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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은 그냥 드릴게요

참신하게 놀 궁리를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객원필자 김은아다. 얼마전 내 눈에 딱 걸려든 계정이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칵테일 하나쯤 생겼으면...
참신하게 놀 궁리를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객원필자 김은아다. 얼마전 내 눈에 딱…

2020. 11. 16

참신하게 놀 궁리를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객원필자 김은아다. 얼마전 내 눈에 딱 걸려든 계정이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칵테일 하나쯤 생겼으면 좋겠어요’라는 슬로건으로 칵테일 클래스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아트 오브 칵테일(@aoc_art.of.cocktail)’이 바로 그 주인공.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온라인 클래스를 연다고 하니, 이 얼마나 뉴노멀적인가(힙해보인다는 뜻).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수업이 무료라는 점. 충격적인 건 수업에 필요한 술 한 병만 구입하면 클래스에 필요한 일체의 준비물을 공짜로 보내준다는 것이다. 쉐이커나 지거(jigger)처럼 바텐더들이 칵테일을 만들 때 사용하는 전문적인 도구들을 포함해서! 이 지점에서 뭘 하더라도 일단 폼이 중요한 장비병 말기 환자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참여 방법은 더욱 흥미롭다. 불시에 인스타에 다음 클래스의 주제가 될 술을 공지하는데, 최대한 빨리 구매한 다음 인증샷을 DM으로 보내면 된다. 선착순 100명 안에 들면 클래스에 참여 자격이 주어진다. 불확실성과 내기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ESTP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으니, 참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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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문득 궁금해진다. 이렇게 조건 없이 다 주면 뭘 남기는 거지. 술꾼들을 위한 자선사업 단체인가? 혹시 술꾼들을 낚는 새로운 보이스피싱 방법?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캐물은 결과 마침내 정체(?)를 알아냈다. 계정주는 바로 FJ코리아. 봄베이 사파이어, 바카디, 그레이구스, 예거 마이스터 등을 공식 수입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홍보마케팅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아트 오브 칵테일’은 판매를 위한 마케팅이 아닌, 칵테일을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캠페인이라고. 음지 문화처럼 여겨지는 주류 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건전하고 즐겁게 칵테일을 즐긴다면 목표 달성이라는 설명. 대답을 들으며 이런 아낌없이 주는 주류회사가 세상에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럼 직접 클래스에 참여해볼 차례. 설레는 마음으로 게시물 알림 설정을 해두고 새로운 공지를 기다렸다. 집에 사둔 술이면 좋을텐데, 구하기 힘든 술이면 어쩌나, 남대문시장 수입상가(각종 외국 주류를 구비해놓은 것으로 유명하다)에 가봐야 하나. 마음으로 한창 설레발을 떨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공지가 올라왔다. 이번 클래스의 주인공은 데킬라인 ‘호세쿠엘보 실버’라는 소식. 데킬라는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마가리타를 먹을 때나 마셔봤기에 그다지 친숙한 술은 아니었다. 더욱이 노란 라벨이 아닌 흰색 라벨의 호세쿠엘보는 생소했다. 그러나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선착순 100명 안에 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퇴근길에 대형마트 세 곳을 들른 끝에 호세쿠엘보 실버 구입에 성공했다. 다행히 클래스에도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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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쿠엘보 클래스가 개최되는 날은 11월 8일 일요일. 이틀 전인 금요일, 집 앞에 묵직한 박스가 도착했다. 두 손으로 들기에도 버거운 묵직한 포장을 풀었더니 ART OF COCKTAIL이라고 쓰여진 컬러풀한 박스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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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퀴저, 샷 잔, 머들러, 라임·레몬·오렌지 등 생과일, 각종 주스와 음료, 멕시칸 안주(?)인 나초까지. 기대하지 못한 선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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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J코리아에서 펴낸 <칵테일 DIY> (정가가 무려 2만8,000원!)로, 칵테일 도구에 대한 소개부터 다양한 리큐르로 만들수 있는 칵테일 정보가 담긴 책이다. 뭔가 한아름 품에 안고 나니, 벌써 반은 칵테일 전문가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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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클래스가 열리는 날. 키트에 쓰여져있던 대로 냉장보관해둔 재료들을 늘어놓고,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호세쿠엘보를 꺼냈다. 넉넉히 준비해둔 얼음도 보울에 와르르 쏟아놓고. 푸짐한 준비물을 테이블에 일렬로 진열해놓았더니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가 나서, ‘여기 완전 바 아니냐’를 읊조리며 잔뜩 인증샷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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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클래스 시작. 데킬라의 고향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는 <코코> OST가 흥겹게 흘러나오고, 학생(?)들이 하나둘 채팅으로 인사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때맞춰 멕시코 전통 모자인 솜브레로를 쓴 믹솔로지스트 김봉하가 등장했다. 주조 솜씨만큼이나 입담이 맛깔지기로 유명한 그다.

“안녕하세요! 멕시코 할리스코의 아가베 농장에서 인사드립니다. 한국은 몇 도예요? 여기 멕시코는 햇볕이 아주 쨍쨍합니다. 오늘 클래스를 위해서 2주 전에 멕시코에 입국해서 자가격리를 마쳤어요.”

클래스는 ‘오늘의 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데킬라는 법적으로 멕시코에서만 생산한 술을 의미하며, 멕시코에서도 5개 주에서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그중에서 호세 쿠엘보 농장이 있는 할리스코주에서 전 세계 90%의 데킬라가 생산된다. 데킬라는 선인장과 비슷하게 생긴 식물인 아가베를 원료로 만든다.

Blue Agave Field[이게 아가베 농장]

뿌리를 쪄낸 뒤 즙을 짜고, 이를 발효해서 증류하면 데킬라가 완성된다. 증류 뒤 별다른 숙성 없이 병입하면 오늘 사용하는 호세 쿠엘보 실버, 8주~1년 사이의 숙성을 거치면 호박색을 띄는 호세 쿠엘보 레포사도가 되는 것이다. 좀 더 대중적으로 유명한 레포사도는 숙성하는 동안 오크 등 다양한 풍미가 녹아있다면, 실버는 깔끔한 맛 덕분에 칵테일로 즐기기에 좋다는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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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배웠으니 입으로 느껴볼 차례. 샷 잔에 호세 쿠엘보 실버를 담아 조금 맛을 본다. 도수는 40도로 꽤 높지만, 맛은 생각보다 독하지 않고 깔끔하다. 특유의 약초 향도 난다. 이내 김봉하 믹솔로지스트가 현지에서 데킬라를 즐기는 법을 알려준다. 샷 잔 두 개를 준비하고, 한쪽에는 데킬라를, 한쪽에는 토마토 비율이 높은 채소주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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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나 소금을 가볍게 간 하듯이 뿌려준다. 마시기 전에 “꿰 빠소, 아미고!(que paso amigo)”를 외친 뒤 샷을 원샷하고, 이어 주스를 원샷하면 내 기분 마치 멕시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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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속에 자꾸 술만 먹으면 안 되니까 멕시코식 안주도 스슥 만들어본다. “나초와 같이 먹을 과카몰리를 만들어 볼텐데요. 아보카도를 반으로 자르시고요… ” 헉, 아보카도는 없었는데. 재료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으니 클래스 전에 준비물을 한 번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뭐 나초가 짭짤하니까 괜찮다. 과카몰리가 완성된 기념으로 다시 한 번 샷을 ‘짠’한다. 앗… 샷 세 잔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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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이스 브레이킹에는 알코올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인스타 라이브 채팅방에는 점점 ‘ㅋㅋㅋ’ ‘ㅎㅎㅎ’가 늘어나며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나 아직 쉬어가기엔 이르다. 클래스 한 시간 동안에 받은 재료를 야무지게 다 써봐야하니까.

드디어 본격적인 칵테일을 만들어볼 시간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쿠엘보 스퀴즈를 만들어본다. 얼음을 가득 채운 유리컵에 샷을 한 잔 넣고, 토닉워터를 넣어 가볍게 저어먹는 심플한 칵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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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퀴저☆’라는 폼나는 도구로 라임즙을 짜 넣는 것만 해도 맛이 300배는 상승하는 기분이 든다. 김봉하 믹솔로지스트가 또 한 번 건배사를 외친다. “마숑!” “드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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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칵테일은 콜라와 라임즙을 넣는 쿠엘보 콕. 만든 다음에는 뭐다? “마숑!” “드숑!”. 불과 30분 정도에 40도짜리 샷을 연거푸어 다섯 잔 마셨으니 알딸딸해지는 것은 당연. 클래스가 우당탕 동시에 진행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웃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김봉하 믹솔로지스트는 “실수로 너무 많이 따랐다”면서 남은 샷을 입에다 버리고(?), 얼음 쏟는 장면을 보고 웃다가 나도 덩달아 콜라를 테이블에 쏟는다.

1400_cocktail_-15[콜라 쏟음]

분더버그를 넣은 ‘뮬레타’도 만들고(또 “마숑!” “드숑!”), 자몽즙을 곁들이는 ‘팔루마’도(이번에는 “꿰 빠소, 아미고!”) 마셔보고. 김봉하 믹솔로지스트가 막간을 이용해 요즘 미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마가리타 칵테일이라는 ‘토미스 마가리타’를 만드는 시범을 보여준다. 폴 바셋(그 커피집의 폴 바셋!)이 한국에 왔을 때, 김봉하 믹솔로지스트가 대표로 운영하 운영하는 바에 와서 이 칵테일을 주문했다는 뒷이야기까지. 단골 바에 앉아 바텐더와 조곤조곤 수다떠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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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입구에 소금을 발라보는 리밍(rimming)이나, 살짝 벗거낸 오렌지 껍질로 시트러스 향을 입히는 멋드러진 기술로 오늘의 클래스는 종료. 즐거운 술자리에서는 시간이 날아가듯이 웃고 따라하느라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나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홈술할 때 오늘 배운 칵테일을 맛나게 말아줘야지. 아니 근데, 몇 잔 안 마신 것 같은데 왜 호세쿠엘보 병은 왜 1/3이나 사라진 건지 아시는 분? 오늘 배운 거… 내일도 기억 나겠지.? 어쩐지 글이 용두사미가 되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마숑… 드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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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일로 여행하고, 취미로 술을 씁니다. 여행 매거진 SRT매거진 기자, 술 전문 뉴스레터 뉴술레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