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개인 카페와 스몰 브랜드를 좋아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내가 작은 카페를 더 선호하는 이유? 공간이 작은 만큼 커피와 인테리어와 기타 요소에 주인장의 취향이 압축적으로 녹아들어서. 그것들 하나하나를 천천히 뜯어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혼자만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기보다, 매장이 자리한 동네 특유의 바이브와 묘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매력을 독자 여러분도 느껴보셨으면 해서 준비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진 서울의 스몰 카페 세 곳. 작고 협소하지만 매력적인 공간 분위기와 맛있는 음료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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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오리
파오리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모든 음료가 다 맛있어서 뭘 골라도 실패가 없는 가게. 인스타그램 대문에 ‘Beverage Shop’이라고 적어둔 이유다. 커피가 맛있는 카페는 넘쳐난다. 근데 그만큼 커피’만’ 맛있는 카페도 많다. 커피 외 음료는 취급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카페인에 취약하거나 커피 맛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에게 파오리는 너무 반가운 공간인 거다.
코코 아이스티, 멜랑 밀크티, 토프 초콜릿, 멀드 에이드 등 논-커피 메뉴 선택지가 다양하다. 직접 개발한 레시피로 미리 만들어 숙성한 뒤 내어주는데, 별도의 가니쉬를 올리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이 인상적이다. 각자 먹는 속도에 따라 맛의 편차가 생기는 걸 원치 않아서라고. 덜 ‘인스타그래머블’ 하더라도 만든 이의 의도를 정확히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라니, 신뢰가 팍팍 생기지 않는가.
코코 아이스티는 민트 티 베이스에 코코넛과 사과와 라임이 들어간 메뉴. 솔직히 아이스티라는 이름 때문에 딱히 당기지 않았는데, 한 모금 마시자마자 10분 전의 내 머리를 후려치고 싶었다. 상큼하고, 달달한데, 깔끔하다. 사과와 라임이 워낙 산뜻하게 들어오고 민트티가 개운함을 더하니 코코넛 맛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나도 맛있게 먹었다.
멜랑 밀크티도 기분 좋게 예상을 벗어난다. 건망고가 들어간 홍차를 우려서 우유와 비정제 설탕을 넣고 냉침했다. 일반적인 밀크티보다 덜 진하고 훨씬 깔끔하다. 화사하고 부드러운 밀크티를 맛보고 싶다면 강력 추천.
저는 커피만 마시는데 어떡하나요? 걱정 말자. 베를린의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 ‘더반’의 원두를 가정용 배치 브루로 내린 커피도 제공한다. 주로 에티오피아 내추럴 원두를 취급하는데 아주 깔끔하고 과일 단맛도 좋다.
담백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 아무도 안 시켰지만 굳이 한 마디로 이 공간을 표현한다면 그렇다. 깔끔하고 심플한 구성이지만, 공간 전체에 매끈하고 힘 빡 준 그런 부담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나무 위에 흰 페인트를 덧칠한 바닥이나 벽 아래 공간을 활용해 걸어둔 수납용 그물 등이 자연스러운 멋을 더한다. 활짝 열리는 커다란 통창 두 개로 볕이 드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나 같은 햇빛 러버들은 맥을 못 추지.
파오리 Paori
- 주소 서울 중구 동호로5길 2-1 1층
- 영업시간 월, 수-일 08:00-18:00 (화 휴무)
- @paori_seoul
[2]
공유
성북천을 거닐다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서면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일본에 놀러 왔나 기분 좋은 착각을 주는 외관의 카페. 작년 8월에 문을 연 ‘공유’는 주민들이 편히 쉬었다 가길 바라는 작은 동네 카페다. 옷과 커피를 좋아하는 두 대표가 일본 생활 당시 자주 찾던 카페를 닮은 공간을 보문동 주택가에 열었다.
최대 3팀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 작지만 밝고 따뜻한 인테리어에 골목이 내다보이는 통창이 있어 답답하지 않다. 화이트 컬러와 우드 소재를 사용해 전반적으로 아늑한 톤을 잡고, 옷과 가방, 매거진, 스피커 등의 요소로 구석구석 주인장의 취향을 녹였다. 손님들 사이에서 일본 카페가 연상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렇다고 전통적인 일본 가옥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 도쿄에 가면 찾아볼 수 있는 여유롭고 캐주얼한 카페나 편집숍 같은, ‘요즘의’ 일본 무드를 추구한다. 테이크아웃을 위한 들창과 걸터앉기 좋은 외부 좌석도 매력 포인트.
세컨핸즈 의류와 잡화도 함께 판매한다. 의류업계에서 종사했던 두 주인장이 애정하는 옷과 브랜드 이야기를 소개하고 공유하려는 목적이다. 옷과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로서는 아지트 삼기 딱 좋겠지? 꼼데가르송, 준야 와타나베, 원 유즈드, 포터 등의 일본 로컬 브랜드 제품을 직접 착용하고 구매할 수 있다.
날이 부쩍 따뜻해졌으니 레모니카노 한잔 어떨까. 레모네이드에 에스프레소를 넣은 독특한 메뉴로, 여름이 오면 1일 1잔하고 싶은 시원하고 청량한 맛이다. 일본에서 먹었던 파인애플 에이드 + 에스프레소 조합을 변형한 시그니처 음료다. 말차 파우더에 에스프레소를 넣은 케로라떼도 인기 메뉴. 깔끔한 기본 커피가 먹고 싶은 분들에게는 싱글 오리진 필터 커피를 추천한다.
공유
- 주소 서울시 성북구 보문로 18길 10, 1층
- 영업시간 월, 수, 목, 금 08:00-18:00 토, 일 11:00-20:00 (화 휴무)
- @kyou_yuu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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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워삶 커피 스탠드
앞선 두 곳과는 또 다른 색깔의 작은 카페. 아워삶 커피 스탠드는 커피 작업실이자 소셜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공간이다. 오랜 시간 커피 덕질을 해오며 커피를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귄 주인장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커피 아지트를 만들었다. 매주 일요일에는 원데이 커피 클래스를 열고, ‘아워삶 소셜 클럽’이란 이름으로 소셜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커피 작업실로 손색없는 공간이다. 7평 남짓한 면적, 주인장의 커피 스탠드와 원두 진열대를 정면으로 두고, 양쪽에 하나씩 작은 테이블 자리가 마련돼 있다. 벽돌에 나무판자를 얹어 만든 좌석과 콜맨 캠핑 체어, 동양화 족자, 빨간 난로와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스티커까지 자연스럽게 형성된 투박하고 빈티지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화려한 인테리어로 압도하거나 쓸데없이 무게 잡는 느낌이 아니라서 좋다. 잠깐 커피 한잔하며 쉬어가기에 부담이 없다.
필터 커피만 제공한다. 원두 종류가 많아서 취향껏 고를 수 있다는 게 장점. 블렌드와 싱글 오리진, 라이트 로스팅부터 다크 로스팅까지 선택지가 다양하니 추천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내외 다양한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의 원두를 취급하며, 너무 유명한 브랜드보다는 실력 있는 소규모 로스터리를 발굴해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마신 건 유의미커피로스터스의 ‘시크 블렌딩’이다. 처음부터 풍성하고 선명한 향이 올라온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복숭아의 단맛 뉘앙스와 텁텁함 없이 깔끔하게 끝나는 후미가 훌륭해서 아이스로도 한잔 더 마셔보고 싶었다.
한 가지 독특한 건 커피를 주문하면 치즈 한 덩이를 같이 내어준다는 거. 와인의 단짝이라고만 생각했던 치즈를 필터 커피와 함께 먹는다니 신기했다.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놀랐고 말이다. 달달한 쿠키나 케이크와의 조합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이외에 커피와 곁들일 사이드 메뉴로는 2종류의 베이글과 빈투바 초콜릿이 제공된다. 오전에 공복으로 방문한다면 꼭 어니언 베이글에 선드라이 토마토가 들어간 스프레드를 발라 드시길.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다.
아워삶 커피 스탠드 OurSarm Coffee Stand
- 주소 서울 광진구 구의로 61 103호
- 영업시간 화-금 11:00-14:00 토 12:00-17:00 (일, 월 휴무)
- @oursarm.coffeestand
About Author
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