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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이 필요한 어떤 베이글

안녕, 에디터B다. 도산공원에 있는 애니오케이션이 그렇게 핫하다길래 다녀왔다. 애니오케이션의 정식 명칭은 리틀넥 애니오케이션 청담. 누구도 풀네임을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 여기서도...
안녕, 에디터B다. 도산공원에 있는 애니오케이션이 그렇게 핫하다길래 다녀왔다. 애니오케이션의 정식 명칭은 리틀넥…

2022. 03. 30

안녕, 에디터B다. 도산공원에 있는 애니오케이션이 그렇게 핫하다길래 다녀왔다. 애니오케이션의 정식 명칭은 리틀넥 애니오케이션 청담. 누구도 풀네임을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 여기서도 ‘애니오케이션’으로 통일한다. 애니오케이션은 GFFG에서 최근에 런칭한 그로서리 스토어다. 참고로 GFFG는 카페 노티드, 다운 타우너 등을 운영하는 요즘 가장 잘나가는 F&B 브랜드.

그로서리 스토어는 쉽게 말해 식료품점이나 슈퍼마켓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공간인 식료품점이 한국에서는 비일상적으로 공간으로 변주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유럽 감성이라는 코드 아래 인테리어를 하고, 핫하고 힙한 브랜드의 제품을 취급한다. 식료품점보다는 편집샵과 브런치 카페를 섞은 느낌이랄까. 해외여행이 쉽지 않으니 그로서리 스토어가 인기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로서리 스토어라는 낯선 카테고리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로서리 스토어가 몇 년 뒤엔 어떤 공간으로 남을지 이래저래 궁금하다. 아무튼 베이글 먹으려면 오픈런 해야 한다는 애니오케이션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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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오케이션은 10시 반에 오픈한다. 나는 그보다 늦은 11시에 도착했다. 누가 베이글을 오픈런해서 먹어? 라고 생각하겠지만 애니오케이션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겨우 30분 늦었을 뿐인데 내 앞에 대기자가 9명이 더 있었다. 신기한 현상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도시에 산다는 게 재밌다. 맛집에 줄을 서거나, 핫한 공간에 가기 위해 오픈런을 하는 건 경험을 위해 시간을 쓴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행위다.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결코 지루할 수가 없다. 우리 아버지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현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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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기다리기 지루해서 이곳저곳 둘러 봤다. 애니오케이션의 공간은 내부와 외부로 이루어져있다. 내부는 와인, 굿즈, 식료품 판매대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좁아 보였고, 쾌적하게 먹기엔 외부가 더 좋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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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재밌는 건 외부에 군고구마 기계가 있다는 점이다. 방역복만큼이나 깔끔해보이는 유니폼을 입은 스태프가 군고구마를 주방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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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서 군고구마 기계를 보니 멋스럽게 영어로 낙서가 되어 있다. “이 기계는 첫 번째….프로젝트…” 첫 번째라고 한 걸 보니 앞으로도 뭔가 더 보여줄 건가 보다. 그로서리 스토어와 군고구마 기계의 조합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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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대기하는 공간에는 Any Occasion의 로고가 크게 페인팅된 흰 벽이 있다. 이곳이 바로 포토스팟이다. 나처럼 혼자 방문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애니오케이션 해시태그를 보면 50퍼센트 이상이 이 벽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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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앉아 포켓몬GO를 한 지 1시간 정도 흘렀을 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입장할 순서가 되면 스태프가 내부에서 먹을지 외부에서 먹을지 물어보는데 날씨만 허락한다면 외부에서 먹는 걸 추천한다. 외부가 테이블 간격이 넓었고, 좌석도 더 편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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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해야 일은 내가 먹을 베이글을 고르는 일이다. 베이글 세트를 먹든, 베이글 샌드위치를 먹든 어쨌든 베이글이 들어가는 메뉴를 먹는다면 갯수에 맞게 베이글을 쟁반에 직접 담아야 한다. 베이글 종류는 플레인, 블루베리, 통밀, 어니언, 블랙 올리브, 할라피뇨, 참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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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을 다 골랐다면 카운터로 가져가서 주문하면 된다. 나는 베이글 샌드위치에서 연어&연어알 베이글, 버섯&수란 베이글 2종을 시켰고, 스몰 플레이트에서 군고구마를 주문했다. 커피는 기본기를 알 수 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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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가 조리되는 동안 식료품 코너를 구경했다. 왼쪽 쇼케이스에 진열된 것이 와인, 오른쪽에 진열된 것이 PB 상품을 포함한 각종 식료품이다. 애니오케이션을 방문하기 전에 여러 그로서리 스토어를 다니며 든 생각이 있다. ‘분위기나 컨셉이 힙하긴 한데… 굳이 여기서 구매할 필요가 있을까?’

집과 가까운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솔트레인 치약이나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휴지를 판매한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과연 얼마나 자주 구매하게 될까. 동네 주민이라면 많이 사게 될까? 우연히 들린 행인이라면 많이 사게 될까? 이러한 괜한 걱정이 들었다. 반면에 애니오케이션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허브 오일, 버섯 오일, 토마토 잼, 핫 허니, 견과류 꿀, 올리브 마리네이드 등 다양한 PB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참기름병을 닮은 허브 오일, 버섯 오일과 토마토 잼, 올리브 마리네이드는 다음에 방문한다면 하나씩 사고 싶을 정도였다. 넷플릭스든, 그로서리 스토어든 본질이 플랫폼이라면 역시 오리지널 콘텐츠가 중요하지 않나 싶다.

또 왼쪽에 진열된 와인을 판매하는 방식도 친절해서 좋았다. 단순히 진열만 해놓은 것이 아니라 종이 스카프를 둘러서 어떤 향과 맛인지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설명해놓은 걸 보고 역시 GFFG 잘하네 생각이 들었다. 와인은 스파클링,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내추럴와인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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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애니오케이션 머그컵을 포함한 다양한 예쁜 제품들이 있었다. 예쁘고 쓸모없는 물건류를 좋아하는 나도 처음 보는 제품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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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식사 공간. 스케이트 보드가 테이블이고 나무 상자가 의자다. 테이블이 넓지 않아서 3개 이상의 메뉴를 시키면 스케이드 보드에서 먹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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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부 공간에 구석진 자리가 있길래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외딴 섬처럼 떨어져 있는 테이블이었지만, 시야가 탁 트여서 내가 볼 땐 가장 명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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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버섯&수란 베이글 샌드위치, 군고구마, 연어&연어알 베이글 샌드위치 순서다. 식으면 맛없으니까 가장 먼저 군고구마부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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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는 반을 갈라 나온 상태에서 수제 마쉬멜로 스프레드를 녹이고, 그 위에 메이플 시럽을 뿌리고, 그라노파다노 치즈 가루를 올렸다. 그리고 산미를 더하기 위해 애니오케이션만의 소스가 들어간다고 한다.

뻑뻑함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을 정도의 촉촉함이 좋았고, 시럽 덕분인지 점도가 높은 식감이었다. 단맛은 아주 강하다. 개인적으로 단맛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먹자마자 “내가 찾던 바로 그맛!”이라고 외치진 않았지만,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환장하겠다 싶었다. 사람들이 왜 애니오케이션에서는 군고구마를 꼭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유럽 감성의 그로서리 마켓에 군고구마라. 이런 한끗이 색다르게 만드는 것 같다. 가격은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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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먹은 건 버섯&수란 베이글 샌드위치. 이거 뭐 어떻게 먹어야 되지… 10초 정도 생각하다가 냅다 수란을 터뜨렸다. 몽글몽글 뭉쳐있던 수란이 톡 터지자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 베이글을 적시기 시작했다. 냉큼 수란이 침범하지 않은 표고버섯을 먹었는데, 굉장히 실하다. 탱탱하고 쫄깃하다. 표고버섯 하나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포르치니, 느타리버섯, 새송이 버섯이 주로 사용되었다. 버섯은 프랑스식 저온 조리법 콩피(Confit)로 조리된 후 사용한다고 한다.

수란으로 적셔진 베이글과 버섯을 함께 먹으니 우주가 펼쳐진다. 버섯의 탄력있는 식감, 노른자의 미끌거리는 촉감, 베이글의 높은 밀도가 만들어내는 저작감은 마치 우주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꾸덕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만족스러운 식감이 될 거다. 가격은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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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먹은 음식은 연어&연어알 베이글 샌드위치. 푸틴 때문에 연어 값이 폭등했다. 연어&연어알 베이글 샌드위치의 가격은 다른 샌드위치 보다 비싼 1만 1,000원인데, 연어값 폭등이 가격에 반영되어 있는 건지 물어보니, 자체적으로 단가 조정의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최대한 자체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연어 가격이 최대 두 배 가까이 올랐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버섯&수란과 가격 차이가 1,500원밖에 안 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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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 단면에는 크림치즈를 얇지 않게 바르고 오이, 케이퍼, 연어, 연어알이 올라간다. 버섯&수란 보다 연어&연어알이 시각적으로는 더 아름다웠다. 연어의 빨강, 오이의 초록이 섞여 있고 중간중간에 연어알이 올라간 비주얼을 보면 아까워서 먹기 힘들 정도. 맛은 싱그럽고 개운한 느낌이다. 코끝이 시려지는 초겨울의 아침 공기 같다. 집 나간 입맛을 살리는 맛이다. 아삭거리는 오이의 식감이 킬링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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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는 스탠다드한 맛이다. 다른 메뉴 없이 오직 커피만 마신다면 아쉬울 순 있지만, 베이글과 먹기엔 오히려 이게 나아보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아쉬운 게 하나 있다. 취재가 아니었다면 와인을 마셨을 텐데 그게 참 아쉽다. 다음에 낮와도 하고, 버섯 오일도 사러 재방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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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오케이션에서 베이글을 먹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웨이팅 앱을 사용하기 때문에 밖에서 지루하게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근처에 갈만한 곳 많다. 다만 베이글이 솔드아웃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늦게 방문하면 재고가 없을 수도 있으니 되도록 3시 이전에는 방문하도록 하자. 어떤 날에는 평일 4시에도 베이글이 품절되더라.

리틀넥 애니오케이션 청담

  •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51길 14 1층
  • 영업 시간 10:30 – 21:00(월 휴무)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