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왓챠 가입 10년 차 객원 에디터 임현경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 놀러 갔다가 행사 부스에서 새로 나온 영화 별점 기록 앱(구 왓챠, 현 왓챠피디아)을 설치한 이후 지금껏 쭉 애용하고 있다. 왓챠가 경영난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OTT 추천은 왓챠 오리지널 또는 독점 콘텐츠다. 누군가에게는 왓챠가 없어져서는 안 될 이유가 될 수 있는, 8편의 작품을 골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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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 마이 테이블>
“더 다양한 세상을 꿈꾸는 한 끼의 대화.” 프로그램 소개말이 모든 걸 설명한다. 이금희와 박상영은 매회 누군가의 식탁에 초대받는다. 식탁의 주인공은 제주, 안산, 광주 등 우리나라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주민. 음식과 함께 그들의 삶이 밥상에 올라와 모락모락 김을 낸다. 출연진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게 되고,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는 이주민이 어디서, 왜 이곳에 오게 됐으며 현재 ‘낯선 자’가 아닌 ‘우리’의 일부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잔잔한 휴먼 다큐라고 방심했다가는 맛깔나는 먹방 때문에 군침이 돌 수 있으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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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뇌에 티타늄을 이식한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자동차를 성애하면서 반대로 자신을 성적으로 욕망하는 사람들을 죽여버린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뱅상(뱅상 랭동)의 실종된 아들로 위장한 그는 새아버지와 미묘한 감정을 나눈다. 영화는 성령으로 인한 임신, 아버지를 거세한 아들 등 각종 신화를 전복시킨다. ‘괴물성’은 정상성을 무너뜨리고 여성성과 남성성은 경계가 모호해지며 인간성과 금속성이 융합되어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다. 저자본 단편부터 해외 영화제를 발칵 뒤집은 문제작까지. 극장에서 보자니 상영관이 드물고 OTT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그 영화, 왓챠에 있을 확률이 높다.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 역시 대중성이나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딘가에는 꼭 필요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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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리릭스>
아무리 가수의 음색이 좋아도 가사 전달력이 나쁘면 잘 듣지 않게 되고, 단어가 맥락 없이 반복되거나 파편처럼 흩뿌려진 노래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손을 들어보자.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인사이드 리릭스>를 봐야 한다. <인사이드 리릭스>는 가사로써 아티스트의 내면을 바라본다. 아티스트는 직접 골라온 단 한 곡의 가사를 가지고서 김이나 작사가와 대화를 나누며 그에 담긴 순간, 나아가 삶을 털어놓는다. 인생을 뒤바꾼 거대한 사건부터 ‘나’ 그 자체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의 일부 또는 전부를 들을 수 있다. 긴 이야기는 다른 아티스트가 가사를 새롭게 해석해 꾸미는 무대로 마무리된다. 창작물에 해석의 여지를 두지 않고 정답을 밝히는 일은 자칫 위험할 수 있는데, <인사이드 리릭스>는 또 다른 창작을 통해 이를 영리하게 해소한다.
[4]
<더블 트러블>
KBS2 <불후의 명곡>과 SBS <짝>을 섞어놓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 남녀 5명씩 총 10명의 아티스트가 듀엣 무대에 설 파트너를 선택하며 연애 프로그램에서 볼법한 장면을 연출한다. 구성은 촌스럽고 무대 세트도 허술해 보인다. 하지만 이토록 혼란스러운 와중 ‘음악 방송’이라는 본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 <더블 트러블>의 매력이다. 아티스트들은 어떤 무대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며 파트너를 선택하고 짝을 이루고 나선 음색과 음역대, 퍼포먼스 콘셉트와 장르에 대해 논의한다. 멀리서 봤을 땐 데이트 같아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치열한 프로들의 현장이다. 무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의 방식도 마찬가지. 고화질 덕에 격렬한 동작에도 화면이 깨져 보이는 ‘깍두기 현상’이 없고 중간에 관객이나 패널의 리액션이 삽입되지 않아 오롯이 공연에 집중할 수 있다. 트로트 방송 심사 위원이 아닌 무대 위 아이돌 김준수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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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
미국 방송사 Showtime의 10부작 드라마. ‘대통령의 아내’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쓴 세 명의 퍼스트레이디를 조명한다. 엘리너 루스벨트(질리언 앤더슨), 베티 포드(미셸 파이퍼), 미셸 오바마(비올라 데이비스)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과거의 각기 다른 시대가 안고 있었으나 현재까지를 관통하는 과제들을 보여준다. 퍼스트레이디들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움직임은 그들의 생애와 행보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시사한다. 미셸은 자신을 촬영하는 사진작가에게 ‘왜 대통령이 아닌 나를 지목했는지’ 묻는다. 그러자 ‘진실’을 담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이처럼 영부인은 상징성을 가진 존재로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유지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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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 대부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 <대부>는 1972년 뉴 할리우드 시대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재까지도 씨네필이라면 꼭 봐야 하는 명작으로 회자되곤 한다. 바로 그 영화의 제작사 파라마운트가 개봉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오리지널 드라마. 기존의 제작기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 중에서도 프로덕션에 주목했다면, <오퍼: 대부 비하인드 스토리>는 감독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댄 포클러)보다는 프로듀서 앨버트 러니(마일스 텔러)와 제작사 대표 로버트 에번스(매튜 굳)를 중점에 두고서 자본, 사업적 선택, 시대 상황 등을 함께 보여준다. 프로듀서, 제작자, 에이전트, 감독, 작가 등 각자의 이유로 거대한 산업에 뛰어든 사람들이 때론 무모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며 위대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꿈과 낭만의 할리우드 (자아도취) 회고록. <대부> 시리즈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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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엔드 오브 스톰>
1992년 출범 이후 30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이뤄낸 리버풀 FC를 다룬 다큐멘터리. 특정 종목에 대해 깊이 다루기보다는 보편적인 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가볍게 볼 수 있다. 팬들에겐 2019-2020 시즌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굿즈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자신이 결코 잘나거나 특출난 사람이 아님에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 감독의 치밀한 전술 등 여러 조건이 부합했겠지만, 그것이 ‘리버풀이 승리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란 의미다. 응원가 ‘You will never walk alone’의 노랫말처럼, 리버풀은 ‘함께’라는 것을 잊지 않고 달려왔기에 그토록 염원했던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 좌절은 없다>, <아르센 벵거: 무패의 전설> 등 다른 축구 다큐도 왓챠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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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그림작가 맷 퓨리는 어딘가 낯익은 개구리를 그리며 “the happy little frog”라고 칭한다. 개구리의 이름은 ‘페페’. 누구나 인터넷 서핑 중 한 번쯤은 ‘개구리 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구리의 이름과 감정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익명 커뮤니티, 대안 우파를 거치며 페페에게 덧입혀지는 밈은 행복한 개구리를 혐오의 상징으로 바꿔놓는다. 원작자 맷은 이를 막기 위해 만화로써 페페를 죽이고 장례식을 치르지만, 이미 그의 손을 떠난 창작물은 걷잡을 수 없이 왜곡된다. 페페를 구하기 위한 맷의 분투는 그간 일상에서 쉽게 웃어넘겼던 밈들을 환기시킨다. 비단 페페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닌, 현 사회에서 밈이 형성되고 혐오와 폭력을 재생산하는 양태를 짚어보는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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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경
이야기와 글쓰기, 사람들을 만나 삶의 일부를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