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러분. 에디터H입니다.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죠. 에어팟을 쓰지 않는 사람과 에어팟이 없으면 못 사는 사람. 저는 당연히 전자… 일리가 없겠죠. 후자입니다. 그것도 아주 명백하게.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에어팟이 처음 나왔을 땐 그냥 애플이 만들어서 샀어요. 더 솔직하게 말해서 제가 리뷰어가 아니라, 그냥 앱등이였으면 아예 안 샀을지도 모릅니다. 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비싸다고도 생각했구요. 원래 아이폰에 번들로 들어있는 유선 이어폰인 이어팟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데 20만 원이 넘다니. 그리고 8개월이 지났습니다. 가방 바닥을 손으로 휘젓는 게 버릇이 됐어요. 에어팟을 찾으려구요. 행여나 집에 두고왔다는 걸 깨닫는 날에는 탄식부터 새어나왔습니다. 그래요. 에어팟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된 거죠.
2년 가까이 동고동락하며 1세대 에어팟의 배터리가 점점 맛이 갈 때쯤, 2세대 에어팟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전 타이밍 좋게 1세대 제품을 잃어버리고 말았죠. 국내 출시는 아직이지만 급하게 해외 직구 해왔습니다. 자, 리뷰 시작할까요?
에어팟 2세대는 세 가지 선택사항을 제공합니다. 새로운 무선 충전 케이스를 지원하는 모델은 24만 9,000원. 무선 충전 기능 없이 라이트닝 단자로 충전하는 기본 모델은 19만 9,000원. 1세대 에어팟에 무선 충전 기능만 곁들여 쓰고 싶다면, 무선 충전 케이스만 9만 9,000원에 따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 세 개를 샀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구입했다는 얘기죠. 호호.
#구성품
구성품은 간단합니다. 에어팟과 라이트닝 케이블이 들어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면, 충전 케이스만 파는 9만 9,000원짜리 제품엔 케이블이 안 들어있답니다.
#디자인
[왼쪽이 1세대, 오른쪽이 2세대]
에어팟 1세대와 2세대를 디자인으로 구별하는 건 꽤나 눈썰미를 요구하는 일입니다. 저도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 몇 가지 차이를 발견했어요. 뒷면에 있는 페어링 버튼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죠. 에어팟 2세대는 좀 더 위쪽에 버튼이 달렸네요.
[왼쪽이 1세대 오른쪽이 2세대]
앞모습은 더 비슷합니다. 왼쪽은 에어팟 1세대 오른쪽은 에어팟 2세대입니다. 구분할 수 있는 건 무선 충전 모델의 앞면에 ‘톡’하고 찍힌 작은 점뿐이죠. 무선 충전 중에 상태를 표시해주는 작은 LED입니다. 저 쪼꼬만 LED로 1세대/2세대는 물론 유선/무선 모델을 구분하는 거랍니다. 정말 실낱같은 단서죠. 나중엔 너무 구분이 안되서 모델명을 써서 스티커를 붙여놨을 정도입니다.
[왼쪽이 1세대, 오른쪽이 2세대… 아마도…]
유닛을 봐도 헷갈리긴 마찬가집니다. 왼쪽이 1세대, 오른쪽이 2세대인데 구분하기 어렵죠. 사실 말해놓고 나서 저도 확신이 서질 않네요. 아.. 아마 맞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디자인은 거의 똑같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다. 기존에 쓰던 액세서리가 그대로 호환됨은 물론, 물건을 쓰던 기분까지 호환되어 버립니다. 새것을 샀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아 섭섭하네요. 루머 속의 블랙 에어팟을 기다리던 분들은 더더욱 허탈하겠죠.
#혼종 불가
[너 지금 장난쳐? 라고 말하는 듯]
이러다 내가 에어팟을 뒤섞어 쓰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에 테스트해보았습니다. 2세대 에어팟 케이스에 1세대 이어버드와 2세대 이어버드를 섞어서 넣었어요. 성난 에어팟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띄웁니다. 정확히 무엇이 들어갔는지 확인해주네요. 섞일 염려는 없는 걸로 판명되었습니다.
#무선 충전
[충전이 시작되면 LED에 불이 반짝 들어오고, 곧 꺼진다]
저는 이미 무선 충전의 세계로 넘어온지 오래입니다. 이제 충전 단자를 찾아서 꽂아 넣는 작업은 구시대의 것으로 여겨질 정도에요. 어서어서 노트북도 무선 충전되는 시대가 오길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어팟이 무선 충전을 지원하게 된 건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아이폰을 충전하던 충전 패드 위에 에어팟을 연달아 올리면 불이 ‘반짝’ 들어오고 충전이 시작됩니다. 우아하고 간편한 방식이죠.
[요즘 잘 쓰는 무선충전 거치대인데 이런 제품에선 에어팟을 충전할 수 없다ㅠㅠ]
다만, 무선 충전기 중에서 거치대 형태로 스마트폰을 세워서 충전하는 모델은 사용할 수 없어요. 에어팟을 올려둘 수가 없거든요.
#시리야
무선 충전 외의 다른 큰 변화를 꼽자면, 역시 ‘시리야’ 기능이죠. 아무때나 ‘시리야’라고 부르는 음성만으로 시리를 활성화 할 수 있는 기능을 말합니다. 저는 원래 에어팟을 끼고 밖을 걸어다닐 땐 조금 수줍지만 시리로 대부분의 조작을 하거든요. “다음곡으로 넘겨줘”, “볼륨 높여줘” 같은 단순한 조작이 대부분이에요.
물론 에어팟을 가볍게 더블탭하는 동작으로도 시리를 불러낼 수 있었지만, 손이 완전히 자유롭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니까요.
적어도 이제는 시리가 알아듣는 한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작할 수 있게 된 거죠. “혜민이에게 전화 걸어줘”, “내가 좋아하는 음악 틀어줘”, “내일 날씨 알려줘.” 이런 것들요. ‘완전 무선 이어폰’이라는 정체성에 좀 더 다가가게 된 거죠. 연결하지 않아도, 선이 없어도, 터치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시리야 기능은 사실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한 기능입니다. 일단 언제든 “시리야”라는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마이크가 항상 스탠바이하고 있어야 하죠. 백그라운드에선 계속 준비중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배터리 효율이 뒷받침되어야 시도할 수 있겠죠. 에어팟 2세대에 들어갔다는 새로운 H1 칩의 역량을 여기에 상당 부분 쏟은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배터리
배터리 효율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에어팟의 배터리 시간을 살펴볼까요. 케이스에 넣어 꾸준히 충전하면 최대 24시간, 음악 감상은 최대 5시간 가능합니다. 1세대와 동일한 스펙이죠. 다만, 완충 시의 전화 통화 시간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기존에는 최대 2시간까지 가능했는데 이제 3시간까지 가능해졌어요. 더 좋아지긴 했는데 전화 통화를 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미미한 변화죠. 1년 이상 쓰다보면 배터리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는 걸 체험했던지라 아쉬움이 남네요.
물론, 이 정도 사이즈의 완전 무선형 이어폰으로서 에어팟의 배터리 시간이 나쁜 편은 아닙니다. 콩나물 시루처럼 얄팍한 바디에 5시간 음악 감상이 가능한 배터리를 구현한 것도 고무적이죠. 오히려 에어팟의 단점이라고 할 만한 점은 대기 시간이 짧다는 건데요. 음악을 틀거나 통화를 하지 않고 귀에 꼽고만 있어도 지속적으로 배터리가 닳습니다. 대기 시간과 음악 플레이 타임이 거의 비슷할 정도예요. 아무래도 우리 모르게 계속해서 일을 하는 모양입니다. “띠또로로로…”하고 배터리 부족을 알리는 알림음이 들려올 때의 허무함은 에어팟 사용자분들이라면 다 공감하시겠죠.
#통화 품질
저는 항상 에어팟의 단점이 통화품질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에어팟으로 통화하면 상대방이 “잘 안 들려, 또 에어팟이야?”라고 성을 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아무래도 에어팟 마이크가 꼬진 것 같다! 이렇게 결론내렸었죠. 물론 에어팟 2세대에서도 괄목할 만한 통화품질의 변화는 없었구요.
그런데 이번에 음향 기기 전문 커뮤니티 영디비(https://www.0db.co.kr/)를 운영하는 영디비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르더군요. 글쎄, 에어팟 정도면 완전 무선 이어폰 중에서는 통화품질이 아주 좋은 편이래요! 충격적이죠. 다른 무선 이어폰들은 지하철 같은데선 통화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에어팟에 들어간 빔포밍 마이크가 소리가 들리는 거리를 계산해 주변 소음인지, 사용자의 목소리인지를 판단해서 걸러준다고 해요. 결론만 말하자면 이 정도면 훌륭한 마이크라는 거죠. 콩나물처럼 살짝 튀어나온 2cm 정도의 길이가 마이크 성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알게 됐구요.
[마이크 방향의 잘못된 예와 잘된 예]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마이크의 각도에 따라 통화품질이 많이 다르다는 것! 저는 평소에 에어팟 마이크가 바닥을 향해 일자로 떨어지도록 착용하거든요. 왜냐면 그래야 덜 우스워 보이니까…. 그런데 마이크가 입 쪽을 향해 제 뺨을 가로 질러야 소리가 잘 들어간다고 하네요.
#음질
사실 제가 가장 궁금했던 건 에어팟 2세대에 음질 변화가 있느냐… 하는 거였어요. 처음에 들어봤을 때는 뭔가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했는데, 1세대랑 번갈아가며 들어보니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앞서 언급한 영디비를 통해 전문장비로 에어팟 2세대의 음질을 측정해봤습니다. 결과는? 네, 똑같았습니다. 놀라울 만큼 변화가 없었어요. 1세대와 2세대의 음역대별 그래프를 포개보니 거의 비슷하더라구요.
측정을 통해 알게 된 재밌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세대를 불문하고 에어팟은 저음이 센 이어폰이라는 거죠. 근데 저는 2년 가까운 시간 에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에어팟이 오픈형 이어폰이다보니 각자의 귀 모양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거였어요. 저는 귀는 작은데, 이어폰을 끼는 귀 안쪽 공간이 넓은 편이더라구요. 그래서 에어팟을 꼈을 때 저음이 사라라랑~ 흘러나가고 실제 음질보다 더 밋밋하게 느껴지는 거죠. 덧붙이자면 이렇게 완전 오픈형의 형태를 취한 에어팟에는 앞으로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들어갈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저는 에어팟의 가장 큰 장점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사용자 환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귀에 걸치듯 가볍게 착용하고 일상 속에서 항상 연결되어 있는 기기라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각 잡고 음악을 감상하려고 할때 사용할 만한 이어폰은 아니란 거죠.
#그래서?
새로운 에어팟은 “바뀐 게 별로 없다”는 평을 받았어요. 저도 동의합니다. 긴 기다림에 비하면 조금 시시하죠. 바뀐 게 완전 없다고 하면 섭섭한데, 뭐랄까. 평양냉면같은 슴슴함입니다. 첫 맛은 모르겠는데, 쓰다 보면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것 같은. 첫날은 바뀐 게 없다고 깔깔 웃었어요. 그러다 하루 더 쓰다 보니 연결할 때의 속도가 훨씬 빨라진 게 놀랍고, 이틀 쓰다보니 무선 충전이 너무 편해서 또 놀랍네요. 어쩌면 한 달쯤 쓰다 보면 더 놀라운 맛이 우러나올지 누가 알겠어요? 한국 출시할 때쯤, 여러분을 위해 롱텀 리뷰를 다시 준비해보겠습니다. 또 만나요. 뾰로로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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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