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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좋은 와인을 사는 법

안녕, 객원필자 김은아다. 코로나와 통계가 만날 때 완성되는 문장이란 썩 아름답지가 못하다. 치솟는 확진자 수라든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의 지수로...
안녕, 객원필자 김은아다. 코로나와 통계가 만날 때 완성되는 문장이란 썩 아름답지가 못하다.…

2021. 02. 02

안녕, 객원필자 김은아다. 코로나와 통계가 만날 때 완성되는 문장이란 썩 아름답지가 못하다. 치솟는 확진자 수라든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의 지수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여기에서 벗어나는 귀여운 통계가 두 개 있다. 코로나19로 전국민 평균 체중이 4.9kg이 증가했다는 것 그리고 와인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

나는 종종 이 통계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덕분에 숫자에 약한 뼈문과임에도 대략적인 수치를 기억할 정도다. 통계 결과가 일종의 마음의 평화를 주기 때문이다. 아,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안심이랄까. 동시에 불이 켜진 아파트 집집마다 사람들이 열심히 와인을 마시고, 맛있는 걸 집어먹으며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아, 귀여워(나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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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끝없이 이어지는 홈술, 집술의 핵심 키워드가 있다면 술 조달일 것이다. 특히 와인. 소주, 맥주야 새벽 2시에도 조달할 수 있지만 와인은 그렇지 못하다. 요즘은 편의점 중에서도 와인을 구비해놓는 점포가 많아졌지만 최선의 구입처는 아니다.

일단 종류가 턱없이 부족하다. 디아블로 까베르네 쇼비뇽, 얄리 샤르도네, 그리고 아무개 모스카토 다스티… 한밤 중에 혈중 포도 농도가 수직 하락해서 정말 급하게 수혈해야 한다면 디아블로나 얄리가 나쁜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갑자기 청아한 리슬링이나 묵직한 쉬라가 먹고 싶은 날, 아니면 같은 까베르네 쇼비뇽이라도 좀 더 내 취향에 맞는 와인을 꼭 마시고 싶을 때는 이 빈약한 매대를 바라만 보다가 그냥 가게를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격도 비싸고. 때문에 이런 위급 상황을 맞지 않도록 1년에 3-4번 정도 열리는 대형마트 와인 장터 기간에 여러 병을 쟁여놓는 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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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편의점 와인을 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보관 상태 때문이다. 와인이 소주, 맥주에 비해 회전율이 낮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진열대에 뽀얗게 먼지가 쌓인 와인병을 보면 편의점 개점부터 그 자리를 지켰던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일자로 정직하게 세워두었으니 와인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코르크가 말짱할지도 의문이고.

물론 점포 바이 점포겠지만, 편의점에서는 와인을 사면 안되겠다 마음먹은 확실한 계기도 있다. 출퇴근길 항상 지나치는 집 앞 편의점은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야외에 놓았는데, 그 위에는 뜯지 않은 와인 재고 박스가 365일 놓여있다. 최고 기온 40도를 육박하던 지난 여름에도, 시베리아보다 서울이 추웠던 그저께 한파에도 변함없이… (와인 보관에서 온도 변화는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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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두터운 편의점 와인에 대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에서 와인을 사게 만든 서비스가 등장했다. 바로 GS25의 ‘와인25 플러스’. 나만의 냉장고 어플을 통해 와인을 구매하면, 빠르면 당일 저녁에 가까운 편의점에서 수령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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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체험을 핑계로 와인을 주문해보기로 했다. 가을 장터 때 사놓은 겨울나기 와인이 아직 넉넉하긴 하지만. 집에 안 읽은 책이 잔뜩 쌓여있어도 새 책을 사서 읽고 싶은 그런 날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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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냉장고는 평소에도 2+1 상품을 쟁여놓는 용도로 종종 사용하곤 하던 앱이라 익숙했다. ‘와인25 플러스’ 메뉴로 들어가면 먼저 수령 점포를 고를 수 있는데 여기 함정이 있다. 무조건 가까운 지점을 고르면 안 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점포(위에서 말한 야생의 와인 박스 그곳)로 지정했더니 ‘애걔걔?’ 하는 소리가 나오도록 선택지가 빈약했다. 나름대로 정성 들인 서비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잠시 살펴보다 집과 거리는 좀 있지만 매장도 크고, 신제품도 다양하게 들여놓는 매장을 골랐더니 훨씬 다양한 리스트가 등장했다.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원하는 와인이 없다면 매장 선택을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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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25 플러스의 와인리스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다채로웠다. 먼저 가격대. 5,280만 원 짜리 로마네 꽁띠부터 5900원 짜리 하프보틀 와인까지 다양한 와인을 판매한다.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을 때 5,280만원 짜리 와인을 어디서 급하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바로 GS25가 정답이었던 것이다!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던 구독자 분들께도 답이 되셨기를.

아무튼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을 갖추고 있어 예산에 맞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로마네 꽁띠는 농담이었지만, 뵈브 클리코와 모엣 샹동 등등의 맛있는 샴페인도 판매하고 있으니 특별한 저녁시간을 만들고 싶다면 훌륭한 선택이다. 서울 지역에 한해서는 당일 오전에 주문하면 저녁에 바로 수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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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로 매그넘 사이즈 와인. 일반 와인 한 병은 750ml이지만, 매그넘 사이즈는 1.5L~3L(더블 매그넘)의 호쾌한 용량을 자랑한다. 매그넘 와인은 전문 보틀샵이 아니고서야 몇 종류를 찾아보기 힘든데, 와인25 플러스에서는 꽤 괜찮은 와인을 들여놔 나의 혼을 빼놨다. 터프한 버블이 톡톡 파티를 여는 드라이 스파클링 와인 ‘헨켈 트로켄’, 꿀과 꽃과 과일향이 기분 좋게 무거운 ‘켄달 잭슨 샤르도네’를 1.5L로 마실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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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이 둘러앉아 이 와인을 콸콸 따라마시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일단 지르고 나서 파티원을 모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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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하게 나를 홀린 것은 위스키. 어쩌면 와인 라인업보다 알찬 섹션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발렌타인, 조니워커 같은 대중적인 제품도 갖추고 있지만 시중에서 사려면 발품을 팔아야하는 제품을 많이 갖추고 있다. 한정판 에디션이라거나. 글렌드로낙 21년 팔리아멘트, 발렌타인 21년 워밍스파이스처럼.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눈에 아른거리는 제품도 있다. 꼬냑 브랜드 레미마틴의 상위 라벨인 레미마틴 1738 어코드로얄… 가격을 이야기한다면 최저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문 매장까지 가는 수고를 덜어주는 비용이라고 친다면 비싸다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지금은 설 선물용으로 다양한 세트를 구성해 두었으니 혹시 술 선물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접속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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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리스트는 제법 품종도 다양하다. 피노누아, 메를로, 진판델, 쇼비뇽 블랑, 피노 그리지오, 그리고 내추럴 와인까지. 집 가까운 곳에서 이 정도 선택지가 있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와인숍을 둘러보는 마음으로 이 메뉴 저 메뉴를 구경했다. 직원이 없으니 비비노에서 마음껏 가격과 평점을 검색해 볼 수도 있었다. ‘어떤 와인 찾으세요?’ 묻는 직원의 친절이 어딘가 부담스러웠던 내향형 와인러버에게는 이 서비스의 최대 장점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들도 눈에 띄었다. 최대 단점은 검색이 안 된다는 점. 내가 찾는 와인이 입점해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메뉴 구성도 아직까지는 중구난방이었다. ‘1월 추천상품’에 있던 와인은 정작 ‘와인’ 탭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당일 판매 상품이 아닌 경우는 3일 후에나 수령할 수 있다는 것도 아쉬웠다. 저는 오늘 당장 마시고 싶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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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모조모 살펴본 끝에 한 병을 골랐다. 첫 구입이니 가장 무난한 와인으로. 칠레 와인인 맥스 리제르바 까베르네 쇼비뇽(2만 5,000원). 적당한 무게감이 있어 편의점 안주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11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저녁에 찾아갈 수 있는 제품이기도 했다. 잠들기 전 주문했더니 다음날 퇴근 즈음 점포에 와인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왔다. 두근두근. 매장에 도착해서 주문할 때 받은 QR코드를 내밀었더니 금세 와인을 건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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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데 이 봉투, 익숙하지 않으신지? 완전 면세점 바이브 아닌가. 체크인하면서 캐리어 보내고 가벼운 몸으로 입국심사 마치고, 반층 올라가자마자 번호표 뽑은 다음 영수증에 싸인 휘리릭 휘리릭하면 받아드는 그 봉투… 얼마나 반가운지. 코로나19가 사람을 이렇게 감상적으로 만들어놨다. 혹시 면세점 바이브를 느끼고 싶다면 와인25 플러스를 이용해 보시라.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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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로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떡볶이를 구입하려고 했으나 그날따라 품절. 마침 근처에 야채곱창 포장마차가 눈에 띄었다. 이렇게 집 근처에서 조달한 술과 안주로 저녁의 페어링 완성. 앞으로도 괜찮은 와인을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괜히 든든한 느낌이다. 집 근처에 나만의 보틀숍이 생긴 기분이랄까. 오래 단골로 남을 수 있도록 얼른 더 다양한 와인이 들어오기를!

kim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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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일로 여행하고, 취미로 술을 씁니다. 여행 매거진 SRT매거진 기자, 술 전문 뉴스레터 뉴술레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