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붕어빵의 제철은 겨울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을 마주하면 비로소 겨울이 왔구나 싶다. 겨울임을 알리는 간식이 어디 붕어빵뿐일까. 호떡, 찐빵, 계란빵 등 겨울 간식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많다. 아홉 명의 에디터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겨울 간식이 무엇인지 물었다. 일단 나의 대답은 닭꼬치임을 밝힌다.
닭꼬치 / 에디터B @summer_editor
사계절 파는 닭꼬치를 겨울 간식이라고 해도 될까 싶지만, 겨울에 더 맛있으면 겨울 간식인 거지, 라는 생각으로 닭꼬치를 선정했다. 사실 나의 최애 겨울 간식은 땅콩과자이지만 땅콩과자 사진을 구할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닭꼬치로 바꾸었다는 사연을 굳이 말씀드린다. 닭꼬치는 절대 하나만 먹을 수 없다. 일단 소금 닭꼬치를 하나 먹고, 그 다음엔 양념 닭꼬치, 그 다음엔 매운 양념이나, 데리야끼 같은 것까지 먹어줘야 섭섭하지 않다. 그러다 보면 배가 차게 되는데 이상하게 닭꼬치로 채운 배는 금방 꺼지곤 해서 뒤돌아서면 다른 간식을 찾게 된다. 금방 배가 꺼진다는 것, 먹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로운 현상이다. 사진 속 닭꼬치는 화곡동이지만, 용산 아이파크몰 앞 포장마차촌에서 자주 먹었다.
호떡 / 조서형 에디터 @veenu.82
겨울 간식 하면 호떡이다. 계피 향이 더해진 갈색 설탕을 후끈후끈한 찹쌀 반죽이 안고 있는데 동서양의 입맛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이런 겨울 간식이 또 없다. 할 줄 아는 일이 없을 때 일 년 반쯤 도쿄에서 호떡을 구운 일이 있었다. 동그란 호떡을 빚는 일은 신경 쓸 게 많다. 겉을 태우지 않으면서 속은 완전히 녹이고, 속을 넉넉하게 채우면서 겉이 터지지 않게 해야 했다. 고도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에 집중하느라 겨울을 두 번이나 보낼 수 있었다. 둥글넓적하고 평평한 겉모습과 달리 호떡의 속은 아주 뜨겁고 강렬하다. 전형적인 외유내강이다. 올겨울엔 호떡 같은 인간이고 싶다.
붕어빵 / 정경화 에디터 @_hwa_0125
에디터B가 좋아하는 겨울 간식을 물어왔을 때,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따끈한 수프, 이불 속에서 까먹는 귤, 군고구마… 하지만 역시 붕어빵만 한 것이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붕어빵은 내 원픽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 붕어빵 장사하면 안 돼? 그러면 맨날 먹을 수 있잖아”라고 철없는 말을 내뱉기도 했을 정도. 애정하는 음식일수록 나만의 먹는 방법이 있는데, 붕어빵도 마찬가지다. 부드러운 머리에서 시작해 바삭한 꼬리로 끝낸다. 먹다 보면 중력의 법칙에 의해 앙금이 밑으로 내려가 마지막에 더 달고 바삭한 궁극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슈크림과 팥을 반반 사서 일단 슈크림 먼저 먹고 팥, 그리고 슈크림으로 마무리한다. 어느 맛 하나 놓칠 수 없으니까. 아, 상상하다 보니 또 먹고 싶다. 이제 곧 영하의 추위가 찾아온다. 가슴 한켠에 품으면 웬만한 핫팩보다 든든한 한 봉지, 어서 또 안으러 가야지.
찐빵 / 강현모 에디터 @khm1406
“my bentley all white like 호빵”(DOK2 ‘In My Whip’ : The Quiett 벌스 중). 더 콰이엇에게는 ‘호빵’이라는 애칭의 외제차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진짜 호빵이 있다. 래퍼의 가사에도 들어갈 정도로 익숙한 이 간식이 나에게는 가장 사랑스러운 겨울 간식. 왼쪽 – 오른쪽 손바닥으로 번갈아 가며 엎치락뒤치락하면 손도 따뜻해지고, 겉이 적당히 식었을 때 반으로 가르면 그것만큼 맛있는 게 없으니까. 열 살 때였을까. 호빵과 찐빵의 차이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궁금한 걸 도저히 못 참는 성격이라 인터넷과 책을 뒤졌고, 답을 알게 됐다. 이 음식이 처음 만들어질 때의 이름은 ‘찐빵’이었고, 그것을 한 기업에서 상품화한 명칭이 ‘호빵’이라는 것. 대일밴드, 크리넥스, 버버리 코트가 고유명사처럼 쓰이듯이 ‘00호빵’은 아니지만 상품명 자체로 기억되고 있는 셈이다. 궁금한 걸 찾게 만드는 습관을 만들어 줬고, 그 습관 덕에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아주 고마운 간식이다. 열 살 때 들른 그 만두가게에 찐빵 사러 줄 서 있는 지금, 막간을 이용해 모바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하, 침 고인다.
계란빵 / 김정현, 팀포지티브제로(TPZ), BGM 매거진 에디터 @kimjeonghyeon_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국화빵에도 국화가 들어가지 않는다. 과연 겨울 간식 계의 홍철 없는 홍철 팀이다. 그러나 계란빵에는 계란이 있다. 그냥 있는 수준이 아니라 한 알이 통째로 들어간다! 밀가루를 베이스로 버터, 설탕, 우유, 베이킹파우더 등의 각종 재료를 때려 넣은 반죽에 계란까지 합세하여 단맛과 짠맛과 고소한 맛의 미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요망한 녀석. 가볍게 식사 대용으로도 즐기기 좋은 이 든든한 빵은 귀엽기까지 하다. 귀여운 빵을 들고 다니며 한 입씩 베어 물다 보면 나까지 귀여워진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지. 거기에 K-겨울 간식의 필수 조건인 ‘촌스러움’까지 갖췄다. 꽃무늬 종이컵에 담아주지 않는 계란빵은 진정한 계란빵 대열에 끼워주지 않겠다는 소리다. 두 손에 든 따뜻한 계란빵을 호호 불어가며 종로 거리를 걷는 연말 풍경은 상상만 해도 행복 그 잡채. 붕어빵보다는 유니크하고, 땅콩빵보다는 찾기 수월한 이 겨울 간식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군고구마 / 임현경 에디터 @dolce.hyun
일상 속 작은 위안이 필요한 순간에는 군고구마를 찾는다. 어릴 때는 붕어빵, 호떡과 함께 군고구마 아저씨가 리어카를 끌고 거리에 나오면 겨울이 왔다는 걸 실감했다. 과자를 참아가며 용돈을 아낀 건 이날을 위해서였다. 구의역 2번 출구 앞 군고구마 아저씨에게 달려가 지폐와 동전을 주섬주섬 모아 3천 원을 건넸다. 아저씨는 커다란 드럼통에 달린 동그란 서랍을 열고 그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를 꺼내 갈색 봉투에 넣어줬다. 그걸 난로 삼아 품에 안고서 집으로 향할 때의 포만감은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겨울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쉽게 군고구마를 살 수 있지만, 괜히 옛날 그 맛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릴 땐 마냥 좋았는데 이젠 껍질을 까면서 손끝이 끈적해지고 검댕이 묻는 것도 번거롭다. 그래도 여전히 군고구마를 좋아한다. (단, 수분이 많은 호박고구마여야 한다. 그래야 굽고 나서도 퍽퍽하지 않다.) 배추김치 속 무채를 올려 와앙 베어 물면 입안 가득 단짠단짠, 부드러운 고구마와 오독오독한 무의 식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입에 짠맛이 가실 때쯤 우유를 마셔주면 기분 좋은 단향이 남는다. 어린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엔 긴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이 작은 일상이 주는 확실한 행복은 그대로다.
밤잼 / 에디터H @editor_ha
“가장 좋아하는 겨울 간식”이라니 듣기만 해도 설레는 질문이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곳에서 안락한 식도락을 즐기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나에게는 이런 따뜻한 순간에 술이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와인과 어울리는 간식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밤! 군밤, 찐밤 다 좋아하지만 달게 졸인 ‘밤잼’의 매력도 상당하다. 바삭한 크래커나 바게트 위에 크림치즈를 듬뿍 바르고 밤잼을 덧바르면 겨울밤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안주가 된다. 이 환상적인 안주를 벗삼아 와인을 2병 넘게 비우고 비틀대다 넘어져 발등뼈가 부러진 적이 있다는 것은 비밀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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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