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천의 아들’ 객원 에디터 김정년이다. 다들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 유교 집안의 구성원이지만, 아버지의 통큰 결단으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그래서 고향집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린다. 이제 연휴가 되면 좀이 쑤신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을 들쑤셨다.
“얘들아. 사회적 거리두기 지키면서 할 수 있는 제일 맛있고 즐거운 일이 뭐가 있을까?”
“야 오랜만에 닭강정 땡기는데, 포장해서 닭강정 드랍십 어떠냐?”
“오, 동인천부터 만수동까지 싹 다 쓸어볼까?!”
“각자 먹고 싶은 거 하나씩 골라봐.”
“야 픽업하면 우리 집에서 모여, 집 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용사들이 닭강정의 이름으로 한데 뭉쳤다. 어떤 음식은 맛과 감성을 툭 건드리는데, 인천토박이에게는 닭강정이 그런 음식이다. 어머니 아버지가 시장에서 사오면 온 가족이 넉넉하게 나눠먹었던 특식, 모의고사가 끝나면 친구들이랑 다같이 시장으로 몰려가 먹었던 외식. 심지어 닭강정은 인천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지역언론 기사나 한국문화원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닭강정의 기원을 부둣가 시장음식이라 설명한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물자관리를 위해 인천항 옆 재래시장을 식품거래 전용장터로 지정했는데, 전국 각지에서 모인 상인들의 레시피 노하우와 풍부한 식자재가 빚어내며 탄생한 치킨요리라고. 지금도 여전히 인천항 근처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는 밀가루 공장과 식용유 공장을 생각하면, 아주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닌듯하다.
신선한 닭을 기름에 풍덩 빠뜨린 요리는 모두 위대하다. 맛없기도 힘들다. 하지만 닭강정의 미묘함은 아직 자세하게 리뷰되지 않은듯 하다. 달착지근한 닭튀김이지만 닭강정은 양념치킨과는 다르고, 꾸덕한 닭강정 특유의 튀김옷은 깐풍기의 껍질과도 사뭇 다르다.
특히 인천의 닭강정은 다른 지역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맛은 아니었다. 속초에서 만난 닭강정은 훌륭했고, 프렌차이즈 닭강정집의 맛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지만, 토박이 자부심인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지역도 이렇게 닭강정이 동네마다 시장마다 맛이 세밀하게 나눠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모든 치킨요리는 위대하며, 나는 강호의 숨은 치킨고수를 모두 존경한다 .
다만 한 사람의 치킨러버로서 먹은 만큼, 아는 만큼은 정직하게 기록해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4인의 인천사람이 3곳의 닭강정을 시식하고 평가를 달아뒀다. 다들 배불리 맛있게 먹었지만, 시식평은 엄근진. 우당탕탕 인천의 닭강정 리뷰를 끝까지 지켜봐주시길!
「인천의 닭강정 시식단」
간석동 김씨 : 본문작성자, 튀김옷이 꾸덕한 치킨을 좋아하는 타입.
석바위 최씨 : 간석동 김씨의 동네친구, 맘카페 꿀정보 눈팅러, 대식가.
동암역 서씨 : 간석동 김씨의 고교동창, 맛있는 음식에 “느낌있네!” 라는 입버릇이 들어감.
경인교대 최씨 : 동암역 서씨의 배우자, 20대부터 인천에서 거주중. 맵찔이.
[1]
‘동암역 서씨’의 선택
신포국제시장 닭강정
서쪽끝 인천 부둣가에서 출발해 동쪽끝 인천대공원까지 내달리는 인천 15번 버스. 동인천역 근처에서 승객이 탑승하면 이따금 그가 손에 쥔 비닐봉다리에서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온다. 버스 전체에 매콤하면서 달착지근한 냄새가 퍼진다. 차 안에 냄새가 나는 물건을 타고 탑승하는 건 에티켓이 아니지만, 어쩐지 이 냄새만큼은 다들 묵인하고 넘어가는 느낌이다.
신포시장 닭강정 냄새다. 만약 인천의 향이란 이름으로 아로마 키트가 만들어진다면, 꼭 넣어야 마땅한 인천의 냄새다. 향부터 남다른 치킨이다.
전반적으로 간이 세다. 접시에 흐를 정도로 걸쭉하게 늘어지는 물엿의 진한 단맛, 청양고추의 알싸하고 매콤한 향, 간을 맞춘 닭에서 나는 짭조름한 맛, 향과 맛 모두 혓바닥 위에서 강강강으로 때려버리는 게 신포국제시장 닭강정의 특징이다. 큼지막하게 썬 닭조각의 살코기가 두터운 튀김옷과 잘 어울리는 편인데, 식었을 때 물러지고 튀김옷이 흐느적거리는 여느 치킨과 달리, 소스에 푹 절여있어도 바삭한 맛을 유지한다. 인천지역 닭강정의 특징이지 않을까.
닭강정의 탄생을 눈으로 즐기는 즐거움도 기다리고 있다. 시장통 한구석에서 넓고 깊은 가마솥웤에 갓 튀긴 후라이드치킨 조각과 꾸덕한 물엿양념장이 버무려지는 순간을 구경한다.
넓은 주걱으로 골고루 뒤집으면 양념소스가 골고루 베어든다. 청양고추의 알싸한 향과 땅콩가루의 고소함이 뭉쳐지면, 원통버킷에 넉넉한 양의 닭강정이 담긴다.
퇴근시간이나 주말이면 시장입구부터 사람들이 줄서기를 펼치는 신포국제시장 닭강정은 회전율이 좋은 두 가게가 나란히 마주본 채 2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어디가 맛있냐는 질문을 더러 받는데,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취향에 맞춰 줄을 서자. 파란색 간판의 원조 신포 닭강정은 비교적 매콤한 맛이 강하고, 주황색 간판 찬누리 닭강정은 비교적 달콤한 맛이 두드러진다.
이건 소소한 꿀팁인데, 포장 없이 먹고 가려는 사람들은 꼭 직원에게 문의하시길! 대기줄에 어영부영 휘말려 마냥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데, 두곳 모두 식당 내부공간이 넓고 회전율이 좋아 기다림 없이 빠른 식사가 가능하다. 피크타임 때는 포장주문보다 홀식사가 접객이 더 빠른 편이다.
- 인천 중구 우현로 49번길 4
- 10:30 ~ 21:30
- 닭강정(후라이드) 大 18,000원
닭강정(후라이드) 中 14,000원
[2]
‘간석동 김씨의 선택’
주안지역 닭강정
100년 전만 해도 바닷물이 들어와 소금염전이 있었다는 주안. 언덕없이 평평한 이 땅에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나 영화 <남매의 여름밤>에 나올 법한 단독주택과 이층 양옥집, 그리고 재래시장이 많았다. 이제 시장골목에서 흥성거림은 찾아볼 수 없지만, 시장 근처에서 있는 통닭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전하다. 자유시장의 <대오통닭>을 비롯해, 포장 전문으로 특화된 닭강정집이 주안에 즐비하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취향저격 닭강정을 발견했다.
주안지역의 닭강정은 ‘닭’보다 ‘강정’에 힘이 쏠려있다. 엿에 버무려져 단단하게 뭉친 전통강정처럼 쫀득쫀득하고 바스라지는듯한 튀김옷 식감이 두드러진다. 살코기는 담백하고 마일드한 편이라, 닭강정의 특징적인 맛은 대부분 겉면에서 느껴진다. 땅콩가루와 깨알이 콕콕 박힌 닭강정은 마치 맛동산 과자를 연상케한다. 버킷 안에 소스가 흐르는 신포시장 닭강정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주안지역 닭강정집은 공통적으로 선풍건조에 열심. 이 지역 닭강정의 개성은 갓튀겨낸 닭강정을 소쿠리에 옮겨담아 선풍기 바람 앞에서 빠르게 식혀주는 작업에서 나오는 듯하다. 수증기가 빠져나간 닭강정의 매마른 듯하면서도 윤기가 감도는 비주얼, 닭강정의 꾸덕한 식감은 단연 일등! 시식단 선정 ‘가장 우수한 튀김옷을 지닌 닭강정’이라는 의견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아졌다.
이런 맛동산류 닭강정은 차게 먹어도 맛있다. 시식단도 오히려 차게 먹었을 때 맛이 좋지 않겠냐는 반응이 대세. 따끈따끈하게 픽업한 닭강정을 곧바로 먹었을 때, 생각보다 맛있지 않다면, 반나절이나 하루 정도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 먹는 걸 추천한다. 원래 강정이라는 음식 자체가 반죽과 고명을 버무려 굳혀낸 음식이니, 딱딱하게 굳었을 때가 가장 좋은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 인천 미추홀구 남주길 11번길 19
- 월요일 휴무, 09:00~19:00(일요일 18:00)
- 뼈 닭강정 1마리 16,000원
순살 닭강정 1마리 19,000원
[3]
‘석바위 최씨’의 선택
석바위 형제 닭강정
재래시장은 식재료의 최전선이다. 싱싱한 닭고기를 가장 먼저 공급받는 덕일까? 생닭집은 닭요리를 나란히 파는 경우가 많다. 전국의 재래시장에는 반드시 이름난 닭집이 한두가게 쯤 자리잡고 있으며, 주력은 대부분 치킨으로 수렴한다. 주인장의 음식센스, 지역특색, 우연한 레시피 개선이 뒤죽박죽 섞여 탄생한 개성만점 닭튀김을 나는 ‘시장형 치킨’이라 부르고 싶다.
인천의 유서깊은 전통시장인 석바위시장에도 그런 유니크한 ‘시장형 치킨’이 있다. 코끝이 찡해지는 생강 혹은 계피향, 바짝 졸인 물엿의 달착지근함, 바삭하기보다는 쫀득한 느낌이 드는 살코기 위의 눅진 튀김 옷, 한입크기로 토막난 강정조각들. 독보적인 맛이다. 오직 이 가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 닭강정이다.
한 번은 사장님에게 닭강정값을 치르며 물어봤다. 언제부터 장사하셨냐고, 이 맛을 처음 만드신 분이 누구냐고. “닭강정 만드는 법은 부모님한테 물려받았죠~ 지금까지 가게는 한번 옮겼는데 석바위에서 35년 째 장사하고 있어요.” 장을 보러 시장에 들르면, 일부러 가게 쪽으로 방향을 틀어 걷는다. 흘낏 바라본 닭집에는 사람들이 닭을 매끄럽게 손질하는 풍경과 진열대에 올려진 따끈한 닭강정이 놓여져 있다. 내 평생 가장 많이 먹은 닭강정이 언제까지나 한결 같은 맛으로 남아있길! 서른 평생 석바위를 떠나본 적이 없는 토박이인 나는 치킨이 땡기면, 일부러 시장에 들러 반마리를 포장해 싸들고 온다. 시장에서 파는 치킨은 반마리여도 한마리같은 넉넉함이 있기에!
- 인천 미추홀구 경원대로 852번길 12 석바위시장 a동 12호
- 09:00~21:00
- 닭강정 반마리 8,000원
닭강정 1마리 16,000원
미처 소개하지 못한 닭강정가게가 많다. 아쉽다. 재료소진으로 픽업하지 못한 주안 대오통닭, 부평 깡통시장의 명물 김판조 닭강정 등등등… 그리고 미처 알려지지 않은 치킨명가도 있을 것이다. 나만의 닭강정집 추천이 댓글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이코닉하며 독보적인 맛을 드러내는 가게, 전에 없던 비주얼로 남다른 맛을 선보이는 닭강정집 정보가 집단지성으로 완성되길 바라며 인천의 닭강정 시식단은 이만 총총! 🙂
About Author
김정년
브랜드와 음식문화를 탐구하는 피처 에디터. 세계를 떠돌며 아름다운 논픽션을 쓰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