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차우진의 TMI] ‘배드 가이’밖에 모르는 당신에게

“빌리 아일리시 진짜 왜 대세죠? “뱃 가이”가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미를 휩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ㅠㅠ”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짐작하겠지만,...
“빌리 아일리시 진짜 왜 대세죠? “뱃 가이”가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미를 휩쓸…

2020. 02. 04

“빌리 아일리시 진짜 왜 대세죠? “뱃 가이”가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미를 휩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ㅠㅠ”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짐작하겠지만,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다…) 말 그대로, 제 62회 그래미 시상식의 스타는 빌리 아일리시였다. 시상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올해의 신인상’,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반’, ‘올해의 레코드’까지 4개 상을 모두 받았고, ‘팝 보컬 앨범상’을 더해 5관왕을 차지했다. 한 회 시상식에서 이렇게 핵심 부문을 모두 받은 건 1981년의 크리스토퍼 크로스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빌리 아일리시는 그래미 역대 수상자 중 핵심 부문을 휩쓴 최연소이자(이전 올해의 앨범 부문 최연소 수상자는 2010년, <Fearless>로 수상한 만 20살의 테일러 스위프트였다.) 최초의 여성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2001년생으로 올해 18살이 됐다. 대세 중의 대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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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VE ARE YOU KI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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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교차했다. 특히 올해 빌보드 최고의 성과를 거둔 아리아나 그란데와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라나 델 레이가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경우 싱글 차트(핫 100)에 1위부터 3위까지 “7 Rings”, “Break Up With Your Girlfriend, I’m Bored”, “Thank U, Next”를 올렸는데 이 기록은 1964년 비틀스 이후 최초이자 빌보드 핫 100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이다.

아리아나 그란데, 라나 델 레이에 비해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특히 빌보드 차트처럼 판매량과 언급량으로 대중성과 영향력을 수치화한 결과에서 상위권에 든 아티스트들은 음악성과 완성도를 측정하는 게 그렇게 의미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래미라는 권위있는 시상식 결과를 두고 여러 의견이 갈릴 만큼 2019년에는 좋은 음악이 많이 등장했다고 이해하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받은 질문처럼, 빌리 아일리시의 이번 수상에 대해 뜬금포처럼 느껴질 여지도 있다. 왜냐면 빌리 아일리시는 이제까지 상식적으로 여겨지던 팝 스타와 여러 모로 다르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팝 시장의 관점에서 두 개의 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마케팅의 변화, 또 하나는 세대의 변화다.


[1]
마케팅의 변화: 틱톡이 리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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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얘기에 앞서 그래미 시상식은 논외로 두자. 그래미 시상식은 ‘음악성’이라는 측정 불가능한 영역을 순위로 보여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빌보드 차트가 정량적인 면을 측정한다면 그래미 시상식은 여기에 정성적인 면을 더하는 것 뿐이다. 반 세기 이상 유지되는 과정에서 권위를 얻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 시상식 결과가 반영하는 건 ‘동시대적 분위기’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그 권위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존중하되, 이 부분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정도로 들어주면 좋겠다.

2019년 팝 음악계의 특징은 10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틱톡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다. 이번 그래미 시상식의 후보자는 총 84개 부문에 걸쳐 명단이 공개되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언급된 음악가는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음반’, ‘최우수 신인’을 포함해 총 8개 부문에 지명된 리조였다. 빌리 아일리시와 릴 나스 엑스 역시 ‘올해의 앨범’과 ‘최우수 신인’ 후보였다. 이 셋은 틱톡의 챌린지 영상(맞다,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가 벌어진 바로 그거다)으로 화제가 되었다. 특히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는 19주 연속 빌보드 핫100 1위라는 신기록을 세웠고, 리조 역시 역주행을 하며 올해의 신인 후보에도 올랐다. 이들은 각각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모먼스’(릴 나스 엑스), ‘베스트 팝 솔로 베스트 팝’(리조)을 수상했다.

사실 틱톡 같은 초대형 플랫폼은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주요 미디어 채널로 자리잡으면서 늘 중요해졌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스냅챗, 틱톡 등으로 그 메인 플랫폼이 변화했을 뿐이다. 저스틴 비버, 싸이, 방탄소년단이 트위터와 유튜브가 팝 산업과 연결되는 변화를 상징하는 음악가들이라면 릴 나스 엑스, 리조, 빌리 아일리시는 사운드클라우드와 틱톡이 만든 변화를 상징하는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현재,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결과다. 마케팅, 다시 말해 노출 그 자체가 중요해진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고 음악의 질이 떨어진 건 아니라고 본다. 대중이 음악을 통해 기대하거나 실제로 얻는 쾌감의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본다. 두번째 이슈인 ‘세대 변화’에 대해 얘기할 차례다.


[2]
세대의 변화: 뉴 제너레이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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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시상식에서 “Bad Guy”를 작곡한 빌리 아일리시의 친오빠인 오코넬은 이런 소감을 전했다.

“그래미상을 타려고 만든 앨범이 아닙니다.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기후변화 등, ‘배드 가이’가 되는 것에 대해 쓴 앨범입니다. 혼란스럽고 감사하네요.”

빌리 아일리시는 댄서로 활동하다가 부상을 당해 음악을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그것도 정식으로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기보다, ‘베드룸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방식(번역하면 ‘방구석 음악가’ 정도?)으로 시작했다. 쉽게 말해 컴퓨터와 가상악기로 만든 음악을 사운드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오코넬의 저 수상 소감은 애초에 프로 뮤지션을 지향하며 음악을 시작한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저 자신들이 느끼는 점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 뿐이라는 얘기다. 우울증, 자살충동, 기후변화 같은 소재로 말이다.

빌리 아일리시는 2001년 생이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이제 이십대로 진입한다.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이십대를 ‘성인으로 존중받으며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학습하는 시기’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들은 10대의 직간접적 경험을 자산으로 현실에서 가치관과 세계관을 다져나가게 된다. 그 점에서 지난 3년 간, 빌리 아일리시가 얻은 성과와 영향력은 이 세대가 빌리 아일리시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팝 스타를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로 이해한다면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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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는 캐치한 비트와 멜로디를 포함해 가사와 뮤직비디오, 패션 스타일까지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히 화려한 컬러와 오버사이즈 핏이 빌리 아일리시의 특징인데, 대중이 자신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게 싫어서 이렇게 입는다고 알려졌다. 여기에 우울증과 자살충동, 내면의 모순을 다룬 노랫말과 섬뜩할 정도로 강렬하고 인상적인 뮤직비디오가 더해지며 빌리 아일리시의 정체성을 만든다. 그것은 바로 ‘기괴하고 이상한 취향 뿐 아니라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도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는 빌리 아일리시’라는 정체성이다.

2000년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10~20대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때 얻을 수 있는 감각이다. 2000년 이후 인기를 얻은 드라마, 영화, 음악 등 거의 모든 팝 컬쳐에서는 이런 요소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해리포터> 시리즈, <엑스맨>과 <어벤져스>, <스파이더 맨>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부족함을 인정하라, 자신에게 솔직하라, 옳은 일을 하라 같은 메시지가 반복된다. 21세기는 팝 컬쳐가 가치관과 세계관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시대일 뿐 아니라, 언어와 인종, 젠더 같은 사회적 장벽이 곳곳에서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시대다. 2020년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이전과 다른 세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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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는 바로 이런 세대의 한 단면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네 자신을 사랑하고, 네 이름을 찾으라’고 말하는 방탄소년단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는다. 그것이 기성 세대의 눈에 마케팅 결과로 보일지라도, 당사자들은 늘 그걸 다른 식으로 전유하고 소비해왔다. 그게 바로 팝 산업의 이상한 특징이다. 심지어 지금은 마케팅이 더 없이 중요해지는 만큼, 그 지속성을 위해 공감과 신뢰를 얻는 자신만의 스토리 역시 중요해지는 시대다. 음악적 완성도,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 각종 미디어를 활용하는 마케팅 등은 20세기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바로 이런 동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빌리 아일리시가 그래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을 수상한 결과는 충분히 납득할 만 한 일이다.

자, 이제 최종 정리 TMI. 빌리 아일리시는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익숙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음악가다. 멀티 미디어와 멀티 페르소나라는 2010년대의 시대 정신을 자기 목소리에 반영하면서 아이콘이 되었다. 이런 음악가를 보는 나로서는, 마치 다른 세계의 입구에 서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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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차우진

음악/콘텐츠 산업에 대한 뉴스레터 '차우진의 TMI.FM'을 발행하고 있다. 팬덤에 대한 책 [마음의 비즈니스], 티빙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