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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취향] 선물은 빨간 게 좋아요

아마도 이것은 올해 마지막 지름. 이 아이 덕분에 마음이 넉넉하다. 지금 굉장히 부자가 된 기분이야. 올 한 해, 몸도 마음도...
아마도 이것은 올해 마지막 지름. 이 아이 덕분에 마음이 넉넉하다. 지금 굉장히…

2016. 12. 23

아마도 이것은 올해 마지막 지름. 이 아이 덕분에 마음이 넉넉하다. 지금 굉장히 부자가 된 기분이야.

올 한 해, 몸도 마음도 둘 곳을 몰라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다. 정착하지 못하는 건 스릴 넘치지만, 늘 불안한 일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어딘가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내게 필요한 것 역시 공간이었다. 줄자로 몇 제곱 미터인지 잴 수 있는 그런 것 말고, 알루미늄 원판에 자성체를 입힌 보조기억장치 말이다.

지난 여름, 512GB의 저장 공간을 가진 맥북을 구입하며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3층 짜리 마당 딸린 주택을 구입한 것 마냥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고작 두 달여가 지나고 나서야 상황을 깨달았다. 매주 몇 백장의 고화질 사진을 저장하고, 영상 편집을 시작한 내게 512GB는 우리집 화장실 보다 비좁은 공간이었다. 저장 공간이 부족해서 작업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서른 번 쯤 접하고 나서야 생애 첫 외장 하드를 구입했다. 그때도 무지했다. 1TB면 운동장인 줄 알았다.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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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저장 공간이 없다”는 메시지는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캔버스가 없다”는 얘기와 똑같다. 아, 스트레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크리스마스 계획 조차 없이 일과 연애하는 내게 마지막 선물을 주기로 했다. 더 이상 쫄지 않을 널찍한 ‘새 공간’. 이를테면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겠다. 올해 에디터H의 마지막 지름, ‘WD 마이 패스포트 4TB’다.

4TB 라니. 소리내어 발음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지는 것 같다. 지금 내 맥북의 8배에 달하는 저장 공간이다. 좁은 집에 열 식구가 모여 살다가 대저택으로 이사한 기분이다. 게다가 이 물건이 외장 하드 주제에 엄청 예쁘다. 괜히 기분 좋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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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가 여러 가지라 엄청나게 고민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겸 연말 선물이니까 빨간색이 좋을 것 같았다. 눈이 시릴 정도의 화사한 빨강이다. 내가 워낙 레드를 좋아하기도 한다. 빨간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다. 빨간 립스틱이나 빨간색 머그컵, 스웨터 같은 것들.

포장을 뜯어보고 몇 가지 디테일에 감탄해 리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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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때 혹한 것 중 가장 큰 요소가 디자인이다. 기존에도 WD 마이 패스포트 시리즈 1TB 제품을 썼는데, 그건 그냥 까만색의 평범한 외장하드였다. 필요해서 산 거였고, 사고 나서 별 감흥도 없었다. 근데 디자인이 달라졌다는 것 만으로(용량도 4배 커졌지만) 사고 나서의 만족감도 완전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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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경우엔 외장 하드를 들고 외출할 일이 종종 있다. 다른 사람에게 덩치 큰 파일을 전해주거나, 외장 하드 속 자료를 급히 써야할 일이 있을 생기곤 하니까. 그런데 나와 함께 외출하는 다른 가젯에 비해, 여태까지의 외장 하드는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외장 배터리 조차 디자인을 따지는데 외장 하드는 예쁜 게 없었다. 정말로 없었다. 이렇게 예쁘고 화사한 제품은 처음 본다. 그리고 WD가 이런 제품을 만든 게 단순히 “예쁘게 만들어서 여성 유저를 끌어낼꺼야”라는 의도 였던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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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디지털의 세계에 깊게 발담그고 있는 사람을 위한 제품이 아닐까. 결국 디지털 데이터 역시 현실과 떨어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컬러풀하고 스타일리시한 외장 하드를 손 끝에 잡음으로서, 이 안에 들어있는 정보의 가치가 아름다운 외관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보관하려고 하는 데이터의 내용이 다르듯이, 그걸 담는 그릇 역시 똑같이 시커멓게 생길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좋은 디자인은 삶의 질을 높여준다. 병따개 하나를 사도 유니크한 디테일이 살아있으면 쓸 때 괜히 기분이 좋듯이.

디자인에는 철학과 디테일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사고 나서야 찾아본 건데 이 외장 하드는 굉장히 유명한 디자이너 작품이라고. 퓨즈프로젝트의 창업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이브 베하(Yves Behar)가 참여했다. 실생활과 디지털 세상을 잇는 교차점 같은 제품인 만큼 뛰어난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했다더라.

상당히 건축적인 디자인이다. 한 쪽은 매끈한 민무늬고 한 쪽은 역동적인 빗살무늬(?)가 들어갔다. 여기에 강렬한 컬러를 더해 상당히 화려하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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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제품 박스에 들어있는 케이블 컬러를 본체와 ‘깔맞춤’ 했다는 사실이다. 보통은 까만색 케이블이 들어있기 마련인데, 굳이 따로 제작했다는 뜻이다. 이런 디테일 너무 좋다. 외장 하드를 사고 이런 만족감을 얻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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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에 있는 미끄럼 방지 고무 역시 빨간색!

구입 전에 확인한 아마존 평가도 우수했다. 원래 쓰던 시리즈라 안정성에 대해서는 믿고 있는 터다. 며칠 전에는 맥북 프로의 성능을 테스트해보고자, 무려 4K 해상도의 영상을 작업했다. 결과는 좋았으나 영상 편집 프로그램에서 7분짜리 영상을 작업한 마스터 파일이 무려 115GB. 무시무시한 용량이다. 방금 전에 새로운 외장 하드로 이동시켰다. USB 3.0을 지원해서 데이터 전송 속도는 쾌적하다. 쇼핑을 좋아하는 나는 마음 먹는다. 4TB도 모자라면, 다음엔 오렌지 컬러를 사야지. 나란히 두면 예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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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데이터 유실의 두려움이 있다면, WD 백업 기능을 사용하길 권한다. 백업을 원하는 기기에 연결해두면 정기적으로 파일을 백업하는 기능이다. 드롭박스 같은 클라우스 서비스로 백업하도록 선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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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있는 연말 선물을 찾고 있다면 정말 자신있게 추천한다. 특히 IT 기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다. 외장 하드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좋은데, 잘 모르면 안사게 된다. 뭘 사야할 지도 모르고. 꼭 필요한 제품인데 디자인까지 유니크하니 선물하기 좋을 듯. 1TB. 2TB, 3TB. 4TB까지 용량이 다양하다. 나처럼 영상 편집하겠다고 끙끙대는 타입이 아니라면 1~2TB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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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맥북을 쓰는지라 맥용 마이 패스포트 모델이 따로 있어서 좋았다. 애플의 백업 기능인 타임머신과 완벽하게 호환되기 때문에, 4TB의 용량을 활용해 타임머신 백업 장치로 쓸 수 있다. 내 맥북을 영혼까지 백업할 수 있는 방법인데다, 원하는 주기에 맞춰 자동 백업을 설정할 수 있어 편리하다.

뛰어난 안정성도 이 제품의 특징이다. 256비트 하드웨어 암호화 활성화를 통해 개인 파일이나 암호에 대한 보안을 강화할 수 있다. 하드웨어 기반 암호화는 데이터 전송 속도나 PC 성능에는 영향을 주지 않아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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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할 때는 에디터M의 맥북 에어에 연결했었는데, 아니 세상에 이럴수가. 512GB가 비좁다고 투정하던 내가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에디터M의 맥북에 사용 가능한 공간은 고작 20GB. 늘 숨이 헐떡거리는 상태다. 하나를 저장하려면 하나를 지워야 한다고. 내가 얌체처럼 내 것만 마련했는데, 에디터M이야 말로 외장 하드가 필요할 것 같다. 연말 선물로 사줘야하나. M, 무슨 색을 원하니? 선물은 원래 후끈한 마음을 담아 빨간 색이 제일 좋은데 말이지. 아마 올해 마지막 선물이 되겠네.

WD 마이패스포트
Price : 1TB 10만 9,000원 / 2TB 13만 9,000원 / 3TB 18만 9,000원 / 4TB 21만 9,000원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