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선과 악 사이에서, <블랙 아담>

안녕, 에디터B다. 드웨인 존슨 보다는 ‘더 락’을 좋아했다. 연기력과 쇼맨십이 좋아서 더 락의 경기엔 쉽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드웨인 존슨이 나왔던...
안녕, 에디터B다. 드웨인 존슨 보다는 ‘더 락’을 좋아했다. 연기력과 쇼맨십이 좋아서 더…

2022. 10. 19

안녕, 에디터B다. 드웨인 존슨 보다는 ‘더 락’을 좋아했다. 연기력과 쇼맨십이 좋아서 더 락의 경기엔 쉽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드웨인 존슨이 나왔던 영화 중 인상 깊었던 게 없었다. 그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카체이싱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분노의 질주>를 보다가 말았고, 재난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샌 안드레아스>는 보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레드 노티스>는 범죄 영화치고 구성이 평범하고 캐릭터의 매력도 떨어졌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블랙 아담>을 보고 처음으로 드웨인 존슨의 매력에 빠졌다는 것. 블랙 아담은 드웨인 존슨 그 자체였다. 역대급 명작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의 필모그래피 중 대표작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블랙 아담>의 줄거리는 이렇다.

*스포일러 주의. 초중반까지의 내용이 있고, 쿠키가 언급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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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크라는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5000년 전엔 아주 잘 나갔지만 현재는 인터갱이라는 국제범죄조직에 착취 당하는 힘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그러던 어느날, 5000년 동안 잠들어있던 영웅 ‘테스 아담’이 잠에서 깨고 칸다크 국민을 대신해 인터갱을 무찔러준다. 테스 아담이 위험 인물이라고 판단한 미국 정부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를 칸다크에 파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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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줄거리가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럴만하다. 검은색 쫄쫄이를 입은 사람이 하늘을 달고, 손에서 번개를 쏘면서 진지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자칫 우스워보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세계관에 금세 빠져들었다. 칸다크는 가상의 국가이지만 현실의 국제 관계를 떠올리게 하니까.

1400_press_still04 [블랙 아담과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멤버 호크맨]

영화 초반, 블랙 아담과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이하 ‘소사이어티’)의 대결이 있는데, 블랙 아담이 워낙 막강해서 그를 저지하지 못한다. 이때 칸다크 국민들은 블랙 아담을 응원한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왔다는 소사이어티의 말은 듣지 않는다. 칸다크가 그동안 인터갱에 착취당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우리만의 영웅이 생기니 막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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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정의라는 이름을 앞세워 세계의 경찰인 양 행동하지만 그 선택에는 기준이 있다. 미국에 피해를 끼칠 정도로 위험한가, 그 행동이 미국에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는가. 영화 속에서 미국 정부는 칸다크 국민들이 착취를 당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 손놓고 있다가 블랙 아담이라는 위협적인 인물이 등장하니 싹을 잘라버리려고 한다.

그리고 블랙 아담 저지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다름 아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나왔던 ‘아만다 월러’다. 그녀는 미국 정부 산하의 A.R.G.U.S. 국장이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나오듯 교도소 수감자를 모아 무모한 작전에 투입하고 성공하면 감형해주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생명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다. <블랙 아담>에서 비중은 극히 적지만 여기서도 실질적 빌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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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 “세상을 구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라는 문구가 있다보니 데드풀, 베놈 같은 안티 히어로가 아닐까 싶지만, 영화를 다 보면 빌런과 히어로 사이에 애매하게 있지 않다. 확실한 영웅이다. 그에겐 선함과 정의로움이 있으며, 재미로 영웅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5000년 동안 잠들어있어서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걸 모를 뿐. 블랙 아담은 자신을 구해준 아드리아나와 아몬 그리고 잠시 동맹을 맺은 소사이어티에게서 아무리 나쁜 사람도 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걸 배우고, 유머도 배우면서 온화해지기 시작한다.

1400_press_still09 1400_press_still07 1400_bbb11.03.09 [위에서부터 아톰 스매셔, 사이클론, 닥터 페이트 순]

이쯤에서 소사이어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멤버는 넷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크맨, 닥터 페이트, 사이클론, 아톰 스매셔. 바람을 일으키는 사이클론과 몸이 커지는 아톰 스매셔는 서브 역할을 하고, 호크맨과 닥터 페이트가 작전을 이끌어간다. 블랙 아담의 파괴적이고 호쾌한 액션, 호크맨의 비행술과 철퇴 액션이 주는 재미가 시원시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닥터 페이트의 역할이 상당하다. 블랙 아담이 영화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닥터 페이트에게 매료되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마치 <샹치>를 보고 양조위를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닥터 페이트는 마법사다. 미래를 볼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미래를 볼 줄 안다는 건 운명을 안다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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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담>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운명이다. 크게 두 명의 인물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데, 한 명은 블랙 아담, 나머지 한 명이 닥터 페이트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닥터 페이트는 말한다. 운명이 정해져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선택을 통해서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닥터 페이트의 명대사와 명장면을 나열하고 싶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봐야 훨씬 더 재밌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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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비교하면 5000년 전에는 운명이라는 단어가 삶을 더 강하게 속박했을 거다. 왕자로 태어나면 왕이 되어야 하고,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면 노비가 되어야 하고, 부부의 연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야 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운명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은 영웅이나 반역자로 기록되었다. <블랙 아담>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쿠키가 대박이다. 자신을 막을 사람은 지구에 없다는 블랙 아담에게 아만다 윌러는 말한다. “지구 출신이 아닌 사람을 보낼 거야.” DC코믹스에서 지구 출신이 아닌 히어로라면…?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