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대중음악/문화 전문 저널리스트 박희아야. 대중음악과 문화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붙인 이유는, 오랫동안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의 입장에 가까웠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제, 대중음악 그리고 그 하위분류가 된 K팝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대중문화라는 좀 더 넓은 카테고리로 넓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소개를 하게 됐어.
사실 내가 이렇게 저널리스트로서의 분야를 확장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방탄소년단, 이제는 BTS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이 팀의 영향이 컸어. 트랙과 멜로디, 믹스와 마스터링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을 좁은 의미의 음악적 성취라고 말할 때, 이 팀의 가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문학적, 철학적으로 바라볼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문화 콘텐츠로의 확장성을 갖지. 방탄소년단을 보이밴드 그 이상의 청춘 심볼로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랄까. 그래서 나는 늘 주장해. 방탄소년단을 방탄소년단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가사라고.
방탄소년단의 가사는 10대부터 40대, 50대 혹은 그 이상의 세대를 아우르는 한 편의 글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어. 그래서 준비했어. ‘Dynamite’는 알아도 ‘Whalien 52’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할 몇 개의 곡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Whalien 52’부터 소개해볼까?
“내 미래를 향해 가 저 푸른 바다와 내 헤르츠를 믿어”
“여긴 너무 깜깜하고 온통 다른 말을 하는 다른 고래들뿐인데”
‘Whalien’은 고래와 에일리언의 합성어야. 그러니까, 고래 중에서도 외계인처럼 동떨어진 주파수의 소리를 내는 이방인 같은 존재를 의미하지.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헤르츠를 지닌 고래의 이야기는 방탄소년단의 이야기야. 이 노래가 발표된 2015년 11월까지도 “너희들이 하는 게 무슨 힙합이냐”라는 힙합 신(특히나 힙합 음악을 만들고 부르던 RM과 슈가를 향한)의 비난을 받았던 방탄소년단의 혼란스러운 심경을 담고 있었지.
힙합 씬에서나 아이돌 씬에서나 그때까지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섞이지 못했던 그들은 이 노래의 가사를 통해 말했어. “다른 고래들뿐”이지만, “내 헤르츠를 믿는다”고. 몇 년 뒤, 방탄소년단은 어디든 자신들을 끼워 넣고 싶은 곳에 넣어보라며 ‘IDOL’이라는 곡을 부르게 돼. 사회가 이방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어디에 있더라도 우리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선언이었지. 그러니 어디에도 섞이지 못해 슬픈 너라면, 이 곡을 꼭 들어보도록 해.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속에다”
“그런데 말야 돌이켜보니 사실은 말야 나 최고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위로와 감동이
되고 싶었었던 나”
방탄소년단의 노래 ‘Magic Shop’의 몇 줄을 꼽아봤어.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 轉 ‘Tear’] 앨범의 수록곡인 이 트랙은 소위 ‘팬’’이야. 팬들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노래라는 뜻.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팬송’은 대부분 그들의 팬이 아니라도 마음을 토닥여주는, 정서적으로 상당한 안정을 주는 가사를 담고 있어서 누가 들어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방탄소년단은 이 곡의 가사를 통해 자신들이 팬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문’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이제는 톱스타가 된 자신들의 마음이 어떤 흐름을 타고 여기까지 왔는지 고백해. 늘 최고가 되고 싶었는데,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데 사실 나는 너의 위로와 감동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고.
이미 그들이 톱스타가 된 상태에서 털어놓는 이 이야기를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진 자의 여유’처럼 보일지도 몰라.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과거부터 꾸준히 투지와 열정으로 점철된 가사를 통해 조급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성장해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말들이 껍데기뿐인 위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야.
“팔레트 속 색을 섞어 pick your filter 어떤 나를 원해 너의 세상을 변화시킬 I’m your filter 네
맘에 씌워줘”
“불현듯 아이로 변한 날 봐 볼수록 귀여워 미치도록 취향도 기준도 뛰어넘어 넌 오직 나만을
원하게 돼 Yeah 날 만든 사람 바로 너니까”
이 곡은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의 솔로곡 ‘Filter’야.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솔로곡은 일곱 멤버들 각자의 성격과 보이스 톤, 음역대 등을 고려해서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게 프로듀싱된 곡들이 많아. 그중에서도 ‘Filter’는 숨을 쉬는 짧은 순간까지도 노래의 연장으로 만들면서 섹슈얼한 보컬을 들려주는 지민의 매력이 200%, 아니 그 이상으로 발휘된 트랙이지.
SNS에 사진을 올릴 때 흔히 사용하는 필터. 날 것의 얼굴 그대로를 보여주기 싫어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가공하는 우리의 이야기 그 자체잖아? “날 만든 사람이 바로 너니까”라는 구절은 그래서 아주 날카롭고, 잔인하지. 민낯으로는 말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어.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나조차도 민낯으로 보기 두려워하는 나를 계속 가면으로 덧씌우도록 유혹하는, 현실과 판타지의 매개가 되는 필터라니.
데뷔 때부터 늘 현실을 비판하는 곡을 한두 개씩 앨범에 실었던 방탄소년단이기에 이런 가사도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와. 그때와 달라진 거라고는 말하는 방식이 좀 더 세련돼졌다는 점?
2014년 [Skool Luv Affair]에 실려있던 ‘등골브레이커’ 속 “휘어지는 부모 등골을 봐도 넌 매몰차 친구는 다 있다고 졸라대니 안 사줄 수도 없다고”와 2020년 [MAP OF THE SOUL : 7]의 수록곡 ‘Filter’의 “새로운 우리가 될 거야 Ay 날 네 맘에 씌워줘”는 너무나 다르잖아. 방탄소년단은 이런 식으로 10대의 언어와 20대의 언어 유용 방식에 차이를 두면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오는 성장 서사를 완성했어.
어때? 지금 소개한 세 곡 만으로 이 팀의 가사가 지닌 매력을 모두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 지금 내가 추천한 세 곡 외에도 제목이 끌리는 곡이 있다면 꼭 들어보기를 바라.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위로가, 비판이, 사랑이 담겨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