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영상이 주인공이 된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잡지를 읽을까. 일단 나부터 그 질문에 답하기 힘들다. 요즘의 나는 잡지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많이 보고, 잡지는 구독하지 않아도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는 2년 넘게 구독하고 있다. 잡지보다 더 재미있는 게 많은데 내가 왜 지금 잡지 추천 기사를 쓰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인생을 돌아보니 잡지는 분명 쓸모가 많았다. 마음이 공허한데 그 이유를 모를 때, 영화도 술도 여행도 비어버린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할 때 에디터가 쓴 몇 마디, 인터뷰이의 솔직한 생각이 날 위로해줬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잡지 추천 기사를 쓰고 있나 보다.
오늘은 창간과 폐간이 난무하는 잡지 시장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잡지 2종과 오래오래 살아남길 바라는 잡지 1종을 소개한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더. 애정하는 잡지든 아니든 폐간된다는(공식적으로는 무기한 휴간)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안 친한 친구도 아파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이고..어쩌다’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나. 20년 동안 공연계 소식을 전한 <더 뮤지컬>이 성공적으로 컴백할 그날이 언젠가는 오길 바란다.
[1]
“잡지를 펼치면 바로 여행”
어라운드
어라운드를 두고 ‘한국의 킨포크’라는 말을 많이 한다.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킨포크와 어라운드에는 분명 닮은 점이 있다. 따뜻하고 아련한 필름 질감의 사진, 다양한 방식으로 느리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어라운드는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려준다. 킨포크에 인간극장을 섞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제는 표지만 봐도 ‘한국의 킨포크’라는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라운드는 2019년, 창간 8년 만에 격월간지로 리뉴얼했고, 표지는 확 바뀌었다.
여백을 넓게 두고, 폰트는 크게 넣고 매호마다 컬러를 바꾸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디자인에 대한 선호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 사진 한 장을 크게 넣는 이전 디자인이 서정적이었다면 지금은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디자인이 더 좋긴 하다.
사실 나는 어라운드 애독자는 아니다. 관심 가는 주제일 때만 몇 번 사서 읽었다. 주로 재미있게 읽었던 콘텐츠는 인터뷰였는데, 아예 모르던 사람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일간지에서 절대 인터뷰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랄까. 대단한 업적을 세운 사람, 큰 투자를 받은 사람도 아닌,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사람. 그런 별일 없는 인터뷰이의 소소한 대화를 훔쳐보는 게 좋았다. 인터뷰이가 사는 세상과 내가 있는 세상의 갭이 크지 않아서 심리적으로 더 가깝다는 느낌도 들었다.
최근에 읽었던 것 중에는 요조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소문난 떡볶이 덕후 요조가 최애 떡볶이 집에서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은 콘텐츠였다. 기획부터 귀엽고 흥미롭지 않나. ‘떡볶이 덕후 요조가 최애 떡볶이 집에서 인터뷰한다’ 좋은 기획은 단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한 법이다. 숫자, 돈, 성공, 물욕, 엑셀(?)에서 멀어지고 싶다면 어라운드를 읽어보자. 친환경적인 재생지를 내지로 써서 색이 아주 선명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거친 종이가 주는 느낌이 좋다. 가격은 1만 5,000원이고,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면 [여기] 들어가 보자.
[2]
“우리가 사는 도시의 디테일”
어반라이크
2013년에 창간한 어반라이크는 원래는 패션을 주로 다루는 월간지였다.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일 년에 단 두 번만 발행하고, 다루는 주제도 전보다 넓어졌다. 책 소개글을 보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슈를 선정해 도시 현상을 고유의 창의적인 시각으로 담아내는 도시 아카이브 매거진’이라고 적혀있다. 어렵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쉽게 와 닿지 않을 거다. 지금껏 다룬 주제를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거다.
34호의 주제는 ‘Dear Reader’였다. 종이 잡지를 만드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종지 잡지 산업의 지금과 미래를 조망했다. 38호의 주제는 ‘A Good Meal’이였다. 도시 사람들이 요즘 무엇을 먹고, 어디서 먹고, 먹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집중했다. 이 외에 일하는 공간, 종이책, 호텔, 재택근무 등도 다룬 적이 있다. 이제는 ‘도시 아카이브’라는 생소한 단어가 조금 손에 잡히지 않나? 쉽게 말해 어반라이크는 도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기록하는 잡지다.
어반라이크에서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는 콘텐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다. 10명에게도 물었다가 100명에게도 묻는다. 같은 시대의 같은 도시에 사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의 가치관과 태도를 비교하는 게 흥미롭다.
주제가 달라질 때마다 형태가 달라진다는 건 어반라이크의 가장 큰 특징이다. 최근에 발행한 어반라이크를 놓고 보면 같은 잡지라는 게 연상되지 않을 정도다. 크기, 비율이 바뀌는 건 기본이다. 호텔, 문구 편에서는 잡지에서는 거의 본 적 없는 비율로 만들었고(보통 잡지가 아이패드라면 이건 아이폰 비율), 종이 편에서는 한 권의 책처럼 양장본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 재택근무 편에서는 고급스러운 다이어리 같은 표지에 갈피끈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건 마치 앨범마다 변신하는 아이유 같다. 다음 호에는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룰까, 기대하게 된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2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가격인데 이것도 매번 가격이 달라진다. 잡지 입문자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가격이다. 그래도 나는 추천하고 싶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구매 링크는 [여기].
[3]
“좋은 취향 있으면 소개시켜줘”
디렉토리
펀치홀이 뚫려있는 특이한 표지를 보라. 그 붉은색 커버를 한 장 펼치면 질문이 적혀있다. ‘지금 사는 집은 네 취향이야?’ 커버부터 심상치 않은 디렉토리의 디테일은 무서울 정도다. 아카데미 잡지연출상이 있다면 디렉토리가 받았을 거다.
디렉토리는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이 만든 잡지다. 직접 만든 건 아니고, 볼드저널로 유명한 볼드피리어드에서 만들었다. 혹시 볼드저널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정말 짧게 설명하자면, 현세대 아버지들을 위한 잡지다.
예전에 한 예능에서 정형돈이 “아이가 생기면 엄마 아빠의 삶이 시작되는 건데, 우리가 엄마 아빠로 살아본 적이 없잖아”라고 고민을 말한 장면이 있다. 그런 초보 아버지를 위한 잡지가 바로 볼드저널이다. 부부위기, 필환경생활, 오늘의 패션, 주말의 발견 등 한 번쯤 생각하면 좋은 주제를 다루었다. 언제 아빠가 될지 모르는,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는 내가 봐도 관심이 가는 주제다. 추천하고 싶어서 말이 길어졌다. 볼드저널 구매 링크는 [여기]. 다시 디렉토리로 넘어가자.
디렉토리는 직방이 만든 매거진답게 집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주제를 보면 나의 재택 표류기, 루틴은 아름다워, 취향의 자립, 우리가 지난 창문 등이다. 콘텐츠 분량을 보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탐방하는 인터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들으면 바로 알만한 연예인이나 셀럽은 없다. 문주희, 하진구, 김현아, 차예지, 이지호, 김수진 모두 초면이다. 직업도 A회사의 매니저 이런 식이다. 근데 나는 이런 게 오히려 좋다. 화려한 화보에, 알맹이는 없는 일부 셀럽 인터뷰에 비하면 말이다.
인터뷰 시작 페이지마다 면적, 가격 등 구체적인 정보가 적혀 있다. 한 페이지를 넘기면 방을 구경할 수 있는데 마치 친구네 집에 놀러간 느낌이 든다. 내가 요즘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예전에 읽을 때보다 더 상세하게 보게 된다. ‘종로구에 이렇게 저렴한 집이 있다고?’ ‘이분 인테리어가 완전 내 취향인데?’ 어라운드 못지않게 잡지에 실린 사진의 퀄리티도 좋아서 사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어디가 더 낫다는 비교는 아니다). 혼자 잘 사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한 번쯤 디렉토리를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가격은 1만 6,000원. 구매 링크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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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