판매하는 계란으로 좁은 케이지가 아닌 자연 방사로 키운 닭의 계란이다. 계란 껍질을 자세히 보면 시리널 넘버 같은 번호가 찍혀 있는데 가장 끝에 새겨진 번호가 사육환경을 말하는 번호다(4번이 가장 안 좋고, 1번이 가장 좋은 환경). 좋은 재료를 쓴 건강한 붕어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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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의외였다. 내가 알고 있던 붕어빵의 맛이 아니었다. 지금껏 먹어본 붕어빵은(사실은 잉어빵) 기름지고 바삭바삭하고 단맛이 강한 편인데, 이 붕어빵은 담백하고 부드럽다. 포슬포슬한 빵 같은 느낌이랄까. 이 차이는 어떤 사람에는 장점이고, 다른 사람이게는 단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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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완두붕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찹쌀의 비중이 높아서 식감이 쫄깃하다. 두께가 얇아서 바삭한 부분이 많은 기존의 붕어빵과는 확실히 다르다.

솔직히 말하자면 붕어유랑단의 붕어빵은 장르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짜장면의 프리미엄 버전이 간짜장인 건 맞지만, 붕어빵의 프리미엄 버전을 붕어유랑단의 붕어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붕어유랑단 붕어빵 가격이 하나에 1,000원 혹은 2,000원이니 가격만 보면 프리미엄 버전이 맞지만, 맛만 놓고 보면 상위 개념은 아니다. 취향으로 갈릴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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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로제 떡볶이를 처음 먹어 본 사람에게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다. “로제 떡볶이라니 너무 신기하다, 내 취향이야!” 또는 “로제 떡볶이라니, 신기하긴 한데 나는 원래 떡볶이가 더 좋아!” 붕어유랑단의 붕어빵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식감이 주는 재미가 있지만, 반대로 나쁜 맛이라고 해야 할까, 기름진 맛과 단맛은 약하다. 건강한 맛이다.

디에디트 동료들과 여섯 종류의 붕어빵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싹 다 먹은 걸 보니 맛은 좋았나 보다. 하지만 한 붕어빵 마니아는 “맛있긴 한데, 또 사 먹을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잉어빵과 붕어유랑단의 붕어빵 중 하나만 평생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먹겠냐는 나의 추가 질문에는 망설이지 않고 잉어빵이라고 답했다. 사실 나도 그 의견에 공감하는데 갓 만든 상태로 먹어보질 못해서 일단 공식 답변은 보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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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붕어빵 외에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불닭만두붕과 콘치즈붕. 불닭만두붕은 많이 맵지 않아서 좋았다. 매운맛이 너무 강하면 다른 맛의 존재감을 지워버리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살짝 매콤한 고기만두 느낌이 나는 붕어빵이었다. 불닭만두붕과 콘치즈붕 둘 다 내용물이 아주 실하게 들어가서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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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익숙한 음식을 새롭게 변주하는 도전을 응원한다. 붕어유랑단의 유랑 역시 응원한다. 이제 곧 봄이라 붕어빵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붕진스라면 봄에도 잘 팔릴 붕어빵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아 그리고, 붕어빵을 먹기 위해 붕어유랑단을 방문했는데 그다음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몇 군데 추천하려고 한다. 뚜르띠에르, 폴린에스프레소바, 테이블 소사이어티 클럽, 땅코참숯구이 뚝섬직영점.

붕어유랑단 팝업스토어

  • 주소 서울 성동구 성덕정길 32 1층 VERB
  • 영업시간 매주 목, 금, 토, 일 VERB 오픈
  • 추천 메뉴 계란붕어빵, 불닭만두붕, 콘치즈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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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