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 보통 그날은 내가 DJ가 된다. 기분에 따라 리스트는 조금씩 바뀌지만 대부분 비슷하다. 매번 고르는 게 귀찮으니 재생목록을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기사는 재생목록을 만들 겸 쓰게 되었다. 그래서 주제는 ‘술 마시실 때 내가 듣고 싶은 노래’다. 장르는 재즈, 탱고, 모던락, 포크송 등 가리지 않고 넣었다. 주로 잔잔한 노래이니 술자리 배경음악으로 좋을 거다. [여기] 유튜브 재생목록으로도 만들어놓았다. 그럼 출발한다.
[1]
고상지 – 홍제천의 그믐달(2014)
고상지는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작곡가다. 고상지가 작곡한 초기 음악에는 반도네온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홍제천의 그믐달’이 포함된 1집 역시 그렇다. 반도네온이 내는 소리에는 왠지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슬프고 기구한 어떤 사연 말이다. 내가 들어본 탱고에는 보통 격정적인 멜로디가 많았는데, ‘홍제천의 그믐달’은 편안하고 잔잔한 멜로디라 BGM으로 틀기에 좋다.
[2]
류이치 사카모토 – Merry Christmas Mr.Lawrence(1983)
류이치 사카모토를 모르는 사람도 ‘이 곡’은 알 거다. 제목은 몰라도 ‘이 곡’의 전주를 들으면 바로 알 거다.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그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사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OST로 들어간 곡인데, 영화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다. 나도 노래를 100번 넘게 들었지만 영화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노래는 잔잔한 호수에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다가 우수수 떨어져 몸이 흠뻑 젖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3]
테림 – Portuga!(2017)
‘포르투가’는 테림의 1집 <ODE TO TE>에 수록된 곡으로 테림이 작곡하고 당시 Chloe Cho로 활동하던 드비타가 불렀다. 참고로 테림이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쇼미더머니>를 통해서다. 우원재의 본선곡이었던 ‘진자’를 작곡한 바 있다.
[4]
길버트 오설리번 – Alone again(1972)
‘Alone again’은 노래의 분위기과 가사가 정반대인 대표적 케이스다. 가사를 모른 채 이 노래를 들으면 오늘 하루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 잊히고, 내일부터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가사는 주인공이 자살하는 내용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들게 살았지만 오늘 결혼을 하고 잘살아 보려고 하는 주인공. 하지만 신부는 결혼식 당일에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희망을 잃은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한다.
[5]
존 댄버 – Annie’s song(1974)
나는 영화를 보다가 그 노래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나중에라도 그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레 영화 속 장면이 연상된다. 존 덴버의 노래 ‘Annie’s song’은 영화 <옥자>에 삽입된 곡이다. 옥자와 미자가 을지로 지하상가에 갇혀 위기에 빠졌을 때, 동물 보호 단체 ALF가 등장해 옥자와 미자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6]
프랭크 시나트라 – That’s Life(1966)
나는 뉴욕 하면 프랭크 시나트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곡은 워낙 많은 영화, 광고, 드라마에 사용되어서 처음 듣는 사람은 없을 거다. ‘That’s Life’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곡으로 영화 <조커>에 사용되면서 더 큰 인기를 얻었다. 노래를 들으면, 테라스에 앉아 시가를 뻐끔뻐끔 피고 있는 한 남자와 퇴근길의 오렌지빛 노을이 떠오른다.
[7]
인사이드 르윈 OST – Five Hundred Miles(2013)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뭐라도 해보려는 포크송 가수의 음울한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다. 내가 추천하는 곡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캐리 멀리건이 부른 ‘Five hundred miles’. 경운기 뒤에 올라타고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승차감은 좋지 않아도 마음만은 편한 느낌이랄까.
[8]
앨 그린 – Tired of Being Alone(1971)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주인공 칼 캐스퍼는 잘나가는 레스토랑의 셰프였으나, 음식평론가와 트위터 설전을 벌인 후 레스토랑을 그만두게 된다. 아내와 이혼했고, 아들과 소원한 상태에서 직장마저 잃었다. 길거리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긴 주인공의 뒤로 흐르는 노래가 바로 앨 그린의 ‘Tired of Being Alone’이다. 내가 LP바에 가면 가장 먼저 신청하는 곡이기도 하다.
[9]
벨벳 언더그라운드 – After hours(1969)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를 꼽자면 영화 <접속>에 나왔던 ‘pale blue eyes’일 거다. 지금 소개하는 ‘After hours’는 그 정도로 유명한 곡은 아니다. 이 곡은 ‘Pale blue eyes’가 삽입된 첫 번째 앨범 마지막 트랙에 실렸다. 이 노래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라는 것에 한 번 놀라고, 1969년에 만든 곡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세련된 곡이다.
[10]
스탠 게츠,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 – the girl from Ipanema(1964)
노래 제목을 풀이하면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된다. 보사노바 장르의 이 노래는 오랫동안 나의 싸이월드 배경음악이었는데,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곡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이 재미있다.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는 브라질 기타리스트 주앙 주베르토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하다가, 이 노래를 주베르토의 아내 아스트루드가 불러주면 좋겠다고 요청한다. 아스트루드는 가수가 아니었지만 그녀의 불안정한 발성이 오히려 이 노래의 매력을 살려주었고, 그렇게 글로벌 히트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탄생했다. 그리고 아스트루드는 주베르토와 이혼을 하고 스탠 게츠와 공연을 다닌다.
[11]
Room306 – Tomorrow(2015)
외국 음악은 충분히 들었다. 이제 한국 음악을 들어보자. 사실 나는 외국 음악보다 한국 음악을 더 좋아한다. 가사를 따지면서 듣는 편인데, 외국 음악은 따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를 공부했는데, 리스닝과 독해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된 공교육 커리큘럼 때문이다. 이 노래는 한국 뮤지션의 곡이지만 가사는 영어로만 썼다. 그래서 들어도 의미를 모르겠다. 노래를 다 듣고 나니 ‘투모로우’라는 단어와 몽환적인 분위기가 남는다.
[12]
안녕하신가영 –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2014)
누구와 술을 마시느냐에 따라 대화 주제는 달라진다. 주식 얘기였다가, 야구 얘기였다가, 최근에 본 영화 얘기였다가. 하지만 사랑과 이별에 대한 얘기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꼭 한 번씩 등장한다. 우리는 사랑을 해봤거나, 하는 중이거나, 하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안녕하신가영의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은 실연의 밤을 떠올리게 한다. 왜 우리는 인연이 아니고, 왜 그는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설명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밤이다.
[13]
1415 – 선을 그어주던가(2017)
‘선을 그어주던가’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 있는 남자의 속마음을 그린 노래다. 우리는 무슨 사이일까, 친구일까, 썸일까, 답답한 마음 때문에 힘드니까 차라리 선을 그어주면 좋겠다, 이런 내용이다. ‘금요일인가 / 네가 만나자고 했던 날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가사의 모티브가 된 게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라고 한다.
[14]
너드커넥션 – 좋은 밤 좋은 꿈(2020)
잘 쓴 가사는 한 편의 서정시다. 너드커넥션의 ‘좋은 밤 좋은 꿈’의 가사를 보자.
‘까만 밤이 다 지나고 나면/이야기는 사라질 테지만/이름 모를 어떤 꽃말처럼/그대 곁에 남아 있을게요/나는 그대 어떤 모습들을 그리도 깊게 사랑했었나요/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좋은 밤 좋은 꿈 안녕’
가사를 언어 영역처럼 해석해보자. 노래의 화자는 최근에 이별한 남자다. 누가 먼저 이별을 고했는지는 가사에 나오지 않는다. ‘그댄 나의 어떤 모습을 사랑했나요’라는 가사가 1절과 2절에서 한 번씩 나오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C파트에서는 반대로 ‘나는 그대의 어떤 모습을 사랑했나’라고 묻는다. 자신에게 하는 질문에게도 대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의 이별엔 이유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미워하지 않고,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자연스러운 이별인 거다. 그래서 남자가 해줄 말은 ‘좋은 밤, 좋은 꿈, 안녕’밖에 없다.
[15]
윤딴딴 – 자취방에서(2018)
4년 전쯤, 혼술할 때 정말 많이 들었던 곡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자신이 뭘 어떻게 살았길래 지금 이렇게 사는 걸까 반성한다. 하지만 노래가 끝난다고 해도 남자의 인생이 특별히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인사이드 르윈>의 주인공처럼 쳇바퀴 도는 인생을 살아갈 것 같다. 자기반성적이고 무기력한 무드가 노래 전반에 깔려 있다. 한 가지 킹받는 점은 ‘솔직히 아직 어린 건지 스물여덟 살엔’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노래를 듣는 내가 어느새 34살이 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엔 공감이 가고 위로가 되었던 노래인데, 이젠 이 노래에서도 졸업을 해야 때인 것 같다.
[16]
나이트 오프 – 잠(2018)
나이트 오프는 언니네 이발관의 이능룡, 못의 이이언이 함께 만든 그룹이다.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한 사람이 집 안에서 가만히 쉬려니 심심해서 동네 산책을 하는 것 같은 노래다. 일도 힘들고, 자기계발도 힘들고,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17]
김제형 – 실패담(2020)
이 노래를 어디서 처음 들어봤더라.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음울한 첫 도입부부터 확 꽂혔다. ‘아마 이 얘긴 너에게 달갑진 않을 거야’라는 첫 가사를 듣고, 이 사람이 무슨 무거운 얘기를 하려고 하나 귀를 쫑긋 세웠다. 노래 속 남자의 말투는 염세적이다. ‘좋은 밤 좋은 꿈’의 남자가 이별한 연인의 앞날을 응원한다면, ‘실패담’의 남자에게서는 그런 긍정 에너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응원은커녕 저주를 할 것만 같다.
[18]
정우 – 나에게서 당신에게(2019)
‘실패담’으로 다운된 기분을 정우의 목소리로 업시켜보자. 인디 포크 뮤지션 정우의 목소리는 티없이 맑다.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란 바로 이런 목소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사실 내가 R&B나 발라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화려한 기교 때문인데, 정우의 노래는 딱 내가 좋아하는 단순한 노래다. 정우는 멋 부리지 않은 깔끔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나, 포크송 좋아하네? 이런 생각이 들 거다.
[19]
애쉬락 – Rainzy(2016)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노래다. 비 오는 날, 게으르게 하루를 보낼 때면 ‘Rainzy’를 들으며 빈둥거리고 싶다. 애쉬락은 보컬이자 색소폰 연주자 장시락을 중심으로 결성한 밴드다. 밴드에 색소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색다른 음악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20]
하비누아주 – 사랑하고 싶어요(2013)
사실 ‘사랑하고 싶어요’라고 애절하게 말하는 가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비누아주의 노래 ‘사랑하고 싶어요’는 포근한 분위기와 달콤한 보컬 덕분에 귀엽게만 들린다. 가사엔 ‘겨울엔 사랑하고 싶어요/혼자 있는 건 너무 싫어요/이른 아침에 들려오는 목소리/엄마 잔소리 아닌 그대 목소릴 듣고 싶어’라고 나온다. 사실 이 가사에서 나는 엄마가 이유없이 잔소리를 한 건 아닐 거다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썸타는 사람 없이 추운 겨울을 맞이할 누군가에게 이 노래를 추천한다.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21]
장희원 – 모르겠고요, 춤을 춰요(2019)
가사 속 주인공은 현실도피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안 좋은 감정을 모른 척하고, 슬퍼도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모르겠으니 춤을 추자고 말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지구끝까지 도망만 치는 사람은 아니다. ‘도망치다 다시 마주쳤을 땐 / 사랑할 거야 솔직할 거야 춤을 출 거야’라고 말한다. 춤은 ‘끝없는 도피’가 아닌, 맞서기 위한 용기를 충전하기 위한 시간인 거다. 이 노래와 함께 장희원의 ‘편지’, ‘여름땡’도 추천한다.
[22]
프롬 – 달의 뒤편으로 와요(2016)
‘달의 뒤편으로 와요’는 지구과학에 근거한 위로송이다. 달은 공전 주기(다른 천체를 도는 것)와 자전 주기(스스로 도는 것)가 같아서 지구에서는 달의 한 면밖에 볼 수 없다. 프롬은 ‘달의 뒤편에 숨으면 아무도 못 보니까 울어도 된다’고 말한다. 이 노래와 함께 프롬의 ‘달밤댄싱’, ‘서로의 조각’, ‘영원처럼 안아줘’ 역시 추천한다.
[23]
정미조 – 개여울(1972)
‘개여울’은 정미조의 데뷔곡이다. 정미조는 원래 음악보다는 미술을 하며 살고 싶었는데, 데뷔곡부터 크게 성공하며 미술 공부 계획이 늦춰졌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음악 생활을 접고, 프랑스로 미술 공부를 하러 홀연히 떠난다. 그랬던 정미조가 다시 대중에게 소환된 건 아이유 덕분이다. 아이유가 ‘개여울’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아이유의 리메이크 버전도 좋지만, 원곡도 좋으니 한번 들어보면 좋겠다.
[24]
신지민, 이가은 – 홀로된 사랑(2021)
옛날 노래를 리메이크하며 서바이벌을 하는 KBS <우리가 사랑한 그 노래 새가수>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배철수, 이승철, 김현철, 정재형, 거미 등 심사위원 라인업이 굉장했는데, 아쉽게도 프로그램 자체는 그렇게 흥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옛날 명곡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좋았다. 여운의 ‘홀로된 사랑’이라는 곡을 <새가수>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가수도 초면, 노래도 초면이다. 초면에 사랑하게 되었다. 서바이벌 오디션이란 누군가에게는 끝이고, 누군가에게는 시작이 되곤 한다. 높은 라운드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신지민, 이가은 두 가수에게 <새가수>가 위대한 시작이었기를 바란다.
[25]
원더걸스 – I tried(2008)
지금 당장 원더걸스 중에 아는 노래를 3개만 대보시오, 라고 물으면 대한민국 국민 중 99%는 ‘Tell me’, ‘So hot’, ‘Nobody’ 이 세 가지를 말할 거다. 과연 ‘I tried’를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노래는 타이틀곡도 아니고, 유명한 노래도 아니다. <무한도전> 텔레파시 편에 삽입된 게 유명해진 계기라면 계기다. 어렵지 않게 편지처럼 쓴 가사가 정말 좋다.
‘이 길을 지나면 너의 집 앞이겠지/ 지금 넌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 우리는 예전과 다를 것 없이 같이 길을 걷다 헤어지겠지 / 얼마전 난 말했지 / 친구로 지내자고 / 사랑하기에는 어색하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했지만/ 인정하기엔 너무나 아팠어/ 아마 난 너처럼 될 수 없나봐 / 하루에 반 이상은 울다가 니 생각만 하다 잠이 드는 걸’
[26]
레이디스 코드 – I’m fine thank you(2013)
눈물 버튼 같은 노래가 있다. 나에겐 레이디스 코드의 ‘I’m fine thank you’다. 이 노래 역시 <무한도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한도전> 라디오 특집에서 유재석은 타블로 대신 일일 DJ를 하게 되었고, 마지막 곡으로 이 곡을 선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꽃처럼 예쁜 아이들이, 꽃같이 한창 예쁠 나이에 꽃잎처럼 날아갔다. 손에서 놓으면 잃어버린다. 생각에서 잊으면 잊어버린다.”
사람에게서 가장 빛나는 나이라는 건 따로 없지만, 마침내 가수의 꿈을 이룬 이들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27]
ITZY – Surf(2020)
‘기분이 up&down 매번 파도를 타/ 점점 더 내 심장은 faster and faster’. 있지의 ‘서프’는 사랑에 빠진 소녀의 마음을 파도타기에 비유한 노래다. 있지는 걸크러시 컨셉으로 그동안 당돌한 메세지, 강한 자기애가 담긴 곡을 노래했기 때문에 작사가는 사랑에 빠진 소녀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 있었다고 하더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조심스러운 태도가 걸크러시 이미지와 맞지 않으니까. 그래서 파도타기에 비유한 가사가 잘 어울린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제멋대로 넘실거리는 사랑 앞에서는 나를 컨트롤할 수 없으니까.
[28]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캐러밴(2013)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하면 당연히 ‘탱탱볼’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사실 나는 ‘캐러밴’을 더 좋아한다. ‘탱탱볼’이 저 세상 끝까지 기분을 업시키고 싶을 때 듣는 노래라면, ‘캐러밴’은 아주 살짝만 붕뜬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여행 중에 들으면 좋을 것 같다. 가사의 주인공은 ‘뜨거운 사막을 횡단하는 캐러밴’인데 노래를 들으면, 햇살이 바싹바싹 타는 사막을 건너는 유쾌한 악단이 떠오른다.
[29]
치즈 – 무드 인디고(2016)
치즈의 노래를 들으면 ‘세상에 저렇게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든다. 사랑이 충만한, 진짜 사랑을 만난 것 같은 사람처럼 노래를 부른다(정확히는 치즈의 보컬 ‘달총’). 노래를 부르는 달총의 모습을 보면 나 역시 사랑이 고파진다. 그 중 최고는 ‘무드 인디고’가 아닐까.
[30]
SOLE – haPPiness(2020)
다이나믹 듀오의 최자가 쓴 가사 중에 이런 글이 있다. ‘아메바는 전통 있는 베이커리 난 숙련된 제빵사지…(중략)…사실 못된 놈은 있어도 못한 놈은 없어.’ 여기서 말하는 못된 놈은 컨트롤비트 디스배틀을 했던 이센스를 말한다. 쏠의 노래를 처음 듣고 최자의 그 가사가 생각났다. 정말 아메바 컬쳐는 실력만큼은 확실하다. 그래서 아메바 컬쳐에 소속된 쏠이 왜 아직도 못 뜬 건지 모르겠다. 쏠의 음색은 길게 말할 것 없이 그냥 미쳤다. 국가무형문화재 R&B 장인으로 지정해야 한다. 지금 소개하는 ‘haPPiness’와 함께 ‘Ride’, ‘Slow’도 추천한다.
[31]
Blu-swing – Flash(2019)
이제부터는 조금 낯선 음악 세 곡을 소개하려고 한다. 모두 일본 뮤지션의 음악이다. 블루 스윙은 2008년에 데뷔한 일본 재즈 밴드. 노래는 시티팝 느낌이 나면서 재지한 무드가 흐르는데, 영어도 아닌 한국어도 아닌 가사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자체로 공간의 분위기를 확 바꿔줄 거다. 신이 나긴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하면서 들을 수도 있다. 지금 소개하는 ‘Flash’외에 다른 곡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 좋다.
[32]
Yama – Haru wo Tsugeru(2020)
‘Haru wo Tsugero(春を告げる)’를 풀이하면 ‘봄을 고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하다’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견도 있으나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가사 역시 정식 번역본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중요한 건 음색과 노래다. 야마는 신비주의를 컨셉으로 하는 가수다. 방송사 인터뷰에서 가면을 쓰고 하관까지는 공개했지만,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야마는 그냥 노래로만 평가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니 궁금해하지 말고 그냥 노래만 듣자.
[33]
Take Onuki – 4:00 AM(1978)
오오누키 타에코는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 중 한 명이다. 1953년에 출생해 1972년에 데뷔했으나 나는 존재 자체를 작년에 알았다. 노래를 듣고 당연히 최근 가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4:00 AM’이 1978년에 나온 곡이라는 걸 알고 정말 놀랐다. 드라마나 영화는 시간이 흐르면 촌스럽기 마련인데, 노래엔 유통기한이 없는 것 같다. 아마 모든 음악이 그렇겠지. 사라지지 않고 나이들지 않고 내가 죽을 때까지 플레이되겠지. 내 장례식에 틀고 싶은 플레이리스트도 이렇게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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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