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직은 작은 영화평론가 김철홍이다. 에디터B로부터 2023년에 기대할 만한 영화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큰 거’인 줄 알고 본 영화에, 오히려 실망을 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 영화의 대부분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아무런 기대 없이 본 영화들이었고, 자연스레 새로운 영화를 볼 땐 되도록이면 사전 정보를 최소화한 상태로 관람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대되는 영화들을 갈무리해보는 이 작업은 개인적으론 인생 영화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을 낮추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공개가 예정된 영화들의 이름만 보고도, 이미 기대감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도 속는 셈 치고 또 한 번 외쳐본다. ‘이번엔 정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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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이다. 사실 그 외의 말은 필요 없다. 그러고 보면 스필버그는 ‘말이 필요 없는’이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딱히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그러면서 동시에 소개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를 찍는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자전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영화 만들기의 꿈을 꾸고 있던 소년 새미가 주인공이다. 스필버그는 이번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 그동안 자신이 찍은 영화엔 ‘메타포’로써 자신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었다면, <더 파벨만스>엔 자신의 ‘메모리’가 들어가 있다고. 공개된 예고편만 보아도 벌써 감동적인데, 그 마지막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장 좋았던 장면이 뭐야?(What was your favorite part?)” 어쩌면 <더 파벨만스>가 많은 사람들의 2023년 최고의 장면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 달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이미 작품상(드라마)과 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곧 있을 오스카에서도 주요 부문 수상이 유력시되고 있다.
- 개봉일 미정. 일본 개봉일(3월 3일)과 오스카 일정을 따져보면 3~4월쯤으로 예상됨.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 세스 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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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더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밀리에 진행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J.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라고 한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CG를 최대한 자제하는 ‘실제 촬영’의 아버지이자 ‘아이맥스 촬영’의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는 놀란 감독이 표현하는 원자폭탄의 비주얼이 주요 관심사다. 공개된 공식 예고편을 통해 잠깐이나마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수의 놀란 영화에서 조연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했었던 킬리언 머피의 첫 주연 작품이며,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 플로렌스 퓨, 라미 말렉, 게리 골드만, 조쉬 하트넷, 마이클 케인 등 할리우드의 ‘핵폭탄급’ 배우들이 크고 작은 역할로 얼굴을 비출 예정.
- 개봉일 7월 예정
-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 플로렌스 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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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2018년에 개봉했던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의 후속작이다. 개봉 당시 멀티버스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으로, ‘스파이더맨’ 영화뿐만 아니라 슈퍼 히어로 영화 중에서도 최고작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본편과 시기적으로 이어지는 영화로 메인 빌런은 코믹스 원작에서도 등장한 적 있는 ‘스팟’이라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간 이동이 가능한 ‘포털’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캐릭터다. 예고편에 따르면, 주인공 마일스는 전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스파이더맨들과 힘을 합칠 것으로 보인다. 마일스는 과연 이번 영화에서도 그 쟁쟁한 스파이더맨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마일스의 여정은 내년 개봉 예정인 <비욘드 더 스파이더버스(Spider-Man: Beyond the Spider-Verse)>에서도 계속된다고 한다.
- 개봉일 국내 미정(북미 6월)
- 감독 호아킴 도스 산토스, 켐프 파워스, 저스틴 K.톰슨
- 출연 셔메이크 무어, 헤일리 스타인펠드, 제이크 존슨, 오스카 아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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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셰린의 밴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 작품상 후보이자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에게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쓰리 빌보드>의 감독 마틴 맥도나의 신작이다. 당시 작품상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가 수상하였는데, 당시 <셰이프 오브 워터>를 지지하던 친구와 의가 상할 정도로 열렬한 토론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이니셰린의 밴시>가 절친 퍼드릭과 콤의 싸움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실상 둘의 싸움이 이야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미니멀한 작품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를 표현한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게 된다. 이를 증명하듯 베니스영화제는 이 영화에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콜린 파렐)을 주었고, 골든글로브 역시 작품상(뮤지컬코미디), 각본상, 그리고 남우주연상으로 화답했다. <더 파벨만스>의 오스카 독점 수상을 저지할 강력한 경쟁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로, 웰메이드 아트하우스 영화에 목마른 국내 영화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 개봉일 연초 개봉 예정
- 감독 마틴 맥도나
- 출연 콜린 파렐, 브렌던 글리슨, 배리 키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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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
나올 때마다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2015년 작품인 <굿 다이노>의 연출자 피터 손이 감독을 맡았다. 엘리멘탈은 말 그대로 원소를 뜻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물, 불, 땅, 공기 등 세상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이다. 감정을 의인화했던 <인사이드 아웃>의 원소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공개된 포스터와 예고편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건, 영화의 주요 전개가 불 앰버와 물 웨이드 간의 티키타카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불같은 성격 또는 물 같은 성격을 가진 타인을 이해할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기대된다.
- 개봉일 국내 미정(북미 6월)
- 감독 피터 손
- 출연 레아 루이스, 마모두 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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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파트2>
2021년 최고의 기대작 중 한편이었으나, 기대가 큰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남기기도 했던 <듄>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사실 <듄>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도 했다. 방대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원작의 특성으로 인해, 세계관과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파트2는 정말로 기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극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만 있다면, 1편에서도 인정받았던 비주얼적인 완성도와 더불어 어마어마한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기존의 티모시 샬라메를 필두로 한 화려한 출연진에 더해, 레아 세이두와 플로렌스 퓨, 그리고 2022년 작 <엘비스>를 통해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오스틴 버틀러가 새로 합류했다.
- 개봉일 북미 11월 3일 확정으로, 국내 동시 개봉될 것으로 예상. 아니 바람.
- 감독 드니 빌뇌브
- 출연 티모시 샬라메, 젠데이아, 레베카 퍼거슨, 하비에르 바르뎀, 레아 세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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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복순>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등을 연출한 변성현 감독의 넷플릭스 공개 예정 영화다. 곧 열릴 73회 베를린 영화제의 베를리날레 스페셜 부문에 초청되었다.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인 길복순이 펼치는 엄청난 액션이 기대되는 영화인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이름이다. 전도연, 설경구, 이솜, 구교환. 이미 여러 번 호흡을 맞춘 두 베테랑 배우가 묵직한 연기를 보여주고, 그 어떤 영화에서도 기억에 남는 무언가를 남기고야 마는 두 신성들이 어김없이 제 몫을 해낼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변성현 감독은 요즘의 국내 감독 중 가장 폼이 좋은 감독 중 한 명이다. 2022년 초에 개봉한 <킹메이커>는 작년 열린 백상예술대상과 대종상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불한당>은 칸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길복순>까지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면 변 감독의 몸값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 개봉일 2023년 1분기 예정
- 감독 변성현
- 출연 전도연, 설경구, 이솜, 구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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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이즈 어프레이드>
‘아리 애스터’라는 이름을 아는가? 그는 1986년 출생의 뉴욕 출신 감독으로, <유전>(2018)과 <미드소마>(2019)가 그의 대표작이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그의 세 번째 영화이자 또 한 편의 대표작이 될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만드는 영화마다 대표작이 된다는 것인데, 이렇듯 아리 애스터는 단 두 편의 영화만으로 공포 영화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신예 감독이다. 그의 신작 역시 공포 영화다. 포스터나 예고편을 정말 1초만 보아도 순식간에 공포가 느껴질 것이다. 특히 무언가에 홀린 듯한 호아킨 피닉스의 표정이 가히 압도적이다. 당신이 공포 영화 매니아라면, 올해 이 영화만큼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 개봉일 국내 미정(북미 4월)
- 감독 아리 애스터
- 출연 호아킨 피닉스, 파커 포시, 에이미 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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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정우성 감독의 장편 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동명이인이 아닌 배우 정우성이 맞다. 과연 정우성이 연출한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무엇보다 작년 배우 출신 감독의 저력을 보여준 이정재 감독의 데뷔작 <헌트>로 인해 <보호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상태다. <보호자>는 <헌트>에 못지않은 액션 영화다. 정우성이 직접 연기하는 주인공 수혁은 조직의 실력자였던 인물로, 이제 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한다. 하지만 마치 현실의 정우성이 그렇듯 절대 평범해질 수 없는 그는 결국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아마도 많은 피가 튀길 것만 같은 이 영화의 감독을 꼭 정우성이 맡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의 연출에 대한 열망만큼은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다. 한국 영화의 팬으로서 여러모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 개봉일 미정
- 감독 정우성
- 출연 정우성, 김남길, 박성웅, 김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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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파이더맨도 가고… 닥터 스트레인지도 가고… 토르도 가고… 믿고 있었던 블랙팬서마저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멀리로 떠나가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처음부터 저 멀리 은하계에서 우리를 울고 웃게 해줬던 ‘가오갤’ 멤버들뿐이다. 가오갤마저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MCU의 미래는, 아니 슈퍼 히어로 영화의 미래는 정말로 밝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감독 제임스 건의 요즘 퍼포먼스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젠 DC 스튜디오의 수장이 되어버린 그는 21년에 개봉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통해 아슬아슬한 수위의 농담을 줄타기하는 능력과 잔인한 액션 장면을 코믹스럽게 표현하는 자신의 장기가 건재함을 증명해냈다. 이번 3편이 가오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그 피날레가 멋있게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 개봉 예정 5월
- 감독 제임스 건
- 출연 크리스 프랫, 데이브 바티스타, 브래들리 쿠퍼, 빈 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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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 수상. 영화 글과 평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