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랑종>에 대해 가장 궁금한 건 이거 아닐까. “랑종 많이 무섭나요?” 그것에 대한 답부터 하자면 “아니요 무섭지 않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비교하면 <곡성>보다 무섭지 않았다. 영화 초반에 <곡성>과 비슷한 음산한 기운을 비슷하게 보여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는다. ‘뭣이 중헌지 모르는 인간의 무기력한 결말’이라는 점에서 <곡성>과 비슷하지만 디테일에서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참고로 이번 기사는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이미 <랑종>을 봤거나 안 볼 사람만 읽으면 좋겠다. 오늘 리뷰는 아래 세 가지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 <랑종>은 무슨 내용인가?
- <랑종>은 얼마나 무서운가?
- <랑종>은 왜 재미가 없는가?
일단 줄거리부터 간략하게 설명해볼까. 배경은 태국이다.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태국 전국을 다니던 제작팀은 바얀신을 모시는 ‘님’이라는 무당을 찜하고 심층 취재에 들어간다. 어떻게 무당이 되었는지, ‘다큐 3일’ 정도의 톤으로 님을 따라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님과 제작진은 님의 조카 ‘밍’이 빙의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제작팀은 신내림이 되물림되는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다는 들뜬 마음으로 취재 대상을 님에게서 밍으로 바꾸고 밍을 따라다기기 시작한다.
[다큐 주인공으로 섭외된 무당 ‘님’이다. 님은 집안 여자는 대대로 무당이었다.]
어떤 영화관에서는 불을 켜고 겁쟁이를 위한 상영회도 한다는데 그럴 정도로 무서운 영화가 아니다. 내가 담력이 대단해서 안 무섭다는 게 아니다. 나의 쫄보지수는 꽤 높은 편이다. 살면서 공포 영화를 겨우 여섯 편밖에 못 봤다. <장화홍련>은 아직도 못 봤고,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보다가 기절할 뻔했고, <그놈이다>는 20분 만에 극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물론 <랑종>이 안 무섭다고 해서 두 눈 부릅뜨고 두 시간 동안 편하게 관람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 후반부에 밍과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관찰 카메라를 찍는 장면이 있다. 밍이 밤마다 무슨 짓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그 장면에서 밍은 조용히 방에서 나와 거실에 있는 가구를 어지럽히다가 갑자기 카메라로 돌진한다.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이다. 7월 14일 왕십리 CGV 마지막 회차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질렀다.
[왼쪽부터 님의 언니 노이, 빙의된 밍, 님의 오빠 마닛]
빙의된 밍의 움직임은 귀신보다는 좀비에 가깝다. 기괴한 움직임은 산속에서 뛰어다니던 <곡성>의 악마와 비슷하다. 각기를 하듯 관절을 꺾고 짐승처럼 네발로 기어 다니기도 한다. 밍을 치료하기 위한 퇴마의식 일주일 전부터 제작진은 밍의 집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는데, 여기에 찍힌 장면들은 대부분 무섭다.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서 초록빛으로 녹화되었는데 그래서 더 무섭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부 퇴마의식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심리적 공포를 주는 영화에서 하드코어 고어좀비물로 변신한다. 구마 의식 성공 직전에 밍의 숙모는 악마의 꾀에 넘어가 부적을 잔뜩 붙인 밍의 방을 열어준다(퇴마사 싼티는 그 방을 절대 열어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결국 퇴마는 실패하고 이때부터 온갖 악귀가 퇴마사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들어가며 살점을 뜯어 먹는 사냥이 시작되는 거다. 오장육부가 나오고 피가 낭자하니 비위가 약하다면 눈을 꼭 감자. 여기까지가 <랑종>은 무섭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요약하자면 잔인하고 불쾌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무섭진 않다.
[퇴마사 싼티와 그의 제자들]
다른 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반과 후반의 분위기가 다르다. 분기점이 되는 건 님의 죽음이다. 전반부의 주인공은 ‘님’이다. 님은 <곡성>의 곽도원과 비슷한 인물이다. <곡성>에서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님은 조카 밍을 살리기 위해 바얀신에게 기도를 하고 갑자기 사라진 밍을 찾아내기도 하는데 퇴마의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죽는다. 이게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그 장면은 ‘아침에 찾아가니 갑자기 죽어 있었다’라는 식으로 짤막하게 표현된다. 영화 초반부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캐릭터 빌딩을 했던 주요 인물이 급사한 것에 대해 영화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물론 이런 방식은 공포 영화에서 흔히 쓸 수 있는 충격 요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장치를 너무 가볍게 사용했다.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 전에 님을 죽일 정도의 강력한 힘에 대한 암시를 주거나, 그 죽음으로 인해 퇴마의식에 큰 변화가 있는 등 줄거리에 활용하지 않고 마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다룬다. 님은 영화의 구심점이었고, 여러 캐릭터를 이어주는 인물인데 영화에서 사라짐으로써 이야기는 텅 비어버리고 시각적인 자극만 주는 고어물로 급격하게 바뀐다.
[님이 모시는 바얀신의 석상]
다큐 제작진 캐릭터도 아쉽다. 페이크 다큐 형식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등장한다. 제작진은 영화 후반부에 빙의된 인간들에게 사지를 뜯겨 죽게 되는데, 님을 허무하게 소비해버린 것처럼 여기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는 2시간 내내 제작진에게는 캐릭터를 부여하지 않았다. 캐릭터를 부여하는 방식은 대사와 행동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말을 하는지를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캐릭터의 반응을 예상하고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 속 제작진은 카메라를 들고 있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비명을 지르며 다 같이 죽는 장면은 잔인할 뿐 공포스럽지 않았다. 관객이 감정이입하도록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공포가 아닌 불쾌감이 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랑종>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건 페이크 다큐라는 장르 그 자체다. 페이크 다큐를 어설프게 사용해서 왜 굳이 페이크 다큐를 선택했을까라는 의문이 남았다. 제작진이 님이 아닌 밍의 가족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설득되지 않았다. 그들을 설득하는 건 물론이고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 채로 출발한다. 어떤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왜 하필이면 나를 찍는지 납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24시간 나를 따라다니는 카메라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카메라는 클럽에도 따라오고 술 취해서 집에 가는 길에도 계속 찍는다. 하지만 이들은 의문을 품지 않는다. 빙의 증상이 심해져서 밍이 자신의 옷을 찢고 난리를 피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럴 때만 가족들이 촬영을 그만하라고 말할 뿐,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카메라에 익숙하다. 밍의 가족은 카메라에 익숙한 브이로거인걸까?
[점점 피폐해져가는 밍]
아까 위에서 짧게 언급했던 장면이 있다. 퇴마의식을 할 때 밍은 자신의 방에 갇혀 있는 상태라고. 그때 거실의 상황을 보면 퇴마사의 제자, 밍의 숙모가 앉아 있다. 퇴마사는 의식이 끝났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 문을 열지 말라고 하는데 방 안에 있는 밍이 자꾸 숙모를 부른다. “언니, 문 좀 열어줘” “나 괜찮아” 그래도 열어주지 않자 이제는 방 안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밍의 언니에게는 아기가 있었기 때문에 방 안에 내 아기가 있다고 현혹된다. 퇴마사 제자가 문을 열려는 숙모를 막자 그녀는 꽃병으로 제자의 머리를 가뿐히 가격한 뒤 문을 열고 퇴마는 실패로 끝난다(매우 허술한 전개다). 그 순간 카메라는 그 모든 상황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했고 심각성을 아는 제작진이지만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 결국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
[무당이 되기 싫다고 말하는 밍과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엄마 노이]
이런 태도를 보고 ‘와, 정말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철저한 직업 정신을 가졌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관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영화 초반에 밍은 빙의 증상으로 하혈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가는데 이때 카메라는 그대로 밍을 따라간다. 그리고 화장실 문틈으로 피를 닦는 밍을 촬영한다(이건 범죄 아냐?). 비슷한 장면은 또 있다. 이번에는 증상이 좀 더 심해져서 화장실 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워하니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괜찮냐고 묻는다. 개입을 하는 것에서 하지 않는 것으로 태도가 변했다면, 그런 컷을 넣어야 관객이 알 수 있는데 디테일이 부족하다.
[노이는 빌리 아일리시 앨범 커버 같은 표정의 밍을 데리고 퇴마를 하러 다닌다]
아쉬운 점은 또 하나 있다. 밍의 가족은 빙의된 밍을 자유롭게 풀어둔다. 너무 허술하다. 그때는 이미 밤마다 거실을 난장판 만들어놓는 상태인데도 가족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강아지가 거실을 돌아다니고, 갓난아이는 무방비로 자고 있다. 결국 밍은 강아지를 삶아 먹고 아이를 납치해서 산속으로 달아나기도 한다. 가족들의 안일한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고, 이런 상황을 컨트롤해야 할 님이 방임하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잔인하게 나열된 상황을 보면 마치 각각의 엽기적인 씬을 하나로 억지로 이은 듯하다. 관객에게 공포를 줄 수 있는 엽기적인 장면이 필요했으나 뒷받침할 수 있는 줄거리에 구멍이 너무 많이 생긴 거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공포를 느끼는 리액션을 위한 인물로만 소비될 뿐 세세한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랑종>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
여성과 동물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랑종>은 논란이 있다. 시각적인 공포를 주기 위해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끔찍한 장면을 넣었고, 밍이 강아지를 삶아 먹는 것과 밍이 불 꺼진 사무실에서 남자와 관계를 가지거나 하혈을 하는 것도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빙의된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설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빙의 증상 중 하나가 고작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그려진 건 오래된 설정이고 구시대적이다. 과연 그 정도가 최선이었는가, 의문이 든다. 이런 비슷한 장면이 몇 개 있고, 몰입이 깨질 정도로 뜬금없다고 느꼈다.
<랑종>을 안 볼 사람들을 위해 줄거리를 좀 더 설명할까 한다. 중요한 메세지가 그 안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님의 집안 여자들은 대대로 무당이었고, 그녀가 신내림을 받기 전에 언니 노이가 바얀신의 선택을 받았었다. 하지만 무당이 되기 싫었던 노이는 신병을 참으며 끝끝내 거부했고, 자신의 속옷을 님의 것과 바꾸면서 바얀신이 님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밍이 아픈 걸 보자 님은 노이에게 바얀신을 거부했던 걸 사과한 후 밍이 신내림을 받을 걸 제안한다. 처음에는 죽어도 내 딸이 무당이 되는 게 싫다고 하던 노이는 딸이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지고 자해까지 하자 결국 그러기로 한다. 하지만 밍에게 들어온 건 바얀신이 아니었다. 집 안의 남자들이 대대손손 저질렀던 인간과 동물 학살의 결과로 그 원혼들이 밍의 몸에 들어간 것이었다. <랑종>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죄를 지었다. 근친상간, 생명경시, 인권유린 등. 그들의 죄가 쌓여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것이다.
줄거리만 보면 흥미로운 것 같은데(적다가 보니 시나리오는 재미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문제는 연출이다. <랑종>은 나홍진이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썼지만 연출은 반종 피산다나쿤이 했다. 그게 결정적 차이다. <랑종>을 ‘제2의 곡성’ 혹은 ‘곡성을 뛰어넘는 무서운 영화’인 것처럼 홍보했지만 <랑종>의 만듦새는 <곡성>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다. 나홍진의 차기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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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