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 에디터H입니다. 사람은 참 이상하죠? 정말 좋은 걸 발견하면 나만 알고, 나만 쓰고, 나만 먹어도 될 텐데 그걸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특히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의 진가를 몰라준다는 생각이 들 땐 더더욱 그렇죠. 저한테는 초창기의 에어팟이 그랬습니다. 비싸다, 극혐이다, 콩나물이다, 치실 케이스를 닮았다.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우스꽝스러운 패러디 영상까지 나왔죠. 그치만 저는 포교 활동을 멈추지 않고,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에어팟을 전도했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에어팟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무선 이어폰’이 주는 경험 자체가 사랑스러웠던 거죠. 무선은 사랑이니까요.
도도한 힙스터들이 에어팟을 쓰기 시작하고, 오디오 업계에 강한 완전 무선 이어폰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내로라하는 브랜드마다 완전 무선형 이어폰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시장이 아주 재밌어진 거죠.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도 나오고, 음질이 훨씬 뛰어난 제품도 나오고, 가성비의 황제라는 QCY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래도 에어팟이 계속 인기를 끈 이유는 품질이 좋은 탓도 있지만, 애플이 만들었기 때문이죠. 블루투스 이어폰은 일반적으로 스마트폰과 연동해 사용하는데,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만든 이어폰이다 보니 사용자 환경면에서 착! 붙게 최적화된 상태로 만들었으니까요. 아이폰의 찰떡궁합이 에어팟이라면 갤럭시의 찰떡궁합은 기어 아이콘X였을까요? 아쉽게도 기어 아이콘X는 시장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정 붙일 만한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삼성의 갤럭시 버즈입니다. 이름부터 전작보다 훨씬 명쾌해졌죠.
출고가 15만 9,500원으로 가격도 괜찮은 데다가, 갤럭시S10 시리즈 예약구매에서 사은품으로 증정했기 때문에 금세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구입해봤습니다. 여기서 TMI 하나 날리자면, 디에디트에서 모든 결제 권한은 대표님인 에디터M에게 있기 때문에 허락을 구해야 했죠. 리뷰한다고 하니 흔쾌히 사주겠다고 하길래 믿고 맡겼는데, 지마켓에서 17만 5,000원에 샀다는 게 아니겠어요? 지금 인터넷 최저가가 12만 9,000원인데. 대체? 왜? 부들부들.
어쨌든 남들보다 비싸게 산 갤럭시 버즈로 음악 감상을 시작해봤습니다. 참고로 완전 무선 이어폰에 대한 사용 이력은 에어팟과 베오플레이 E8 1세대 제품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비교 대상은 계속 에어팟 2세대 제품이 될 것 같습니다.
애플과 삼성의 오랜 라이벌 구도 때문인지 많은 분들이 에어팟과 갤럭시 버즈의 음질 차이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더라구요. 하지만 이번 리뷰에 도움을 주신 음향기기 전문 커뮤니티 영디비 측에 물어보니 두 제품은 사실 성격이 많이 달라서 음질을 비교하기에 알맞지 않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게 에어팟은 오픈형이고 갤럭시 버즈는 커널형이니까요. 그러니까 두 제품을 비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를 돕기 위한 정도로, 취향의 영역도 작용한다는 점을 알아주시길!
일단 귀에 딱 꽂고 평소에 자주 듣는 노래를 들어봤습니다. 어라? 좋습니다. 제가 막귀라서 정확히 표현할 순 없는데, 에어팟보다는 훨씬 좋다고 느껴집니다. 일단 커널형이 주는 메리트가 큽니다. 외부 소리를 어느 정도 차단해주고 음악 소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깔끔하고 듣기 편한 소리입니다.
AKG가 튜닝한 사운드라 현장감이 뛰어나다는 삼성전자 측의 보도자료를 읊지 않더라도, 사운드가 꽤 만족스럽다는 점에는 손을 들어줄 수 있겠습니다. 영디비에서는 ‘플랫한 음질’이라고 평가하더군요. 저는 이 의미가 궁금했는데 저음이나 고음의 밸런스가 좋고, 다른 이어폰을 테스트로 할 때 기준으로 삼아도 될 만큼 모범적인 세팅이라고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저음이 약하거나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디오 마니아들은 오히려 이 상태를 선호합니다. 갤럭시 웨어러블 같은 앱에서 EQ 설정을 바꿔서 취향에 맞게 만지기 쉽기 때문이죠. 원하는 대로 양념을 쳐서 먹을 수 있는 슴슴한 말이라고 평가하겠습니다.
에어팟 같은 경우 오픈형이라 외부 소리가 전혀 차단되지 않죠. 지하철 5호선 같은 극한 환경에서 착용하면, 바깥 소리와 음악 소리가 짬뽕이 되어 가사도 알아듣기 힘든 지경이 됩니다. 그렇다면 커널형인 갤럭시 버즈의 차음성은 어느 정도일까요? 보통입니다. 적당히 외부 소리를 막아주고, 적당히 외부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실망스럽다고 평가하는 분도 있지만, 저한테는 어느 정도 느슨한 차음성이 딱 좋네요. 완전 무선형 이어폰이라는 게 일상적으로 편하게 쓰는 제품인데 주변 목소리를 완전 놓칠 정도라면 불편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차음성이 뛰어난 이어폰들은 착용했을 때 귀 안에 압박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구요.
개인적으로 커널형 이어폰을 끼면 귀에 통증이 심해서 오픈형을 선호하는데, 갤럭시 버즈는 제가 써본 커널형 이어폰 중에선 착용감이 좋은 편에 속했습니다. 유닛 자체도 워낙 가볍고, 귀를 압박하는 느낌이 덜했어요. 가벼운 착용감에 비해서는 꽤 단단하게 밀착돼서 고개를 심하게 흔들거나 움직여도 빠지지 않았구요. 물론 한 시간 이상 계속 쓰고 있으면 답답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음악을 듣다가 한쪽 이어버드를 빼도 계속 재생이 되는 건 좀 아쉬운 점입니다. 에어팟의 경우엔 한쪽만 빼도 바로 재생이 멈추고, 다시 귀에 끼면 음악이 플레이되는데 갤럭시 버즈는 양쪽 이어버드를 모두 빼야 재생이 멈춥니다. 대신 터치 콘트롤을 지원해서 좀 더 조작이 용이한 편입니다.
갤럭시 버즈를 리뷰하기 전에 끊김 현상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았는데, 제가 리뷰를 위해 사용해 본 두 개의 제품에서는 그런 현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속단하긴 어렵지만 에어팟과 비교했을 때 끊김이 더 눈에 띄게 일어나는 제품은 아니었어요.
다만 삼성 스마트폰이 아니라 아이폰이나 LG 스마트폰과 연결했을 때 영상과 오디오 싱크에서 딜레이가 느껴지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아이폰으로 갤럭시 버즈를 연결해 유튜브 영상을 보면 입 모양과 소리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더라구요. 물론 갤럭시S10처럼 삼성 스마트폰에서는 이런 딜레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구요.
통화 음질에 있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평소에 에어팟으로 통화를 하면서도 상대방이 “야, 잘 안 들려! 너 또 에어팟이지?”라고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에어팟은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갤럭시 버즈로 통화를 하면 목소리 일부가 깎여 나간 것처럼 발음이 부정확하게 전달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에어팟과 갤럭시 버즈를 통해 전화를 걸어서 같은 장소에서 테스트해보았는데, 누가 들어도 확연히 티가 날 만큼 갤럭시 버즈의 통화 품질이 더 떨어진다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아무래도 콩나물처럼 생긴 에어팟의 빔포밍 마이크가 괜히 달려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배터리는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에어팟 2세대의 경우 최대 통화 시간이 3시간 정도인 것에 비해, 갤럭시 버즈는 무려 최대 5시간의 통화 시간을 제공합니다. 게다가 대기 시간도 20시간 안팎으로 상당히 넉넉하죠. 비슷한 사이즈에서 이 정도 배터리 시간을 구현한 게 놀랍습니다. 물론 갤럭시 버즈를 착용한 상태로 5시간 꼬박 통화를 하면 상대방을 많이 화나게 할 것 같지만요.
가볍고 귀여운 디자인과 편리한 사용 조작성, 훌륭한 배터리,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갤럭시 웨어러블 앱까지. 그동안 에어팟이 부러웠던 삼성 팬들에겐 굉장히 훌륭한 선택지입니다. 전작인 기어 아이콘X보다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좋은 제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네요. 게다가 가격도 착하죠. 만약에 갤럭시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사세요.
영디비의 자세하고 전문적인 리뷰가 궁금하시다면 ‘여기’로. 제가 머리 흔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영상 리뷰도 잊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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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