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고 하면 하루 세 끼 파스타나 피자만 먹고 산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밀이 아니라 쌀이다. 촌스럽게 이탈리아까지 가서 쌀밥을 찾았냐고? 레스토랑에서 잘 구운 고기를 먹거나 시큼한 맛이 나는 해조류 사이드 디쉬를 먹으면서 “아 이거 쌀밥이랑 먹으면 완벽한데.”라고 말하는 뼛속까지 한국인니까.
냄비밥을 해서 퍼내고 야무지게 누룽지까지 해먹는 우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쌀을 가장 자주 먹는 방식은 튀겨서 먹는 거다. 아니, 밥을 튀겨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소리가 이 먼 시칠리아까지 들리는 것 같지만, 조금만 더 들어보시길.
오늘 소개할 이탈리아 메뉴는 바로 ‘아란치나’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소할테고 또 누군가는 아란치니 아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지식백과에 따르면 아란치니란 sicilian rice ball로 라구소스와 모차렐라 콩을 밥과 섞은 후 빵가루를 입혀 튀긴 이탈리아 요리라고 쓰여있다.
샤프란 물을 넣어 지은 밥을 동그랗게 뭉치고 그 안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튀긴 음식. 안에 들어가는 재료도 굉장히 다양한데, 토마토 소스와 함께 볶은 고기를 넣거나 햄과 치즈를 섞거나 혹은 크림 시금치를 넣은 아란치나도 있다.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데, 당연히 맛은 훌륭하다.사이즈가 어른 주먹만해서 하나만 먹어도 든든하고 테이크 아웃도 쉬워서 아침 또는 점심에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좋은 메뉴다. 나는 아침에 배가 출출하면 커피와 함께 1.5유로 정도하는 아란치나를 포장해서 바다를 보며 먹곤한다.
사실 밥에 속을 넣고 튀겨낸 음식이라 특별한 재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의 정서에도 잘 맞으니 어려운 맛은 아니다.한국에서도 먹어본 적있는 메뉴지만, 막상 이곳에 도착해서 먹은 아란치나는 고국에서 먹던 것과 좀 달랐다. 일단 이름부터 다르다.
이곳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는 아란치니가 아니라 아란치나라고 부른다.지역마다 이름이 다른데,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서쪽 팔레르모 지역에서는 아란치나라고 동쪽의 카타니아 지역에서는 같은 음식을 두고 아란치노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오렌지를 아란치아(arancia)라고 한다. 팔레르모에선 오렌지랑 닯아서 아란치나라고, 또 카타니아에서는 방금 튀긴 음식에서 김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볼케이노와 닯았다고 해서 아란치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같은 음식을 두고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게 재미있다.
주의가 필요하다. 팔레르모와 카타니아는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섣부르게 아란치노라고 말했다간 자칫 결례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김치를 기무치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칼을 쓰면 안된다고 했는데…]
[손으로 먹어야한다]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아란치나는 칼이나 포크를 쓰지 않고 손으로 먹는게 정석이라는 거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먹은 음식이 바로 아란치나였는데, 포크를 들고 먹는 우리를 보며 웨이터가 이건 손으로 먹어야한다고 알려주더라.
오늘도 아침 먹으러 가겠다고 길을 나선 권PD가 아란치나를 가득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테이블에 둘러 앉아 머리를 맞대고 동그랗고 따듯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자주 먹는데도 질리지 않는다니 음식의 정서가 맞는달까? 우리는 매일 아란치나를 먹는다. 한 손 가득 동그란 쌀밥을 들고 호호 불어 먹으면서 오늘도 우리는 이곳 시칠리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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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