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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도 가격도 가볍게, 여름 와인 4종

안녕, 객원 필자 김은아다. 바깥은 여름이다. 와인은 철을 가리는 술이 아니지만, 계절마다 잘 어울리는 품종이 있는 건 사실이다. 꽃들이 피어나는...
안녕, 객원 필자 김은아다. 바깥은 여름이다. 와인은 철을 가리는 술이 아니지만, 계절마다…

2022. 07. 17

안녕, 객원 필자 김은아다. 바깥은 여름이다. 와인은 철을 가리는 술이 아니지만, 계절마다 잘 어울리는 품종이 있는 건 사실이다. 꽃들이 피어나는 봄에는 잔 가득 꿀 향이 화사하게 번지는 리슬링이, 서늘한 가을밤에는 축축한 낙엽과 땅의 여운이 느껴지는 피노누아를 마시면 ‘착붙’인 것처럼.

그렇다면 여름은? 지금 여기가 땅인지, 바닷 속인지 모를 정도의 찌는 듯한 습기가 의욕도, 입맛도 뚝 떨어뜨리게 만드는 이 계절에는 조금 투박하더라도 맛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와인이 어울린다.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한강공원이나 캠핑장이 더 잘 어울리는, 텀블러에 콸콸 따라 마셔도 좋은, 그러다 조금 흘려도 마음이 편한 여름날의 와인들을 소개한다.


헨켈 트로켄, 1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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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생맥주의 계절. 와인은 사무용품이라는 카피가 있던데, 여름의 생맥주는 생존용품이다. 바람만 불어도 기분이 좋은 상쾌한 계절에야 라거니 에일이니 까다롭게 고르고, 여기가 맥주 관리를 잘 하니 어쩌니 평가하기도 하지만, 여름은 좀 다르다. 생맥주는 눅눅함의 바다에서 우리를 건져줄 구조 튜브 같은 거다. 그러니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청량함이다. 주변의 공기마저도 순간적으로 냉각시켜줄 것 같은 그 한없이 낮은 온도와 강한 탄산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찾는다면, 헨켈 트로켄만한 와인이 없다. 헨켈은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와인 생산자 중 하나로, 1832년 설립되어 일찌감치 독일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알렸다. 흔히 샴페인을 포함해 스파클링 와인을 평가할 때 부드러운 버블, 섬세한 아로마가 어우러지는 술을 완성도 있다고 평가한다. 헨켈은 조금 다른 길을 간다. 기포는 터프해서 탄산수를 마신 것처럼 톡톡 터지고, 상큼한 시트러스 향을 느낄 수 있다. ‘트로켄’은 당도가 거의 없는 드라이한 와인을 뜻하는데, 그래서 더욱 깔끔하다. 합리적인 가격 덕분에 캐주얼하게 마셔도 좋다. 한강 공원에 앉아 치킨과 함께 마실 와인을 골라야 할 때 좋은 선택.


인비보 X SJP 소비뇽 블랑, 2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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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이냉국의 계절. 오이도 싫고 식초도 싫다고? 나도나도. 어쩌다 오이냉국이 여름의 단골 반찬이 되었을까? ‘냉(冷)’국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핵심은 새콤함에 있다는 생각이다. 산미에는 더위로 달아난 입맛을 깨워주는 힘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상큼한 산미로 가득찬 인비보 X SJP는 여름을 위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뇽 블랑 중에서도 뉴질랜드 출신 와인들은 특히나 푸릇푸릇한 풀밭의 아로마를 느낄 수가 있는데, 이 와인은 특히나 그렇다. 마치 과실이 가득 열린 청사과 과수원에서 나무에서 갓 딴 사과를 한 입 베어무는 느낌? 뒤이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레몬과 라임, 허브향에 몸을 내맡기면 기분까지 뽀송해지는 기분이다.

인비보 X SJP가 특별한 점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라 제시카 파커가 와인 생산에 참여했다는 것. 와인 이름에 그의 이니셜 SJP이 붙은 이유다. 셀럽이 생산자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와인을 론칭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이 와인은 ‘협업’이라는 말로 그치기엔 부족하다. 사라 제시카 파커가 테이스팅은 물론이고 블렌딩, 라벨 디자인 등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와인이 출시된 2019년 이후 뉴욕에서만 50만 병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와인전문지 ‘와인익스펙테이터’가 뽑은 100대 와인 안에도 이름을 올리며 완성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니시아 로제, 3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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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슬러시의 계절. 한낮에 방콕 거리를 돌아다니다 땡모반을 마셔본 사람은 안다. 체력이 바닥날 때 달콤하고 시원한 과일주스만큼 눈을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쨍한 컬러도, 맛도 꼭 딸기주스를 닮은 니시아 로제를 마시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품종인 프리미티보로 만든 이 와인은 크랜베리와 딸기, 라즈베리, 체리 등 탐스럽게 빨간 과일의 진한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아주 짧게 과실에서 오는 은은한 단 맛 덕분에 모스카토 다스티만을 고집하는 스위트 와인파도 맛있게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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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생산자인 테누타 뷔리오네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에서 4대째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이곳은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유기농 재배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와이너리로도 유명하다. 니시아 역시 이탈리아 정부의 공식 유기농 인증, 비건 인증을 받은 와인. 맛도, 의미도 챙길 수 있는 와인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와이너리에 대한 TMI 하나. 와이너리 대표의 막내딸 이름은 안토’니시아’다. 맞다. 이 와인은 생산자가 자신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에게 헌정하는 와인이다.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와인인 만큼 사랑이 가득 담기지 않았을까?


펜폴즈 쿠능가힐 쉬라즈-까베르네, 2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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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바비큐의 계절. 삼겹살이어도 좋고, 소시지여도 좋고, 무엇을 구워도 맛 없을 리 없다. 여름밤에 친구들, 가족들과 둘러모여 하는 바비큐 파티에서라면. 이 자리의 흥 지수를 올려줄 와인을 챙겨가야 한다면 펜폴즈 쿠능가힐 쉬라즈를 고르겠다. 호주의 쉬라즈는 검붉은 과실향이 진하고 맛도 풍부해서 고기류에 곁들이면 백전백승인 와인이니까. 그중에서도 펜폴즈는 호주의 국가대표 와이너리다. 보통 ‘국가대표’ 같은 수식어는 으레 과장되어 붙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이곳에서 만든 ‘펜폴즈 그랜지’는 호주의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니까. 이 와이너리가 얼마나 뛰어난 와인을 만드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지. 쿠능가힐은 펜폴즈의 엔트리급 와인이다. 그렇지만 ‘잘 한다’ 싶은 패션 브랜드를 떠올려 보자. 비싼 시그니처 백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저렴한 아이템(이를테면 키링?)마저도 소름끼치게 예쁘지 않나. 펜폴즈도 마찬가지다. 자두, 블랙베리 같은 과일과 초콜릿의 아로마가 부드럽게 어우러지며 향으로 사람을 매혹시킨다. 후추 등의 향신료 풍미 덕분에 시즈닝이 강한 바비큐와도 좋은 궁합을 자랑한다. 쉬라즈 찐팬에게는 살짝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곳은 파티의 현장. 묵직한 와인은 좀 부담스럽다는 친구와도 무한 ‘짠’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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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일로 여행하고, 취미로 술을 씁니다. 여행 매거진 SRT매거진 기자, 술 전문 뉴스레터 뉴술레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