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디에디트의 글 쓰는 노예 김작가다. 요즘 나의 일상은 온통 넷플릭스다. 아침에 일어나면 넷플릭스, 밥을 먹을 때도 넷플릭스, 잠들기 전에 넷플릭스,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넷플릭스! 프리미엄 요금제를 쓰지만, 파티원들과 1/n로 나누어 3,650원밖에 내지 않으니 지출 부담도 적다. 영상을 보며 ‘능력 있는 이야기꾼은 다 넷플릭스에 모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기방기한 새로운 드라마가 매주 공개되니까 말이다. 연애, 스릴러, 호러 등 장르도 다양하다.
나는 종종 촬영도 시작하지 않은 영화들에 대해 찾아본다. 뉴스에서 ‘크랭크인’ ‘크랭크업’ 같은 단어들을 검색해보는 거다. 시놉시스만 나오고 캐스팅만 완료된 상태의 영화를 상상해보는 건 퍽 재미있다. 오늘 소개할 드라마 역시 그 단계에 있는 작품이다. 2020년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보건교사 안은영>. 책과 궁합이 딱 맞는 맥주도 함께 소개할 테니 기대해도 좋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가 쓴 장편소설이다. 공짜로 웹툰을 볼 수 있고, 5만편의 영화를 4,900원에 볼 수 있는 세상인데 만 원 넘는 돈을 내고 소설을 왜 읽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이 제목들을 읊어봐야겠다. 넷플릭스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애플TV+의 <파친코>,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리머걸> 등등. 이 외에도 정말 많은 드라마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넷플릭스가 열어놓은 대 스트리밍 시대 덕분에 소설은 다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보건교사 안은영>은 넷플릭스라는 바다로 흐르는 강줄기에서 발견한 가장 신나는 이야기다.
책 제목만 봐서는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다. 하지만 보건교사로 평생을 살다가 간 안은영의 일대기를 통해 보는 한국사회의 비참한 현실 같은 이야기가 전혀 아니며, 조금도 가깝지 않다. 장르는 판타지 소설이고, 안은영은 보건교사로 경제적 활동을 하며 종종 귀신을 퇴치하는 일을 겸업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도 비비탄과 장난감 칼로 유령들을 무찌르는 귀여운 보건교사.
내가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첫 느낌은 시트콤에 가까웠다. 소설을 쓴 정세랑 작가 역시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하니 이 책은 딱 재미를 위해 쓰인 것이고, 독자는 숨은 의미를 해석할 필요 없이 읽으면 된다. 장편소설이긴 하지만 점입가경의 형태로 전개되지 않고 <전원일기>처럼 에피소드마다 하나의 사건을 다루니 여러 번 나누어서 읽기에도 좋더라. 방지턱 없는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중간에 턱하고 걸리는 부분 없이 유쾌하게 미끄러지는 기분이었다.
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전에 그와 어울리는 맥주를 소개해볼까. 너무 오랜만이라 독자 여러분도 잊고 계셨겠지만, 이 코너는 책과 어울리는 맥주를 함께 소개하는 麥book(맥북) 시리즈니까! 내가 고른 맥주는 강릉의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만든 레드에일 백일홍이다.
필리핀의 산미구엘이 생각나는 뚱뚱하고 아기자기한 병이다. 그렇게 세련된 디자인은 아닌데, 왠지 안은영에게는 이게 더 어울린다. “이 맥주에는 영험한 기운이 있어”라고 말하며 유령을 퇴치한 뒤에 한 모금 마셨을 것 같고, 게임 속에서 HP를 채워주는 물약처럼 생기기도 했다.
안은영은 M고등학교에서 일하는 보건교사다. 10살 때부터 유령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학창시절에는 귀신을 볼 줄 알아서 괜히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다가 어울리고 싶지 않은 아이로 분류되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핸드백에 비비총과 장난감칼을 가지고 다니는 여자를 멀쩡하게 볼 사람은 많이 없을 테니까. 이렇게 설명하면 굉장히 특이한 사람일 것 같지만, 의외로 평범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건강한 사람이다. 항상 피곤해하지만 직업적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사랑한다. 별 탈 없이 살던 안은영의 삶이 달라지는 계기는 M고에 부임하면서부터인데, 한문교사 홍인표 때문이다.
그렇다. 이 소설에는 적당량의 로맨스가 가미되어있다. 적당한 로맨스는 삭막한 드라마에 윤활유가 될 수 있다. ‘적당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대놓고 연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살짝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 홍인표는 퇴마사도 아니면서 기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 은영은 기를 충전할 때 인표의 손을 비즈니스적으로 잡는다.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싸우기 위해서 잡는 건데, 살과 살이 맞닿는데 어디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나. ‘츤츤’거리는 둘의 로맨스는 책에서 확인하자. 아,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정유미와 남주혁이 캐스팅되었더라.
사실 책만 읽었을 때는 이렇게 예쁘고 잘생긴 두 사람으로 상상하지 못했다. 안은영의 성격이 털털해서 ‘아는 형’이기도 하고 아담한 체구의 발랄한 모습을 떠올렸을 때 전소민이 떠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정유미도 너무 찰떡이다. 하지만 인표역의 남주혁은 정말 의외였다. 홍인표라는 이름 때문일까 나는 이상하게 홍학표라는 중견배우가 계속 떠올랐다. 잘생겼다는 언급이 없는데 지나치게 잘생긴 사람으로 캐스팅되어 괜찮으려나 걱정되면서도, 보면 몰입되는 게 또 드라마니까 상관없지 않나 싶다.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맥주의 종류 중에서 백일홍은 고른 이유에는 은영과 인표 때문이기도 했다. 만날 때마다 투닥거리는 친구 같기도 하고, 어떨 때 보면 연인 같기도 하다. 둘 사이에는 교포 퇴마사 매켄지가 끼어드는 등 위기가 있지만, 잘 헤쳐나가는 둘을 보면 ‘이런 게 인연이지’ 싶다. 그리고 백일홍의 꽃말이 바로 인연이다.
디에디트에서도 작년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보건교사 안은영>은 방수책으로도 출시 됐었다. 방수책은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드는데, 대리석 채굴과정에서 나오는 돌가루를 이용한 종이 스톤페이퍼로 제작한다. 물에 젖어도 말리면 원상복구되고, 가볍고 보존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가격도 2000원 비싼 15000원. 벚꽃도 다 떨어지고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극장에서 내릴 쯤엔 바다에 가기 딱 좋은 계절이 되지 않을까. 강릉에 있는 버드나무 브루어리에 들려 생맥주를 사서 근처 해변에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백일홍의 도수는 6.2%라 맥주치고는 높은 편이지만 맛 자체는 달콤하다. 페일에일이 주는 쓴맛이나 라거의 청량감과는 확실히 차이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페일에일이 인생의 쓴맛을 닮았다고 생각해서 좋아했는데, 레드에일은 달달하면서 무거운 맛이 함께 있어서 매력적이더라. 도수가 높은 편이라 몇 모금을 마셨을 뿐이었는데, 몸 안으로 빠르게 취기가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독한 삶이지만 밝게 살아가는 안은영의 인생 같달까.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에피소드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나온다. 드라마 제작이 결정되고 다시 한번 읽어봤는데, 가상 캐스팅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꽤 웃음이 나왔다. 2000년 전부터 꾸준히 환생하며 사람 몸에 붙은 옴을 잡아 온 옴잡이 혜민도 궁금하고, 한국 비주얼 펑크 1세대 조슈아 장 역시 마찬가지. 특히 은영이 조슈아 장의 집에 귀신을 잡으러 들어갔다가 같이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조슈아 장은 쫄바지에 컬러렌즈, 속눈썹을 한 채 등장한다. 연예인 아우라를 잔뜩 풍기는 그 장면이 어떨까 탄생할까. 아, 참고로 내 마음속에서는 조슈아 장은 이미 ‘영원한 청춘’ 나훈아로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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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