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종종 뮤지션들의 라이브 영상을 챙겨보곤 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바이러스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덕분에 콘서트와 페스티벌의 열기는 희미해졌지. 공연은 고사하고 잠깐의 외출조차 걱정되는 시기, 자가격리자를 포함해 집콕 시간이 자꾸만 늘어나는 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힘이 되어줄 음악 라이브 영상들을 챙겨 왔다.
뮤직비디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라이브 영상. 대자연이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압도적인 영상미, 기발한 컨셉과 신박한 편집, 위트와 감성 등등 하나라도 취향에 맞는 영상을 찾을 수 있기를. 특별히 유튜브 재생목록으로도 만들어 뒀으니 플레이 한 번 눌러놓고 쭉 달려도 좋겠지?
[1]
“하늘과 땅이 만나는 사막 한가운데”
FKJ live at Salar de Uyuni in Bolivia for Cercle
by FKJ
첫 시작은 로케이션 하나만으로 다 끝내버리는 영상. 그 유명한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FKJ의 라이브 퍼포먼스다. ‘대체 이런 멋진 곳을 어디서 찾아서 어떻게 찍었지’ 싶은 영상들 가운데서도 이 정도면 끝판왕 아닐까. 하늘과 땅이 맞닿는 듯한 광활한 우유니 사막 한가운데, 천재 뮤지션 FKJ가 건반을 누르고, 기타와 베이스를 치고, 색소폰을 불며 노래를 부른다. 무려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지는 연주. 몽환적이고 그루비한 사운드와 함께 서서히 변해가는 황홀한 하늘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놀라운 라이브 클립을 제작한 ‘Cercle’은 뮤지션과 장소를 소개하는 라이브스트림 미디어다. 세계 각지의 아름다운 랜드마크를 선정해 뮤지션의 공연과 함께 영상으로 담아낸다. 알프스 산맥, 크로아티아의 국립호수공원, 터키 카파도키아 섬 등 방구석에서 떠나는 랜선 월드투어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2]
“바다에 울려 퍼지는 아이슬란드산 블루스 록”
Break My Baby (LIVE from Þrídrangar, Iceland)
by 칼레오
무지막지한 로케이션으로 끝내버리는 영상 하나 더. 이번엔 아이슬란드의 남쪽 해안, 세 개의 바위기둥 쓰리드랑가(Þrídrangar)로 간다. 매서운 파도 위로 우뚝 솟은 바위기둥, 그 한 가운데에 빨간 등대가 있다. 그리고 등대 앞 절벽에 서서 폭발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블루스 록 밴드 칼레오(KALEO). 거친 목소리와 강렬한 밴드 사운드가 아찔한 풍광과 어우러져 보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등대는 1942년에 완성된 아이슬란드의 역사적 명소라고. 정확히 78년 후 2020년, 이 마스터피스가 촬영된 거다. 이 팀은 정체가 뭐길래 어떻게 이런 스케일로 찍을 수 있나 싶지만 아직 놀라긴 이르다. 거대한 빙하 호수(‘Save Yourself’)와 실시간으로 타오르는 활화산(‘Skinny’)을 배경으로 한 라이브 클립도 있으니까.
[3]
“여름밤 캠핑의 낭만”
스탠딩 에그 캠핑 라이브 [SUMMER CAMP]
by 스탠딩 에그
캠핑과 라이브. 참으로 낭만이 느껴지는 단어 조합 아닌가. 상상해보자. 고요한 숲속,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 어쿠스틱 기타를 치기 시작하고, 담담히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밤이 깊어간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볼 법한 감성 가득한 로망을 영상으로 옮긴 스탠딩 에그의 라이브 클립 ‘SUMMER CAMP’. 다큐멘터리 느낌이 나는 편안한 대화 장면과 사이사이 흐르는 노래가 아름다운 캠핑장 풍경과 어우러져 뭉클한 감정을 전달한다. 5곡 모두 좋지만 특히 밤의 감성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아이유 ‘밤편지’ 커버 부분을 추천.
[4]
“멜랑콜리한 도시의 밤”
Moon, 12:04am
by 오프온오프
밤의 무드를 이어받아, 또 다른 밤 풍경이 펼쳐지는 오프온오프의 라이브 클립으로. 노래 가사는 깊은 밤 연인과 함께 있는 순간에 대한 설렘을 표현하는데, 이 영상에서는 어쩐지 이국의 도시에서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몽롱한 톤의 기타와 촉촉하게 가라앉는 콜드의 음색, 밤거리에서 들려오는 일상적인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멜랑콜리한 정서가 좋아 주기적으로 찾아보는 영상. 요즘처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밤에 틀어 놓으면 쉽게 잠 못 들지도 모른다.
[5]
“음악 천재의 유쾌한 화장실 라이브”
Jacob Collier – All I Need (with Mahalia & Ty Dolla $ign)
by Jacob Collier
음악 천재 제이콥 콜리어(Jacob Collier)가 자기 집 화장실에서 선보이는 또 하나의 독창적인 퍼포먼스. 20대 후반에 무려 그래미 수상 5회를 기록한 그는 재즈, 아카펠라, 소울, 훵크 등 장르의 경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화음 체계를 무너뜨리며 음악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고 평가받는 거물 뮤지션이다. 일단 그런 거 모른 채 이 영상만 봐도 ‘찐’의 향기가 느껴진다. 휴지를 뜯고, 스프레이를 뿌리고, 수납 바구니를 때리는 등 화장실에서 낼 수 있는 여러 소리를 샘플링해 라이브를 채우다니. 아이폰으로 찍은 듯한 다소 현실적인 화면 안에, 요상한 공룡 옷을 입은 채 형형색색의 크록스 컬렉션을 뽐내는 제이콥의 세상 행복한 표정은 정말이지… 각자의 공간에서 참여한 마할리아(Mahalia)와 타이 달라 사인(Ty Dolla $ign)의 모습이 화장실 창문과 거울에 나오는 것도 귀여운 포인트다. 이것이야말로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합동 라이브인가.
[6]
“서양음악과 만난 춘향가”
이별가
by 두번째달, 고영열
소리꾼의 구슬픈 외침이 아이리쉬 휘슬과 바이올린, 건반 등의 신비롭고도 애상적인 사운드를 타고 퍼진다.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달’이 새롭게 해석한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 ‘이별가’. 두번째달은 유럽의 민속음악을 비롯해 재즈, 왈츠, 팝 등의 다양한 해외 음악을 서정적인 분위기로 표현하는 팀이다. 기존 연주곡인 ‘얼음연못’과 판소리 ‘이별가’를 매치해 이렇게나 슬프고 아름다운 곡을 탄생시켰다. 팬텀싱어 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의 멤버로도 알려진 고영열의 드라마틱한 가창까지 더해져 듣는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드는 영상. ‘네이버 온스테이지’는 국내 가장 대표적인 음악 라이브 콘텐츠인데, 한국의 보석 같은 뮤지션들을 빠르게 발굴하고 소개해온 이 시리즈가 벌써 10년을 넘겼다. 다른 아티스트들의 영상도 쭉 둘러보길 추천한다.
[7]
“찬 바람 부는 가을에 듣는 쓸쓸한 목소리”
Lying To You | Mahogany Session Remastered(2011)
by Keaton Henson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즈음 듣기 좋은 뮤지션, 키튼 헨슨(Keaton Henson). 영국의 뮤지션이자 시인이자 비주얼 아티스트인 그는 대중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내한공연은 고사하고 해외에서도 공연을 거의 하지 않는 편. 오늘 소개할 ‘Mahogany Sessions’나 ‘NPR Tiny Desk’ 같은 라이브 콘텐츠에 등장한 모습이 더 귀한 이유다. 특히 ‘Lying To You’ 라이브는 잊을 만 하면 생각이 난다. 작은 테라스에 홀로 앉아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타 치며 노래하는 키튼 헨슨. 떨리고 깨질 듯한 목소리와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상념에 젖어 들게 만든다. 거기에 빛바랜 나무 바닥과 짙은 초록잎, 카멜색 니트가 조화를 이루는 차분한 색감까지 전체적으로 가을 무드가 물씬 풍긴다.
[8]
“듣는 순간 내 방구석 재즈바”
JAZZ BOX vol.2
by 선우정아
뉴욕의 재즈바는 못 가지만 방구석에서나마 재즈의 밤을 즐겨보자. ‘JAZZ BOX’는 지난해 3월부터 이어온 선우정아의 온라인 공연 시리즈다. 프로 재즈 연주자들과 미니 재즈 콘서트를 진행하며, 유튜브로 실시간 라이브를 송출한 뒤 재가공해 지금까지 총 7개의 영상을 업로드 했다. ‘Fly Me To The Moon’처럼 첫 소절만 들으면 다 아는 유명한 곡부터 ‘Smile’, ‘Cheek to Cheek’ 같이 재즈에 별 관심이 없으면 처음 들어볼 법한 스탠더드 곡들까지 풍성한 셋리스트. 로맨틱하고, 산뜻하고, 흥겹고, 쓸쓸하고 하여간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한 느낌이다. 리듬과 멜로디를 갖고 놀며 환상적인 스캣까지 선보이는 선우정아를 따라 느낌 살려 와인이나 위스키 한 잔 홀짝여보자.
[9]
“영국인과 아프리카인이 뉴욕에 보내는 인사”
Englishman/African In New York
by Sting, Shirazee
차가운 도시 남자 노래의 정석 같은 곡,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 이 노래가 ‘African In New York’으로 기출변형돼서 나온 적이 있단 사실을 아는지. 식빵은 한 쪽만 굽고 커피 대신 차를 마시는 영국인 대신, 부푼 꿈을 안고 뉴욕에 입성해 자존심과 에너지를 잃지 않으며 걸어가는 아프리카인이 등장한다. 서아프리카 출신의 쉬라지(Shirazee)가 리메이크한 이 버전은 추후 스팅과의 듀엣곡 ‘Englishman/African In New York’으로 재탄생하기에 이른다. 인종도 국가도 나이도 성장배경도 전혀 다른 두 이방인이, 뉴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루프톱에서 웃음짓고 리듬을 타며 노래하는 장면.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핵심 가사를 이토록 심플하면서도 상징적으로 보여주다니.
[10]
“한 편의 모노드라마 뮤지컬처럼”
Condolence | A Take Away Show
by Benjamin Clementine
장소의 분위기와 아티스트의 에너지와 곡의 정서가 삼박자를 이루는 라이브. 프랑스 기반의 라이브 콘텐츠 <A Take Away Show>에서 벤자민 클레멘타인(Benjamin Clementine)이 부른 ‘Condolence’는 한 편의 모노드라마 뮤지컬을 보는 듯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파리의 웅장한 생트 쥬느비에브(Sainte Geneviève) 도서관, 코트에 맨발 차림으로 벤자민 클레멘타인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무아지경에 빠져 노래하던 그는 어느새 도서관 곳곳을 걸어다니며 무반주로 소리를 뱉는다. 표정과 소리 하나하나를 온전히 컨트롤하며 화면을 장악하는 아티스트가, 유서 깊은 건물 풍경과 어우러져 뿜어내는 고전적인 아우라. 이 영상이 마음에 들었다면 <A Take Away Show>에 출연한 다른 아티스트의 영상들도 꼭 찾아보길 바란다. 파리 구석구석을 누비는 뮤지션들을 따라 여행하는 기분도 느껴볼 수 있을 것.
[11]
“음악과 미디어 아트의 완벽한 조합”
Venom (feat. nafla)
by DJ Wegun, nafla
딱 두 사람만 나온다. DJ와 래퍼. DJ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사운드를 만지고 때때로 현란한 스크래칭을 선보인다. 래퍼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팔을 휘젓고 쉴 새 없이 랩을 뱉어낸다. 말로만 들으면 별거 없어보인다고? 이 라이브 클립의 진짜 매력은 음악과 미디어 아트의 완벽한 조화에 있다. 스크린 배경을 채우는 화려한 그래픽. 곡의 모티브가 된 마블 코믹스 속 ‘베놈’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형상들은 템포와 사운드에 맞춰 변화해 음악의 무드를 살리고, 흑백 대비를 통해 DJ와 래퍼의 액션을 극대화하는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
[12]
“랩이 밴드 사운드를 타고 흐를 때”
MIC SWG [BOOTH] – EP17. 피타입
by 피타입
힙합 라이브 영상을 이어가보자.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국힙 팬이라면 ‘마이크스웨거’라는 채널을 한 번쯤은 본 적 있겠지? 여러 콘텐츠 중에서도 <BOOTH> 시리즈를 특히 소개하고 싶다. ‘랩과 밴드의 감동을 만나다’라는 슬로건처럼, 풍성한 밴드 연주 위로 흐르는 랩을 듣는 즐거움이 있다. 17번째 타자로 나선 피타입의 라이브는 명불허전. 오랜 시간 소울풀한 음악을 해왔던 ‘짬바’가 있기에, 허스키한 음색으로 재지한 그루브를 타는 모습에 여유가 넘친다. 힙합 밴드 워크맨쉽(Workmanship)이 전달하는 쫄깃한 사운드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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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