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거 다 보면, 2022년 다 본 거다?

안녕, 연말에 특히 더 바쁜 영화 평론가 김철홍이다. 한 해 동안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인간관계를 수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안녕, 연말에 특히 더 바쁜 영화 평론가 김철홍이다. 한 해 동안 미처…

2022. 12. 28

안녕, 연말에 특히 더 바쁜 영화 평론가 김철홍이다. 한 해 동안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인간관계를 수습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해가 가기 전에 올해 공개됐던 영화와 OTT 시리즈 화제작들을 최대한 많이 챙겨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은 사실 관련이 없지 않다. 간만에 얼굴을 보는 지인들과의 대화 주제로, 인기 드라마나 영화만큼 적절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2022년을 대표하는 열 편의 영화/드라마 리스트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이 열 편만 다 보면, 2022년을 다 봤다고 해도 될 수도 있다. 2022년엔 물론 선정된 것들 외에도 굉장한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많아 대체 뭐부터 봐야 할지 고민 중이라면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10위
<썸머 필름을 타고!>
7월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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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의 꿈을 갖고 있는 고등학생 ‘맨발’이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힘을 모아 영화를 찍는 과정을 싱그럽게 담아낸 영화다. 한여름에 개봉하여 3만 3,000명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렀다. 얼핏 그리 크지 않은 숫자처럼 느껴질 순 있지만, 이 영화의 제작 규모와 개봉 과정을 고려해보면 엄청난 결과가 맞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재팬 필름 페스티벌’에서 소규모 온라인 상영된 후, SNS의 입소문을 타고 정식 개봉하게 된 영화다. 즉, 이 영화는 말 그대로 ‘관객이 선택한 영화’다. 그것도 그냥 관객이 아닌,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 이 영화가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지금 혹은 과거 언젠가,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or 사랑했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9위
<수리남>
9월 9일 넷플릭스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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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 <오징어 게임>이었다면, 올해의 넷플릭스 대표작은 <수리남>이었다. 물론 그 평가와 파급 효과는 훨씬 못 미쳤던 것이 사실이지만, 공개 전후로 이 시리즈를 통해 ‘수리남’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 사람이 꽤 많았던 것은 맞다. 솔직히 기본적인 정보만 두고 봤을 때 <수리남>은 <오징어 게임>보다 훨씬 더 기대를 받는 작품이었다. 윤종빈이라는 감독의 이름값이나 하정우,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이 포함된 배우진의 무게감이나. 그 기대에 완벽히 부합한 작품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보다가 중도하차할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도 아니었다. <수리남>은 역시 <오징어 게임>과 마찬가지로 추석 연휴의 시작에 적절히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추석 잔칫상에 올랐고, 몇 가지 유행어를 남겼다. “식사는 잡쉈고?”와 “너 사탄 들렸어?”가 그것이다. 유행어는 너무 반복하면 재미없으니, 이제 이 두 개는 내년엔 그만하도록 하자.


8위
<아바타 : 물의 길>
12월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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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에 개봉했지만 가히 올해의 영화 중 한 편으로 꼽을 만하다. 올 초부터 이 영화의 예고편이 조금씩 공개되었던 것과, 9월에 <아바타> 1편의 리마스터링 버전이 개봉했던 것을 떠올리며 <아바타 : 물의 길>이 일 년 내내 우리의 곁에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감성적인 접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명확한 지표가 눈앞에 있다. 12월 27일 기준, 아바타는 올해 한국 박스오피스 개봉작 중 관객 수 성적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게 올해의 콘텐츠가 아니면 무엇일까. 1편 후 흐른 13년이란 시간도, 코로나도, OTT 플랫폼의 습격도, 비싼 티켓값도, 192분이라는 역대급 상영시간도, 오랜만에 쓰는 불편한 3D 안경도, 매서운 추위도 <아바타 : 물의 길>은 이겨냈다.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한 건 앞으로 5편까지 기획/제작되어 있는 아바타 시리즈가, 개봉할 때마다 매년 ‘올해의 영화’ 리스트에 오를지다. 그게 궁금해서라도, 나는 아바타 당신을 볼 것입니다.


7위
<재벌집 막내아들>
11월 18일~12월 25일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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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목과 배우 이름을 보고(누군진 비밀이다) 재벌 가문 내의 막장 서사를 다룬 그저 그런 드라마인 줄 알았다.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추천을 받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추천의 강도가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졌고, 속는 셈 치고 1화를 봤다. 그리고 1화의 마지막, 이상한 세계에서 진양철 회장을 마주친 진도준의 놀라는 표정을 보고 이 세계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각박한 현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타임머신 타고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 1위가 ‘비트코인이 100원이던 때’인 지금 시절에, 진도준보다 더 매력적인 슈퍼히어로는 없을 것이다. 분당과 DMC를 사고, <타이타닉>에 투자하고, 차기 대통령 당선자를 맞추는 주인공에 열광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진양철의 아니 이를 연기한 이성민 배우의 호통이 스크린을 넘어 우리의 영혼을 때린다. 2022년 한국 주중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작품이다.


6위
<나의 해방일지>
4월 9일~5월 29일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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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를 통해 많은 드라마 팬들의 ‘인생 드라마’ 리스트를 업데이트시킨 박해영 작가가 그 목록을 다시 한번 갱신 시켰다. <나의 해방일지>는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미미했지만 올해 그 어떤 드라마보다 SNS에서 언급이 많이 됐었던 작품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됐을 단어는 단연 ‘추앙’일 것이다.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단어. 사람 입에서 추앙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본 적 자체가 없는 나의 머릿속엔, 염미정이 날 추앙하라고 하며 뱉었던 그 말들이 1년 내내 남아 있었다. 물론 그에 못지않게 잊을 수 없는 것은 (손석)구씨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구씨가 미정에게 보낸 문자의 말투다. ‘혹시 먹고 싶은 거. 나 구씨’. 또한 <나의 해방일지>는 전국에 알게 모르게 수많은 해방클럽을 양산했을 것이다. 그들의 해방을 정말로 응원한다.


5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6월 29일~8월 18일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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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읽어도 우영우,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인 우영우. 그러나 우영우란 인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무엇을 먼저, 어떤 순서로 이야기하는 게 더 ‘옳을지’에 대해 항상 고민하곤 한다.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있지만, 자폐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아니면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지만,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켜준 작품이라는 칭찬과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공존한, 올해 가장 뜨거운 드라마 중 한 편이었다. 그러나 앞에 쓴 것처럼, 이 작품이 무엇이 더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전 국민에게 재밌게 제공한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영우가 끼친 영향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 점심엔 왜인지 김밥을 먹고 싶은 날이 있었다면,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머릿속에서 돌고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면, 회의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이의 있습니다”를 외쳤다면, 회전문을 지날 때 괜히 한번 왈츠 스텝을 밟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그건 모두 우영우가 전파한 긍정 기운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것이다.


4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10월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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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블이 공개한 영화들은 대체로 실패했다. 그들이 거대한 멀티버스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대혼돈에 빠져 있는 동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 영화들의 1/10의 제작비만으로 훨씬 유쾌하고 감동적인 멀티버스 영화를 완성시켰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고민에 빠진다. 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 속 시작 말고, 진짜 이야기의 시작 말이다. 에블린이 웨이먼드의 프로프즈를 승낙했던 순간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에블린이 딸 조이의 커밍아웃을 듣고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했던 순간부터 시작된 이야기인 것일까. 다 의미 없고 하나의 돌덩어리가 된 순간이 진짜 시작일 수도 있다. 끝처럼 보이는 순간이 시작일 수도 있고, 시작처럼 보이는 순간이 정말 끝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동시에 경험한 에블린은 그 모든 순간, 다시 시작한다. 우리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3위
<탑건 : 매버릭>
6월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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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범죄도시2>가 기록한 관객 수 1200만 스코어를 제외하면, 그 가장 맨 위에 <탑건 : 매버릭>(817만)이 있다. 87년에 시리즈의 1편을 개봉했던 영화가, 36년 만에 후속작을 낸 뒤 이토록 뜨거운 호응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건 당시 20대였던 톰 크루즈 역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60세인 톰 크루즈는 자신이 멋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젠 정말로 CG가 아무런 거부감을 주지 않는 시대에, 그만큼 직접 달리고 뛰어내리고 온몸을 던지는 액션 배우는 세상에 없다. 이젠 정말로 OTT가 아무런 거부감을 주지 않는 시대에, 이 작품만큼 큰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 장치를 보유한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세상에 없다. <탑건 : 매버릭>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슈퍼스타가 만든 ‘라스트 시네마’다.


2위
<파친코>
3월 25일~4월 29일 애플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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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TV+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물론 애플 TV+의 ‘<파친코>’라는 도박은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국내 OTT 점유율이나 가입자 수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 번 가입해 볼까?’라는 고민을 안겨준 것만으로도, 후발주자로서는 나쁘지 않은 베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파친코>는 작품 외적으로도 할 얘기가 많은 콘텐츠이지만, 실은 드라마 그 자체가 대하소설에 맞먹는 깊이를 지닌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다룬 콘텐츠는 이미 많지만, <파친코>만큼 그 프레임의 폭을 넓고 깊게 설정한 작품은 없었다. 그런 작품이 미국 기업의 달러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제작이 확정된 시즌2가 공개될 때쯤엔, 애플 TV+ 가입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재고 해봐도 좋을 것 같다.


1위
<헤어질 결심>
6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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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헤어질 결심>이다. <헤어질 결심>을 빼곤 2022년을 논할 수 없다. 앞서 2022년을 다 보는 데에 열 편만 보면 된다고 썼지만 거짓말이었다. <헤어질 결심>만 봐도, 2022년은 얼추 넘어갈 수 있기는 하다. 이 영화가 올해에 이룬 업적에 대해선 아무리 말을 더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마지막 몇 마디를 추가하려고 한다. <헤어질 결심>은 누가 뭐래도 영화는 고귀한 예술이라고 말하는, 박찬욱 감독의 선언 같은 영화였고, 영화를 즐길 거리 그 이상의 ‘예술’이라고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 작품이다. 내게 있어 2022년은, 온 국민이 <헤어질 결심>이라는 예술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니까. 2023년에 또 어떤 영화와 드라마가 우리를 즐겁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2022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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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 수상. 영화 글과 평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