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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뽑아주는 여자

나는 참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이다. 지금 쓰는 카메라는 소니A7R인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너에게 과분한 물건이라고 말하며 혀를 쯧쯧...
나는 참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이다. 지금 쓰는 카메라는 소니A7R인데, 나를 잘…

2016. 09. 28

나는 참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이다. 지금 쓰는 카메라는 소니A7R인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너에게 과분한 물건이라고 말하며 혀를 쯧쯧 차더라. 동의한다. 이상하지. 카메라는 똑같이 셔터를 깜빡거리는데 누구 손에 쥐느냐에 따라 사진에 담긴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똑같은 피사체를 완전 다른 세상의 것처럼 근사하게 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마법사인가.

세상 사람들의 모진 구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한다. 진중하게 셔터를 누른다기보다는, 고민 없이 순간 순간 사진을 찍는 편이다. 오늘 먹은 음식도 찍고, 문득 구름이 예뻐도 찍고, 에디터M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또 찍는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재밌거나 어여쁜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어서다. 아이라인이 잘 그려지면 예의상 셀카를 찍어주고, 비싼 밥을 먹으면 허세 사진을 남겨준다. 하다못해 아스팔트의 균열이 예뻐도 찍어둔다. 덕분에 내 기기들에는 사진 파일이 넘쳐난다. 특히 아이폰은 난리도 아니다. 범람, 또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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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제품은 포토프린터 인스탁스 쉐어2다. 가격은 24만 5,000원. 인스탁스 미니의 감성 넘치는 필름 위에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기기다. 사실 전작도 사용했었는데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필름 인화 특유의 감성적인 톤은 좋지만, 사진이 너무 뿌옇게 나왔기 때문이다. 조금 더 선명하게 인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업그레이드된 쉐어2가 나왔다. 전부 좋아졌다. 디자인 빼고. 개인적으로 디자인은 동글동글 귀여웠던 이전 모델이 더 마음에 든다.

아이폰 카메라롤에 1만 9,000장의 사진이 있다. 정말 많다. 업무를 위해 촬영한 사진이라면 컴퓨터 속에 저장된 파일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런데 소중한 사람의 웃는 얼굴이나, 여행지에서 담은 우연한 풍경은 두고 두고 보고 싶기 마련이다. 데이터로 저장된 사진은 즉각적으로 꺼내볼 수 없다. 결국 잊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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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어2로 인화하고 싶은 사진을 선정하기 위해 내가 찍은 사진들을 쭈욱 살펴보았다. 이때 내가 이렇게 어렸나? 이날은 술에 많이 취했나 보네, 눈이 풀렸군. 그래, 이때 진짜 즐거웠지. 아, 이 사람은 지금 뭐하고 지낼까? 가까운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 지난날이 선명하게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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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도 많이 뽑았지만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진을 나눠주기로 했다. 먼 나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떠나는 친척 언니에게 가족사진을 여러 장 인화해 선물했다. 언니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도 넣었다. 작은 필름 위에 그려진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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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진을 제대로 찍은 기억이 없다. 3년 전 사진까지 뒤져서야, 어느 결혼식에서 우리 네 식구가 멋쩍은 표정으로 함께 찍은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걸 인화해서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잘 보이는 곳에 그 사진을 올려두었다. 오래 간직할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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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탁스 필름은 디자인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게 많아서, 인테리어 용으로 활용하기 참 좋다. 얼마 전에 방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벽면에 2단 찬장을 설치했는데 그 위에 인화한 사진을 쪼르르 세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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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기 편한 제품이다. 와이파이로 연결해 스마트폰 앱에서 출력하는 방식인데, 연결도 빠르고 간편하다. 다만, 연결해둔 뒤에 앱을 실행하지 않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와이파이 연결이 금방 끊기니 참고하시길. 제품 자체에 필름 카트리지 잔량을 표시해주는 LED가 있어, 바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놀라운 건 10초 안에 출력되는 속도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사진을 출력할 때,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싶어 목을 빼고 기다리는 그들의 초조함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전작에 비해 사진도 훨씬 선명하고 고화질로 인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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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앱을 통해 간단한 편집 기능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나는 하나의 사진을 두 개의 필름에 연달아 인화하는 템플릿을 좋아한다. 그렇게 뽑은 사진을 어딘가에 걸어두면 꽤 멋스럽다. 파노라마 사진이나 풍경을 담은 사진을 그렇게 인화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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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을 들고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진짜 사진’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다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사진 한 장만 뽑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사진첩을 들쳐보며 어떤 사진을 인화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참고로 나한테 자기 애인 사진 좀 한 장 뽑아달라는 친구들도 참 많았는데, 난 마음이 넓은 여자니까 거절했다. 네 애인은 네 맘속에 간직하세요. 그럴 필름이 있으면 내 셀카를 하나 더 뽑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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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인이 키우는 고양이님의 사진을 뽑아달라는 요청은 거절하지 않았다. 귀여우니까.

사진 인화는 감성적인 영역의 일이다. 손에 잡히지 않던 디지털 파일에 숨을 불어넣는 일이고 말이다. 즐거운 리뷰였다. 지갑에 하나, 서랍에 하나, 책장에 하나, 소중한 사람들의 손에 하나씩 쥐여준 추억이 흐뭇하다. 사진을 잘 찍든 못 찍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구박하지 말고, 잊어버리지 말고, 간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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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